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의 연구 방향은 주로 셰익스피어와 베케트의 극에서 나타나는 메타극적 특성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자의식적 반영 전략이 극적 의미 생산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고, 어떤 양상을 띠고 있는가에 집중 될 것이다. 그동안 메타극에 대한 연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진행되 ...
본고의 연구 방향은 주로 셰익스피어와 베케트의 극에서 나타나는 메타극적 특성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자의식적 반영 전략이 극적 의미 생산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고, 어떤 양상을 띠고 있는가에 집중 될 것이다. 그동안 메타극에 대한 연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진행되어 왔다. 극의 기원과 함께 시작된 메타드라마의 전통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대상으로 메타드라마적 양상을 규명한 아벨이라 할 수 있다. 주로 희랍 고전들과 셰익스피어의 극을 메타드라마적인 관점에서 비교하면서 아벨은 이런 문학적 전통을 잇는 현대극작가로 쥬네와 베케트, 그리고 브레이트를 들고 있다. 특히 그는 브레이트와 베케트의 공통점을 메타드라마적 특성에서 찾고 있다.
아벨은 희랍극과 셰익스피어의 극을 분석한 글에서 햄릿을 예로 들어 둘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을 “거의 모든 중심인물이 어느 순간 극작가처럼 행동하며 이들은 다른 등장인물들에게 특정한 자세나 태도를 부과하는 극작가의 의식을 발휘한다”(46)라고 지적함으로써 셰익스피어의 극이 희랍극보다 더 메타드라마적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아벨은 앤드게임을 해석하면서 햄과 클로브를 가리켜 조이스와 작가로서의 베케트 자신에 대한 구체화라는 전기적인 해석을 내리고 있다.
메타드라마에 대한 아벨의 연구는 메타드라마란 극 양식의 시발점이 희랍극이고, 셰익스피어의 극으로 이어져 온 전통이며, 세상은 무대(theatrum mundi)라는 관례를 소생시킨 공로가 있다. 하지만 크리스티언의 지적처럼 “세상은 무대”라는 극 관례를 아무런 차이 없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셰익스피어와 베케트를 동일한 잣대로 재어버린 오류와 이로 인해 작품의 의미를 지나치게 축소시킨 아쉬움이 있다.
아벨과 달리, 혼비의 연구는 한층 더 주목할 만하다. 그는 현대극의 메타드라마적인 특징을 공연으로서의 연극 그 자체에 대한 반영, 그리고 다른 극 작품이나 여타의 문학/예술 작품과 서로 교류하는 극/문화 복합체로서의 극에서 찾고 있다. 베케트 또한 극중극이나 새로운 내러티브의 형태로 작품 그 자체뿐만 아니라 셰익스피어를 위시한 여러 작가의 작품을 반영하거나 상호 교류하도록 하고 있고, 영화 및 라디오와 같은 다른 매체에도 끊임없이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러한 혼비의 지적은 충분히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메타드라마에 대한 연구는 작가의 자의식, 반조성, 자기반영, 극중극, 연극성, 극적 현실, 경계 허물기, 극적 반향, 표현의 (불)가능성, 텍스트의 상호 연관성, 그리고 무한 거울 삽입(mise-en-abyme) 기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소들을 연구해 왔다. 엘람에 따르면, “반조성”이란 개념은 “메타 언어 놀이”, 또는 “메타 연극 놀이”로 쓰이기도 한다(Elam, 31). 그리고 Hwang Hoon-sung(5)에 분석을 살펴보면, “반조성”의 개념을 작가, 등장인물, 배우, 텍스트, 현실, 관객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볼 때, 베케트의 극에는 대체로 세 가지 형태의 반조성이 드러나고 있다. 첫째, 허구를 만드는 사람(fictionalizer)으로서의 작가 자신의 자의식을 보여주는 작가-텍스트의 관계, 둘째,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인물들이 스스로 등장인물임을 자각하는 인물의 자의식, 즉 등장인물-관객의 관계, 그리고 하위 텍스트간의 관계에서 만들어져 두 종류의 “극적 반향”을 지시하는 세 번째 종류의 반조성이 드러난다.
따라서 헤일의 지적처럼, 관객에게 인식적인 혼란을 야기시킴으로써 단선적인 전통 개념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강력한 책략으로서(4), 또한 연극이 연극임을 드러내놓고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유희성을 드러내는 “연극성/연극현실의 전략”을 통한 메타드라마적 양상은 셰익스피뿐만 아니라 베케트의 극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극적 요소이자 형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관객은 현실과 환상, 즉 허구적 세계의 경계에서 무엇을 인식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지, 콘의 표현을 빌리면, “자신의 객관성(audienceship)을 목격”(30) 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