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역사에서 흔히 근세 초기로 분류되는 1500년에서 1800년 사이의 시기는 서구 사회가 중세적이고 봉건적인 유산을 극복하고 근대적인 정치, 경제, 문화, 학문, 이념 등을 형성한 시기로 알려져 있다. 즉 근세 초의 역사는 하나의 거대한 ‘이행기(transition period)’ ...
서구 역사에서 흔히 근세 초기로 분류되는 1500년에서 1800년 사이의 시기는 서구 사회가 중세적이고 봉건적인 유산을 극복하고 근대적인 정치, 경제, 문화, 학문, 이념 등을 형성한 시기로 알려져 있다. 즉 근세 초의 역사는 하나의 거대한 ‘이행기(transition period)’로 간주되며, 이 시기에 그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근대성의 여러 다양한 측면들이 19세기와 20세기 들어 ‘만개’하는 것으로 개념화된다. 국제정치학에서도 근세 초는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근대적 국제정치체제가 처음 등장하여 형성된 시기로 알려져 있다. 국제정치의 기본 단위인 ‘근대국가(modern state)’가 이 시기에 등장하여 그 기본적인 특징들을 갖추기 시작했고, 이 근대국가들 사이의 관계로서의 다국 체제, 즉 근대적 국제관계 역시 이 시기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본 연구에서는 국내학계에서 좀처럼 다루어지지 않은 이 근세 초기의 유럽 국제관계사를 살펴본다.
기대효과
본 연구는 근대적인 국제정치, 국제관계가 처음 등장한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한다. 따라서 이 주제에 대해 정보나 지식을 원하는 이들에게 유용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오늘날의 국제정치현실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이해가 가능하게 된다.
본 연구는 근대적인 국제정치, 국제관계가 처음 등장한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한다. 따라서 이 주제에 대해 정보나 지식을 원하는 이들에게 유용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오늘날의 국제정치현실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이해가 가능하게 된다.
연구요약
본 연구는 근세 초 국제관계사의 변화 추세를 ‘설명’하고자 한다. 특히 17세기 중반을 전후해서 국제관계의 성격에 의미심장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17세기 중반 이전까지 유럽의 국제관계사는 보편적 제국 건설을 염두에 둔 이를 저지하는 프랑스 사이의 ...
본 연구는 근세 초 국제관계사의 변화 추세를 ‘설명’하고자 한다. 특히 17세기 중반을 전후해서 국제관계의 성격에 의미심장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17세기 중반 이전까지 유럽의 국제관계사는 보편적 제국 건설을 염두에 둔 이를 저지하는 프랑스 사이의 대립이 종교 갈등과 맞물리면서 대단히 복잡하고 다층적인 양상을 보였다. 국가의 형태 역시 다수의 독립적인 영토들이 국왕을 중심으로 느슨하게 결합된, 중앙집권화된 근대국가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17세기 중반 무렵부터 국가들 사이의 관계가 단순화되고 안정적으로 되는 징후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국제관계가 전적으로 평화적으로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17세기 중반 이후에도 유럽 국제관계는 대립과 갈등과 전쟁으로 점철되었다. 국제관계가 단순해지고 안정적으로 되었다는 것은 그러한 대립과 갈등이 표출되고 전쟁이 치러지고 발발하는 방식이 이전에 비해 단순해지고 안정적으로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은 무엇인가? 먼저, 베스트팔렌 조약은 이러한 변화의 극히 일부분만을 설명함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베스트팔렌 조약은 변화의 원인이라기보다는 변화의 결과로 볼 수 있다. 대신 본 연구에서는 17세기 중반을 전후하여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문화, 이념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발생한 ‘17세기 일반 위기(general crisis of the seventeenth century)’에 주목하고자 한다. 심각한 위기는 곧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낳았는데, 미국의 역사학자 랩(Theodore Rabb)은 이러한 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을 “안정을 위한 투쟁(struggle for stability)”으로 부르기를 제안한 바 있다. 랩에 의하면 ‘투쟁’의 결과 국내적인 차원과 국제적인 차원에 걸쳐 일단의 변화들이 감지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변화는 1630년대 초부터 1670년대 초까지의 약 40여년의 기간 동안 집중되어 일어났다. 랩에 의하면 이 기간에 일어난 일련의 변화야말로 종교개혁과 프랑스 혁명 사이에 발생한 여러 변화들 중 가장 심대한 변화였다. 이는 근세 초 유럽의 역사가 17세기 중반을 기점으로 양분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본 연구에서는 국제관계의 안정화, 단순화는 두 가지 요인이 결합되어 가능하게 되었음을 주장하고자 한다. 먼저, 국제관계에서 종교의 중요성이 크게 감소했다. 이는 흔히 이야기되듯이 베스트팔렌에 모인 국가의 대표들이 더 이상 종교를 국가들 간의 관계에서 쟁점으로 삼지 않기로 ‘합의’했기 때문이 아니다. 17세기 중반 이전 한 세기 반은 그야말로 ‘종교의 세기’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종교적 차이를 둘러싼 갈등이 사회 전반을 지배했다. 30년 전쟁은 그러한 갈등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국제관계에서 종교의 중요성이 쇠퇴한 것은 이러한 전면적인 갈등과 그 갈등이 초래한 심각한 위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종교의 영향력 감소는 국가들이 상호관계에서 고려해야 할 변수의 폭을 축소시킴으로써 국가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이전에 비해 단순하게 만들었다. 본 연구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17세기 중반 국제관계 변화의 또 하나의 요인은 국가가 이전에 비해 공고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17세기 중반 이전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準독립적인 영토들이 국왕을 중심으로 느슨하게 결합된 형태를 취했다. 중앙정부의 영토들에 대한 통제력은 매우 미약했으며, 영토들의 중앙정부에 대한 저항과 반란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17세기 들어 이러한 저항과 반란이 가속화되어 당시 거의 모든 국가가 심각한 ‘통치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 17세기 중반 이전에는 국가 내부와 국가 외부, 즉 ‘국내’와 ‘국제’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았다. 17세기 중반 이전 상당수 전쟁은 ‘내전’과 ‘국제전’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17세기 중반 이후에는 중앙정부의 영토에 대한 장악력이 뚜렷하게 강화되면서 ‘국내’와 ‘국제’의 구분 역시 명확해지게 되었다. 그 결과 17세기 중반 이후의 전쟁은 전적으로 ‘국제전’이었다. 이제 국가 내에서 발생한 문제가 국가 對 국가 전쟁으로 확대되거나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다른 국가에 의해 이용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