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성과물검색
유형별/분류별 연구성과물 검색
HOME ICON HOME > 연구과제 검색 > 연구과제 상세정보

연구과제 상세정보

니체와 프로이트: '내면화' 테제의 고찰 (-'힘에의 의지'와 '죽음충동'의 차이를 중심으로-)
Nietzsche and Freud: A comparative study on the thesis of 'internalization'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신진연구자지원사업& #40;인문사회& #41;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2S1A5A8023163
선정년도 2012 년
연구기간 1 년 (2012년 05월 01일 ~ 2013년 04월 30일)
연구책임자 김주휘
연구수행기관 한국교원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는 19세기의 독일 사상가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와 20세기 정신분석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사이의 사상적 관계 일면을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니체와 프로이트의 사상 사이에는 여러 가지 점에서 매우 놀라운 유사성이 존재한다. 정신분석이 시작된 초기부터 정신분석 안팎의 많은 이들이 둘 사이의 유사성을 지적해 왔고, 프로이트 역시 그것을 강하게 의식했다. 프로이트는 때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의 표현을 찾기 위해 직접적으로 니체에게 의존했고 니체가 심층심리학의 선구자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의식의 층위 너머에서 인간을 움직이는 거대한 무의식의 차원, 충동과 욕구들의 지배적인 역할에 대한 인정을 넘어서면, 두 사람의 사유는 사실 여러 지점에서 조금씩 편차를 보인다. 프로이트의 생애와 사상에는 니체의 존재의 그림자가 강하게 어려 있지만, 또한 프로이트가 그것에 대해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취하고 있었음이 사실이다. 니체와 프로이트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놀라운 사실은 두 사상가의 중심적인 사유가 매우 광범위하게 중첩되어 있지만, 동시에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많은 세부적인 불일치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사유가 어떻게 중첩되면서도 다른 궤적을 그려나가는가를 추적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겠지만 이는 생각보다 무척 까다로운 작업이다. 왜냐하면 그들 사이에는 우리가 단순히 놓고 비교할 수 있는 공통의 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니체와 프로이트의 사유 사이에는 도덕에 대한 계보학적 비판과 병리학적 현상에 대한 정신분석적 접근 사이의 거리가 존재한다. 이들이 유사해 보이는 용어를 사용할 때조차 그것들이 사실은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고 다른 의미로 파악되고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단순히 두 사람의 생각을 병치하고 표면적 유사성에 놀라는 것이 아니라, 중첩성과 더불어 그 이면에 존재하는 차이를 드러내 보이고 그것의 함의를 추적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러한 작업은 생각보다 매우 드물다.
    하지만 다행히 국내에서 그러한 연구의 시도들이 있어왔는데, 대표적으로 이창재는 도덕의 성격과 기원, 특히 죄의식의 기원에 대한 니체와 프로이트의 사유를 비교하면서 이들의 사유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려 시도했다. 그리고 근래에 허경은 욕망과 문명의 관계에 대한 니체와 프로이트의 사상적 차이에 주목하여 이들의 관계를 규명하려 한 바 있다. 특히 허경은 프로이트가 욕망의 부정과 억압을 문명의 기초로 보면서 문명의 발달과 그에 따른 신경증과 죄책감의 증대를 필연적인 것으로 보았던 반면, 니체는 욕망의 긍정에 기초한 새로운 문명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지금 제안하고 있는 연구에서, 허경이 지적한 바 있는 프로이트와 니체의 근본적인 차이, 즉 욕망의 억압과 욕망의 긍정 문제와 관련하여, 이들의 입장 차이가 드러나는 한 미묘한 대목을 통해 그 차이의 내용과 근거를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즉 필자는 본 연구에서 니체와 프로이트의 공통적 테제로 잘 알려져 있는 ‘내면화’ 테제에서 출발하여 이들 사유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논하고, 이 테제에 함축되어 있는 문명과 도덕, 폭력성의 연루 문제를 다룰 것이다. 이를 통해 니체와 프로이트의 사상이 어떤 점에서 유사하며 또 어떤 점에서 확연히 갈라지는지를 분명히 해 보고자 한다. 이 연구를 통해 프로이트가 왜 욕망의 부정을 문명의 필수적 조건이라고 생각했으며, 반면 니체는 욕망의 긍정을 주장할 수 있었는지, 왜 프로이트는 야만이냐 문명인의 신경증이냐의 딜레마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반면 니체는 그것을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 근거가 명확해지리라고 기대한다.
  • 기대효과
  • 본 연구는 현대 철학의 중심적 위치에 있는 니체와 프로이트 각각의 사유에 대해 보다 심도 깊은 이해를 제공하고, 여전히 모호한 채로 남아 있는 그들의 관계를 규명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또한 니체와 프로이트의 ‘내면화’ 테제를 통해 필자가 제기하고자 하는 문명과 도덕, 폭력성의 연루 문제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문명사회 전체가 끊임없이 돌아가 고민해야 할 주제이다. 실제로 오늘날 지적 사유의 세계에서 ‘폭력성’의 문제는 중심적인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문명의 발전 과정에 수반되었고 오늘날에도 삶의 여러 곳에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폭력성’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것이 극복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지 등에 대해 많은 이들이 다양한 영역과 수준에서 고민하고 있다. 우리는 이처럼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각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폭력성’에 대한 사유를 하나로 모으는 보다 큰 프로젝트를 기획할 수 있고, 본 연구는 그러한 기획의 한 부분으로도 기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논문의 형태로 나오게 될 본 연구의 결과물은 다양한 수업에서 교육 자료로 활용될 수 있으며 교육 프로그램의 새로운 주제를 만들어내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연구요약
  • (1) 소위 ‘내면화’ 테제는 프로이트에 대한 니체의 영향이 매우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대목으로 잘 알려져 있다. 1887년에 출판된 <도덕의 계보학> 2부에서 니체는 양심의 가책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소위 ‘내면화 테제’를 제안했다. 그에 따르면 양심의 가책의 기원은 인간이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여러 본능들의 분출을 금지 당하는 순간에 있다. 저 본능들은 금지되었다고 해서 단순히 사멸하지 않고, 방향을 전환하여 ‘내부를 향함’으로써,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공격의 대상으로 함으로써 그 욕구를 충족시킨다. 니체가 보기에는 이것이 ‘자신에 대한 나쁜 감정’으로서의 ‘양심의 가책’의 시작이다.
    프로이트는 <문명 속의 불만>에서 이와 놀랍도록 유사한 주장을 전개한다. 이 저작에서 프로이트는 에로스와 죽음충동에 대한 이원적 충동이론을 전제로, 문명의 진화를 에로스와 죽음충동, 삶의 충동과 파괴의 충동 사이의 투쟁의 결과물로 이해한다. 문명은 에로스에 봉사하는 과정이며 에로스는 인간을 더 큰 단위로, 인류의 단위로까지 결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인간의 타고난 공격적 충동은 이러한 문명의 프로그램에 반대한다. 그러므로 문명이 진전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공격성이 제어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어떻게? 프로이트는 바로 ‘내면화’가 문명이 공격성을 무해한 것으로 만드는 메커니즘이라고 주장한다. 니체와 마찬가지로 프로이트는 공격성이 내면으로 투사되어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의 용어로 하자면, 에고가 타인들에게서 충족시키고 싶어 하는 가혹한 공격성을, 에고의 한 부분인 초자아가 떠맡아 ‘양심’의 형태로, 에고 자신에 대해서, 발동시키게 된다.
    이처럼, 외부를 향해 표출되던 충동이 금지될 때 그것이 사멸하기보다는 방향을 바꾸어 내면을 향하게 된다는 ‘내면화 테제’는 니체와 프로이트 사상의 놀라운 유사성을 보여주는 예로 손꼽힌다. 하지만 두 경우에 내면화되는 것은 과연 동일한 충동일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두 경우에 내면화의 결과에 있어서도 어떤 차이가 있으리라고 가정해야 하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니체가 일원론적으로 ‘힘에의 의지’의 존재를 주장했고 프로이트가 이원론적으로 에로스와 죽음충동의 존재를 주장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일반적 차이가 ‘내면화’ 테제와 같은 곳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는 실정이다. 필자는 본 연구를 통해 이러한 공백을 메우고자 한다. 다소 거칠게 제안을 하자면, 니체에게서 내면화되는 것은 ‘힘에의 의지’이며 이것은 형성적인 창조력인 동시에 폭력성을 내포한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문명 속의 불만󰡕에서 이원론을 견지하면서 에로스와 죽음충동을 구별하고, 억압되기 때문에 ‘내면화’의 운명을 겪어야 하는 것은 주요하게는 죽음충동이요 공격성이라고 말한다. 즉 니체에게서 내면화되는 것은 폭력성을 수반하는 창조적 힘인데 반해 프로이트에게서 내면화되는 것은 순수하게 파괴적인 것으로 이해되는 죽음충동이다. 필자는 이러한 차이에 주목하고 그것이 어떤 함의를 갖는지를 추적해 볼 것이다.

    (2) 니체와 프로이트가 공유하고 있는 ‘내면화’ 테제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고찰하면 우리는 그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통찰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이 공유하는 ‘내면화’ 테제에는 문명과 도덕이 필연적으로 폭력성과 연루되어 있다는 불편한 역설이 함축되어 있다. 이들의 사유는 이성과 야만, 문명과 폭력의 단순한 이원적 대당을 넘어서서, 빛과 그림자처럼 뗄 수 없는 관계 하에 있는 문명과 도덕, 폭력의 연관관계를 제시한다. 오늘날의 인류에게는 문명의 미래에 대한 어떤 유토피아적 환상보다도 인간의 문명의 조건과 성격에 대한 현실적인 통찰이 더욱 절실해졌다. 이와 관련하여 니체와 프로이트의 사유는 매우 귀한 사례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 위에서 지적했던 내면화되는 충동의 차이, 그리고 도덕과 결부되는 폭력성의 성격의 차이가 그로부터 결과하는 도덕에 있어서도 차이를 가져올 것이다. 연구의 후반부는 이러한 차이를 분석하고 인류의 미래에 대한 진단을 비교하는 데에 바쳐진다.
  • 한글키워드
  • 내면화; 문명 도덕; 양심; 양심의 가책; 죄의식 힘에의 의지; 창조성; 형성력; 폭력 에로스; 죽음충동; 파괴성.
  • 영문키워드
  • Internalization; civilization morality; conscience; bad conscience; guilt Will-to-Power; creativity, formative force; violence Eros; death instinct; destructiveness.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는 니체와 프로이트의 공통적 테제로 잘 알려져 있는 ‘내면화’ 테제에서 출발하여 이들 사유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논한다. 특히 본 연구는 프로이트가 왜 욕망의 부정을 문명의 필수적 조건이라고 생각했으며, 반면 니체는 욕망의 긍정을 주장할 수 있었는지, 왜 프로이트는 야만이냐 문명인의 신경증이냐의 딜레마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반면 니체는 그것을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 차이의 근거들에 천착하고자 했다.
    본 연구는 궁극적으로 이러한 차이가 생명충동과 죽음충동에 대한 프로이트의 이원론적 사유와 삶의 본질을 ‘힘에의 의지’에서 발견하는 니체의 일원론적 사유의 차이에서 비롯한다고 주장한다.
    프로이트는 초기의 에고충동과 리비도의 대당을 포기하고 대신 생명충동과 죽음충동(에로스와 타나토스)의 이원론을 제안하면서, 특히 후자를 모든 종류의 공격성과 파괴성, 사디즘, 통제와 지배에의 충동 등의 원천으로 간주했다. 그는 유기체가 원래의 비유기적 상태로 돌아가려는 내적 충동(죽음충동)을 갖는다고 보았으며, 이것으로부터 모든 종류의 공격성을 설명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프로이트의 이러한 이원론은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비극적 양자택일만을 남기는데, 왜냐하면 죽음충동은 우리에게 타인을 공격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 자신을 공격할 것인가 사이에서 선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의 내면화 테제에서 내면화되는 것은 외부로의 분출을 금지당한 죽음충동의 작용들, 즉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성향들이다.
    반면 니체는 생명의 본질로서 ‘힘에의 의지’를 제안하는데 그의 일원론은 삶과 죽음에 대한 전혀 다른 이해를 내포하고 있다. 모든 삶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모든 창조는 필연적으로 파괴를 수반하기 때문에, 양자는 결코 그것 자체로 존재하지 않고 그렇게 파악될 수도 없다. 그래서 폭력성은 그 자체로 악이 아니며, 결코 제거할 수도, 또한 제거하려 해서도 안 된다. 또한 그것은 인간의 문명적 삶을 위해 ‘억압’되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명의 창조 과정 자체에 수반하는 것이다. 하지만 창조와 분리된 파괴성, 순수한 파괴성과 폭력성은 힘의 약화와 수동성의 표현으로서 비판된다. 니체에게서 그것은 병리적이고 문제적인 상황이다.
    모든 창조성이 파괴성을 수반하는 것처럼, 생명의 본질로서의 힘에의 의지는 그것이 초월과 극복에의 의지인 한에서 죽음에의 의지를 포함한다. 하지만 여기서 힘에의 의지가 포함하는 죽음의지는 프로이트에게서처럼 단지 기원에로의 회귀에로의 의지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생산과 출산에의 의지이다.
    니체는 생명충동과 죽음충동의 이원론을 거부하고 삶과 죽음의, 창조와 파괴의 공속성을 인정함으로써 프로이트의 비극적 양자택일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니체에게서 내면화되는 것은 단지 파괴적인 죽음충동이 아니라, 창조적인 동시에 파괴적인 힘에의 의지이며, 그것은 외부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내면을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스스로를 만족시키고 인간 본성을 재구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니체는 억압이라기보다는 변형에 기초한 문명의 가능성을 인정하며, 이로부터 니체에게서 자기긍정과 삶의 긍정, 행복의 가능성이 도출된다.
  • 영문
  • This study deals with the problem of ‘internalization’ in Nietzsche’s and Freud’s thought, focusing on their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Especially it raises the questions of how Nietzsche could insist on the affirmation of desire whereas Freud thought of the negation of desire as the necessary condition of civilization, of how Nietzsche could think of the possibility of happiness within a civilization whereas Freud presents the dilemma between the barbarian’s happiness and the civilized’s neurosis as inevitable. It wants to show that the difference results from the more fundamental one of Freud’s dualistic supposition of life-instinct and death-instinct and Nietzsche’s monistic thesis of ‘will-to-power.’
    Freud presents the dualism of life-instinct and death-instinct, considering the latter as the ultimate source of all the aggressiveness, destructiveness, sadism, will to dominate etc.. The death-instinct leaves men with the tragic dilemma between the attacking of others and the killing of oneself. Freud thinks that the death-instinct-derived aggressiveness is internalized in the form of super-ego of a civilized man.
    Nietzsche suggests the ‘will-to-power’ as the essence of life, implicating a very different understanding of the nature of life and death. Especially, life and death, creativity and destructiveness, love and contempt etc. are so closely correlated in Nietzsche’s thought that e.g. violence is not an evil in itself and cannot exist and be perceived in itself. If destructiveness appears in its pure form, separated from any creativity, it can only be a temporary or pathological phenomenon. We can also say that Nietzsche’s ‘will-to-power’ includes death-instinct insofar as it is a will-to-transcend and will-to-overcome-oneself. The death-instinct here is not toward the unorganic origin of organics, but toward new births and productions.
    Nietzsche’s monistic understanding of life and death gives us the way to evade Freud’s tragic alternative of the barbarian’s happiness and the civilized’s neurosis. For Nietzsche, what is internalized is not a death-instinct but a creative/violent will-to-power, which could find satisfaction in the creation of oneself. Nietzsche affirms the possibility of civilization based not on the oppression but on the transformation of will-to-power, from which derives the possibility of affirmation and happiness within a civilization.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니체와 프로이트의 공통적 테제로 잘 알려져 있는 ‘내면화’ 테제에서 출발하여 이들 사유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논하고자 했다. 특히 이 연구를 통해 프로이트가 왜 욕망의 부정을 문명의 필수적 조건이라고 생각했으며, 반면 니체는 욕망의 긍정을 주장할 수 있었는지, 왜 프로이트는 야만이냐 문명인의 신경증이냐의 딜레마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반면 니체는 그것을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 근거를 명확하게 하고자 했다. 이에 본 연구자는 당초의 계획에서 밝힌 것에 더하여 니체와 프로이트에게서 다음과 같은 차이들을 명료화하게 되었다.

    -프로이트와 달리 니체의 충동에 대한 이해는 실러와 횔덜린, 에머슨과 바그너 등의 영향 하에 형성된 것으로, 그에게서 충동은 프로이트에게서처럼 단지 관성적이고 기능적인 것이 아니라 창조적이고 가치함유적인 것이다.

    -니체와 프로이트는 삶과 죽음의 성격에 대한 이해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프로이트는 초기에 에고충동과 대상충동(리비도)을 대립시켰지만 나르시시즘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를 포기하고, 대신 생명충동과 죽음충동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이원론을 제안했다. 그는 전자에게서는 결합과 연결, 응집 등의 생명의 기능을, 후자에게서는 공격성과 파괴성, 사디즘, 통제와 지배에의 충동 등의 원천을 발견한다. 그는 유기체가 원래의 비유기적 상태로 돌아가려는 내적 충동(죽음충동)을 갖는다고 말하며, 이것으로부터 모든 종류의 공격성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프로이트에게서 에로스와 죽음충동의 모순은 우리에게 비극적 양자택일을 요구한다. 죽음충동은 우리에게 타인을 공격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 자신을 공격할 것인가의 양자택일만을 남기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의 내면화 테제에서 내면화되는 것은 정확하게 외부로의 분출을 금지당한 죽음충동의 작용들, 즉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성향들이다.

    -생명충동과 죽음충동의 프로이트적 이원론과 비교할 때 니체의 ‘힘에의 의지’의 일원론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니체는 생명의 본질로서 ‘힘에의 의지’를 제안하는데 그의 일원론은 삶과 죽음에 대한 전혀 다른 이해를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니체에게서 삶은 언제나 죽음을, 창조는 파괴를, 사랑은 경멸을 동시에 포함하고 전제한다. 모든 삶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모든 창조는 필연적으로 파괴를 수반하기 때문에, 양자는 결코 그것 자체로 존재하지 않고 그렇게 파악될 수도 없다. 이를테면 폭력성은 그 자체로 악이 아니며, 결코 제거할 수도, 또한 제거하려 해서도 안 된다. 또한 그것은 인간의 문명적 삶을 위해 ‘억압’되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명의 창조 과정 자체에 수반하는 것이다. 하지만 창조와 분리된 파괴성, 순수한 파괴성과 폭력성은 힘의 약화와 수동성의 표현으로서 비판된다. 니체에게서 그것은 병리적이고 문제적인 상황이다.
    모든 창조성이 파괴성을 수반하는 것처럼, 생명의 본질로서의 힘에의 의지는 그것이 초월과 극복에의 의지인 한에서 죽음에의 의지를 포함한다. 하지만 여기서 힘에의 의지가 포함하는 죽음의지는 프로이트에게서처럼 단지 기원에로의 회귀에로의 의지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생산과 출산에의 의지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이러한 이해로부터, 프로이트는 문명이 본능의 억압에 기초할 수밖에 없으며, 그리하여 인간은 완전한 행복과 문명의 결여, 혹은 문명과 신경증 사이에서 비극적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반면 니체는 생명충동과 죽음충동의 이원론을 거부하고 삶과 죽음의, 창조와 파괴의 공속성을 인정함으로써 프로이트의 비극적 양자택일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니체에게서 내면화되는 것은 단지 파괴적인 죽음충동이 아니라, 창조적인 동시에 파괴적인 힘에의 의지이며, 그것은 외부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내면을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스스로를 만족시키고 인간 본성을 재구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니체는 억압이라기보다는 변형에 기초한 문명의 가능성을 인정하며, 이로부터 니체에게서 자기긍정과 삶의 긍정, 행복의 가능성이 도출된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연구결과 활용계획

    본 연구자는 이 연구가 니체와 프로이트 각각의 사유에 대해 보다 심도 깊은 이해를 제공하고, 여전히 모호한 채로 남아 있는 그들의 관계를 규명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 기대한다. 니체와 프로이트의 ‘내면화’ 테제를 통해 필자가 제기하고자 하는 문명과 도덕, 폭력성의 연루 문제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문명사회 전체가 끊임없이 돌아가 고민해야 할 주제이다. 오늘날 지적 사유의 세계에서 ‘폭력성’의 문제는 중심적인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문명의 발전 과정에 수반되었고 오늘날에도 삶의 여러 곳에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폭력성’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것이 극복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지 등에 대해 많은 이들이 다양한 영역과 수준에서 고민하고 있다. 우리는 이처럼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각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폭력성’에 대한 사유를 하나로 모으는 보다 큰 프로젝트를 기획할 수 있고, 본 연구는 그러한 기획의 한 부분으로도 기여할 수 있다.
    논문의 형태로 나오게 될 본 연구의 결과물은 다양한 수업에서 교육 자료로 활용될 수 있으며 교육 프로그램의 새로운 주제를 만들어내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2. 연구성과

    본 연구는 논문의 형태로 학술지에 게재될 것이다.
  • 색인어
  • 힘에의 의지, 생명충동, 죽음충동, 양심, 양심의 가책, 폭력성, 창조성.
  • 연구성과물 목록
데이터를 로딩중 입니다.
데이터 이용 만족도
자료이용후 의견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