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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관(普成館)의 출판 활동 연구
A study on Bosunggwan's Publishing Activity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우수논문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2S1A5A2A02018570
선정년도 2012 년
연구기간 1 년 (2012년 05월 01일 ~ 2013년 04월 30일)
연구책임자 권두연
연구수행기관 연세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이 연구는 근대 초기 출판사 가운데 하나인 보성관의 출판 활동을 통해 근대 초기 교재 출판 및 서적 발행의 성격과 출판사를 중심으로 한 지식장의 형성을 살펴보는 것을 중심 과제로 삼는다. 보성관은 1906년 대한제국의 관리 대신이자 고종의 측근으로 알려진 이용익이 보성학원을 창립할 때 그 부속기관으로 함께 설립한 출판사이다. 따라서 보성관은 보성 소학교 및 중학교, 그리고 전문학교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보성학원의 교재들을 출판했지만 그 구체적인 활동들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본격적으로 논의된 바 없다. 따라서 이 연구는 보성관의 출판 활동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근대 초기 형성된 출판문화의 한 양상을 고찰하는데 목적을 두고자 한다.
    이를 위해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 주목하고자 한다.
    1. 보성관과 보성학원의 관계
    2. 보성관의 서적 발행 현황과 번역부 및 번역원의 활동
    3. 국채보상운동과 잡지 <야뢰>의 발간과 관련된 활동
    우선 첫째로, 보성관과 보성학원의 관계를 통해 보성관의 성격을 보다 명확히 하고자 한다. 주지하듯 보성관은 인쇄소 보성사와 함께 이용익이 보성 계열의 학교들의 교재 출판을 보조하기 위해 설립한 출판사이다. 그러니까 학교 교재를 출판하기 위해 학교와 함께 설립되었던 부속기관이다. 그런데 실제 보성관 발행서적 및 당대 매체 기사들, 특히 ‘유지회(維持會) 사건’으로 통칭되는 보성학원의 사립화 과정을 통해 보성관이 학교 부속기관의 기능에만 한정되지 않았음을 살펴보고자 한다.
    둘째, 보성관이 발행한 실제 서적들의 현황을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보성관 발행 서적 목록을 작성함으로써 보성관의 출판 상황 전반을 조망하고자 한다. 신문관(新文館) 출판 연구에서 이미 활용해 보았듯 서적 목록은 출판 활동의 전반적인 특징을 조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보성관의 경우도 신문관과 마찬가지로 보성관에서 발행된 단행본 서적들의 광고면과 매체에 실린 서적 광고를 이용하여 리스트를 작성한다. 작성된 리스트는 각 도서관에 보관된 도서들과 일치하는지의 여부 및 서적의 상태들을 직접 확인하는 실물 확인 작업을 병행한다. 이렇게 작성된 서적 목록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보성관 출판 활동의 특징을 파악해 내고자 한다.
    1) 단기간에 상당한 권수에 해당하는 다양한 교재를 발간했다.
    2) 교재의 편제는 학제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3) 휘문의숙의 부속기관인 휘문관과 달리 교재 출판뿐 아니라 신지식층을 겨냥한 역사전기 및 위인전의 발간에 주력했다.
    4) 교재의 대부분이 번역에 의해 이뤄졌다.
    5) 교재 번역에 ‘보성관 번역부(普成館繙譯部)’ 및 ‘보성관 번역원(普成館繙譯員)’이라는 상당한 전문 기구 및 인력이 동원되었다.
    6) 특히 번역원으로 활동한 인물들의 리스트를 통해 번역원으로 활동한 인물들을 일별했다.
    셋째, 보성관이 보성학원의 부속 기관에 머물지 않았음을 잡지 <야뢰>의 발간과 국채보상운동, 그리고 교재 편찬에 관여했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한 각 학회의 활동 등과 관련하여 다뤄보고자 한다. 보성관은 국채보상과 관련하여 이 운동에 결사의 장을 제공하고 회원을 조직하는 등 상당히 깊이 관여한 것으로 간주된다. 특히 <야뢰>를 통해 이와 관련한 기사를 표현함으로써 사회운동에의 관심을 고조시킨다. 한편 󰡔야뢰󰡕의 잡지 편집은 보성관 내에서 이뤄졌는데 여기에 관여한 상당수 인물들이 보성관 번역원 및 보성학원 관련자로 구성된다. 이 점은 잡지 발간이 학교보다 오히려 출판사와 연동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성관에 출입했던 인물들이 학교 교재 편찬과 더불어 각종 사회 활동이나 저술 활동을 활발히 함으로써 근대 초기 지식장의 형성에 하나의 네트워크로 기능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결국 이 연구는 출판사를 중심으로 한 지식장의 재편성을 통해 근대 초기 출판문화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고찰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 기대효과
  • 이 연구는 대한 제국기 교재 출판을 전문으로 한 출판사 가운데 하나인 보성관의 출판 활동에 대한 본격적인 탐색이자 근대 초기 출판사를 중심으로 형성된 지식장 재편에 관한 하나의 시도이다. 이 연구가 기대하는 효과는 출판사를 중심으로 하여 발행된 서적들에 대한 재모색을 통해 이 시기 문학연구 및 출판연구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이 연구는 근대 초기 교재 출판을 주로 했던 보성관을 중심으로 초창기 지식의 유입과정 및 실태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근대 학문 및 지식장에 미친 양상을 새로운 지평에서 논의하기한 토대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1. 출판사와 교재 번역
    지금까지 근대 초기 교재 출판은 학교 제도나 각 분과 학문, 또는 과목별 연구에 국한되어 근대 초기 지식장의 형성과 함께 논의되지 못했다. 가령 수신교과서나 국어, 국사, 지리, 과학교과서들은 각 분야별로 활발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 교재 편찬에 관여한 인물들을 비롯하여 실제로 교재 편찬의 구체적인 방식에 대해서는 그다지 연구되지 않았다. 이 연구를 통해 근대 초기 교재 출판이 단순히 학교제도에 국한된 활동이 아니라 이 시기 신학문의 수입과 번역이라는 보다 넓은 측면에서 연구되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고자 한다. 가령 문학연구자들 사이에서 주로 다뤄진 ‘번역’연구는 문학 텍스트로서의 번역에만 한정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월남망국사󰡕나 󰡔비율빈전사󰡕 등, 문학연구자들 사이에서 빈번하게 다뤄지고 있는 이들 역사·전기물들은 사실상 이 시기 학교 교재로 사용되었고 보성관의 출판 활동에서 살펴보았듯 학교 교육을 위해 번역된 서적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근대 초기 교재 번역은 단순히 출판의 차원에서나 문학의 차원에서 분리되어 연구될 것이 아니라 그 사회, 역사적인 맥락을 고려하여 파악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그러한 점을 부각시키고자 했으며 이를 통해 교재 번역이 문학연구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다뤄질 것을 기대한다. 나아가 출판사가 교재 번역을 위한 번역부 및 번역원들을 고용하였다는 점은 번역서의 개별 주체들과 더불어 출판사의 지향성을 재고케 한다. 가령 1910년대 초중반 <매일신보>의 가정류 번역이나 신문관의 세계문학류 번역과 마찬가지로 어떤 한 개별 번역자들의 특징이 아니라 매체나 기구들이 주도하거나 선점해 간 측면 역시 고려해 볼 수 있다. 교재 번역에 있어서도 번역자와 지식 및 학문의 생산이, 지식장의 형성과 더불어 논의되어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2. 출판사를 중심으로 한 지식 네트워크
    대한제국 시기 국채보상운동의 발기점이 되었던 대구의 광문사나 신민회의 주축이 되었던 평양의 태극서관처럼 출판사는 사회 운동의 중심축이 될 수 있다. 특히 일정한 모임의 장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결사의 장과 회합의 구심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보성관의 경우도 그러한 사례를 보여준다. 특히 보성관은 학교를 중심으로 교재 편찬에 개입했던 인물들이 잡지 󰡔야뢰󰡕와 대동상회와 같은 조직과 밀접하게 결부됨으로써 국채보상운동이나 상업 진흥 등 국책과 관련된 다양한 의견들을 개진하는가 하면 각종학회 활동들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이로써 학교를 넘어 사회로의 확장된 지식 네트워크를 형성해 갔을 가능성을 제기해 보았다. 궁극적으로 이 연구를 통해 근대 초기 출판사가 지식 생산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며 나아가 합병 이후 3·1운동과 같은 대규모 민족 운동의 중심에서도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구심력을 이 연장선상에서 논의해 볼 것을 기대한다.
  • 연구요약
  • 이 논문은 보성관과 보성학원의 관계에 주목하고 이를 보다 분명히 함으로써 보성관의 출판 활동이 지닌 의의를 재고하는 데 목적이 있다. 보성관은 인쇄소 보성사와 함께 보성학원의 교재 출판을 위해 설립된 부속 기관으로 인식된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실상은 좀 더 독립적인 인쇄 및 출판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설립 초기에는 학교 교재 편찬에 전적인 목적을 두었을지라도 1907년 이후 보성학원과의 관계가 비교적 분명하게 구분되면서는 학교 교재뿐 아니라 신지식층을 겨냥한 애국계몽 서적들도 출판했으며 국채보상운동이나 각종 회(會)의 간친회 및 잡지 <야뢰>의 임시 사무실 등으로 이용되면서 결사와 회합의 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보성관은 1906년 현채의 <東國史略>을 필두로 1909년까지 거의 50여권에 가까운 교재들을 편찬하는데 이들 대부분은 번역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이처럼 비교적 단기간에 전문성을 갖춘 다양한 교재들을 번역할 수 있었던 것은 출판사 자체에 번역부(繙譯部)를 두고 전문 번역원(繙譯員)을 동원한 결과로 파악된다. 특히 ‘보성관번역원’(普成館繙譯員)으로 활동했던 인물들은 안국선(安國善)을 비롯하여 김건중, 김대희, 김하정, 유문상, 윤태영, 이년응, 이필선, 진희성, 황윤덕, 유완종, 이능우 등 10여 명이 넘는다. 지금까지 이들 번역원의 활동에 대해서는 학계의 관심이나 언급이 거의 없었는데 이들은 대체로 1870년에서 80년대에 태어나 관비유학이나 근대적인 교육의 수혜를 받은 인물들로 해당 분야에 대한 어학과 전문적인 지식들을 어느 정도 습득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근대 초기 교재 번역의 주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한편 교재로 사용된 <월남망국사>나 <비율빈전사>, <오위인소역사(五偉人小歷史)>와 같은 역사전기물들이 보성관에서 출판된 사실 역시 간과될 수 없다. 이점은 교재 번역에 관여했던 이들이 신지식층을 향해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보다 의미 있을 것으로 간주된다.
    흥미롭게도 이 ‘보성관번역원’(普成館繙譯員)으로 활동했던 인물들은 보성학원의 교재 편찬에 주력한 한편 <야뢰(夜雷)>의 주 필진으로도 활동하면서 근대적인 학문 소개는 물론 국채보상이나 상업 진흥 등 국책에 관한 경세적인 논설을 개진한다. 이를 통해 학교 밖에서도 지식의 공유가 가능해 질 수 있는 장을 형성하고 각종 사회활동 및 계몽운동에 참여함으로써 실천적인 담론을 형성하고자 했다. 결국 보성관의 교재 편찬에 관여했던 인물들은 학교 교육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활동들을 전개함으로써 이 시기 지식 네트워크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간주된다. 중요한 것은 이 활동들이 출판사라는 기구를 통해서 보다 효과적으로 전개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로써 보성관을 통해 회합의 장(場)과 표현 수단을 모색하고자 한 지식인들의 네트워크가 보다 분명하게 이해된다.
  • 한글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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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문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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