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18세기 무반 가문 출신 여성인 풍양 조씨가 자신의 삶을 회고적으로 기록한 작품인 <자긔록>의 생애 서술의 특징과 효과를 살펴보는 것이 목표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기술되고 있는 것은 ‘남편의 죽음’이지만, 본고에서는 이 작품이 매우 다양 ...

본 연구는 18세기 무반 가문 출신 여성인 풍양 조씨가 자신의 삶을 회고적으로 기록한 작품인 <자긔록>의 생애 서술의 특징과 효과를 살펴보는 것이 목표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기술되고 있는 것은 ‘남편의 죽음’이지만, 본고에서는 이 작품이 매우 다양한 차원의 잉여적인 측면들을 갖고 있으며, 특히 조선후기 양반 가문의 생활적 면모와 일상성의 차원을 매우 섬세하게 전달하고 있는 점에 특별히 주목해 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자긔록>이라는 자전적인 여성 생애기록을 흥미롭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로 ‘일상성’이라는 특징에 주목하고, 그러한 서술이 궁극적으로 의도하고 있는 바는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본고는 이 작품의 일상적인 생애 서술의 첫 번째 특징이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인물들에 대한 작가 나름의 ‘판단’이나 ‘태도’를 전하고 있는 점이라고 분석하였다. 즉 <자긔록>에서 분량상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시집 어른과 남편의 죽음’에 관련된 내용이지만, 작가가 실제 더 비중을 두어 의미 있게 부각시키고 있는 것은 ‘친정 식구의 인품과 가풍에 대한 존경’이었다. 작가는 시모가 아들을 어린아이처럼 대하는 태도나 시조부가 손자의 병을 대하는 비합리적이고 독선적인 판단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태도를 전하는 반면, 남편의 간병 과정에서 합리적이고 신중한 판단을 내리는 친정 부친과 언니에 대해서는 신뢰와 존경의 태도를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두 번째로 본고는 이 작품의 생애 서술의 또 다른 특징을 작가가 자신의 상황을 ‘관계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점이라고 분석하였다. 작자는 자신의 일상에서 중요한 인물들을 고정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에 따라 그들에 대한 심리적 거리 및 평가가 달라짐을 보여주는 서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서술은 자기 주변의 인물들과의 관계와 맥락에 대한 영민한 자의식을 드러내는 것이며, 동시에 일상에서 유동하고 있는 인간관계 속에 숨은 미시적인 역학관계 및 권력의 작동을 잘 인식하고 있는 서술이라고 보았다.

본고는 이러한 서술의 궁극적인 의도가 작가의 삶에서 가장 중심적인 축이 ‘친정 가문’임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작가는 자신의 시집 생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경제력에 기반한 뒷받침을 해온 친정 가문의 존재가 자신이 자연스럽게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맥락에 있도록 보호해주는 배경이자 권력임을 명료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자긔록>은 남편을 잃은 여성의 죄의식의 기록이라기보다는 남편의 병을 키우고 죽게 만든 시집의 비합리성을 드러내는 기록이며, 친정 가문에 대한 강한 소속감과 애틋함과 자부심을 드러내는 기록인 것이다. 즉 본고는 <자긔록>이라는 자료에서 지금까지 부각되지 않았던 ‘일상 위주의 생애 서술’이라는 새로운 면모에 주목하여 이 작품의 여성주의적 의의와 가치를 보다 더 적극적으로 읽어내는 것을 연구 목표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1. 여성의 자전적 생애 기록에 대한 심층적 사례 연구로서의 효과

<자긔록>은 조선 시대에 드물게 여성이 자기 생애를 기록으로 남긴 자료이다. 이러한 자료적 가치 때문에 기존 연구에서 이미 이 작품의 작가 및 가문에 대한 1차적인 서지 연구가 상세하게 진행되었으며 ...

1. 여성의 자전적 생애 기록에 대한 심층적 사례 연구로서의 효과

<자긔록>은 조선 시대에 드물게 여성이 자기 생애를 기록으로 남긴 자료이다. 이러한 자료적 가치 때문에 기존 연구에서 이미 이 작품의 작가 및 가문에 대한 1차적인 서지 연구가 상세하게 진행되었으며, 아울러 작품의 전반적인 성격과 작가에 대한 의미 있는 연구 또한 제출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갖고 있는 생애 기록으로서의 다층적인 복잡성은 더 심화된 연구를 요청하는 측면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본 연구는 <자긔록>의 전체 서술단락을 일목요연하게 표로 정리하고 서사의 중심내용을 간추림으로써, 이 작품이 시집과 친정 인물들에 대한 다양한 서사들이 중층적으로 들어있다는 점을 새로이 주목했다. 나아가 이러한 서술의 다층성을 꿰뚫는 키워드로 ‘일상성’이라는 개념을 부각시켜, 일상적인 삶의 서술 속에 드러나는 작가의 비유교적 판단과 관계성 속에 숨어있는 권력관계에 대한 작가의 영민한 통찰력을 주목하고자 하였다. 이렇듯 <자긔록>이 갖고 있는 여성의 자전적 생애 기록으로서의 독창성과 가치를 새롭게 부각시키고자 한 것은 여성 자료의 심층적 사례연구로서의 의미와 효과가 있다고 생각된다.

2. 여성의 자전적인 생애 기록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정립하는 효과

‘자서전’이라는 개념은 자신을 뚜렷하게 자기 생애의 중심인물로 인식하고, 알릴 만한 가치가 있는 자신의 생애를 서술한다는 분명한 의지가 담겨 있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자긔록>은 ‘자서전’이라는 명료한 개념으로 지칭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첫째, 자서전 특유의 자기중심성 차원에서 서술자인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되기보다는 주변 인물들이 중심이 되고 있다는 점 때문이며, 둘째, 저술의 자발성과 의지 차원에서도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후세에 남길 만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기록을 남겨야 할 만큼 예외적인 불행의 상황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의 ‘자전적 생애 기록’으로써의 <자긔록> 연구는 여성 생애 기록을 바라보는 가설적 시선을 성립하게 해주는 기대 효과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여성이 기록을 남긴다는 것 자체가 금기였던 시대에 쓰여진 여성 생애기록은 시문을 남긴 여성들보다 한층 더 복잡하고 내밀한 의지와 자의식을 가진 기록 주체로서의 여성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대부분의 여성 생애기록은 자기중심성이 약하고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산만하게 서술하는 듯한 특징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수동성을 가장한 서술이거나, 자신의 인식과 판단을 의도적으로 감추기 위한 장치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자긔록>이라는 작품뿐만이 아니라, ‘여성의 자전적인 생애 기록’이라는 자료군 전반을 새롭게 조망할 수 있게 해주는 시각을 제공해주는 기대 효과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여성 생애 기록에 나타나는 ‘일상성’ 연구로의 확대 가능성

본고에서는 <자긔록>이라는 작품이 조선후기 양반 가문에서의 여성 삶의 생활적 면모와 구체적인 상황들이 세밀하게 드러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그러한 양반 여성의 일상성의 의미를 밝혀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다. 이는 르페브르가 말한 바, ‘일상성’이라는 개념은 곧 ‘특정 방식의 일상을 생산하는 사회에 대한 고찰’로 연결되며, 일상성을 연구한다는 것은 곧 그것을 만들어내는 사회의 속성과 구조, 변화와 전망을 읽어내는 작업이라고 한 지적과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본고의 연구는 ‘일상성’의 측면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규한록>, <한중록>과 같은 조선시대 여성 생애 기록에 나타난 일상성 연구로 확장시키는 것을 기대해 볼 수 있다. 본고에서 분석한 <자긔록>의 일상성이 유교적 규범에 대한 자기만의 판단을 드러내고 유동적인 일상의 역학관계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다면, <규한록>, <한중록>과 같은 생애 기록에서는 어떤 일상성이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는지, 그 의도와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작업일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18세기 여성이 자신의 삶을 회고적으로 기록한 생애 서사물인 <자긔록>을 대상으로 한다. 작품에 대한 예비적 고찰을 통해 본고는 <자긔록>에 대한 본격적이고 전면적인 작품 검토를 통해 추가 정보를 발굴하였다. 기존 연구에서는 <자긔록>의 필사자를 작가 자 ...

본 연구는 18세기 여성이 자신의 삶을 회고적으로 기록한 생애 서사물인 <자긔록>을 대상으로 한다. 작품에 대한 예비적 고찰을 통해 본고는 <자긔록>에 대한 본격적이고 전면적인 작품 검토를 통해 추가 정보를 발굴하였다. 기존 연구에서는 <자긔록>의 필사자를 작가 자신이라고 보았으나 맨 뒤 필사기에 들어있는 ‘아뎨(我弟)’라는 표현과 ‘피채 얼굴 그리는 탓’이나 없기를 바란다는 구절 등을 통해 필사자가 작가의 친정 언니임을 추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작가의 시댁 가문이 작가 부친의 일찍 사별한 초취(初娶)의 집안임을 밝혀 무반 집안끼리의 겹혼인 관계라는 점 또한 밝혔다.

본 연구에서는 <자긔록>을 흥미롭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조선후기 양반 가문 여성의 생활적 면모, 즉 일상성이라는 특징에 있다고 보고, 그러한 일상적 생애서술의 특징과 효과에 주목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작품의 전체 흐름과 내용을 서술단락별로 정리하고 그 특징을 살펴보았다. <자긔록>의 서술단락의 특징은 단락별 내용 구분이 매우 뚜렷하며 구성도 정교하게 구획되어 있으며, 중요한 화제에 대해서는 단계적으로 자세한 상황 제시를 덧붙이는 심층 서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친정 모친, 부친, 언니에 대해서 각각의 인물 성격을 매우 생동감있고 입체적인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중요 사건이 남편의 병과 죽음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친정 식구들이 그 사건에 개입하고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자긔록>은 시부모 봉양 방식, 부부간의 대화, 음식과 간병 등에 대한 일상적인 생활의 면모를 생생하게 담고 있다. 그런데 <자긔록>은 이러한 일상적 상황들에 대한 작자의 판단을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다. 작자는 친정의 일상에 대해서는 심리적 긴밀함과 자부심을 드러내는 한편, 시집의 가풍에 대해서는 간접적인 의문과 반감, 나아가 원망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시부모 봉양의 방식이나 바람직한 부부간의 관계 등에 대해서도 규범적인 유교적 태도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는 자신만의 고유한 평가와 생각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시모가 아들을 지나치게 어린 아이처럼 대하는 모습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라든가, 자신과 남편의 부부 관계가 서로의 뜻을 알아주는 지기(知己)와 같은 것이었음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이는 점 등에서 그런 면모를 잘 볼 수 있다.

또한 <자긔록>의 일상 위주의 서술은 작자의 상황이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망 속에 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서술은 일상 속에서의 관계를 관계망에 따라 변화하는 유동적인 것으로 보면서, 시모, 부친, 언니와의 관계가 각각 어떤 구체적인 상황에 놓이느냐에 따라 그 심정적인 거리와 친밀도가 달라짐을 보여준다. 즉 <자긔록>의 일상 위주의 생애 서술은 작자가 평소 가깝게 느끼는 한 인물에 대한 평가가 어떤 관계망 속에 놓이느냐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질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일상 속에서의 인간관계가 상황과 맥락에 따라 늘 변화하며 그 변화하는 관계 속에서 그 사람에 대한 평가나 심리적 거리도 늘 새롭게 조정되는 것임을 민감하게 인식하고 있는 서술 시각이다. 이러한 시각을 통해 작자는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여러 인물들과의 관계와 맥락에 대한 영민한 자의식을 드러냄과 동시에 일상에서 유동하고 있는 인간관계 속에 숨은 미시적인 권력의 작동을 효과적으로 포착한다고 보여진다.

이러한 <자긔록>의 일상 중심의 서술은 여성이 자신의 판단이나 견해를 언어화하는 것이 금기시되었던 조선사회에서 여성 작가가 시집의 가풍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간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방편이 되어주었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인 생활장면을 전하는 듯한 일상 위주의 서술 속에 작자는 자신의 관점이나 판단을 은연중에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긔록>에 드려진 다양한 삶의 모습과 일상 중심의 서술은 결국 이 작자에게 중요한 삶의 축이 ‘친정’ 가문임을 확인하는 것으로 귀결된다고 보인다. 이는 조선시대 여성의 삶이 혼인 후에는 철저히 시집에 동화되는 것이었다는 당연한인식에 대한 여성 자신의 목소리에 의한 반론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즉 <자긔록>은 자신을 시집 가문의 일원으로 완전히 동화시키는 것에 대한 일정한 유보의 태도를 보여주는 텍스트이며, 혼인 후에도 자기 정체성의 주요한 근원이 친정가문임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키는 텍스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