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놀이의 본래적인 의미를 성찰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등장하는 놀이현상의 근본적인 계기와 내적 구조를 통일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놀이의 존재론적 의미에 관해 연구하는 것이다. 놀이현상은 신화론, 우주창발론, 종교적-상징적 제식이론, 인종적-지역적 ...
본 연구의 목적은 놀이의 본래적인 의미를 성찰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등장하는 놀이현상의 근본적인 계기와 내적 구조를 통일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놀이의 존재론적 의미에 관해 연구하는 것이다. 놀이현상은 신화론, 우주창발론, 종교적-상징적 제식이론, 인종적-지역적 삶의 양식과 관련된 민속학과 인류학, 미적-예술적 상상력이론, 교육학적 방법론, 스포츠와 게임이론, 노동과 직업 및 공동체의 결속과 관련된 사회이론 등에서 논의되고 있다. 놀이현상이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논의되고 있다는 것은 놀이 자체가 인간의 고유한 실존적 범주에 속하며, 인간적 삶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근본적인 계기로서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기초 학문적 관점에서 이렇게 경험적, 실천적, 사회적 맥락에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놀이현상들을 그 근본에서 통일적으로 해명하기 위해서는 놀이가 가진 존재론적 의미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놀이의 존재론적 의미에 관한 연구의 필요성은 오늘날의 시대적 상황과 직결된다. 현대 사회에서 놀이의 본래적 의미는 근대와 탈근대의 양면적 모순 속에서 점차 상실되어 가고 있다. 놀이에 대한 기회와 관심이 확대되고 고조되는 탈근대 사회에서도 현대인은 노동의 진지함을 강조하는 근대적 인간관과 윤리관에 고착되어 놀이를 부차적인 여가활동으로 소홀히 여기는 한편, 대중매체의 조작과 상업주의적 공세로 인해 본래적인 놀이로부터의 소외와 참된 놀이의 결핍을 경험하고 있다. 이제 놀이는 매체탐닉, 컴퓨터 게임, 도박, 유흥 등으로 전락하였으며, 이러한 유사놀이(pseudo-play)는 판에 박힌 지루함과 중독성의 위험을 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종의 덫처럼 상상력을 마비시키고 일방적인 수동성을 초래한다. 그러나 놀이에 대한 이러한 왜곡은 놀이를 항상 주변현상으로서 고찰하며, 인간 현존재의 전체가 아니라 부분적인 계기로만 고려하는 것이다. 본래 놀이는 인간적 삶의 주변현상 또는 우연적 현상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인간적 현존재의 존재구조에 속하며, 실존적인 근본현상이다. 본래 노동과 놀이는 인간 존재에게 동시적인 것이며, 양자가 조화될 때 인간은 행복하다. 놀이는 인간 현존재를 전체적으로 통찰하는 존재론적 접근을 통해 연구되어야 한다. 놀이의 전체 구조에는 실재와 가상, 의식적-마술적 세계, 공동체의 혼연일체, 인간 현존재의 자기-직관과 반성, 선-이성적 감성, 현실을 넘어서는 상징적 힘, 새로운 패러다임의 생산과 전환, 그리고 노동, 투쟁, 사랑, 죽음과 같은 실존적 근본현상들을 극복하는 유희적 승화가능성을 포괄하는 존재론적 계기가 담겨있다. 이런 점에서 본 연구는 태고의 근원성과 창조성을 가진 놀이의 고유한 가치와 위상을 회복시켜 현대 테크노크라시의 문명적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처방과 삶의 새로운 동력을 제시하는 시도로서도 의미를 가진다.
나아가 놀이에 대한 본래적 이해는 인간의 실존론적 범주와 함께 놀이세계의 초월적 차원에 대한 존재론적 의미를 통해 획득되어야 한다. 놀이의 창조적 힘에서 발현된 놀이세계, 즉 가상영역의 고유한 현실성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놀이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인간은 익숙한 일상적 사물들보다 가상세계에 대해 강력한 체험적 실재성과 강한 인상을 가진다. 이러한 가상의 장소와 그것의 지위를 규명하는 것도 놀이의 존재론적 의미를 탐구하는 본 연구의 주요과제에 속한다. 가상의 고유한 비현실성에 대한 존재론적 근거는 형이상학의 핵심적인 물음, 즉 존재와 무, 가상과 생성에 대한 사유와 연관되어 있다.
지금까지 놀이는 철학이 아닌 문화인류학적-생물학적 놀이연구, 인지적-교육학적 놀이연구, 사회학적 놀이유형의 분류에서 많이 다루어졌다. 그러나 위에서 본 것처럼 놀이의 존재론적 의미는 단순히 경험적 학문으로 풀어낼 수 없는 주제들이다. 철학분야에서도 놀이에 대한 연구는 국내는 물론, 국외적으로도 많지 않다. 지금까지 헤라클레이토스 단편에 대한 해설과 니체연구를 통해 관련 주제가 다루어지거나 칸트와 가다머의 철학 속에서 논의된 놀이개념을 소개한 소수의 논문이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구자는 현대철학에서 놀이의 근본의미에 대한 탁월한 통찰을 제시한 E. 핑크(Fink)의 놀이존재론과 이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M. 하이데거의 놀이사유를 중심으로 연구를 수행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