본 연구는 최근 ‘자율성’ 개념을 둘러싸고 전개해온 복잡한 철학적 논의 지형을 본 연구목적에 비추어 ‘실질적 자율성’ 대 ‘절차적 자율성’ 입장이라는 구도로 정리하는데서부터 연구를 시작할 것이다. 자율성에 대한 전반적 논의를 이들 구도 속에서 출발시키는 이유는 ...
본 연구는 최근 ‘자율성’ 개념을 둘러싸고 전개해온 복잡한 철학적 논의 지형을 본 연구목적에 비추어 ‘실질적 자율성’ 대 ‘절차적 자율성’ 입장이라는 구도로 정리하는데서부터 연구를 시작할 것이다. 자율성에 대한 전반적 논의를 이들 구도 속에서 출발시키는 이유는 사회적 소수자의 자율성 논의와 관련해 이 지점에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두 입장은 행위의 주체인 자아가 사회화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인격적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모두 동일하다. 그러나 드워킨(Ronald Dworkin), 마이어(Diana T. Meyer), 프리드만(Marilyn Friedman)과 같은 절차적 자율성론자들은 자율성 개념은 반성적 승인(reflective endorsement)의 과정이라는 특정한 사유 절차를 조건으로 요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보는 반면, 스톨자(Natalie Stoljar)를 비롯한 많은 실질적 자율성론자들은 절차적 조건뿐 아니라 자율성을 위한 내용적 조건 역시 만족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서로 그 입장을 달리한다.
본문은 프리드만과 마이어로 대표되는 절차적 관계적 자율성 논의를 중심에 두고, 이들의 논의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자율성의 주요 쟁점을 분석하고, 비판점의 해결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최근 관계적 자율성 논의의 쟁점은 무엇보다 자율성 개념이 최소한의 여성주의 규범을 요구해야하는지를 두고 전개되는 여성주의 논의를 통해 보다 명료해기 때문인데, 이는 무엇보다 이들이 경험사례를 놓고 자신의 자율성 관점을 논쟁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이어와 프리드만이 발전시킨 자율성 개념 즉,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반성적 승인의 과정을 거친 선택이라면, 비록 사회화 과정 속에서 형성된 욕구나 선호, 가치에 의해 촉발된 것이라하더라도 그 행위자의 선택은 자율적”이라는 절차적 자율성 개념의 성과를 인정한다. 이것은 자신의 욕구, 의지, 가치 등 행위의 동기가 되는 것들에 대한 반성적 승인을 했는지 여부만을 물을 뿐 선택의 내용을 문제 삼지 않는 입장이다. 이처럼 내용 중립적인 절차적 자율성 개념은 “독립적이고 자기결정적”이어야 한다는 남성친화적인 기존의 실질적 자율성 개념과 달리, 보살핌, 사랑, 의존성을 자신의 욕구와 가치로서 승인한 행위자의 선택 역시 자율적인 것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행위자의 일인칭적 관점에 서는 입장이며 또한 내용적으로 성별 중립적이다. 뿐만 아니라, 절차적 자율성 개념은 어떤 개인적 관계와 사회적 관행이 행위자의 자율성을 어떻게 증진하거나 훼손하는지를 볼 수 있게 하는 이점도 있다. 더 나아가, 절차적 개념은 서로 다른 윤리적 문화적 위치에서 행위를 선택하는 행위자들 간에 차이를 존중하게 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다문화주의 여성주의 논의와도 정합적인 측면이 있다.그러나 이런 기여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자율성론자들은 절차적 조건만으로는 여성주의 관계적 자율성에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우려는 크게 두 가지 문제에 맞추어져있다. 첫째, 절차적 자율성 개념은 자율성 그 자체를 부정하는 선택마저도, 행위자가 반성적 승인의 과정을 거쳐 자신의 삶으로 선택한 것이라면 자율적인 것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허용적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비판은 절차적 자율성 개념이 일인칭적 관점에 섬으로써 지나치게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자율성은 단지 주관적 조건에 의해서 판단될 가치가 아니라 객관적 기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비판이 중요한 지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실질적 자율성 개념으로 입장을 선회한다고 문제가 간단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이미 제기된 바, 취약한 상황에 위치해 있는 이들의 행위와 선택이 존중받지 못하고 쉽게 무시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절차적 자율성 논의 역시, 여성주의적 직관으로 대변되고 있는, 자율성에 대한 상식적 직관과 상충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대답할 수 있는 진전된 논의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며, 실질적 자율성 논의 역시 해결해야할 중요한 과제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이상에서 제기된 미결의 과제에 대한 해결하기 위해 본 연구는 관련 철학적 연구들과 함께, 가족폭력피해여성과 대리모여성의 실천적 행위 선택의 과정에 대한 서사를 조사하게 될 것이다.
실천적 적용을 위한 자율성 개념의 확립이 철학적 논의의 정교화를 통해서만으로는 그 타당성이 보장되기도 어렵거니와 논의를 완결시키기 어려울 것이기에 본 연구는 실제 사례에 비추어 그 타당성을 분별하는 반성적 균형(reflective equilibrium)의 방법을 활용함으로써 보다 실천적 정합성을 갖는 자율성 논의를 확립하고자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