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성과물검색
유형별/분류별 연구성과물 검색
HOME ICON HOME > 연구과제 검색 > 연구과제 상세정보

연구과제 상세정보

식민지 지식으로서의 카스트-"인도 센서스"의 카스트 기술과 그 함의
Caste as Colonial Knowledge-Presentation of Caste in "Census of India" and its Implications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시간강사지원사업
연구과제번호 2013S1A5B5A07046333
선정년도 2013 년
연구기간 1 년 (2013년 11월 01일 ~ 2014년 10월 31일)
연구책임자 이지은
연구수행기관 서강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는 식민지 시기인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에 이르는 시기에 인도의 식민 정부에 의해 이루어진 센서스 조사와 그 보고서를 통하여 카스트라는 인도 고유의 사회제도 또는 그 제도 하의 특정 집단에 대한 이미지가 어떻게 형성되어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였는지 고찰하려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기원전에 발생한 카스트 제도와 인도인들에게 내재되어 있다고 믿어지는 카스트 의식이 영국 식민치하의 특정한 정치-사회적 조건 하에서 어떻게 재편되었는지, 그리고 공적 공간에 투영된 카스트의 이미지들이 인도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등을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본 연구는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던 시기에 형성된 가장 중요한 사회조사 자료인 센서스 보고서라는 공적 자료를 이용하여 이들 자료에 카스트 제도와 특정 카스트의 이미지가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살펴보고, 이것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모하고 있는지 입체적으로 그려내어 현재 인도 사회에서 표출되는 카스트 의식이 역사적으로 어떻한 경로를 거쳐 확립된 것인지 추적해 보고자 한다.
    또한 이 연구를 통하여 19세기 중엽부터 현재에 이르는 근현대 인도 사회사 자료 중 가장 기본이 되고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는 센서스 자료를 개괄해 보고, 이를 식민지 지식의 축적체로서 비판적으로 분석함으로써 향후 인도 사회사 연구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도 이 연구가 가진 중요한 목표 중 하나이다.
  • 기대효과
  • 한국의 인도사 연구는 아직 연구 성과와 분야가 지극히 제한되어 있고 양적인 축적도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인도사 연구, 특히 그 가운데서도 근현대 사회사 연구 분야의 학문적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카스트라는 사회제도는 단지 역사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대다수 인도인들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으며, 동시대의 사회, 정치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는 남아시아 사회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도모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지식 항목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또한 카스트에 대한 학문적 관심은 역사학 뿐 아니라 인류학, 사회학이나 지역학 분야에서도 폭넓게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본 연구를 통한 실증적 성과들은 이러한 다양한 학문분야의 연구에 기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도 사회와 인도인들의 의식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여타 응용학문 분야에서도 이 연구는 폭넓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 연구요약
  • 본 연구는 1871년부터 1941년까지 출간된 "인도 센서스" 보고서를 기반으로 하여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까지 식민 지배자들의 카스트 의식이 공적인 영역에서 표출된 바를 밝힌다.
    전국적인 인구조사의 과정에서 카스트는 '인도인들을 이해하는 사회학적 열쇠'로서 중요성이 부과되어 인구를 범주화시키는 주요 분류기준으로 적용되었을 뿐 아니라, 식민 정부의 센서스 담당관들은 각 카스트의 높낮이를 조사하여 인도 전국의 카스트에 일종의 위계질서를 부여하려 하였다. 또한 각 카스트의 신체적 특성, 전통직업, 그리고 집단적 특질을 파악하여 기록하면서 이를 행정과 고용에 적용시켰다.
    이러한 카스트 조사에 수반된 작업과 센서스상의 기술, 또 이에 근거한 행정조치 등의 여파로 인도인들 사이에서는 카스트가 전에 없던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자신의 카스트가 일상을 뛰어넘는 공적 차원에서 큰 의미를 갖게 되자 결사체, 사회운동, 카스트 체제 내에서의 상향이동 등 많은 사회적 변화가 카스트를 단위로 하여 나타나게 된다. 당시 식민정부의 인구조사와 함께 강화된 카스트 의식은 현재까지도 많은 인도인들의 카스트 의식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카스트 의식이 식민지 시기에 센서스를 통하여 어떻게 확대, 강화되었는지 밝히기 위하여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연구결과를 포함하도록 한다.
    첫째, 식민지 시기 센서스 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던 정책 결정과 조사의 확대, 심화 과정을 순차적으로 확인함으로써 식민정부가 사회정책을 결정하고 실시하는데 있어서 카스트의 영향력이 증가 또는 감소했는지 그 추이를 그려낸다.
    둘째, 1911년 정도까지의 초기 센서스에서 카스트 행정관들의 카스트 제도 자체에 대한 개념은 어떠한 변화를 보이는지 '제국 보고(Imperial Report)' 부분을 중심으로 도출해 낸다. 아울러 20세기 초반까지 형성된 이러한 개념은 현재 인도에서 통용되는 카스트 개념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를 시도한다.
    세째, 매우 세분화되고 광범위한 조사가 실시되었던 1921년 센서스와 이와 비슷한 정도로 실시되면서 카스트 조사가 마지막으로 이루어졌던 1931년 센서스에서 각 단위 카스트에 대한 묘사 중 대표적으로 식민정부의 카스트에 대한 이미지를 드러내는 부분을 예시하여 현재 인도에서 유통되는 카스트 이미지와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비교를 시도한다.
    네째, 식민 지배하에서 실시된 마지막 센서스인 1941년 센서스에서 볼 수 있는 두드러진 변화는 카스트 조사의 폐지였다. 이러한 정책결정의 배경과 인도 민족운동이 제공한 사회적 맥락을 이해한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는 카스트에 대한 이미지와 인식이 영국 식민지배 시기에 공적 영역에서 어떻게 표출되고 변화해왔는지 "인도 센서스" 일반 보고서를 중심으로 추적한다. "인도 센서스"는 중앙 정부와 각 주 정부의 공직자들과 정부에 의해 위촉된 기관에 의해 조사, 제작되었고, 인도의 행정을 책임지고 운영하는 각 정부 기관에 의해 인도 사회와 인도인을 이해하는 기초자료로 이용되어왔으며, 특히 카스트 제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고 카스트 체제를 더욱 공고한 것으로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1871년 센서스 보고서는 영국 정부가 직접 통치를 실시한 초기 관료들의 카스트와 민족 집단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전 인도에 적용되는 단일화된 구분 기준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카스트라는 카테고리를 이용해 인도의 인구를 분류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1871년 보고서는 힌두(Hindoo)라는 큰 범주 안에 기원상으로 힌두였던 다양한 사람들을 포함하고 있으나, 동시에 무슬림과 부족민들은 별도의 범주로 보고하였다. 또한 힌두 카테고리 이하에는 여러 자띠나 부족의 이름이 포함됨을 물론, ‘카스트 특정되지 않음’, ‘알려지지 않은 카스트’ 등의 항목이 발견된다. 센서스 보고서의 저자인 Beverly는 벵갈에서만도 카스트를 특정하지 못한 카스트나 부족 집단은 적어도 천개 이상, 수천 개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카스트라는 구분이 19세기 후반에 어느 정도 일반적인 것이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881년 센서스는 이후의 조사에서 기준이 될 만한 인구의 범주화를 시도하였고, 이는 카스트, 종교, 직업 부분에서 특히 그렇다. 또한 지역적 지식(local knowledge)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어 주별, 지역별로 카스트 제도는 상당한 지역적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1881년 센서스에서는 전체 힌두 인구를 브라만(Brahman), 라즈뿌뜨(Rajput), 기타 카스트(Other Castes)로 크게 구분하였으며, 카스트를 직업구분에 준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듯하다. 또한 몇몇 카스트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씨족이나 가족의 이름을 카스트 이름으로 기재하거나, 벵갈리(Bengalees), 힌두스타니(Hindoostanees), 뻔자비(Punjabees)와 같이 지역이나 언어적 정체성이 카스트 이름으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또는 직업의 이름으로 자신들을 표현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와 같은 혼란은 카스트라는 개념이 인도 전역, 인도 인구 전체를 아우르는 사회제도도 아니었고, 모든 사람들이 실제로 자신을 카스트로 범주화하지도 않았으며, 따라서 카스트라는 정체성이 보편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1867년 이래 카스트의 수가 27.7% 급증한 사실이나 부족의 수가 완만하게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도인들이 ‘카스트화’되고 있다는 증거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1891년 센서스는 인구뿐 아니라 각 지방의 지리적 특성과 인구의 지리적 분포를 세밀하게 조사 기록함으로써 각 지역 인구의 경제적 효용성을 측정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생각된다. 동 보고서는 제 5장의 “민족지적 분포”에서 카스트를 주로 다루고 있는데, "카스트 정신"이라는 어휘를 사용하며 카스트에 담긴 종교적 의미를 부각시킨다. 이 때 종교란 도덕이나 정신이라기보다는 예식과 의례를 의미하는 것이며, 따라서 사회적 관계, 위계, 직업에 종교적 권위가 개입하며 세습적인 특질로 만들어 창의성과 독창성을 억누르는 결과를 빚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논의는 결국 “카스트와 민족의 양립불가능성”에 대한 주장으로 이어지는데, 카스트에 대한 민족주의적 시각에 단초를 부여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1891년 보고서는 카스트의 성립에 대한 역사적 고찰로서 아리아인의 이동과 인도아대륙 정착 과정을 인종주의적 입장에서 서술함으로써 카스트와 인종을 연결시켰던 당대의 담론을 형성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01년 센서스는 그 보고서가 양적으로 증가하고 형질인류학적 조사와 연구 성과가 대거 반영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형질인류학적 조사에 근거하여 유럽인과 같은 인종으로 분류되는 북인도의 힌두들과 오스트랄로이드 또는 불명확한 기원의 종족인 드라비다인을 완전히 다른 집단으로 분리하였다. 또한 인종간의 차이는 차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리아인과 선주민간의 우열 구분과 지배-종속의 역사로 이어지며, 이는 다시 카스트를 구분하는 기본적인 요인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생체적 특징은 카스트의 집단적 특징으로 연결되므로 사회적 신분에 따라 상이한 신체조건을 갖는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카스트의 구분이 1891년 센서스와는 달리 브라만을 정점으로 하는 의례상의 정과 부정의 순위로 형성되었다는 점과 카스트 제도는 인도 전역을 규정하고 있다고 상정한 것도 20세기 센서스에서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점이다. 촌락에서의 관습을 실증적으로 연구한 인류학적 지식의 확대와 이러한 현지 조사가 식민 정부의 인도 식민지 이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준다. 1911년과 1921년의 센서스는 전체적인 구성과 조사관들의 태도가 이전과 비슷하게 유지되는 가운데, 카스트 항목의 조사와 보고는 양적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카스트의 분류에 있어서 1901년 센서스보다 종교적, 의례적 의미를 더 많이 개입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즉, 1891년까지의 센서스에서 직능 중심의 구분을 했다면 1901년 센서스에서 처음으로 종교적 의미에 의한 높고 낮음에 의해 카스트의 대구분을 했고, 1921년 센서스에서는 지역별로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고전적 의미의 바르나 구분에 상당히 가까운 형식의 대구분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각 자띠의 이름과 인구수에 의한 크기별 분석도 이전보다 정교화되고 지역적으로 특화되었다. 인도 사회와 인구가 제국주의적 시각을 통하여 체계화되는 센서스 조사와 보고 작업에서 인도의 특정 계층에 국한되는 전통 지식이 왜곡되어 식민 지식으로 자리 잡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931년 센서스는 카스트에 대한 조사와 보고가 이루어진 마지막 센서스이다. 이전까지의 카스트 조사에 대한 비판점에 대한 인식 역시 나타난다. 카스트에 대한 조사가 편협한 지식을 담고 있다는 점과 센서스 조사가 카스트를 영속화시킨다는 비판은 대표적인 것이다. 10년마다 행해진 센서스에서 카스트의 위상이 변화해 온 궤적을 통찰한다면, 사회의 일반적인 범주가 결코 아니었던 카스트가 오히려 센서스 조사에 의해 일반화되었던 상황을 읽을 수 있다. 여기에 각각의 카스트에 대한 상, 하 위계질서, 특히 의례적인 정과 부정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던 것 역시 카스트 조사가 가져온 결과였다. 카스트 조사와 기록에 대한 반감은 특히 민족주의자들 사이에서 점점 커졌고, 1930년대부터 보다 강력해진 민족주의 운동은 결국 1941년에 시행될 다음번 센서스에서 카스트 조사를 폐지시키기에 이르렀다. 19세기 중반 인도에 대한 직접통치를 시작한 영국 식민정부는 행정상, 통치상의 필요에 의해 전국적 규모의 인구조사를 기획했고, 이때 카스트는 ‘인도를 이해하는 사회학적 열쇠’로서 중요성이 부과되어 전 인구를 범주화시키는 주요 분류기준으로 적용되었다. 그러나 센서스 보고서에 의하면 카스트가 원래부터 인도 사회를 규정하는 규율이었는가 하는 점은 의심스럽다. 오히려 센서스 조사와 함께 카스트는 사회 제도로서 카스트 밖에 위치하던 많은 인도인, 특히 부족민들에게 부과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원래 카스트를 직능집단으로 인식하던 식민정부는 결국 카스트의 종교적 의미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고 브라만 집단이 고집하던 카스트의 이미지를 식민지식으로 고착화함으로써 현대 인도 사회에서 극단화되고 있는 카스트 위계의 모순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 영문
  • This research attempts to trace the concept and image of caste in the British colonial period through the reading of reports of "Census of India." Centenial population surveys were carried out and reported by the census administrators and examiners commissioned by the colonial government, thus believed to be basic information to understand Indian society and Indian people. They have consistently excercised influence over the Indian society and institutions like caste and brought about considerable changes in them. Census report of 1871 is important in the sense that it shows the understandings on castes and races of the early British administrators. It was not easy to categorize Indian population through the categories of caste, because there was no unified system of caste. Various people, such as Buddhists, Jains, converted Christians, being originally Hindu were included in the big category of Hindu, while Muslims and Tribals were reported as separate categories in the 1871 report. Sub-categories of ‘Caste unspecified’ and ‘unknown caste’, not to speak of various jatis and tribes, are found under ‘Hindoo’ category. Beverly, the author of the report, estimated that the numbers of castes or tribes whose caste could not be specified would exceed a thousand. It shows that caste was not a general social institution embracing the majority of population. The 1881 Census report attempted to categorize whole Indian population, which gave the standardized example for the later censuses. It was expecially so in the fields of occupation, religion, and caste. It also emphasized the significance of ‘local knowledge’ to recognize the locally distinct caste-related customs. 1881 census categorized whole Hindu population into Brahman, Rajput, Other Castes and considered caste as almost equivalent to occupation. Sometimes common names shared by families or clans and regional or linguistic identities like ‘Bengalees’, ‘Hindoostanees’ and ‘Punjabees’ were recorded as caste names. Some other times occupations were used as caste names. These confusions demonstrate that caste was not the pan-Indian and all-embracing social institution, and that not everybody categorized themselves by castes and therefore caste was not at all universal identity among all Indian people. Increase of number of caste by 27.7% since 1867 and gradual decline of number of tribe proved the phenomenon of ‘castization’ among Indian people. Census report of 1891 minutely surveyed and recorded not only the regional geographical characteristics but also regional distribution of population. The report characterized the religious connotations in caste matter by saying “caste spirit.” Religion in caste matter rather signified rituals and ceremonies than moral and spirit, therefore religious authority has invested social relations, hierarchy, and occupation with hereditary characters, which resulted in the suppression of creativity. These arguments are followed by the theory of “incompatibility of caste and nation.” The 1891 report narrated the racialist version of Aryan movement and settlement in Indian subcontinent and defined it as a history of caste formation. Census report of 1901 can be characterized to be the increase of its volume and the inclusion of huge result of surveys of physical anthropology. It completely divided the northern Indian Hindus, who were put in the same category as European race, and Dravidians, categorized as Australoid or of unclear origin, on the basis of physical anthropology. This division further connotes the superior-inferior and dominant-subordinated relationship between the Aryans and the aborigines, which became a basic principle of caste division. Other distinguishing features of the 1901 census include the imagined pan-Indian characteristics of caste and the hierarchical caste division based on ritual purity-pollution. General result of the 1901 census shows the direct influences of anthropological knowledge accumulated through the widely performed field-research. Census reports of 1911 and 1921 marked the quantitative increase in caste parts while the general structure and attitudes remained in similar tune as former report. Religious and ritual factors increasingly intervened in caste division appeared in the reports. The 1921 census report showed the categorization close to the varna division in the classical meaning, not without regional variations, though. Survey and analysis on various jatis became more elaborated and regionally specified than the former censuses. Now the narrow traditional knowledge on India confined only to a certain class of people was being settled as colonial knowledge in its exaggerated form. Census of 1931 was the last census in which caste information was surveyed and reported. There have been severe criticisms against the caste census blaming its narrow and prejudiced knowledge on caste and its probable perpetuation of caste. Overview on the changing image and concept of caste in the series of census reports indicates the increasing acceptance of caste and caste institution by the mass, which was never a general phenomenon of pre-colonial Indian society. Caste census also resulted in the hierarchical order of caste institution and the significance of ritual purity and pollution. Antagonism against caste census was increased especially among the nationalists and caste census was finally abolished from the 1941 census. British colonial government started to directly rule India from the mid-19th century and the large-scaled population census was projected to fulfill the administrative purposes. Caste has been perceived as ‘sociological key to understand India’ and has functioned as one of the most important criteria to categorize whole Indian population. Through reading of various census reports suggests that caste was not the pan-Indian institution to give order to society but was rather imposed on the large number of Indian population living outside of caste institution, especially the tribals. The colonial government was partly responsible for the magnifying the religious aspect of caste, transforming the narrow Brahmanical concept of caste to colonial knowledge.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1871년부터 현재까지 10년에 한번씩 빠짐없이 조사, 출간되었던 "인도 센서스"의 일반 보고서(General Report)를 대상으로 특히 카스트와 관련된 서술을 통하여 카스트가 식민지식의 일부로 형성되는 과정을 고찰한다. 10년마다 행해진 센서스에서 카스트의 위상이 변화해 온 궤적을 통찰한다면, 일반적인 사회의 범주가 결코 아니었던 카스트가 오히려 센서스 조사에 의해 일반화되었던 상황을 읽을 수 있다. 여기에 각각의 카스트에 대한 상, 하 위계질서, 특히 의례적인 정과 부정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던 것 역시 카스트 조사가 가져온 결과였다. 카스트 조사와 기록에 대한 반감은 특히 민족주의자들 사이에서 점점 커졌고, 1930년대부터 보다 강력해진 민족주의 운동은 결국 1941년에 시행될 다음번 센서스에서 카스트 조사를 폐지시키기에 이르렀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는 근현대 인도 사회사를 읽는 중요한 자료인 센서스 보고서를 사료로서 다루면서 동시에 이에 대한 비판적 안목을 제공하고 있다. 사료에 대한 정보와 비판을 제공함으로써 향후 이 분야를 공부할 학자들이 사료를 비판적으로 읽고 분석하는데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사회학과 정치학, 경영학에 이르는 사회과학의 다양한 분야가 폭넓게 공유하는 카스트라는 개념의 형성을 다룬 본 연구의 결과물은 주변학문에도 참고할만한 성과를 제공할 수 있다. 근년에 있었던 카스트 조사라는 센서스 관련 정책의 전환은 인도 사회 안팎에서 크게 이슈화되었다. 2011 센서스의 카스트 조사는 센서스 조사라는 정기적인 업무에 큰 중요성을 부과하는 결과를 낳았고, 센서스가 가져올 ‘카스트의 공식화’에 대해서도 각 분야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할당제 논의와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실시된 2011년 센서스에서의 카스트 조사의 부활은 인도 사회 전체에 대해 엄청난 함의를 갖는다. 따라서 과거 식민지 시대에 센서스가 카스트 조사와 그에 기반한 카스트 정책을 통하여 인도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반추해 보는 것은 현재의 인도를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분야의 연구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 색인어
  • 인도 센서스, 인도 인구조사, 카스트, 바르나, 자띠, 인종, 부족, 민족, 식민지식
  • 연구성과물 목록
데이터를 로딩중 입니다.
데이터 이용 만족도
자료이용후 의견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