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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삼국지』 인물 차용 시조의 유행과 시대적 동인에 대한 탐색
A Study on a Vogue of Sijo Depicting Characters in History of Three States and the Historical Cau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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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명 우수논문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3S1A5A2A02030383
선정년도 2013 년
연구기간 1 년 (2013년 07월 01일 ~ 2014년 06월 30일)
연구책임자 하윤섭
연구수행기관 고려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논문은 조선후기 시조사의 주요한 부면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소설 차용 시조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 특징적 현상을 집약적으로 제시하고, 그것의 출현 동인을 당대의 시대적, 사상적 배경과 연계하여 해명하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특히, 차용된 소설 작품 중 주종을 이루고 있는 『삼국지』 속의 인물들, 그 중에서도 ‘제갈량’과 ‘관우’의 시적 형상에 주목하여 그들이 어떠한 이유로 조선후기 시조사의 드넓은 지평 안으로 포섭될 수 있었던가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였다.
    『삼국지』 속 인물들이 조선후기 시조 작품의 주된 모티프로 기능하는 현상에 주목한 논의는 그리 많지 않다. 유관한 내용의 성과들을 종합하여 그 大綱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중국에서 창작된 『삼국지연의』가 16세기 말 이래 조선에 전래되면서 사대부 및 여항층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고, 이와 아울러 조선후기 들어 중인 계층으로 확대된 시조 담당층의 연의류 소설에 대한 탐독과 소재 및 주제의 확대를 요구하던 시조사 내부의 동인이 맞물리게 되면서 소설의 일부 내용 및 인물들이 시조의 주된 모티프로 유입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삼국지』와 관련된 시조 작품들의 출현에 있어 『삼국지연의』의 영향은 무시할 수 없는 요인임에 분명하지만 소설의 성행을 절대적 常數로 파악한 종래의 성과들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좀더 세밀한 고찰을 요한다. 첫째, 역사적 인물이 주된 소재로 활용된 시조 작품의 경우, 그 창작적 원천의 모두가 소설이었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둘째, 『삼국지연의』 관련 시조 작품들의 경우 그 출현 시기를 최대한 느슨하게 잡는다 하더라도 18세기 이전을 내려오지 않는데, 『삼국지연의』의 16세기 후반부터 지속적으로 향유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양자 사이에 놓여 있는 적지 않은 시간적 간극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셋째, 여러 기록들을 통해 『삼국지연의』가 광범위한 독서 대중을 확보하고 있었음은 확인할 수 있지만, 이 소설이 당대에 향유되었던 여타의 소설작품들, 이를테면, <구운몽>, <사씨남정기>, <숙향전> 등과의 비교에 있어 반드시 우위를 점했다고는 단정지을 수 없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서 본고에서는 7,000여 수에 달하는 고시조 작품들 중 소설적 내용과 유관한 작품을 검출하여 이러한 현상이 『삼국지』 속의 인물들, 그 중에서도 ‘제갈량’과 ‘관우’에게만 편중되어 나타난다는 점을 계량적으로 확인하고, 아울러 이러한 편중의 원인을 조선후기에 강화되어 가는 중화계승의식의 흐름과 그 속에서 재호명된, 몇몇의 역사적 인물에 대한 기억의 대중화, 고착화 양상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였다. 제갈량과 관우는 그 몇몇의 인물들 중 대표적인 사례였으며, 그들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기념사업, 東廟, 祠堂과 같은 기념물의 건립 등은 시조, 소설, 판소리 등에 나타나는 그들의 모습을 일정한 방향으로 견인하였다. 조선후기 시가 향유 공간에서 관우와 제갈량에 대한 작품들이 꾸준히 창작되고 향유될 수 있었던 사정에는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 기대효과
  • (1) 소재적 추이를 활용한 시조 연구 사례의 제공
    특정한 주제 및 모티프를 담은 일련의 문학작품들이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출현하는 현상은 제법 흥미롭다. 여기에는 단순한 일시적 유행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해당 주제와 관련한 보다 근원적인 시대적․사회적 병리가 자리하고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부합하는, 앞으로 해명해야 할 작품들의 군집은 여전히 상당하다. 시조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들은 주로 어떤 이들인지, 또한 그러한 인물들의 분포는 어떠한 시기적 구획을 기준으로 뚜렷하게 갈라지지는 않는지, 그렇다면 그것의 이유는 무엇인지 등 소재적 추이를 활용한 시조 연구의 파생력은 적지 않다. 근대 이후의 시조 작품으로 시야를 확대하여 ‘근대’라는 문제적 시기를 따라 새로이 생성되는 주제들과 점차 쇠퇴해 가는 주제들의 넘나듦을 확인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본 논문은 그러한 연구들의 하나의 사례로 제공될 수 있을 것이다.

    (2) 새로운 방법론의 모색과 시도
    이미 과거에 속하는 역사적 인물이 현재에 와서 다시금 호명되고 재현되는 현상은 흥미롭다. 현재 역시 과거의 유산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을 터이나 현재적 필요에 의해 역사적 과거가 구성되고 변형되는 과정은 현재가 당면하게 된 모종의 결핍과 그에 대한 나름의 대안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근간에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하여 기억 담론이 활발하게 주창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기억’과 ‘기억을 토대로 한 기록’의 유동 가능성을 상정하게 되는 순간, 변치 않는 事實로서의 역사를 전제하면서 기록된 것의 신빙성을 믿어 의심치 않던 근대적 역사관에서 한발 물러나 보다 풍성했을 당대의 사건들을 다양한 시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통로가 확보될 터이기 때문이다. 본고는 이러한 최근의 기류와 더불어 문학과 역사, 그리고 기억의 문제에 주목하여 소설적 내용의 시조로의 차용이라는 조선후기의 문제적 현상을 탐색해 보고자 했다는 점에서 일정한 의의가 있지 않을까 한다.

    (3) 학제간 연구에의 기여
    분과 학문 체제가 감당하지 못하는 수다한 문제들을 교류와 협력, 학문 간의 횡단을 통해 극복해 보고자 시도한 학제간 연구가 학문적 담론의 현장에서 점차 그 비중을 높여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적절한 주제가 선정되지 못하거나 뚜렷한 연계 가능성이 확보되지 못할 경우, 그것은 당초의 목표가 지닌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그에 부합할 만한 성과를 도출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학제간 연구의 아젠다는 분과와 분과 사이의 소통 가능성을 충분히 확보한 뒤에야 비로소 성립 가능하다.
    이러한 실상에 비추어볼 때 ‘기억 담론’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은 문학은 물론 사학과 철학과의 연계를 통해 유의미한 성과를 도출해 낼 수 있는 적절한 주제로 생각된다. 문학과 사학, 철학의 제 분야가 일정 정도 과거와 현재 사이의 미묘한 길항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기억’과 ‘기억을 토대로 한 기록’의 변화 가능성을 전제로 하는 기억 담론은 이전과 다른 새로운 시각의 여지를 확보해 줄 수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기실, 재래의 연구에서는 소설적 내용의 시조로의 차용이라는 특수한 현상의 원인을 『삼국지』라는 소설의 유행으로만 파악하였지만, 본 논문에서는 기억 담론을 통하여 현재적 필요에 의해 새롭게 조명된 역사적 인물에 대한 기억이 그와 같은 문화적 현상에 상당 정도 관여했음을 확인하였다. 이와 같은 역사적 원근법은 문학과 사학, 철학을 접목할 수 있는 공통의 관심사로, 학제간 연구가 기획했던 당초의 목표에 어느 정도 부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연구요약
  • 소설적 내용의 시조로의 전환은 어떠한 이유에서 『삼국지연의』에만 집중되는가. 수다한 인물들 중 관우와 제갈량만이 주된 시적 소재로 선택되는 데에는 어떠한 기제가 깔려 있는가. 찬양과 송축, 안타까움과 슬픔 등 시적 화자의 현재적 감정이 유독 두 사람에게만 일관되게 투사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상기한 사항들은 소설 차용 시조에 속하는 일군의 작품들을 일별한 후 필자가 갖게 된 의문들로, 본고에서는 이를 『삼국지』 속 인물들에 대한 사회적 ‘기억’의 변화와 이에 따른 기념물의 건립과 기념의식의 시행, 이를 통한 ‘집단기억’의 생성과 전파 등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하였다. 논의를 통해 도달하게 된 잠정적 결론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尊周論’이라는 변형된 형태의 중화계승의식이 형성되어 가던 17세기 후반 이후, 중화적 질서를 유지하고자 했던 역사적 인물들은 당대의 시공 속에서 다시금 호명되어 재해석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관우와 제갈량 또한 무너진 정통을 회복하기 위해 분투했던, 충절과 의리의 상징적 인물들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국가적 차원에서 도모되었던 존주대의의 실천적 행위들과 개인의 의식적 편린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각종의 문학 작품들에서 여실히 포착되는바, ‘대명의리’라는 당면의 목표를 위해 시공을 달리하는 과거의 인물들을 현재에 소환해 내는 작업이 필수적으로 요청되었던 것이다.
    둘째, ‘역사적 사실은 기억된 과거이다’라는 우리의 전제에 찬동할 수 있다면, 과거의 사실과 재현된 과거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일정한 간극이 개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간극은 과거를 재현하게끔 만든 현재적 필요에 의해 생성되기 마련일 텐데, 중요한 것은 현재가 요구하는 과거의 형상에 따라 과거가 지녔던 다양한 모습들 중 일부는 망각되고, 또다른 일부는 부각된다는 것이다. 관우가 범했던 역사적 과오에 대한 비판이나 제갈량이 지녔던 不純한 학문적 경향에 대한 혐의 등 그들에게 부과되었던 이러저러한 기억의 흔적들은 충절과 의리의 표상을 위해 망각되어야만 했다.
    셋째, 기념물은 사라진 기억들을 가시적인 형태로 정형화하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을 현재에 재현시키는 데 매우 효과적이며, 또한 기념하는 대상을 신비롭고 성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효과를 지닌다. 관우와 제갈량에 대한 기념 사원의 남설, 그들에 대한 왕의 親祭, 정례적인 기념의식[祭禮]의 시행 등 그들을 대상으로 한 일련의 사업들은 양자에 대한 긍정적 기억을 일정한 계급을 초월하여 ‘전방위적’으로 주조하는 데 다대한 작용을 했을 터, 조선후기 시가 향유 공간에서 양자에 대한 작품들이 꾸준히 창작되고 향유될 수 있었던 저간의 사정에는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기억은 의미를 발생하고 의미는 기억을 고정시킨다. 우리가 살펴본 관우와 제갈량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에 대한 변화된 기억들은 존주대의의 이념적 표상이라는 새로운 의미들을 발생하였고, 그렇게 해서 발생한 의미들은 가시적, 비가시적인 형태로 그들에 대한 기억을 고정시켰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후기 가집에 소재한 수십 편의 시조 작품들은 발생된 기억의 결과이기도 하며, 고정된 기억의 원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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