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니체와 프로이트의 공통적 테제로 잘 알려져 있는 ‘내면화’ 테제에서 출발하여 이들 사유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논하고자 했다. 특히 이 연구를 통해 프로이트가 왜 욕망의 부정을 문명의 필수적 조건이라고 생각했으며, 반면 니체는 욕망의 긍정을 주장할 수 있 ...
본 연구는 니체와 프로이트의 공통적 테제로 잘 알려져 있는 ‘내면화’ 테제에서 출발하여 이들 사유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논하고자 했다. 특히 이 연구를 통해 프로이트가 왜 욕망의 부정을 문명의 필수적 조건이라고 생각했으며, 반면 니체는 욕망의 긍정을 주장할 수 있었는지, 왜 프로이트는 야만이냐 문명인의 신경증이냐의 딜레마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반면 니체는 그것을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 근거를 명확하게 하고자 했다. 이에 본 연구자는 당초의 계획에서 밝힌 것에 더하여 니체와 프로이트에게서 다음과 같은 차이들을 명료화하게 되었다.
-프로이트와 달리 니체의 충동에 대한 이해는 실러와 횔덜린, 에머슨과 바그너 등의 영향 하에 형성된 것으로, 그에게서 충동은 프로이트에게서처럼 단지 관성적이고 기능적인 것이 아니라 창조적이고 가치함유적인 것이다.
-니체와 프로이트는 삶과 죽음의 성격에 대한 이해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프로이트는 초기에 에고충동과 대상충동(리비도)을 대립시켰지만 나르시시즘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를 포기하고, 대신 생명충동과 죽음충동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이원론을 제안했다. 그는 전자에게서는 결합과 연결, 응집 등의 생명의 기능을, 후자에게서는 공격성과 파괴성, 사디즘, 통제와 지배에의 충동 등의 원천을 발견한다. 그는 유기체가 원래의 비유기적 상태로 돌아가려는 내적 충동(죽음충동)을 갖는다고 말하며, 이것으로부터 모든 종류의 공격성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프로이트에게서 에로스와 죽음충동의 모순은 우리에게 비극적 양자택일을 요구한다. 죽음충동은 우리에게 타인을 공격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 자신을 공격할 것인가의 양자택일만을 남기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의 내면화 테제에서 내면화되는 것은 정확하게 외부로의 분출을 금지당한 죽음충동의 작용들, 즉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성향들이다.
-생명충동과 죽음충동의 프로이트적 이원론과 비교할 때 니체의 ‘힘에의 의지’의 일원론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니체는 생명의 본질로서 ‘힘에의 의지’를 제안하는데 그의 일원론은 삶과 죽음에 대한 전혀 다른 이해를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니체에게서 삶은 언제나 죽음을, 창조는 파괴를, 사랑은 경멸을 동시에 포함하고 전제한다. 모든 삶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모든 창조는 필연적으로 파괴를 수반하기 때문에, 양자는 결코 그것 자체로 존재하지 않고 그렇게 파악될 수도 없다. 이를테면 폭력성은 그 자체로 악이 아니며, 결코 제거할 수도, 또한 제거하려 해서도 안 된다. 또한 그것은 인간의 문명적 삶을 위해 ‘억압’되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명의 창조 과정 자체에 수반하는 것이다. 하지만 창조와 분리된 파괴성, 순수한 파괴성과 폭력성은 힘의 약화와 수동성의 표현으로서 비판된다. 니체에게서 그것은 병리적이고 문제적인 상황이다.
모든 창조성이 파괴성을 수반하는 것처럼, 생명의 본질로서의 힘에의 의지는 그것이 초월과 극복에의 의지인 한에서 죽음에의 의지를 포함한다. 하지만 여기서 힘에의 의지가 포함하는 죽음의지는 프로이트에게서처럼 단지 기원에로의 회귀에로의 의지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생산과 출산에의 의지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이러한 이해로부터, 프로이트는 문명이 본능의 억압에 기초할 수밖에 없으며, 그리하여 인간은 완전한 행복과 문명의 결여, 혹은 문명과 신경증 사이에서 비극적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반면 니체는 생명충동과 죽음충동의 이원론을 거부하고 삶과 죽음의, 창조와 파괴의 공속성을 인정함으로써 프로이트의 비극적 양자택일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니체에게서 내면화되는 것은 단지 파괴적인 죽음충동이 아니라, 창조적인 동시에 파괴적인 힘에의 의지이며, 그것은 외부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내면을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스스로를 만족시키고 인간 본성을 재구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니체는 억압이라기보다는 변형에 기초한 문명의 가능성을 인정하며, 이로부터 니체에게서 자기긍정과 삶의 긍정, 행복의 가능성이 도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