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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 상세정보

신라 경덕왕대 국내외정세에서 본 일본의 '신라정토계획'
'The attack plan against silla' confimed from foreign relaion of king Gyeongdeok period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시간강사지원사업
연구과제번호 2013S1A5B5A07045536
선정년도 2013 년
연구기간 1 년 (2013년 09월 01일 ~ 2014년 08월 31일)
연구책임자 조이옥
연구수행기관 이화여자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는 8세기 동북아 국제정세 속에서 일본의 '신라정토계획'에 대해 신라의 관점에서 분석하여 신라와 일본의 관계의 한 단면을 밝혀 보려는대 그 목적이 있다. 주지하듯이 8세기 이래 신라와 일본은 외교형식을 둘러싼 외교적 갈등을 야기하였고, 심지어 양국이 군사적 충돌 사태로 발전할 정도로 그 관계가 악화일로를 걸고 있었음은 일본측 문헌에 나오는 '신라정토계획'기사의 실태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일찍이 신라정토계획에 대해 일본학계는 일본의 편향된 시각에서 신라에 대한 강경책의 일환으로 이해하면서 대륙침략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명분으로 주목하였고, 이 사건에 발해가 개입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국내 학계에서는 발해의 관점을 강조하는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기왕의 일본학계의 연구들은 일본의 관점에서 일본사의 내적 의미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고, 국내의 연구는 신라정토계획에 대한 발해의 개입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뿐, 신라사의 관점에서 다룬 연구는 상대적으로 미흡하다. 신라정토계획에 대한 기왕의 다양한 시각 차이를 좁히고 객관화시키기 위해서는 8세기 동북아 정세와 함께 신라사의 관점에서 보다 천착할 필요가 요구된다고 생각된다.
    본 연구는 이와 같은 선행연구의 문제점을 극복하기위한 방안으로 일본측 사서인 속일본기에 대한 사료 비판과 함께 국제관계사적 시각 그리고 삼국사기에 단편적으로 나오는 경덕왕대(742-765) 군제 개편과 과련된 사료에 대한 분석 등 신라사의 내적 성장에 초점을 마추어 일본의 신라정토계획을 재검토해보고자 한다. 즉 8세기 중엽 동북아 정세의 변화와 더불어 일본의 침략 야욕에 대한 신라의 내적 성장과 군비 강화와 같은 대응책에 초점을 마추어 신라정토계획이 추진되는 시기의 양국관계를 객관적인 시각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 기대효과
  • 본 연구가 성공적으로 수행된다면 고대 한일관계사를 객관적 균형적인 시각에서 정립하는데 기여하리라 생각된다. 고대 한일관계사에 대한 우리 학계의 많은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사료의 한계와 연구방법론 그리고 시각의 문제로 인하여 천황제 율령국가라는 일본 중심의 편향된 역사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본 연구주제인 일본의신라정토계획에 대한 우리 학계의 연구의 경우 일본학계의 인식 틀 속에서 일보과 발해의 국제관계와 관련한 발해 개입설에 초점을 맞추어 왔을 뿐, 당사국인 신라의 관점에서 주도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 본 연구는 일본 위주의 한일관계사 연구를 객관적 균형적 시각에서 연구하는데 하나의 방법론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적으로 본 연구는 동북아 역사재단 등에서 실시하는 동아시아 역사 교과서에 연구 성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고대 동아시아를 복원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 고등학교 역사교육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강좌를 개설하여 침략 위주의 왜곡된 일본의 역사 논리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할뿐 아니라, 나아가 올바른 고대 동아시아 역사 교육의 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연구요약
  • 본 연구는 8세기 중엽 동북아 국제정세 속에서 일본의 신라정토계획을 신라사의 관점에서 분석하여 일본과 신라관계의 한 단면을 밝혀 보고자 한다. 이러한 생각에서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안사의 난(755-763)은 8년간 에 걸쳐 일어난 내란으로 당조의 지배체제뿐만 아니라 반란의 본거지와 인접한 발해는 물론 신라, 일본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안사의 난을 전후하여 당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관계는 당-발해-신라로 재편되었음은 764년 당의 사신 한조채가 당에서 발해를 경유해 신라로 왔다는 속일본기 기사에 대한 분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편 758년 발해로부터 귀국한 소야조신전수는 당의 안사의 난에 대한 소식을 일본조정에 보고하였다. 대륙의 정세변화와 관련해 일본 조정은 위기의식이 고조되면서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한편 발해와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교류하였다. 이러한 발해와 일본 간에 조성된 우호적 분위기 속에서 일본은 759년 순인조의 권력자 등원중마려의 주도하에 신라침략계획을 추진했다.
    8세기 중엽 신라 경덕왕대는 통일 후 획기적인 제도 개혁을 시도한 시기임은 잘 알려져 있다. 즉 경덕왕은 왕16년(757) 12월에 전국의 군현에 대한 지병 개정을 단행하였으며 영속관계에 대한 재좆정도 실시하였다. 그리고 왕 18년에는 관제에 대한 대대덕인 개혁과 군제 개편 등을 추진하였다. 이와 같이 각종의 개혁정책을 시행하던 759년 일본에서 방환된 신라인들을 통해 일본이 수립한 신라정토계획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을 것으로 보이는 신라 경덕왕은 여러 가지 분주한 대응책을 강구하였을 것이다. 외교적인 노력과 함께 신라는 이미 군사적 대베태세를 갖추고 있었음은 속일본기에 나오는 천평보자 8년조 기사에 대한 분석과 함께 삼국사기에 단편적으로 전하는 경덕왕대 군제개편의 실태를 통해 검토하고자 한다.
    이와 같이 일본의 신라정토계획에 대한 신라 경덕왕대 일련의 군제 개편과 당, 발해와의 교섭 등 대응책은 일본에게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요컨대 일본이 계획했던 신라 침략은 일본 국내의 정치상황의 악화와 맞물리면서 현실적으로 무산되었을 것으로 보고자 한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는 일본의 이른바 신라정토계획에 대한 기왕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8세기 중엽 신라 경덕왕대의 국내외 정세 속에서 일본의 이른바 신라정토계획의 성격을 새롭게 구명하고자 한다. 주지하듯이 8세기 이래 신라와 일본은 외교형식을 둘러산 외교적 갈등을 야기하였고, 심지어 양국이 군사적 충돌 사태로 발전할 정도로 그 관계가 악화일로에 있었는데, 기왕의 경우 일본측 문헌인 속일본기에 의존하는 경향이었으나 본 연구에서는 우리 측 사료인 삼국사기에 나오는 관련기사도 유의하면서 접근하고자 한다.
    이런 생각에서 본 연구는 먼저 8세기 중엽 당에서 일어난 안사의 난에 대한 동향부터 파악하고자 한다. 안사의 난은 8년간에 걸쳐 일어난 내란으로 당조의 지배체제뿐 아니라 반란의 본거지인 발해는 물론 신라, 일본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안사의 난을 전후하여 당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관계는 당-발해-신라로 재편되었는데, 이것은 764년 당의 사신 한조채가 당에서 발해를 경유해 신라로 왔다는 속일본기의 기사를 엿볼 수 있다. 한편 759년 발해로부터 귀국한 소야조신전수는 당의 안사의 난에 대한 소식을 일본 조정에 보고하였다. 대륙의 정세변화와 관련해 일본조정은 위기의식이 고조되면서 대비책을 마련하는 한편 발해와 어느때보다 적극적으로 교류하였다. 이러한 발해와 일본간에 조성된 분위기 속에서 일본은 759년 순인조의 권력자 등원중마려의 주도하에 신라정토계획을 추진하였다고 보았다.
    8세기 중엽 신라는 경덕왕대를 맞아 전례없는 번영을 구가하는 한편 획기적인 군비개혁을 시도하였다. 즉 경덕왕은 안사의 난이 진행중인 757년과 759년에 중앙과 지방에 대한 한화정책을 추진하였을 뿐 아니라 전국에 걸친 군비개혁을 단행하여 안사의 난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하였다. 759년 신라에서 일본으로 귀화한 신라인을 통해 신라의 사정을 듣은 일본 조정은 안사의 난에 대한 위기의식 속에서 신라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동원을 추진하였던 것이다. 속일본기에는 일본이 신라정토를 계획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본 연구에서는 이른바 안사의 난에 따른 위기의식 속에서 일본이 우려한 만일의 사태란 바로 신라의 군사적 위협 공격이었음을 확인하고자 한다.

  • 영문
  • Japan's attack plan against Silla refers to the series of incidents where Japan attempted to attack Silla with the changes that came with Ahn-sa's rebellion. Since 1930s, the studies on this issue have been made by the Japanese researchers from the perspective where Japan justified the legitimacy of the attack. The Korean researchers, however, have the tendency to accept them indiscriminately.
    Based on the this problematic tendency this study questions the feasibility of Japan's attack plan against Silla which is only contained in Japan's historical records, and reinterprets it based on the circumstances during the reign of King Kyungduk. Considering the fact that before and after the Ahn-sa's rebellion, Silla was focusing on the improvement of the domestic system while at the same time, seeking a relationship with Balhe, the attack plan against Silla, formulated by Hujiwarono Nakamano, was in fact, a military mobilization to prepare for Silla's attack rather than an aggressive military attack. Furthermore, since the mid 8th century Japan's relationship with Silla was in high tension and Japan's military power at that time was not strong enough to solely attack Silla.
    On the other hand, while Japan was pushing forward the attack plan, Japan kept close relationship with Balhe, and former researchers presumed that Japan planned on the attack against Silla with the help of Balhe. But this study attests that threatened by the relationship of Silla and Balhe, Japan actively sought relationship with Balhe to avoid isolation from the two countries. In conclusion, Japan's attack plan against Silla is only a product of emperor centered historical view of Japan and in reality, was just a military activity to fight for Silla's threat.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일본의 ‘신라정토계획’이란 안사의 난이란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일본이 신라를 군사적으로 침공하고자 했던 일련의 사건을 말하는데, 이에 대한 연구는 1930년대부터 일본 학계가 대륙 침략을 위한 정당성 확보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그런데 우리 학계의 경우 일본학계의 연구 성과를 여과없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이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본 논문은 일본측 사료에만 전하고 있는 신라정토계획의 실행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신라 경덕왕대의 정세를 통해서 일본의 신라정토계획을 재해석해 보았다. 즉 안사의 난을 전후하여 신라가 체제정비에 주력하는 동시에 발해와의 관계를 모색하고 있었음을 고려 할 때, 등원중마려가 입안한 신라정토계획이란 사실상 공격적 전쟁의 차원이라기 보다는 신라의 침략을 대비하기 위한 군사동원이었음을 구명해 보았다. 더구나 8세기 중엽 이래 일본은 신라와의 군사적 긴장 속에서 축성 등의 군사적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고, 당시 일본의 군사력으로는 단독으로 신라를 공격할 상황도 못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일본이 신라정토계획을 추진하던 기간 동안 발해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는데, 이에 대해 종래의 연구자들은 일본이 발해와의 협력을 통해 신라정토계획을 추진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신라와 발해의 교섭에 위기감을 느낀 일본이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한 외교 전략으로 발해와의 외교를 활발히 추진한 것으로 보았다. 결과적으로 일본의 신라정토계획이란 천황중심사관의 관념의 산물에 불과하며, 현실적으로는 신라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수세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군사활동이었다고 하겠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가 성공적으로 수행된다면 고대 한일관계사를 객관적· 균형적 시각으로 정립하는데 기여하리라 생각된다. 고대 한일관계사에 대한 우리 학계의 많은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사료와 연구방법론 그리고 시각의 문제로 인하여 천황제 일본 중심의 편향된 역사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본 연구 주제인 일본의 신라정토계획에 대한 우리 학계의 연구의 경우 일본학계의 인식 틀 속에서 일본과 발해의 국제관계와 관련한 발해 개입설에 초점을 맞추어 왔을 뿐, 당사국인 신라의 관점에서 주도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당사국인 신라는 피동적인 존재로 파악하는 역사인식을 낳게 하는 면이 있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본 연구는 일본 위주의 한일관계사 연구를 객관적 ·균형적 시각에서 연구하는데 하나의 방법론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적으로 본 연구는 동북아 역사재단 등에서 실시하는 동아시아 역사 교과서에 연구 성과를 활용하여 고대 동아시아사를 복원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 역사 교육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좌를 개설하여 침략 위주의 왜곡된 일본의 역사 논리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뿐 아니라, 나아가 올바른 고대 동아시아 역사 교육의 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색인어
  • 경덕왕, 안사의 난, 신라정토계획, 발해, 등원중마려, 군사활동, 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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