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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베케트의 라디오극 연구
A Study on Radio Plays of Samuel Beckett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시간강사지원사업
연구과제번호 2012S1A5B5A07037728
선정년도 2012 년
연구기간 1 년 (2012년 09월 01일 ~ 2013년 08월 31일)
연구책임자 방찬혁
연구수행기관 동국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이 논문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는 베케트의 라디오 극에 나타난 언어와 이미지를 분석함으로써 시각적인 요소가 배재된 무대 이미지를 소리를 통해 어떻게 형상화시키고 있고, 또한 소리의 정체성과 존재의식을 어떻게 구현하고 있는가를 분석하는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베케트가 전하고자 했던 극적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조명해 보고자 한다.
    초기 극에 나타나는 유치하고 저능아적인 요소들을 언급하며 적잖이 많은 비평가들이 베케트의 역량에 대해 비판을 가해왔다. 심지어 『고도를 기다리며』를 가리켜 새로운 극 형식의 창조라고 호평을 했던 비평가들조차 베케트의 중․후기 극에 나타난 무미건조한 대사와 메마른 이미지에 대해서는 주저 없이 혹평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같은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베케트는 극적 의미와 영역을 확장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무대라는 시청각적 조건에서 탈피해 라디오라는 음성 전달만을 위한 매체를 활용한 연극을 만든다. 라디오 극이란 청자와 화자를 오로지 소리를 통해서 연결시켜야만 하는 특성으로 인해 “라디오는 고도로 시각적인 매체”(177)라고 한 에슬린의 역설적인 주장처럼 경우에 따라서는 의미 전달력이 무대극보다 훨씬 더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시간과 장소를 구애받지 않고 세계 어느 곳에라도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매체적 특성을 가진 라디오는 비록 소리만 전달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매체의 고유성을 통한 의미생산의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라디오 극은 연극에서 새로운 창조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313)라고 지적한 파비스의 말처럼, 해마다 수천편의 라디오 극을 만들어 온 BBC 라디오의 제안은 베케트에게 있어 새로운 실험의 장으로서 적합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그동안 극적 언어로서 무시해왔던 침묵이나 정지와 같은 표현 형식을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을 베케트의 초기극들이 전복시켜 왔다면, 라디오 극은 연극언어 중에서 오로지 소리와 침묵만을 활용하여 의미를 전달하는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게다가 라디오 극은 전파를 통해 청취자의 귀라는 감각기관에 극적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무대에서 이뤄지는 극과 달리 시각적인 차원은 철저하게 배재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매체적 특성을 고려한다면, 베케트가 라디오 극을 통해 구현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먼저 베케트는 『추락하는 모든 것들』에서 무엇보다 소리를 강조한다는 사실을 밝힌 적이 있다(Pronko, 69). 다시 말해 베케트는 라디오 극을 통해 소리의 연극을 지향한 것이다. 소리가 무대를 구성할 뿐 아니라 소리가 극중 인물의 역할을 하고 소리가 극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연극적 주체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베케트의 라디오 극은 모든 종류의 소리를 연극 미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또한 구체적인 정보가 모두 드러나는 무대극에서 파괴될 가능성이 있는 극적 모호함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베케트는 라디오라는 매체를 활용한다. 어차피 삶의 속성이란 모호한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시도는 베케트가 또 다른 층위에서 구사하는 존재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청취행위에 대해 언급한 버크만의 진술은 주목 할 만하다. 그에 따르면, 청취행위는 과거의 기억들을 회상하는 행위와 유사하다: “우리는 엇갈리는 기억의 끈을 잡기 위해 집중할 때, 우리는 베케트가 이전에 직면했던 문제, 그러나 지금은 다른 방식으로 직면하는 문제와 마주친다. 우리가 우리들의 삶의 일관적인 이미지를 이끌어 내기 위하여 우리 스스로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 우리는 과연 우리의 기억을 청취하는 청취자와 무엇이 다른가?”(158) 소리를 통한 청취 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베케트의 전략은 인식론적인 의미를 가리키는 극적 효과를 초월한다.
    결국 이 논문은 이와 같은 인식적 토대 위에서 라디오 극에 대한 분석을 통해 베케트가 구사하는 언어적 요소와 이미지를 고찰하고, 베케트가 궁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가를 살피게 될 것이다.
  • 기대효과
  • 베케트의 라디오 극에 관한 연구는 상당한 의의가 있을 것이다. 먼저 연극의 속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전통극은 무대 위에 시각적 요소와 청각적 요소를 동시에 전달함으로써 극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전제로 삼아 왔다. 이를 통해 다양한 극적 장치를 동원한 연극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때로 감정 이입을 경험하고, 반응하며, 극을 공유한다. 그러나 전통극과 달리 단지 소리에 기초한 라디오 극은 청취자의 귀에 전달된 음성을 통해 청취자가 자발적으로 상상력을 발현시켜 시각적인 이미지로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기존의 극과 다른 방식의 극적 경험을 유도한다. 따라서 청취자는 소리로 대변되는 극중 인물들과 창작자의 의도, 그리고 극적 메시지에 대해 때로는 들리는 그대로, 때로는 들리는 것과 다르게 재구성하거나 이해하는, 이른바 연출의 경험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라디오 극은 시각적인 것이 배재된 체 청각에만 의존함으로써 시각적인 언어를 시공간적인 경험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통해 무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존의 언어적 의미 전달 방식을 거부하여 상황 자체를 명료하게 설명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의미 파악에 관한 관객의 역할을 활용하는 베케트의 극적 특징은 라디오 극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있기 때문에, 베케트의 라디오 극은 청취자의 내면의 귀에 호소하는 라디오 극의 속성 외에도 가장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삶의 현실에 대한 존재론적 문제들에 대해 청취자가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라디오라는 극적 매체는 이미 내재적으로 베케트가 다루고자 하는 극적 의미와 통하는 면이 있다.
    따라서 베케트의 라디오 극에 대한 연구는 극을 지켜보는 관객으로서 뿐 아니라 소리를 듣는 청취자로서의 이중의 역할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또한 시각적 요소가 없는 소리의 극을 통해 청취자의 상상력을 자연스럽게 발현시킴으로써, 그리고 덧붙여 기존의 극적 경험을 전복시킨 미학적 경험을 통해 극적 소통 방식을 매체 담론으로까지 확대시키는 일에 기여할 것이다. 결국 베케트의 라디오 극에 대한 연구는 라디오 전파를 통해 흘러나오는 베케트의 소리 극을 내면의 귀로 지켜보는 청취자로서의 우리들이 인식적 영역의 확장 경험을 할 기회를 제공할 뿐 아니라, 다매체, 다문화 사회와 교육, 즉 다양성으로 대변되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매체 담론을 교육적 도구로 활용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 연구요약
  • 본고의 연구 방향은 주로 라디오 극에서 베케트가 구사하고 있는 언어적 요소와 특성, 그리고 이를 통해 전달되는 이미지에 대한 분석에 집중될 것이다. 먼저 라디오가 갖고 있는 매체적 특성과 의미전달 방식의 메카니즘을 검토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시각적 이미지가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 소리만 전달하는 라디오라는 매체가 갖고 있는 고유성을 살펴보고, 또한 소리를 통해 전달될 수밖에 없는 라디오 극의 극적 이미지와 메시지가 무대극의 이미지와 어떻게, 그리고 어느 정도 다른 효과를 낼 수 있는지 분석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일차적으로 라디오 극은 오로지 소리만을 수단으로 한 극적 형식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각적인 이미지는 결여되어 있지만, 라디오 극의 대사, 음악, 소리는 시각적인 상상력을 작동시키는 강력한 촉매제로서 기능하고 있고, 라디오 극을 듣는 청취자의 정신 또한 자동적으로 그들이 청취한 대부분의 정보를 시각적으로 전환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라디오 극의 매체적 특성을 분석하는 일은 청취 행위를 염두에 둔 베케트의 극적 전략이 그저 소리를 보내고 듣는 수준을 넘어서 인식론적인 층위까지 확장하는 과정을 추적하는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라디오 극은 라디오라는 내재적 속성으로 인해 소리만을 주된 전달 매체로 삼고 있기 때문에 무대에서 이뤄지는 극과 달리 허구와 사실 사이의 구분이 훨씬 더 모호해질 수밖에 없는 약점이 존재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배우들이 등장하는 무대극과 달리 라디오 극은 사실주의 극을 재현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무대 장치와 소도구를 이용한 연극 행위뿐만 아니라 극중 인물의 모습과 성격까지도 모두 소리를 통해서만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극중 인물과 인물간의 대화를 통해 청취자의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시각적 요소가 차단된 상태에서 단지 소리를 통해 무대를 형상화 하려는 시도가 무모해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베케트는 오로지 소리에만 집중해 인간의 존재 조건과 극적 현실의 피할 수 없는 간극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자 시도한다.
    예를 들어, 1959년에 방송된 『불씨』는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비록 칼 밀러 같은 비평가는 지루한 반복과 불명확하고 애매모호한 요소들을 지적하면서 이 극이 통제력을 잃고 지나친 슬픔의 정서만을 부각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존 휘팅과 같은 비평가는 훌륭한 시를 보여주는 극산문이라고 호평을 하기도 했다. 주인공 헨리의 의식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려내는 연극적 행위를 통해 베케트는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존재의 고통을 상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예술 창조의 시도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은 시간의 작용으로 인해 시시각각 변하는 실체, 즉 정체성의 의 변화로 인하여 인간의 존재 조건 자체가 단편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고, 또한 존재의 표현 매체라 할 수 있는 언어에 대한 통제력도 정체성과 마찬가지로 불완전해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라디오 극『불씨』를 통해 베케트가 인간의 존재조건으로 인한 예술 표현의 불가능성을 내세우고 있다면, 『추락하는 모든 것들』에서는 죽음의 이미지를 통한 소통불가능성을 구현하고 있다. 이 극의 주제는 초기극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무대극과 달리 이 극은 단지 소리와 시간적인 순서에 의지하여 소통의 불가능성, 인간의 육체적 쇠락으로 인한 부동성을 드러낼 뿐 아니라 음악과 비언어적 요소를 활용하여 죽음과 어둠의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다.
    결국 베케트는 비언어적인 요소들과 소리를 정교하게 사용함으로써 부동의 이미지와 소통불가능성의 모습을 시각적인 기호를 배제한 체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본고는 베케트의 대표적인 라디오 극, 『불씨』와『추락하는 모든 것들』을 중심으로 베케트의 극적 형상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소리를 통한 메시지의 수신자이자 부분적인 감각, 즉 청각에 의지한 체 세상과 유리된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고독한 인간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는 청취자를 염두에 둔 베케트의 극적 의도를 분석하고자 한다.
  • 한글키워드
  • 베케트, 라디오극, 추락하는 모든 것들, 불씨, 청취행위
  • 영문키워드
  • Beckett, radio play, All that fall, embers, listening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그동안 라디오 극에 대한 평가는 심오한 연극성이나 문학적 의미보다 통속성에 의지하는 극의 하위 장르 정도로만 치부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라디오 극에 대한 이와 같은 평가 절하는 어느 정도 제작 방식과 메커니즘에 기인한 측면이 있다. 연극이나 영화가 적극적으로 예술을 소비하는 성향을 가진 관객층을 대상으로 주제와 형식, 또한 극적 기법을 다변화하며 작품의 미학적 측면을 강조해 왔다면, 상대적으로 라디오 극은 소극적인 청취자들을 상대로 보편적인 감수성에 호소하거나 일면 정치적인 선전 도구로 활용되어 온 측면이 있다. 결과적으로 연극이나 영화와 달리 라디오 극은 순수한 미학적 가치를 추구하기보다 오히려 현실에 적합한 실용성과 미메시스에 몰두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 라디오 극은 단순히 소리에만 의존해서 이루어지는 극적 매체이기 때문에 무대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각적 요소들, 즉 무대나 조명, 소도구, 의상, 또는 분장이 존재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라디오 극은 무대를 기반으로 하는 무대극과 비교하면 불완전한 극적 형태를 나타낼 수밖에 없는 약점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베케트의 라디오 극을 통해 우리는 라디오 극에 대한 일반적인 부정적인 시각을 바꿀 수 있는 변화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라디오 극의 불완전한 매체적인 특성과 통속성에도 불구하고, 라디오 극을 통한 베케트의 극적 실험은 다양한 이미지가 드러나게 만들었다. 이를 가리켜 에슬린은 “라디오 극을 청취하는 것은 또한 본질적으로 고독의 경험”이라고 한다. 근본적으로 “그곳에 있는 것이” 고독의 경험이고, 예술은 고독의 절정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확실히 라디오는 “거기에 없는” 인간의 곤경을 표현하는 좋은 수단이다. 게다가 라디오 청취자는 진리를 찾아가는 순례자의 전형적인 환유라 할 수 있는 맹인으로 제시된다. 다시 말해서 영적인 진리의 시각에서 보면, 모든 인간은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맹인과 다름없다.
    결국 베케트는 라디오 극을 통해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단절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왜냐하면 표현 매체인 언어가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졌다는 사실에서 베케트의 딜레마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영문
  • It is true that the radio play have regarded as sub-genre of theater evaluated on the view of the popular nature rather than theatricality or literal meaning. Such an devaluation is partly due to the form of production and dramatic mechanism. Production of drama or movie have emphasized on a great variety of dramatic techniques from an esthetic point of view focusing on very active audience as arts consumer. Radio play, on the other hand, have had a tendency to appeal to passive radio listeners for universal emotion or widely used as an instrument of political propaganda. Consequentially, radio play shows that it have pursued down-to-earth practicability and mimesis rather than the pure esthetic value.
    Radio play having reliance on just sound can't show the visual elements including drama stage, lighting, stage props, costume, and make-up. Viewed in this light, it is also true that radio play has a weakness revealing the imperfect dramatic form as we compare it with stage play. In the Beckett's radio play, however, we can detect the possibility of making change negative implications for radio play.
    In spite of the imperfect medium characteristics and popular tastes of radio play, Beckett's theatrical experiments through the radio play made variety of images reveal. Esslin suggests "Listening to a radio play is also essentially a solitary experience". To be sure, radio is a good means of transmitting the human predicament of "not there," since "being there" is fundamentally a solitary experience, and art is the apotheosis of solitude". Besides, the radio listener is a blind person, a conventional metonymy for those pilgrimages to Truth: i.e., in terms of spiritual truth, everybody is blind to what is really going on.
    To summarize, Beckett tried to express the difficulty and discontinuity of communication through radio play. Because Beckett's dilemma lies in the fact that language, the medium of expression, is irrecoverably depraved.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베케트의 라디오 극을 분석한 이 논문은 먼저 라디오 극에 관한 두 가지 시각을 고찰함으로써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먼저 라디오 극은 통속적인 감수성에 호소하는 방식을 통해 라디오 극을 청취하는 대상이 연극과 영화의 관객과 달리 소극적인 청취 관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연극이나 영화의 관객들은 라디오 극의 청취자들과 대조적으로 기본적인 재화를 지불하여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이자 적극적인 예술의 소비자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시각은 극을 바라보는 상이한 관점이다. 무대 위에서 이뤄지는 극적 행위를 시각과 청각을 이용하여 감상할 수 있는 무대극과 달리 라디오 극은 오직 라디오란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소리만을 청취하는 것이 가능할 뿐 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무대극에서 볼 수 있는 의상, 분장, 소도구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다양한 제스처를 통해 암시되거나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는 모든 시청각적 요소들을 라디오 극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또한 라디오 극에서는 모든 메시지가 오로지 소리를 통해서만 전달되고 청취자로서의 관객 또한 그들이 듣는 소리를 통해서만 극의 메시지와 이미지를 이해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베케트는 극적 의미와 영역을 확장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무대라는 시청각적 조건에서 탈피해 라디오라는 음성 전달만을 위한 매체를 활용한 연극을 만들었다. “라디오는 고도로 시각적인 매체”라고 한 에슬린의 역설적인 주장처럼 의미 전달력이 무대에서 이뤄지는 연극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나타날 수 있다. 시간과 장소를 구애받지 않고 세계 어느 곳에라도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매체적 특성을 가진 라디오는 매체의 고유성을 통한 의미생산의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극적 언어로서 무시해왔던 침묵(silence)이나 정지(pause)와 같은 표현 형식을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을 베케트의 초기극들이 전복시켜 왔다면, 베케트의 라디오 극은 연극언어 중에서 오로지 소리와 침묵만을 활용하여 의미를 전달하는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게다가 라디오 극은 전파를 통해 청취자의 귀라는 감각기관에 극적 메시지를 전달해야만 한다. 따라서 무대에서 이뤄지는 극과 달리 시각적인 차원은 철저하게 배재될 수밖에 없었다.
    소리를 통한 청취 행위에 초점을 맞춘 베케트의 전략은 인식론적인 의미를 가리키는 극적 효과를 초월한다. 래빈의 언급처럼, “우리의 청각은 존재론적으로 적응된 능력”으로 인간은 그 능력을 통해 존재에 도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청취행위는 모든 육체, 다시 말해 “지각된 경험의 육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라디오 극을 청취하는 것은 또한 본질적으로 고독의 경험”이라고 하는 에슬린의 주장처럼, 근본적으로 “그곳에 있는 것이” 고독의 경험이고, 예술은 고독의 절정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확실히 라디오는 “거기에 없는” 인간의 곤경을 표현하는 좋은 수단이 된다. 게다가 라디오 청취자는 진리를 찾아가는 순례자의 전형적인 환유라 할 수 있는 맹인으로 제시됨으로써 모든 인간은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맹인과 다름없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결국 베케트는 라디오 극을 통해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단절에 관한 인식론적인 어려움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왜냐하면 표현 매체인 언어가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졌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베케트의 딜레마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베케트의 라디오 극에 관한 연구는 상당한 의의가 있다. 먼저 연극의 갖고 있는 극적 속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전통극은 무대 위에 시각적 요소와 청각적 요소를 동시에 전달함으로써 극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전제로 삼아 왔다. 이를 통해 다양한 극적 장치를 동원한 연극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때로 감정 이입을 경험하고, 반응하며, 극을 공유한다. 그러나 전통극과 달리 단지 소리에 기초한 라디오 극은 청취자의 귀에 전달된 음성을 통해 청취자가 자발적으로 상상력을 발현시켜 시각적인 이미지로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기존의 극과 다른 방식의 극적 경험을 유도한다. 따라서 청취자는 소리로 대변되는 극중 인물들과 창작자의 의도, 그리고 극적 메시지에 대해 때로는 들리는 그대로, 때로는 들리는 것과 다르게 재구성하거나 이해하는, 이른바 연출의 경험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라디오 극은 시각적인 것이 배재된 체 청각에만 의존함으로써 시각적인 언어를 시공간적인 경험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통해 무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라디오 극은 극을 청취하는 행위 자체가 인간이 필연적으로 경험할 수 밖에 없는 고독을 실천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본질적으로 라디오 극을 청취하는 것은 또한 고독의 경험”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근본적으로 라디오 극을 듣기 위해 “그곳에 있는 것이” 고독의 경험이고, 예술은 고독의 절정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확실히 라디오는 “거기에 없는” 인간의 곤경을 표현하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라디오 청취자는 마치 진리를 찾아가는 순례자의 모습이 환유적으로 표현된 것처럼 맹인으로 제시된다. 다시 말해서 영적인 진리의 시각에서 보면, 모든 인간은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맹인과 다름없는 존재이다. 따라서 라디오극을 청취하는 행위는 극적 행위의 단계를 넘어서서 소통의 불안과 단절을 경험하는 모든 인간의 보편적인 경험을 극화한 것이 될 수 있다.
    더욱이 기존의 언어적 의미 전달 방식을 거부하여 상황 자체를 명료하게 설명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의미 파악에 관한 관객의 역할을 활용하는 베케트의 극적 특징은 라디오 극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있기 때문에, 베케트의 라디오 극은 청취자의 내면의 귀에 호소하는 라디오 극의 속성 외에도 가장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삶의 현실에 대한 존재론적 문제들에 대해 청취자가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라디오라는 극적 매체는 이미 내재적으로 베케트가 다루고자 하는 극적 의미와 통하는 면이 있다.
    따라서 베케트의 라디오 극에 대한 연구는 극을 지켜보는 관객으로서 뿐 아니라 소리를 듣는 청취자로서의 이중의 역할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또한 시각적 요소가 없는 소리의 극을 통해 청취자의 상상력을 자연스럽게 발현시킴으로써, 그리고 덧붙여 기존의 극적 경험을 전복시킨 미학적 경험을 통해 극적 소통 방식을 매체 담론으로까지 확대시키는 일에 기여할 것이다. 결국 베케트의 라디오 극에 대한 연구는 라디오 전파를 통해 흘러나오는 베케트의 소리 극을 내면의 귀로 지켜보는 청취자로서의 우리들이 인식적 영역의 확장 경험을 할 기회를 제공할 뿐 아니라, 다매체, 다문화 사회와 교육, 즉 다양성으로 대변되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매체 담론을 교육적 도구로 활용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 색인어
  • 라디오극, 베케트, 『추락하는 모든 것들』, 『불씨』, 소통, 단절, 부동성, 『크랩의 마지막 테이프』, 『케스캔도』피트 양, 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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