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성과물검색
유형별/분류별 연구성과물 검색
HOME ICON HOME > 연구과제 검색 > 연구과제 상세정보

연구과제 상세정보

고려중기 외척의 위상과 정치적 역할
A Study of Oecheok during the Middle Koryo Dynasty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3S1A5A2A01017989
선정년도 2013 년
연구기간 1 년 (2013년 05월 01일 ~ 2014년 04월 30일)
연구책임자 채웅석
연구수행기관 가톨릭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10세기 초 거란과의 전쟁이 종식된 후 고려의 사회가 점차 안정되고 생산력이 발달하는 가운데 문벌사회적 경향이 점차 강화되어 갔다. 왕실혼의 경우에, 고려초기에 광종대부터 목종대까지는 족내혼 특히 충주 유씨계와 황주 황보씨계의 두 왕족 사이에 주로 이루어지던 것과 비교하여, 현종대 이후 변화가 생겨 후비를 다른 문벌가문으로부터 맞고 거기서 태어난 왕자가 왕위를 계승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리고 후비의 대상이 후비의 자매․친척에 집중되는 경향이 생겨서, 현종은 안산 김씨 김은부의 세 딸을 왕후로 맞았다. 그리고 그 왕후들은 인주이씨 이허겸의 외손녀였는데, 이허겸의 손자인 이자연의 세 딸이 문종의 후비가 된 이후로는 고려중기에 그 가문에서 순종, 선종, 예종, 인종대 후비들을 배출하였다. 그 가운데 선종은 이자연의 아들 이석, 이예, 이정 등 세 명의 딸들과 연혼하였고, 인종은 이자연의 손자인 이자겸의 세 딸과 중혼하였다. 그러면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특히 헌종 대 이자의(이자연의 손자이며 이정의 아들, 선종비 원신궁주와 남매)의 난과 인종대 이자겸의 난 등을 통하여 이들 외척은 고려 중기 정치사에 큰 충격을 주었다.
    본 「고려중기 외척의 위상과 정치적 역할」 연구는 이처럼 고려중기에 외척이 소수 가문에 집중되고 그들이 거듭하여 득세하여 정치적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요인과 그 정치적 의미를 고찰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이 주제는 중요성 때문에 그동안 학계에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선행연구들은 외척은 고려중기의 지배세력인 문벌귀족의 대표적 존재로서 정치권력을 장악하여 국왕 또는 신진관료와 대립하였다고 파악하였다. 이러한 연구경향은 정치를 계층론의 입장에서 해석하는 관점으로서, 역사를 개인사적 입장에서 파악하는 방식을 탈피하고 왕조사관의 한계를 넘어서서 인간집단의 의지를 중시하고 보다 발전사적 입장에서 역사를 해석하였다는 의의를 갖고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당시 외척이 국왕․왕실과 대립적 존재였다면 인주이씨라는 가문이 여러 대에 걸쳐 외척가문으로서 고정적으로 선택되고 게다가 왕과 중혼까지 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 한번 숙청된 외척가문이 다음 왕대에 다시 외척으로 선택된 이유가 무엇인지, 정치사상이나 정치운영론 등을 누락시킨 채 계층적 이해관계만으로 정치를 설명하는 것이 옳은지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만약 왕권의 보위세력으로 외척이 선택되었다면 그 외척은 보위력을 어떻게 마련하고 행사할 수 있었는지, 이자겸의 난으로 왕궁이 불타고 인종 스스로가 양위를 고려할 정도로 왕권의 추락을 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숙청과정에서 외척세력에 대한 처벌이 매우 약한 수위에 그쳤고 곧 사면해주었던 배경이 무엇인지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선행연구들을 통해서는 잘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본 연구는 선행 연구의 성과를 계승하는 한편 위와 같이 미진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전망을 찾기 위하여 사회변화와 정치적 대응이라는 전체적 전망 하에서 연구를 진행하려고 한다. 세부적으로는 사회변화에 대한 지배층의 반응, 문벌사회의 강화와 인적 네트워크 양상, 유교정치사상에서 태후와 외척의 역할에 대한 논의, 총계적(양측적) 친속관계와 고려 왕실의 용손의식 등을 중요한 분석지표로 고려하면서 새로운 역사상을 제시할 수 있는 연구 가능성을 타진하려고 한다.
  • 기대효과
  • 본 연구의 결과는 크게 보아 다음 두 가지 면에서 활용하여 학문적, 교육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1) 본 연구는 고려시대 정치사에서 연구의 프레임을 새롭게 확장하는 의미가 있다.
    본 연구는 ‘고려중기론’의 관점에서 이루어질 예정이다. 왕과 문벌귀족 간의 대립, 문벌귀족과 신진세력 간의 대립이라는 역사상이 이 시기 역사 이해에 상당히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한 계층론적 파악이 인간의 활동을 고정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야기되는 한계도 나타났다. 고려중기론은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제시되었고, 12세기부터 13세기에 걸친 사회변화과정에서 정치세력들이 분화하면서 다양한 정치적 대응이 나타나고 정치운영과 정책에 주목하게 됨으로써 각각의 역사적 의미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다른 시기에서 보기 힘든 외척세력과 국왕 측근세력의 득세가 부각된 것은 그러한 정치과정의 소산이었다.
    2) 고려 문벌사회의 성격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새롭게 하는 의미가 있다.
    선행연구에서 인주이씨, 안산 김씨, 정안임씨 등 출신의 외척을 부계친속을 전제로 하여 검토하였던 것과는 달리 총계적(양측적) 친속조직으로 파악하고 실제 기능하는 가문단위에 주목하였으며, 특히 문벌사회의 인적 관계망을 중요하게 검토함으로써 문벌사회의 구조와 기능에 대하여 새로운 이해를 가져 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고려중기 외척의 정치적 역할에 대해서도 주로 왕권과 대립하는 존재로서 이해되었던 것에서 벗어나 왕 또는 다른 문벌가문들과 협력하고 때로는 대립한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고려중기 정치사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연구요약
  • 본 연구는 고려중기 정치사에 대하여 선행연구들의 성과와 한계를 면밀하게 파악하고, 특히 외척의 위상과 정치적 역할에 대하여 네트워크론과 정치운영론 등을 적용하여 새롭게 보완하려고 한다.
    (1) 개인의 행위를 결정하는 요인은 개인적인 자질․능력과 함께 그가 속한 네트워크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네트워크에는 형식화, 제도화된 것도 있고 비형식적인 것도 있다. 신분적, 硬性的인 것도 있고 구성원들이 어느 정도 자율성을 지니면서 軟性的인 것도 있다. 특히 후자는 동태적인 과정이며 구성원들이 처한 위치는 계속적으로 변화한다. 전자에 대해서는 선행 문벌귀족 연구에서 충분히 주목하였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못했다. 또한 고려중기 사회변화에 대응한 정치세력의 분화, 개혁안의 제시와 시행과정 등 정치운영모습을 고찰해보면 정치사 연구에서 신분계층관계에 입각한 선험적 결정론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2) 고려중기 외척 가문의 존재양태를 총계적(양측적) 친속관계로 파악하고 정치적 사회적으로 실질적 집단으로서 기능한 ‘분화된 가문단위’ 내지 정치세력화 단위로서 ‘족당’의 존재에 주목하여 고찰한다. 문벌귀족가문에 대한 선행 연구에서 부계친족집단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주류였지만, 최근에 총계적으로 파악하는 새로운 연구들이 나오고 있고 그 결과 고려시대의 정치사, 사회사 등에서 새로운 이해가 가능해졌다. 본 연구는 그러한 이해를 수용하면서 각 왕대별 외척세력들이 전체 문벌사회와 네트워크로 얽힌 관계와 함께 외척가문 전체가 아니라 그 내부에서 실질적 집단으로 기능한 분화된 가문단위 내지 족당의 범위를 고찰하려고 한다.
    (3) 특정 외척가문이 왕실과 연혼, 중혼관계를 갖는 것을 용인한 배경과 관련하여, 문벌을 숭상하는 사회분위기, 親親과 私恩의 논리, 태후의 정치적 위상 등에 주목하여 고찰한다. 외척의 발호가 왕권의 약화를 초래한 결과 고려전기 정치가 파국으로 가게 되었다는 식의 이해는 그 사회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문벌사회로 강화되어 가는 상황과 함께 사회변화에 대응한 정치운영론 상으로 외척과 국왕 측근세력이 대두하게 된 과정에 대한 파악이 전제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문종대 이후 유학사상의 親親과 私恩 논리에 의해서 외척이 왕으로부터 존숭되고, 그 가문은 문벌사회의 네트워크상 중추적 위치를 차지했던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중국에서 漢代 이후 嫡妻權에 기반한 태후의 정치적 위상과 역할에 대한 논의들을 주목하여 보면, 고려중기 외척의 역할에 대하여 이해하는 데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4) 이자의의 난과 이자겸의 난의 배경에 대하여 외양보다는 그것이 가능했던 정치논리에 주목하여 추적한다. 외척이 문벌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 특히 인적 네트워크 상에서의 위상이 어떠하였는가? 외척의 존재와 역할이 정치적으로 왕권과 대립적인가, 보완적인가? 특히 이자의의 난이라는 선대의 정치적 격동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종이 이자겸이라는 외척세력을 적극적으로 강화시켰던 이유가 무엇인가? 당시 문벌사회에서 유교지식인들은 외척의 존재에 대하여 어떻게 인식했는가? 특히 외척의 역할을 公私의 논리라는 관점에서 해석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지 않을까 등의 문제를 고찰한다.
    (5) 인주 이씨 외에 경주 김씨, 정주 유씨, 정안 임씨 등 다른 외척들의 존재와 활동에 대하여 조사한다. 또한 문벌 출신 인물들이 문벌사회의 네트워크상 외척가문의 존재와 역할에 대하여 인정하는 한편 특정인을 중심으로 하여 분화된 가문단위가 다른 단위들을 배제하면서 독주하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던 점에 주목하여 문벌사회에서 외척의 위상을 고찰한다.
    (6) 본 연구의 예상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머리말
    2. 문벌사회의 네트워크와 외척의 위상
    3. 왕실 보위와 외척의 역할
    4. 맺음말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고려중기에 문벌사회로서의 모습이 강화되는 가운데 계급내혼과 총계적 친속관계로 뒤얽힌 문벌 간의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대표적인 문벌귀족인 인주 이씨가 지속적으로 외척이 되어 왕권과 대립하였다고 이해하는 것이 그동안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그렇지만 인주 이씨 출신으로 연이어 나온 후비들은 인주 이씨라는 부계집단 차원이라기보다 넓게는 문벌 간의 인적 네트워크, 좁게는 당대 정치‧사회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던 인물의 ‘가문’ 차원에서 선택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가문’은 그 인물을 중심으로 총계적 3세대 범위의 후손들로 구성되었다. 그렇게 선택된 외척은 왕권을 제약하기보다는 왕과 그 후사를 보위하는 역할을 하도록 기대 받았다.
    외척은 친친의 논리에 따라 우대 받았다. 그 우대는 왕의 은사 차원에서 시행되었기 때문에 시기에 따라 가변적이기는 하였다. 그리고 왕이 친정하면서 리더십을 발휘하던 시기에는 외척이 특별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였다. 다만 유약한 왕이 즉위하였을 때 외척이 득세하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태후의 위상과 역할과 관련하여 이해할 수 있다. 유교 정치사상에서 태후는 그 위상이 선왕과 일체가 되어 종사의 안위와 관계된 것으로 인식되었고, 또 “어미는 아들로 인하여 귀하게 된다”는 언술에 따라 존숭 받았다. 그런 인식과 언술이 태후가 섭정할 수 있는 명분이 되었고, 그런 섭정시기에 외척세력의 정치활동이 부각되었다. 왕위의 형제 계승을 인정한 「훈요」가 존중되는 가운데 종실과 달리 이성의 외척은 왕위 계승 자격이 없기 때문에 보위‧보정의 역할을 맡기는 데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었다. 그럴 때 적장자 계승 원칙을 지키려는 유학자들도 외척의 보정 역할을 인정하였으며, 다만 국정 운영이 유교이념에 따라 정상적으로 이루어져서 권력이 자의적‧사적으로 행사되지 말아야 한다고 보았다.
    외척이 정치세력화한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이자겸의 경우에 그의 본족‧외족‧인족 구성을 보면 당대 문벌 네트워크에서 중심적인 위치에 있었고, 특히 官界에서 최고로 존숭 받고 문벌 면에서 비교할 사람이 없었다는 최사추의 ‘가문’에 속해 있었다. 그는 태자의 輔導를 맡고 왕위경쟁세력으로부터 태자를 보위하였다. 인종은 그에 대해 선왕이 부탁한 사람이고 어린 자신이 존경하는 親으로서 책임이 크다고 표현하였다. 이후 이자겸은 신하로서는 최고의 지위에 올라 국정에 간여하였지만 관료제 운영의 틀에서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그는 자신의 직임을 지군국사로서 공식화하기를 원하였으나 실패하고, 오히려 왕이 그에게 거리를 두는 계기가 되었다.
    외척 권력은 왕이 신임과 보정 역할에 정당성을 두었기 때문에 왕과 대립하거나 왕이 리더십을 강화하게 되면 약화될 운명이었다. 그리고 정상적으로 왕이 리더십을 갖고 관료정치를 운영하지 못하는 시기에는 외척의 권력이 자의적‧사적으로 행사되기 쉬웠다. 이자겸이 문벌사회에서 통합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족당세력을 강화하자 사적으로 권력을 운영하고 왕권을 약화시킨다고 인식되었다. 인종이 장성하여 측근세력과 함께 외척을 숙청하려다 실패하고 이른바 이자겸의 난을 초래하였다.
  • 영문
  • The Political Roles of King’s Maternal Relatives in the Mid-Goryeo Dynasty
    Chai, Oong-Seok

    In the mid-Goryeo dynasty, the human networks among Munbeol aristocrats were formed in connection with class endogamy and cognatic(bilateral) kindred system. We have generally understood that the Lee clan of Inju, a typical Munbeol aristocratic clan consistently had produced king’s maternal relatives and come up against the king. Nevertheless, the queen consorts from the Lee clan of Inju were not selected considering the patrilineal descent group. Queens were most likely to be selected considering the human networks among Munbeols in a broad sense and the Gamun, in narrow sense, which consisted of a figure having a central role in politics and society at that time and their descendants. King’s maternal relatives being selected in such way were expected to support the king and crown-prince.
    During the period when the king exercised his leadership, his maternal relatives could not assert their power. However, when a weak king ascended the throne, they gained the ground. This can be understood not only in light of ‘loving one’s parents’ which Confucianism underlines but also the status and role of the queen dowager. The queen dowager was able to act as regent when her son, the king was weak. During her regency, the king’s maternal relatives’ political activity became apparent. Especially in Goryeo dynasty, Hunyo which allowed brother to become heir to the throne was serious considered. So royal relative’s regency could have ended up being accepted in order to follow the principle of primogeniture. During king’s maternal relatives in power, it was easy for their power to be exercised arbitrarily and privately because the king was not able to show his leadership and manage bureaucratic politics.
    The typical example of king’s maternal relative forming a political power group was Lee Ja-Kyeom. He had a central role in Munbeol networks at the period and belonged to the Gamun of Choe Sa-Chu, the most honored man at the era. He took charge of protection and instruction for the crown-prince. However, when Lee Ja-Kyeom could not exercise integrated leadership in Munbeol society and reinforced his Jogtang-political group, he was recognized that he actually weakened the king’s authority and asserted his power privately. As grown up, the king In-Jong tried to purge his maternal relatives in the help of royal crony group, but failed. Then it caused Lee Ja-Kyeom’s rebellion.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고려중기에 계급내혼과 총계적 친속관계로 연결된 문벌 간의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대체로 그동안의 선행연구에서는 대표적인 문벌귀족인 인주 이씨가 지속적으로 외척이 되어 왕과 대립하였다고 이해해왔다. 그렇지만 인주 이씨 출신으로 연이어 나온 왕비들은 부계 친족집단 차원이라기보다 넓게는 문벌 간의 인적 네트워크, 좁게는 그 시기의 정치․사회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던 인물과 그의 총계적 후손들로 구성된 ‘가문’ 차원에서 선택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그렇게 선택된 외척은 왕권을 제약하기보다는 왕과 그 후사를 보위하는 역할을 하도록 기대 받았다.
    왕이 친정하면서 리더십을 발휘하던 시기에는 외척이 특별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였다. 다만 유약한 왕이 즉위하였을 때 외척이 득세하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유교 정치사상이 강조하는 친친의 논리와 함께 태후의 위상과 역할과 관련하여 이해할 수 있다. 태후는 왕의 모후이자 선왕과 일체가 되어 종묘를 받든 존재로서, 왕이 유약할 경우에 섭정할 수 있었다. 그런 태후가 섭정하는 시기에 외척의 정치 활동이 부각되었다. 특히 왕위의 형제 계승을 인정한 「訓要」가 정치적으로 중시되었기 때문에 적장자 계승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태자가 유약한 경우에는 외척의 보정을 받을 필요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태후의 위상에 기댄 외척의 정치는 선대의 정치운영을 계승하는 보수성을 띠기 쉬웠다. 또한 외척이 권력을 잡은 시기는 정상적으로 왕이 리더십을 갖고 관료정치를 운영하지 못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권력이 자의적, 사적으로 행사되기 쉬웠다.
    외척이 정치세력을 형성하여 활동한 대표적 사례가 이자겸이다. 그는 당대 문벌 네트워크에서 중심적으로 위치해 있었고, 최고로 존숭 받던 최사추의 ‘가문’에 속해 있었다. 그는 태자에 대한 보호와 지도를 맡았다. 그렇지만 이자겸이 문벌사회에서 통합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족당세력을 강화하자 사적으로 권력을 운영하고 왕권을 약화시킨다고 인식되었다. 인종이 장성하여 측근세력과 함께 외척을 숙청하려다 실패하고 이른바 이자겸의 난을 초래하였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의 결과는 크게 보아 다음 두 가지 면에서 활용하여 학문적, 교육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1) '고려중기론'의 관점에서 연구하여 중세시기 정치사 연구의 프레임을 새롭게 확장하는 의미가 있다.
    왕과 문벌귀족 간의 대립, 문벌귀족과 신진세력 간의 대립이라는 기존의 역사상이 그 시기 역사 이해에 도움을 준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한 계층론적 파악이 인간 활동을 고정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야기하는 문제점도 나타났다.
    고려중기론은 그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제시되었다. 본고에서는 그런 관점에서 당시 사회변화과정에서 정치세력, 사회세력들이 분화하면서 다양한 정치적 대응이 나타나고 정치운영과 정책도 다양화 한 것에 주목하여 연구하였으며 그 결과 각각의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였다. 다른 시기에 보기 힘든 외척세력과 국왕 측근세력의 득세가 부각된 것도 그런 정치과정의 소산물이었다.
    2) 고려 문벌사회의 성격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새롭게 할 수 있다.
    선행연구에서 인주 이씨, 안산 김씨 등 문벌 출신의 외척들을 부계친속을 전제로 하여 검토한 것과는 달리 총계적 친속조직으로 파악하고 실제 기능하는 가문단위에 주목하였으며, 특히 문벌사회의 인적 관계망을 중요하게 고찰함으로써 문벌사회의 구조와 기능에 대하여 새로운 이해상을 제시하였다.
    또한 고려중기 외척의 정치적 역할에 대하여 주로 왕권과 대립하는 존재로서 이해하던 데에서 벗어나, 왕 또는 다른 문벌가문들과 협력하고 때로 대립한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당시 정치사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색인어
  • 고려중기, 외척, 인주 이씨, 인간관계망, 문벌
  • 연구성과물 목록
데이터를 로딩중 입니다.
데이터 이용 만족도
자료이용후 의견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