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성과물검색
유형별/분류별 연구성과물 검색
HOME ICON HOME > 연구과제 검색 > 연구과제 상세정보

연구과제 상세정보

1950년대 자유주의와 ‘환멸’의 시학
Liberalism and Poetics of Disillusion in the 1950s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시간강사지원사업
연구과제번호 2013S1A5B5A07049615
선정년도 2013 년
연구기간 1 년 (2013년 09월 01일 ~ 2014년 08월 31일)
연구책임자 정영진
연구수행기관 건국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1950년대 정치현실과 문화적 조건 속에서 문인들은 ‘자유’와 ‘개인(개성)’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1950년대 이승만의 통치 이념이자 국시였던 ‘일민주의’와 ‘반공주의’에 의해 자유로운 개인의 권리 관념은 불온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이 시기 많은 시에서 '환멸'의 정서가 나타나는 것은 이러한 정치적, 사회문화적 상황에 연루된 것이었다. 이번 연구에서는 한국시의 개혁을 논의해나던 시인들의 시 작품과 시론을 통해 ‘자유주의’가 어떻게 생성되고, 변용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피고자 한다. 다시 말하면, 자유주의가 지식인 담론장과 문학장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있었으며 그 차이는 무엇인지 살피고, 구체적으로 당대 ‘환멸’의 시학에 어떻게 자유주의가 연루되었는지 섬세하게 고찰하고자 한다.
    이승만 정권에서 헌법 이념에 명시된 자유주의적 가치와 원리는 무시되었다. 국가주의와 반공주의는 필연적으로 국민 개인의 자유에 대한 관념을 봉쇄했다. 하지만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정치의 요구에 복종해야 하는 과잉 정치 상황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개인과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수호하며 이를 문학 활동과 연계해야 할 것을 주장하는 문인들이 존재했다. 특히 시인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를 통해 세계를 새롭게 직조해내길 소망하는 이들이므로, 이러한 문제의식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된다.
    문학사적 평가에서 1950년대 개인의 내면 탐구와 시민으로서의 자유 관념은 모호하고 관념적인 것으로 평가절하 되어 왔다. 하지만 1950년대 시 문학장에서는 ‘개인/개성’, ‘자유’에 대한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4.19혁명은 이러한 축적된 의식 속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1960년대 순수/참여 논쟁 역시 1950년대 자유주의적 관념의 연속성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의 목적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① 1950년대 지식인 담론에서의 자유주의와 시 문학장에서의 자유주의 인식의 차이를 확인한다.
    ② 1950년대 ‘자유’와 ‘개인’의 관념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시문학장의 미적 자율성 에 대한 인식을 구체적으로 확인한다.
    ③ 시적 주체의 환멸의식을 역사현실적 맥락에 위치시킴으로써, 1950년대 시의 역사현실적 응전력에 대해 재평가의 지점을 마련한다.
  • 기대효과
  • 본 연구의 학문적 측면에서의 기대효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본 연구는 1950년대 시 연구의 보완 및 한계 극복이라는 측면에서 학문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이는 두 가지로 나누어 정리할 수 있다.

    ①시 문학장에서 1950년대 자유주의 담론이 어떻게 전유되는지 고찰하는 것은 1950년대 시문학장을 전통론과 모더니즘론의 대립이라는 분할 속에서 파악해온 기존의 한국 시사 기술 관점을 수정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②또한 이 시기 문학연구에서 반공주의, 국가주의의 압도적 영향력을 그대로 문학장에 적용하여 1950년대 주체적이고 실천적인 문학장의 현대성 모색의 과정을 경시해온 한계점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본 연구는 한국 현대시사에서 ‘환멸’의 시학 계보를 구축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한국시에서의 ‘환멸’의 정서는 비단 1950년대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1950년대 ‘환멸’의식에 본 연수는 식민지 시기의 ‘환멸’의식과 해방기 단정 수립 이후의 전향 국면과 분단이 가시화되는 국면에서의 ‘환멸’, 그리고 1960년대 4.19와 5.16으로 이어지는 혁명과 좌절의 역사를 거치면서 나오는 ‘환멸’의식의 계보화하는 데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역사와 조응하는 한국시의 특수한 감성구조를 추출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셋째, 본 연구는 자유주의가 한국의 보수적 혹은 진보적 문학론을 형성에 미친 영향을 가늠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한국에서의 자유주의는 시대에 따라, 그리고 담론 주체에 따라 유동적으로 활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크게 이분하여 말하자면, 지배와 저항의 논리를 마련하는 데 모두 개입했다. 문학장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본 연수는 1950년대 자유주의가 지식장과 문학장에서 어떻게 전유되는지 살피는 작업을 한다. 이를 통해 자유주의가 한국의 보수적 혹은 진보적 문학론에 미친 영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또한 한국문학사에서 보수적 문학론과 진보적 문학론의 확립과 그 실천의 동력을 탐구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본 연구의 교육과의 연계 활용 측면에서 예상되는 기대효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본 연구는 1950년대 ‘환멸’의식이 역사현실의 조건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저항의 수행성을 실천한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문학교육에서 개인(들)의 감성구조와 역사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 ‘환멸’의 감각은 역사를 이해하는 한 방식이었고, 이는 특정한 개인의 감각이 아니라 공통감각이었다. 무력한 몇몇 개인의 감각 혹은 감성으로 환원할 수 없는 공통감각의 문제는 거대한 시대의식 혹은 시대정신으로 이어진다는 사실과, 따라서 감성구조의 문제에서 우리는 역으로 특정한 시대의 역사적 국면을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시기 환멸의 시학을 통해 교육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문학의 역할과 기능, 나아가 인문학의 힘을 강의실에서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을 근거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정치학과 사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자유주의와 문인과 지식인 담론장에서 구성된 자유주의와 어떠한 차이를 지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한국의 자유주의를 연구하고자 하는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논의 지점들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셋째, 본 연구는 문학에서 이데올로기와 미학의 관계를 잘 보여줄 수 있는 한국 문학사의 한 장면으로 교육 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삶의 형식 자체, 삶의 자세를 확정할 수 있는 힘으로서 문학에서는 주제나 역사의식뿐만 아니라 스타일과 감수성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1950년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미학화를 검토할 수 있는 본 연구는 문학의 자율성의 가능성과 그 한도를 문학교육장에서 설명할 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연구요약
  • 본 연구자는 다음과 같은 작업을 수행하고자 한다.
    ① 1950년대 지식인 문화주체가 ‘자유주의’ 이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전유해나갔는지 탐색한다.
    ② 시문학장에서 시인들과 시비평가들이 ‘자유주의’를 어떠한 방식으로 내화하여 시와 시론을 산출했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③ 특히 이 시기 ‘환멸’의 심리가 짙게 드리워진 것에 주목하여, 시적 주체의 ‘환멸’의식의 양상을 ‘자유주의’와의 연관성 속에서 맥락화하고자 한다. 본 연구자는 다음과 같은 작업을 수행하고자 한다.
    ① 1950년대 지식인 문화주체가 ‘자유주의’ 이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전유해나갔는지 탐색한다.
    ② 시문학장에서 시인들과 시비평가들이 ‘자유주의’를 어떠한 방식으로 내화하여 시와 시론을 산출했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③ 특히 이 시기 ‘환멸’의 심리가 짙게 드리워진 것에 주목하여, 시적 주체의 ‘환멸’의식의 양상을 ‘자유주의’와의 연관성 속에서 맥락화한다.

    이를 위해 연구자는 1950년대 자유주의의 의미망을 구체적으로 살피기 위해, 당대 유력한 정론지의 성격을 띠는 사상,사상계, 새벽, 사조,지성 등과 3대 주요 문예지라 할 문학예술, 현대문학, 자유문학 등을 검토하고자 한다. 이 시기 정론지에서는 유사한 특집들이 마련되었다. 자유민주주의, 전통론, 휴머니즘, 실존주의, 후진성 논의, 지식인, 대학생 관련 특집들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특집 이외에도 이러한 주제로 각종 좌담회가 활성화되어 비중 있게 다루어졌다. 본 연구에서는 특집과 좌담회를 통해 1950년대 지식인 담론장에서 자유주의가 어떻게 인식되고, 또 담론화되고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1950년대 주요 문예지들은 각각이 지향하는 바를 분명히 내걸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 문예지에서 문학에서의 개성과 자유 관념을 어떻게 주조하는지 대비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세계주의적 인식에 기반하여 외국문학에 대한 관심을 가장 적극적으로 보여주었던 문학예술과 한국의 전통적 보수주의 문학관을 보여주는 현대문학, 자유문학에서의 문학성 인식의 문제와 자유주의의 전유 양상을 살필 것이다. 이를 통해 앞서 확인한 지식장에서의 자유주의 담론과 문학장에서의 자유주의 담론을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1950년대 환멸의 시학을 고찰하기 위해서 특별히 주목되는 시인들로는 김수영과 박인환, 송욱 등이 있다. 또한 고석규와 이어령, 유종호 등 1950년대 비평가들이 산출한 시 담론들도 논의의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이들은 대체로 1950년대 전위적 시인이자 비평가라 할 수 있다. 이들은 또한 역사현실에 대한 시(문학)의 응답을 중시함과 아울러 시의 미적 자율성의 문제에도 아주 예민하게 반응했다. 이들이 사유한 미적 자율성의 문제는 이들의 자유주의적 관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자유주의에 대한 인식이 시 작품과 시 비평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 살필 것이다.

    이 연구에서 다룰 내용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첫째, 1950년대 자유주의는 누구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고 맥락화되었는가.
    본 연구에서는 1950년대 시대정신이라 할 부정정신이 당대 자유주의 이념과 어떤 지점에서 만나고, 또 어떤 지점에서 갈라졌는지를 살펴봄으로써, 1950년대 지식인 일반과 문인 지식인의 자유 관념의 편차를 확인할 것이다.

    둘째, 1950년대 시에서의 ‘환멸’의식은 자유주의 인식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1950년대 시는 당대를 ‘환멸’의 세계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했다. 1950년대 시적 주체는 역사현실을 문제 삼으며 자기 존재 기반과 존재 방식을 성찰해 나갔다. 당대 시에서 보이는 ‘환멸’의식은 단순한 낭만적 퇴행, 즉 관념 세계로의 도피로만 볼 수는 없다. 연구자는 1950년대 시를 역사적 재현물의 차원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이 연수에서는 ‘환멸’의식을 당대의 특징적 감성구조로 보고, 이를 역사적이고, 사회적 의미와 결부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또한 이번 연수에서는 한국의 국가 권력의 과잉에서 촉발된 개인의 자유에 대한 관념, 특히 민주주의 담론의 확산과 변용의 과정에서 파생된 자유의 관념이 시적 주체의 환멸의식과 조우하는 양상을 살피고자 한다.
    셋째, 1950년대 시의 ‘환멸’의 감성구조의 몇 가지 갈래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당대 시적 주체들이 보여주었던 ‘저항’의 수행성을 도출하고자 한다. 이번 연구에서는 ‘환멸’=‘저항’의 단순한 도식이 아닌, 1950년대 현실에서 가능한 것이 무엇이었으며 어떤 형태로 자신을 드러내었는가를 재구성해내었는가를 살피고자 한다. 다시 말하면 연구자는 1950년대 시를 전쟁체험과 전후사회의 비극성이 투사된 것으로 설명했던 관점을 수정하여, 당대 시가 보여주었던 절망과 환멸의식에 내포된 현실 극복의 의지와 실천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규명하고자 한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에서는 시민의 자유 권리에 대한 인식이 정립되어 갔던 1950년대 지식장의 자유주의 담론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시에서 자유주의가 어떻게 전유되고 있었는지 고찰하고자 한다. 1950년대 정치적 자유주의는 이론적 차원에서 유통되었다기보다는 제도나 정치적 상황들과 연동하며 구성되었다. 1950년대 중반에는 도덕적 자유 관념과 사회주의, 그리고 정치적 자유주의가 서로 경합하는 가운데 자유주의 담론이 형성되었다. 이 가운데 휴머니즘 담론과 연동하는 도덕적 자유 관념이 가장 우세했다고 할 수 있다. 1950년대 후반 이승만 정권의 독재화로 인해 민주주의 위기의식이 확산된다. 이제 도덕적 자유 관념이 퇴조하게 되고, 정치적 자유주의 담론이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는 정치적인 영역과 도덕적인 영역이 분리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정치적 자유주의 담론이 힘을 얻게 되면서, 자유의 ‘권리’ 관념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로써 ‘민권’의 문제가 전면화 될 수 있었다. 즉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개인의 자유 권리는 시민의 자유 권리로 이해되게 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유주의가 말하는 자유의 권리를 개인이 아닌 시민 혹은 국민의 집합적인 자유의 영역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1950년대 후반 정치적 자유주의의 확립은 공산주의=독재주의와 대결하는 민주주의가 아닌 ‘인민주권’으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각성을 추동하였다. 이는 민주주의를 추상적, 보편적 가치체계가 아닌 현실 정치의 원리로 바라보게 됨을 뜻한다. 동시에 유의해야 할 점은 1950년대 말 지식인들이 도덕적 자유 관념으로부터 벗어나 정치적인 자유주의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는 가운데 합리주의적 사고를 요청한 점이다. 정치적 영역에서의 합리주의가 접합되는 국면은 한국의 자유주의가 보수화되는 기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50년대 모더니스트 시인들은 시민적/정치적 자유를 강조하고 있었다. 특히 이들은 환멸의식을 내면화하고 있었는데, 이 환멸의식을 바탕으로 정치적 자유에의 지향을 시에서 드러내었다. 본 연구에서 박인환과 송욱에 주목하는 까닭은 이들의 환멸의식이 1950년대 또 다른 시대정신인 부정정신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송욱과 박인환은 죽음을 현상적이고 감각적인 것으로만 활용하는 것을 경계하고, 죽음을 역사현실을 인식하는 매개로 활용했다. 이들은 환멸의식을 바탕으로 ‘죽음의 공동체’라는 시민 표상을 시에 등장시켜, 억압된 한국 사회의 구조에서 자유주의에의 지향을 보여주었다.
    박인환은 외부로부터 간섭받지 않을 자유, 즉 자율적인 사고와 행위를 강조했다. 박인환 시에서의 ‘죽음의 공동체’는 ‘익명적 우리’로 나타난다. 박인환은 현대의 ‘익명적 우리’의 존엄함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는 국가재건과 탈후진을 수행할 국민만들기 프로젝트와 선을 긋는 것이자, 사회주의적 지향을 일정부분 함축하는 것이기도 했다.
    송욱의 시에서는 타락한 시민 표상으로서 ‘죽음의 공동체’가 등장한다. 송욱은 시민들의 타락상을 대중의 한계로 보지 않고, 사회 체제의 한계로 재정위 한다. 송욱의 1950년대 시에서는 정치적 자유주의를 끊임없이 강조되고 있었다. 그는 자유가 억압된 현실에서의 시민들을 ‘죽음의 공동체’로 설정하고, 퇴행과 타락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러나 이것은 당대 자유주의를 개인주의적이고 부도덕한 것으로 낙인찍었던 도덕적 자유 관념론자들의 비판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이들이 그럴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부자유의 상태, 즉 자본주의 체제와 억압적 통치체제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다.
    박인환과 송욱이 창출한 ‘우리’는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의 결합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하고, 정치적 자유주의 담론에 내재한 도덕주의 및 합리주의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드러낸다. 이는 당대 정치적 자유주의의 한도를 표시하고, 경험주의적 관점에서 한국 현실에서의 정치적 자유주의의 가능성을 모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영문
  • This research seeks to examine in detail the discourses on liberalism in the fields of knowledge in the 1950s, a period when the awareness over the rights of freedom of citizens was being established, and to consider how liberalism has been appropriated in poems.
    Political liberalism in the 1950s has much to do with institutional and political aspects rather than theoretical ones. In the mid 1950s, while moral freedom, socialism, and political liberalism were competed against each other, liberalism discourse was formed. Among them, moral freedom theory, which is connected with humanism was preferred most. Lee Seung Man's dictatorship in the late 1950s created democratic aspirations of all people, leading to decline in moral liberalism. But political liberalism gained more strength. That means political and moral areas are separated. As political liberalism discourse gained strength, a concept of 'rights' to freedom was developed. That was the foundation for awareness of 'civil rights'. In another words, the freedom of the individual was regarded as civil rights of a democratic world. In the late 1950s, as political liberalism was established, democracy was considered 'popular sovereignty' rather than a concept opposed to socialism or dictatorship, meaning that democracy was understood from the perspective of realistic politics, rather than as universal or abstract value.
    The modernist poets in the 1950s emphasized civil and political freedom. In particular, these poets internalized disillusion, and thus, expressed the pursuit towards political freedom based on this sense of disillusion. The reason why this research focuses on Park In-hwan and Song Wook is that their sense of disillusion is combined with the negative spirit, which is another spirit of the period in the 1950s. Song Wook and Park In-hwan were vigilant in utilizing death as a phenomenal and sensible matter, and thus, utilized such as a medium for perceiving historical reality. They presented the symbol of citizens called as ‘community of death’ based on such sense of disillusion, showing the pursuit towards liberalism within the suppressed structure of the Korean society.
    Park In-hwan emphasized the freedom not to be interfered from the outside world, hence, autonomous thinking and acts. The ‘community of death’ in the poems of Park In-hwan appears as an ‘anonymous us.’ Park In-hwan sought to show the dignity of ‘anonymous us’ in the modern society. This was to draw a line from the project ‘Making the Nation’ related to national reconstruction and the spirit of escaping from backwardness, while implying a certain part of the pursuit towards socialism.
    ‘Community of death’ appears as a symbol of corrupt citizens in the poems of Song Wook. Song Wook does not regard the corrupted feature of citizens as the limits of the public, but re-positions it as a limit of the social system. Song Wook’s poems of the 1950s continuously emphasize political freedom. He established the feature of citizens within the reality where freedom was suppressed as the ‘community of death,’ and explicitly exposed the feature of corruption and degradation. However, this was not to wholly accept the criticism of the moral freedom idealists that branded the liberalism of the era as individualistic and unethical, but, on the other hand, was to criticize the non-liberalized condition that provided no other alternative. ,In other words, he criticized the capitalist system and suppressive governing system.
    ‘Us’ created by Park In-hwan and Song Wook shows the possibility of the combination of socialism and liberalism, and also reveals the critical perception over the moralism and rationalism inherent in the political liberalism discourses. This phenomenon can be seen as marking the limits of the political liberalism at the time and seeking the possibility of political liberalism within the reality of the Korean society from an empirical perspective.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하지만, 단정 수립 이후 지속적으로 국민 통합을 진행해야 했던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공동체성, 도덕, 인격, 윤리, 반공 등의 키워드와 결부되어 논의되고 있었다. 이는 정치적 자유주의 담론이 활성화 될 수 없었던 요인이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지금까지의 선행연구들은 주로 반공국가주의에 의해 억압, 훼손된 자유주의에 주목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자유주의가 어떻게 자기 논리를 마련해가며, 4.19혁명을 이끌어낼 에너지를 축적해갔는지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시민의 자유 권리에 대한 인식이 정립되어 갔던 1950년대 지식장의 자유주의 담론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시에서 자유주의가 어떻게 전유되고 있었는지 고찰하고자 한다.
    1950년대 정치적 자유주의는 이론적 차원에서 유통되었다기보다는 제도나 정치적 상황들과 연동하며 구성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도덕적 자유 관념과 사회주의, 그리고 정치적 자유주의가 서로 경합하는 가운데 자유주의 담론이 형성되었다. 1950년대 후반 이승만 정권의 독재화로 인해 민주주의 위기의식이 확산된다. 이제 도덕적 자유 관념이 퇴조하게 되고, 정치적 자유주의 담론이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이는 정치적인 영역과 도덕적인 영역이 분리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정치적 자유주의 담론이 힘을 얻게 되면서, 자유의 ‘권리’ 관념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로써 ‘민권’의 문제가 전면화 될 수 있었다. 자유주의가 말하는 자유의 권리를 개인이 아닌 시민 혹은 국민의 집합적인 자유의 영역에서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1950년대 후반 정치적 자유주의의 확립은 공산주의=독재주의와 대결하는 민주주의가 아닌 ‘인민주권’으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각성을 추동하였다. 이는 민주주의를 추상적, 보편적 가치체계가 아닌 현실 정치의 원리로 바라보게 됨을 뜻한다. 동시에 유의해야 할 점은 1950년대 말 지식인들이 도덕적 자유 관념으로부터 벗어나 정치적인 자유주의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는 가운데 합리주의적 사고를 요청한 점이다. 정치적 영역에서의 합리주의가 접합되는 국면은 한국의 자유주의가 보수화되는 기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50년대 모더니스트 시인들은 시민적/정치적 자유를 강조하고 있었다. 특히 이들은 환멸의식을 내면화하고 있었는데, 이 환멸의식을 바탕으로 정치적 자유에의 지향을 시에서 드러내었다. 본 연구에서 박인환과 송욱에 주목하는 까닭은 이들의 환멸의식이 1950년대 또 다른 시대정신인 부정정신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송욱과 박인환은 죽음을 현상적이고 감각적인 것으로만 활용하는 것을 경계하고, 죽음을 역사현실을 인식하는 매개로 활용했다. 이들은 환멸의식을 바탕으로 ‘죽음의 공동체’라는 시민 표상을 시에 등장시켜, 억압된 한국 사회의 구조에서 자유주의에의 지향을 보여주었다.
    박인환이 ‘익명적 우리’를 시에 등장시키는 것은 국가 재건 주체로서의 국민 이데올로기에 저항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집단적 정체성을 창출하는 것이었다. 1950년대 지배이데올로기의 영향 하에 부정성을 강조하며 강력한 주체성을 강조했던 것을 차용하여, 박인환은 부정성의 극단을 통해 시대가 부과한 주체성(국민주체)의 무의미함 내지 불가능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송욱의 시에는 타락한 극소시민들이 등장한다. 송욱은 시민들의 타락상을 대중의 한계로 보지 않고, 자본주의 체제와 억압적 통치체제의 문제로 파악하였다. 송욱이 풍자하고자 했던 것은 ‘행동이 막혀버린 시대’였다. 송욱은 정치적 자유주의의 확립이 인민주권으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각성으로 이어짐을 간파했다.
    박인환과 송욱이 창출한 ‘죽음의 공동체’는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의 결합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하고, 정치적 자유주의 담론에 내재한 도덕주의 및 합리주의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드러낸다. 이는 당대 정치적 자유주의의 한도를 표시하고, 경험주의적 관점에서 한국 현실에서의 정치적 자유주의의 가능성을 모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본 연구는 한국현대시사에서 1950년대 시의 실천적, 저항적 성격을 재규명 할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1950년대는 한국전쟁 이후 폐허의 상태로 각인되어왔지만, 사실 4.19혁명을 가능하게 할 에너지를 축적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즉 해방 이후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현실에 정착시키는 동안 여러 가지 모순적 상황을 대면하면서 이를 돌파해낼 교양을 쌓아가는 시기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승만 정권이 독재화 되어감에 따라 시민의 권리에 대한 자각이 뚜렷해졌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문학이 날카롭게 포착하였음은 물론이고, 시대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문인들은 노력하였다. 당대 한국시의 현대화를 위한 분투는 이러한 노력과 성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자유주의를 시로 전유한 시인들의 작업을 살펴보고자 했던 본 연구는, 전통론과 모더니즘론의 대립으로 1950년대 시 문학장을 구획해 온 시문학사적 평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1950년대 시의 성격을 당대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검토하여 저항적이고 실천적인 시쓰기의 역사적 맥락을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2) 본 연구는 1950년대 문학에서의 자유주의에 대해 새롭게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간 이 시기 자유주의는 반공주의와의 관련 속에서 그 한계성에 초점이 맞춰져 논의되어 왔다. 반공주의에 왜곡되고, 포획된 자유주의에 대한 선행연구가 보여준 성과는 1950년대 반공국가주의의 성격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실제로 진전된 자유주의 인식과 그것의 성격과 의의를 밝히는 작업은 상대적으로 미약했다. 주지하듯 자유주의는 현실에서 보수주의와 진보주의 양자 모두와 쉽게 결합되어 왔다. 본 연구는 자유주의의 시적 전유를 규명하여 자유주의 담론의 개방성을 확인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1950년대 문학에서의 자유주의 담론을 보다 세밀하게 고찰할 필요성을 제기할 것으로 기대된다.

    3) 본 연구는 ‘죽음의식’이나 ‘자기비하’의 정서를 포괄하는, ‘환멸의식’의 시적 계보화, 나아가 한국시의 감성구조를 계보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한국현대시에서 환멸의 감각은 아주 오래된 것이었다. 국권이 위태로워지고 상실되는 국면에서 현대시가 출발했으며, 식민지 현실에서 성장했기에 그렇다. 해방 이후, 분단과 전쟁, 4.19혁명과, 5.16 군사쿠테타와 같은 일련의 역사적 흐름은 이 환멸의 정서는 시대에 따라 그 결을 달리하며 유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환멸의식이 단순히 패배주의의 발로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시적 응전의 한 양태였다는 점이다. 환멸의식의 계보화는 한국시의 감성구조를 추출하고 계보화 하는 데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4) 본 연구는 시적 상상력과 사회적 상상력의 관계를 연구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1950년대 시가 자유주의에의 지향을 보일 때, 그것이 당대 지식장의 자유주의 담론의 양상과 완벽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박인환과 송욱 두 시인이 보여준 자유주의에의 지향에서 그 핵심도 서로 달랐다. 이를 통해 시적 상상력과 사회적 상상력의 상호영향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시적 상상력으로 사회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고, 사회적 상상력으로 시적 상상력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는 방법을 연구할 때, 본 연구가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시민 대상 인문학 강의에서 활용한다면 유용할 것으로 판단된다.
  • 색인어
  • 1950년대, 󰡔사상계󰡕, (정치적)자유주의, 사회주의, 도덕적 자유 관념, 환멸의 시학, 죽음의 공동체, 시민 표상, 박인환, 송욱
  • 이 연구과제의 신청시 심사신청분야(최대 3순위까지 신청 가능)
  • 1순위 : 인문학 > 문학 > 운문
  • 연구성과물 목록
데이터를 로딩중 입니다.
데이터 이용 만족도
자료이용후 의견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