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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과의 비교를 통해 본 고려전기 ‘外王內帝’ 체제의 실상과 인식론적 맥락
Comparing to Vietnam, the reality and epistemological context of ‘Waewang Neche’ system in the early Koryo dynasty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신진연구자지원사업& #40;인문사회& #41;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3S1A5A8021918
선정년도 2013 년
연구기간 1 년 (2013년 05월 01일 ~ 2014년 04월 30일)
연구책임자 최종석
연구수행기관 동덕여자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는 고려전기의 소위 ‘外王內帝’ 체제의 실체를 보다 심도 있게 파악하고, 더 나아가 어떠한 인식론적 맥락에서 ‘外王內帝’의 체제가 운용되었는지를 규명하고자 하는 작업이다. 기왕의 연구 성과들에도 불구하고 고려전기 ‘외왕내제’ 체제의 실상과 인식론적 맥락은 본격적으로 검토된 바 없기에, 이러한 필요성을 충족하고자 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표이다. 아울러 본 연구는 독자국을 유지하면서도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상하차등적 국제질서에 적응한 고려전기 사회체제를 보다 심도 있게 이해하며 베트남과의 비교를 통해 ‘외왕내제’ 상의 고려전기적인 특징을 포착하는 것을 또 다른 목표로 한다.
  • 기대효과
  • 본 연구가 완료되었을 때 다음 사항들이 기대될 수 있다.
    첫째, 베트남과의 비교를 통해 고려전기에 운용된 ‘외왕내제’ 체제의 실상을 보다 분명히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둘째, 베트남과의 비교를 통해 고려전기의 ‘외왕내제’ 체제가 어떠한 인식론적 맥락에서 운영되었는지를 보다 심도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셋째, 본 연구는 전근대 동아시아 국제질서가 각국의 현실과 인식 체계 등에 의해 나름의 방식으로 변형`수용된 채 작동하는 면모를 이해하는데 있어 기여할 수 있는 사례 연구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본 연구는 전근대 베트남과 원간섭 이전의 고려 사회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되어 한국, 베트남 양국 간의 상호 이해 증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는 고려전기 사회의 중화(유교)문화, 국제질서 등에 관한 당대적 인식을 파악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연구요약
  • ① ‘內帝’의 실상에 관한 부분: 베트남에서 운용된 황제국 체제는 일관적이고 철저한 면모를 노정하였다. 이와 달리 고려전기의 그것은 일관적이고 철저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② ‘外王’의 양상에 관한 부분: 중국 왕조와의 대외 관계에서 고려와 베트남의 군주 모두 ‘중국’ 황제의 신하(제후)인 ‘○○국왕’으로 책봉 받았고 황제에게 ‘奉表稱臣’해야 하는 처지에 있었던 것은 다를 바 없었다. 그렇기는 하나 베트남의 경우 대외적으로 ‘稱臣’을 하는 것으로 인해 국내에서 황제로 칭해지는 군주의 권위가 손상되는 점을 우려하였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시행하였다. 이와 달리 원간섭 이전의 고려는 대외적으로 ‘稱臣’을 하는 것으로 인해 군주의 권위가 손상되는 점을 우려하여 이를 막고자 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가 없는 듯하다.
    ③ ‘外王內帝’ 체제 운용의 인식론적 맥락: 베트남의 경우 1000여 년에 걸친 중국의 직접 지배의 경험이 있는데다가, 독립된 이후로도 중국으로부터 빈번한 무력 침략을 받거나 그러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곤 하였기에, 중국에 대한 저항정신이 강하였고 ‘중국’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측면이 있었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환경에서 베트남은 국내적으로 황제국 체제를 철저하게 지향․운영하였고, 대외적으로는 중국 왕조에 ‘칭신’을 하면서도 군주의 권위가 훼손되지 않도록 고심하였을 것이다.
    고려에서의 ‘외왕내제’의 체제는 베트남에서와 같은 저항․대등 의식과 같은 뚜렷한 목적의식 속에서 지향․운영되지는 않았던 듯하다. 다원적 천하관 계열의 인사들이 정국을 주도할 때 ‘외왕내제’의 체제가 운영되었는데, 이들은 중화(유교)문화․문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성향을 보유하였다. 수용된 중국의 제도들은 대개 황제국제의 위상을 지닌 점은 고려에서 황제국 체제가 운영되는데 있어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아울러 다원적 천하관 계열의 인물들은 중화(문명)를 보편적인 것으로 여기는 세계관을 보유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있어 중화(유교)문화는 선진 문물이고 그로 인해 활용도가 높기는 하나 보편적이거나 당위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와 맞물려 이들은 중국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활용하면서도 位格을 인위적으로 낮추고자 하는 의식이 부재하거나 미약하였을 것이다. 아울러 이 계열의 인사들은 기존의 제후국제를 철저히 황제국제로 격상시키는 조치를 행하지 않았으며, 미처 도입되지 않은 중국의 제도(황제국제)를 수용하여 체제 전반을 황제국의 그것에 걸맞게 하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은 듯하다. 고려의 황제국 체제의 운영이 다소 불철저한 양상을 노정한 것은 다원적 천하관 계열 인물들의 이러한 성향과 관련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는 고려전기의 소위 ‘外王內帝’ 체제의 실체를 보다 심도 있게 파악하고, 더 나아가 어떠한 인식론적 맥락에서 ‘外王內帝’의 체제가 운용되었는지를 규명하고자 하는 작업이다. 기왕의 연구 성과들에도 불구하고 고려전기 ‘외왕내제’ 체제의 실상과 인식론적 맥락은 본격적으로 검토된 바 없기에, 이러한 필요성을 충족하고자 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표이다. 아울러 본 연구는 독자국을 유지하면서도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상하차등적 국제질서에 적응한 고려전기 사회체제를 보다 심도 있게 이해하며 베트남과의 비교를 통해 ‘외왕내제’ 상의 고려전기적인 특징을 포착하는 것을 또 다른 목표로 한다. 검토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內帝’의 실상에 관해서다. 베트남에서 운용된 황제국 체제는 일관적이고 철저한 면모를 노정하였다. 이와 달리 고려전기의 그것은 일관적이고 철저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둘째, ‘外王’의 양상에 관해서다. 중국 왕조와의 대외 관계에서 고려와 베트남의 군주 모두 ‘중국’ 황제의 신하(제후)인 ‘○○국왕’으로 책봉 받았고 황제에게 ‘奉表稱臣’해야 하는 처지에 있었던 것은 다를 바 없었다. 그렇기는 하나 베트남의 경우 대외적으로 ‘稱臣’을 하는 것으로 인해 국내에서 황제로 칭해지는 군주의 권위가 손상되는 점을 우려하였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시행하였다. 이와 달리 원간섭 이전의 고려는 대외적으로 ‘稱臣’을 하는 것으로 인해 군주의 권위가 손상되는 점을 우려하여 이를 막고자 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가 없는 듯하다. 셋째, ‘外王內帝’ 체제 운용의 인식론적 맥락에 관해서다. 베트남의 경우 1000여 년에 걸친 중국의 직접 지배의 경험이 있는데다가, 독립된 이후로도 중국으로부터 빈번한 무력 침략을 받거나 그러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곤 하였기에, 중국에 대한 저항정신이 강하였고 ‘중국’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측면이 있었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환경에서 베트남은 국내적으로 황제국 체제를 철저하게 지향․운영하였고, 대외적으로는 중국 왕조에 ‘칭신’을 하면서도 군주의 권위가 훼손되지 않도록 고심하였을 것이다. 고려에서의 ‘외왕내제’의 체제는 베트남에서와 같은 저항․대등 의식과 같은 뚜렷한 목적의식 속에서 지향․운영되지는 않았던 듯하다. 다원적 천하관 계열의 인사들이 정국을 주도할 때 ‘외왕내제’의 체제가 운영되었는데, 이들은 중화(유교)문화․문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성향을 보유하였다. 수용된 중국의 제도들은 대개 황제국제의 위상을 지닌 점은 고려에서 황제국 체제가 운영되는데 있어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아울러 다원적 천하관 계열의 인물들은 중화(문명)를 보편적인 것으로 여기는 세계관을 보유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있어 중화(유교)문화는 선진 문물이고 그로 인해 활용도가 높기는 하나 보편적이거나 당위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와 맞물려 이들은 중국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활용하면서도 位格을 인위적으로 낮추고자 하는 의식이 부재하거나 미약하였을 것이다. 아울러 이 계열의 인사들은 기존의 제후국제를 철저히 황제국제로 격상시키는 조치를 행하지 않았으며, 미처 도입되지 않은 중국의 제도(황제국제)를 수용하여 체제 전반을 황제국의 그것에 걸맞게 하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은 듯하다. 고려의 황제국 체제의 운영이 다소 불철저한 양상을 노정한 것은 다원적 천하관 계열 인물들의 이러한 성향과 관련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 영문
  • This thesis is about the reality and epistemological context of ‘Waewang Neche’ system in the early Koryo dynasty Comparing to Vietnam and it’s result is as follows. ‘Waewang Neche’ system in the early Koryo dynasty was different from Vietnam. ‘Waewang Neche’ system in the early Koryo dynasty was not consistent and was mixed. Koryo dynasty did not aim at imperial nation system consciously .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 결과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內帝’의 실상에 관해서다. 베트남에서 운용된 황제국 체제는 일관적이고 철저한 면모를 노정하였다. 이와 달리 고려전기의 그것은 일관적이고 철저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둘째, ‘外王’의 양상에 관해서다. 중국 왕조와의 대외 관계에서 고려와 베트남의 군주 모두 ‘중국’ 황제의 신하(제후)인 ‘○○국왕’으로 책봉 받았고 황제에게 ‘奉表稱臣’해야 하는 처지에 있었던 것은 다를 바 없었다. 그렇기는 하나 베트남의 경우 대외적으로 ‘稱臣’을 하는 것으로 인해 국내에서 황제로 칭해지는 군주의 권위가 손상되는 점을 우려하였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시행하였다. 이와 달리 원간섭 이전의 고려는 대외적으로 ‘稱臣’을 하는 것으로 인해 군주의 권위가 손상되는 점을 우려하여 이를 막고자 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가 없는 듯하다. 셋째, ‘外王內帝’ 체제 운용의 인식론적 맥락에 관해서다. 베트남의 경우 1000여 년에 걸친 중국의 직접 지배의 경험이 있는데다가, 독립된 이후로도 중국으로부터 빈번한 무력 침략을 받거나 그러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곤 하였기에, 중국에 대한 저항정신이 강하였고 ‘중국’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측면이 있었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환경에서 베트남은 국내적으로 황제국 체제를 철저하게 지향․운영하였고, 대외적으로는 중국 왕조에 ‘칭신’을 하면서도 군주의 권위가 훼손되지 않도록 고심하였을 것이다. 고려에서의 ‘외왕내제’의 체제는 베트남에서와 같은 저항․대등 의식과 같은 뚜렷한 목적의식 속에서 지향․운영되지는 않았던 듯하다. 다원적 천하관 계열의 인사들이 정국을 주도할 때 ‘외왕내제’의 체제가 운영되었는데, 이들은 중화(유교)문화․문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성향을 보유하였다. 수용된 중국의 제도들은 대개 황제국제의 위상을 지닌 점은 고려에서 황제국 체제가 운영되는데 있어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아울러 다원적 천하관 계열의 인물들은 중화(문명)를 보편적인 것으로 여기는 세계관을 보유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있어 중화(유교)문화는 선진 문물이고 그로 인해 활용도가 높기는 하나 보편적이거나 당위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와 맞물려 이들은 중국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활용하면서도 位格을 인위적으로 낮추고자 하는 의식이 부재하거나 미약하였을 것이다. 아울러 이 계열의 인사들은 기존의 제후국제를 철저히 황제국제로 격상시키는 조치를 행하지 않았으며, 미처 도입되지 않은 중국의 제도(황제국제)를 수용하여 체제 전반을 황제국의 그것에 걸맞게 하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은 듯하다. 고려의 황제국 체제의 운영이 다소 불철저한 양상을 노정한 것은 다원적 천하관 계열 인물들의 이러한 성향과 관련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베트남과의 비교를 통해 고려전기에 운용된 ‘외왕내제’ 체제의 실상을 보다 분명히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베트남과의 비교를 통해 고려전기의 ‘외왕내제’ 체제가 어떠한 인식론적 맥락에서 운영되었는지를 보다 심도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셋째, 본 연구는 전근대 동아시아 국제질서가 각국의 현실과 인식 체계 등에 의해 나름의 방식으로 변형`수용된 채 작동하는 면모를 규명하고자 했다. 이상의 연구결과는 추후 보완하여 학술지에 게재할 예정이다.
  • 색인어
  • '외왕내제(外王內帝)', 고려,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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