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후반기에 덕윤리가 부활한 이후 하나의 윤리이론으로서 덕윤리가 차지하는 의미와 위상에 대해 다각적인 논의가 이루어져왔다. 이중에서 최근에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쟁점은 상황주의사회심리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어온 덕윤리의 경험적 부적합성문제이다. 대체 ...

20세기 후반기에 덕윤리가 부활한 이후 하나의 윤리이론으로서 덕윤리가 차지하는 의미와 위상에 대해 다각적인 논의가 이루어져왔다. 이중에서 최근에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쟁점은 상황주의사회심리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어온 덕윤리의 경험적 부적합성문제이다. 대체로 덕윤리자들은 어떤 사람의 인격(character)이 어떤 상황에서 그 사람이 어떻게 행위하는지를 설명하는데 결정적으로 유용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상황주의자들은 사회심리학의 다양한 실험연구들을 제시하면서 덕윤리자들의 인격에 근거한 행위설명(character-based explanation of behavior)이 경험적으로 입증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사람들의 인격보다 사람들이 처한 상황이 행위결정을 설명하는 더 강력한 요소라고 반박한다.

어떤 윤리이론의 경험적 부적합성을 보이는 것이 곧바로 그 이론의 규범적 부적합성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덕윤리가 전제하는 심리학이 상황주의사회심리학(situationist social psychology)의 경험연구들에 부합하지 못한다 해도 이점이 덕윤리의 규범적 정당성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증거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덕윤리의 규범적 주장이 경험적 영역에 부합하지 못하면 못할수록 덕윤리는 실천적 차원에서 설득력을 점점 더 잃게 될 거라는 점에서 상황주의자들의 주장은 덕윤리자들에게 있어서 곤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여타의 윤리이론들보다 윤리적인 삶의 실제를 좀 더 적극적으로 반영하고자하는 덕윤리적 입장에서 본다면 경험연구결과들에 근거하여 덕윤리의 인격개념을 부인하는 상황주의자들의 주장은 상대적으로 더 심각한 도전이 된다. 덕윤리자들은 상황주의사회심리학의 도전에 대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대응하는데 이중에서 유덕한 인격안의 실천적 지혜(phronesis)를 중시하는 입장이 특히 관심을 끈다. 왜냐하면 이러한 입장은 상황적 요소가 행위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상황주의적 비판으로부터 인격개념을 지켜내고자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실천적 지혜를 중시하는 덕개념을 통해 상황주의적 도전에 대응하는 덕윤리적 입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목표를 가진다: 첫째, 인격의 존재를 부인하는 상황주의자들의 주장을 체계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둘째, 상황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해 실천적 지혜를 중시하는 덕윤리자들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이러한 대응은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셋째, 실천적 지혜를 중심으로 상황주의적 도전에 대응하는 덕윤리자들이 어떤 한계에 직면하는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가. 파급효과
최근 들어 영미윤리학계에서는 도덕성과 도덕현상에 대한 경험과학적 연구를 중요한 과제로 삼는 도덕심리학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상황주의사회심리학과 덕윤리간의 논쟁을 다루는 본 연구는 국내의 도덕철학적 담론에서 도덕심리학 ...

가. 파급효과
최근 들어 영미윤리학계에서는 도덕성과 도덕현상에 대한 경험과학적 연구를 중요한 과제로 삼는 도덕심리학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상황주의사회심리학과 덕윤리간의 논쟁을 다루는 본 연구는 국내의 도덕철학적 담론에서 도덕심리학에 대한 관심을 제고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도덕심리학에 대한 국내의 관심이 콜버그의 인지발달론에 치우쳐있는 상황에서 본 연구는 대표적인 사회심리학이론인 상황주의를 다룸으로써 도덕심리학적 논의를 다변화하는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윤리이론의 경험적 적합성을 보이는 것이 곧바로 그 이론의 규범적 적합성을 보이는 것은 아니며 어떤 윤리이론이 도덕심리학의 경험연구들에 부합하지 못한다해도 이점이 그 윤리이론의 규범적 정당성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증거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윤리이론의 규범적 주장이 경험적 영역에 얼마나 부합하느냐하는 것은 그 이론이 실천적 차원에서 얼마나 설득력을 갖느냐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따라서 윤리학의 규범적 주장을 뒷받침하거나 비판하는데 도덕심리학의 다양한 경험연구결과들을 활용하는데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필요성에 부응하여 도덕철학적 담론에서 도덕심리학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본 논문의 특징은 덕윤리적 대응이 상황주의적 도전의 문제점을 드러내준다는 점을 밝히면서 동시에 이러한 대응이 나름의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지적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덕윤리적 대응이 가지는 의의와 함께 이러한 대응이 지니는 불가피한 한계를 동시에 밝힘으로써 본 논문은 향후 상황주의적 도전과 덕윤리적 대응간의 논의가 상황주의냐 덕윤리냐의 양자택일적 문제를 넘어서서 전개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이와 함께 본 논문의 결론은 행위자의 인격특질을 도덕판단의 근간으로 보는 덕윤리의 기본 구조가 과연 규범윤리에 적합한지에 대한 의구심을 유발함으로써 규범윤리학으로서 덕윤리의 기본 구조가 얼마나 적절한지, 덕윤리의 규범윤리적 역할과 비중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관련 연구를 유발할 것으로 기대된다.

나. 연구성과의 활용
첫째, 덕윤리와 도덕심리학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나 몇몇 쟁점들에 대한 논의가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국내의 상황에서 본 연구는 덕윤리와 도덕심리학의 중요한 쟁점들을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연구들에 활용될 수 있으며 이러한 주제들과 관련되는 현대윤리학관련 강의나 도덕심리학 내지 도덕교육관련 강의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상황주의적 도전에 대한 다양한 덕윤리적 대응들과 비교할 때 실천적 지혜를 중심으로 하는 대응은 외부 상황과 내적 인격특질 둘 다 행위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정하는 특징을 가진다. 우리의 행위를 결정하는데 상황적 변수나 성품적 변수의 어느 하나만이 배타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현실적으로 쉽게 경험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인격의 함양에 있어서 내적, 외적 변수를 모두 포함하는 통합적인 접근의, 그리하여 현실적합성을 가지는 도덕교육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이론적인 근거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덕윤리와 관련하여 최근에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쟁점중의 하나는 상황주의사회심리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덕윤리의 경험적 부적합성문제이다. 상황주의자들은 사회심리학의 다양한 실험연구들을 제시하면서 덕윤리자들의 인격에 근거한 행위설명이 경험적으로 입증되지 ...

덕윤리와 관련하여 최근에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쟁점중의 하나는 상황주의사회심리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덕윤리의 경험적 부적합성문제이다. 상황주의자들은 사회심리학의 다양한 실험연구들을 제시하면서 덕윤리자들의 인격에 근거한 행위설명이 경험적으로 입증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상황주의자들은 사람들의 인격보다 사람들이 처한 상황이 행위결정을 설명하는 더 강력한 요소라고 주장한다. 상황주의자들의 이러한 비판에 대응할 때 유덕한 인격안의 실천적 지혜를 중시하는 덕윤리자들은 상황적 요소가 행위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상황주의적 비판으로부터 인격개념을 지켜내고자 한다.

이들에 따르면 실천적 지혜를 통한 올바른 선택은 두 가지 면에서 상황주의적 도전이 덕윤리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먼저 실천적 지혜를 가진 유덕한 사람은 상황적 요인들을 잘 파악해서 상황에 적합한 올바른 행위를 선택하여 수행하기 때문에 덕윤리적 맥락에서 올바른 행위는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또한 실천적 지혜를 통한 올바른 선택은 전반적인 삶의 관점에서 좋음을 추구하고 여러 덕들을 통일적으로 아우르는 차원에서 무엇이 올바른지를 선택하기 때문에 특정한 행위나 단일의 인격특질에 초점을 두고 일관되게 행위하는 것과는 구별된다. 실천적 지혜를 통한 덕윤리적 대응은 일면 상황주의자들이 인격특질이 없다는 것을 보이는데 성공하지 못했음을 그리고 그들의 도전이 덕윤리를 버릴 만큼 치명적이지 않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실천적 지혜를 통해 상황주의적 도전에 대응하는 접근은 인격특질을 구해내는 대신에 나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즉 이러한 접근은 덕을 실제적 차원에서 이해할 경우 행위결정을 잘못 설명할 위험성이 있다. 또한 덕을 이상적 차원에서 이해할 경우 행위지침과 동기유발의 차원에서 문제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덕윤리의 중요한 특성을 훼손하게 된다. 실천적 지혜를 통한 덕윤리적 대응이 이러한 한계를 가진다는 사실은 덕윤리의 근본 입장, 즉 행위자의 인격특질을 도덕판단의 근간으로 삼는 입장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