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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스와 연합장로교회 해외선교부의 한국선교에 대한 갈등
Conflict over Korea Mission between John Ross and the Foreign Mission Board of the United Presbyterian Church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신진연구자지원사업& #40;인문사회& #41;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4S1A5A8019116
선정년도 2014 년
연구기간 1 년 (2014년 05월 01일 ~ 2015년 04월 30일)
연구책임자 박형신
연구수행기관 남서울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한국 개신교교회의 역사에서 스코틀랜드 출신의 존 로스(John Ross)는 그 시점을 알리는 중요한 인물로 간주되어 왔다. 만주에서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의 파송선교사로 일하였던 그는, 중국인과 만주족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한국선교에 대한 강한 관심을 가지고 한국사 연구, 한글신약성서의 번역, 한국인 권서의 파송, 만주지역 한인공동체 방문과 세례 등의 일련의 사건을 통하여 한국 개신교 태동과 관련하여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여기에서 연구자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대부분의 선행연구들이 다루지 않은 주제를 생각하였는데, 그것은 그렇게 한국선교에 대한 강한 열정을 가진 선교사가 만주지역에서 간접적인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한국선교에 관여하려고 하지 않았는지, 또 나아가 그를 파송하였던 선교부를 설득하여 한국선교지부를 설치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는지에 대하여 호기심을 가졌던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선교편지들과 일부 선행연구들은 그가 그의 열정만큼이나 구체적으로 해외선교부에 한국선교지부의 설치를 강력히 주장하였던 것과 해외선교부는 그것을 거절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또한 강력히 외쳤던 만주의 한인촌을 위한 선교사의 파송 역시 적절한 응답을 받지 못하다가 19세기 말엽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음을 포착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선행연구들과 약간의 자료들에 대한 분석은 로스와 해외선교부의 정확한 입장에 대하여 충분한 내용과 확신을 주기에는 부족하였다. 이에, 연구자는 첫째로, 1870-1880년대에 걸쳐서 되어진 존 로스의 한국선교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둘째로, 연합장로교회 해외선교부가 로스의 한국선교부 설치 제안에 대하여 거절한 내용은 무엇이었으며, 그러한 결정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를 경제, 외교, 및 에큐메니컬 정신의 3가지 측면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셋째로, 1890년대에 행해진 만주 한인촌에서의 선교사역이 진정으로 해외선교부의 승인가운데 되어진 것인지, 아니면 만주 선교지부의 차원에서 되어진 것인지를 알아보고 이 시기에 해외선교부와 로스의 사이에 어떠한 타협과 이해가 있었는지를 살펴본다. 넷째로, 이 시기에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 해외선교부는 한국에 주재한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에게 한인선교의 이양을 시도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는 어떠한 전망이 있었는지를 북장로교와 연합장로교회 측의 자료를 통해 연구하고자 한다.
  • 기대효과
  • 이 연구는 본질적으로 기존의 존 로스 선교사에 대한 연구를 범주 면에서 확장시키고, 나아가 특정한 문제 즉 연합장로교회 해외선교부와의 한국선교부 설치문제와 관련한 갈등에 대하여 천착하면서 존 로스 선교사 연구를 심화시키는 데 있다.
    로스 연구의 범주 면에서, 기존의 한국교회사 학계에서의 존 로스 연구는 존 로스의 한국어 신약성서 번역(1887)과 출판, 한글 쪽복음 또는 신약성서 판매하고 전도하였던 권서의 파송, 서간도 지역의 한인촌에서의 세례활동, 새문안교회의 창립 및 여러 한반도 내 지역 기독교공동체의 형성에 있어서 권서들을 통한 간접적 역할, 그리고 존 로스가 사용한 신명 ‘하나님’ 등에 국한되어 있었다. 이러한 연구를 보면, 존 로스가 마치 한국을 위하여 파송되었으나 진입장벽으로 인하여 만주에 머물렀던 선교사인 듯 오해되며, 그가 연합장로교회 해외선교부에 의해 파송된 중국 산동과 만주지역 선교사였음이 강조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그의 배후에 있는 해외선교부의 모습보다는 한국어성서번역과 관련되는 대영성서공회 (British and Foreign Bible Society) 및 스코틀랜드성서공회 (National Bible Society of Scotland)가 그와 가장 관련이 있는 기관으로 보이기도 한다. 또 하나의 로스 연구에 있어서 맹점은 그의 성취한 성서번역과 권서파송 등의 목회적 측면에서 성공적인 일들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으로 인하여, 그의 다양한 관심사, 한국의 역사에 대한 연구, 만주족의 역사를 연구한 서적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던 만주에 대한 학문적 관심, 조상제사 등과 관련하여 보수적 선교사들과 논쟁까지 벌였던 문화적응주의적 선교방법론, 그리고 이 글이 다루려고 하는 한국선교지부의 설치 등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연구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존 로스에 대한 한국교회 범주의 연구를 뛰어넘는 연구, 다양한 측면의 로스를 밝혀내는 연구를 시도하고자 한다.
    이 연구의 주제와 직결하여, 연구자는 존 로스의 강한 한국선교에 대한 열정에도 불구하고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UPC)가 한국에 선교지부를 설치하지 않은 딜레마가 존재한다고 본다. 이 문제는 한국개신교의 출발점 또는 초기 개신교회의 형성과 관련한 매우 중요한 논점이다. 앞서 언급되었던 것처럼, 존 로스는 한국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하였고, 1887년에 신약성서를 최초로 한국어로 번역하였으며, 한국교회 최초의 권서들을 훈련시켜서 한국과 만주지역에 보낸 선교사였다. 또한 한국선교지부 설치를 적극적으로 수 차례 해외선교부에 추천하였다. 그러나, 선행연구와 일부 자료에 의하면 연합장로교회는 그의 의견을 거부하고 만다. 이렇듯 심각한 파송과 후원의 주체기관과 파송된 선교사 간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진입하지 못했던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의 한국선교 진출가능성과 결말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었고, 로스와 해외선교부와의 갈등에 대하여도 최성일의 학위논문 안에서의 언급과 김정현(Grayson)의 글에서의 하위분야로서의 언급 외에는 단독의 주제로 저술되지 못하였다. 이러한 선행연구의 현실에서 본 연구는 존 로스에 대한 심층연구 및 그가 속한 선교부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제공할 것이다.
  • 연구요약
  • 이 연구는 아래와 같은 연구방법을 통하여 기존의 존 로스 연구에 대한 한국교회사 안에서의 고립적인 연구행태를 극복하고 1) 스코틀랜드의 국가적 재정위기, 2) 동아시아의 정치외교적 역학의 차원, 그리고 3) 기독교의 에큐메니컬 운동의 정신이라는 보다 큰 맥락에서의 연구방법을 제기된 문제에 대한 응답의 열쇠로서 제시한다.
    첫째로, 연구자는 연합장로교회(UPC) 해외선교부의 한국선교지부 거부사안에 대하여 스코틀랜드의 경제적 위기를 제시한다. 스코틀랜드의 비교적 작은 기독교 교단으로서 연합장로교회는 해외선교부를 운영함에서 재정적 측면에 대한 신중한 고려가 요구되었다. 1870년대 말과 1880년대에 스코틀랜드는 국가적으로 극심한 재정적 위기를 겪고 있었다. 당연히, 교회 역시 이로 인하여 큰 타격을 입고 있었으므로, 상당한 규모의 재정이 요구되는 해외선교에 있어서 전략적인 예산집행이 필요하였다. 연합장로교회는 실제로, 협력관계에 있던 영국장로교회에 중국의 산동 선교지부를 이양하고 중국으로부터 전격적으로 철수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먼저 설치되었던 산동선교지부를 해체하고 오히려 만주선교지부에 선교역량을 집중하는 결정을 하면서 존 로스와 동료 선교사들은 만주지역의 선교를 위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따라서, 만주선교지부의 설치와 운영은 교단의 재정적 상황과 직결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 할 것이고 추가적인 한국선교지부의 설치는 더욱 풍부한 재정적 확충과 신중한 결정이 필요한 사안이 아닐 수 없었다.
    들째로, 연구자는 해외선교부가 한국선교 또는 동아시아에서의 선교에 대하여 기존의 설명보다는 좀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1880년대에 한국 선교부 설치의 거부는 동아시아에서의 대영제국의 정책과의 연계 속에서 조약법과 관련한 종교의 자유 등의 한국선교와 관련한 안전한 외교적, 법률적인 조건을 확보하지 못하였던 점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자료에 따르면, 해외선교부는 존 로스의 한국선교에 대한 제안을 거부하였지만, 대영제국의 외교부에 한국에서의 외교적 환경, 즉 조약문제 등에 대하여 조회를 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대영제국이 19세기의 후반에, 이전 까지의 아시아에서의 활발한 식민주의적 활동을 포기하고 좀 더 소극적인 정책 또는 정치보다는 상업 중심의 정책으로 돌아선 상황과 맞물려 있을 가능성을 타진한다. 이러한 변화로서, 대영제국은 1860년대 이후에 중국에서의 정치적으로 직접적인 식민지 경영을 포기하였던 상황을 들 수 있다. 그러므로, 가정하건대, 연합장로교회 해외선교부는 기왕에 천주교가 1870년대에 이르기까지 숱한 박해를 받아왔고 아직도 종교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은 1880년대에, 그리고 대영제국의 외교적 환경이 소극적인 마당에 한국선교에 대한 결정을 유보 내지는 포기하였을 것이다.
    세째로 연합장로교회는 에큐메니컬 운동, 즉 최소한 장로교 전통 안에서의 일치운동 차원에서 1890년대에 한국에 진출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1884 이후 한반도에는 미국 북장로교회가 감리교회와 함께 입국하여 의료와 교육사업을 필두로 하여 선교활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특별히, 1893년에는 평양에 북장로교회의 선교지부가 설립되어 사무엘 모펫(Samuel A. Moffett) 선교사와 한석진과 같은 한국인들에 의하여 새롭게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이때에 범 개혁주의 안에서도 동일한 정체의 장로교회 전통을 가지고 있는 연합장로교회가 한국에 진출한 미국 북장로교회(PCUSA) 선교부와 겹치는 선교활동을 자제하였음을 가정하고, 그것을 증명하려고 할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연합장로교회 자체가 스코틀랜드에서 이미 장로교 전통 안에서 에큐메니컬 정신에 의하여 두 교회가 합병한 교회이었던 점, 그리고 여전히 분리되어 있는 스코틀랜드자유교회(Free Church of Scotland) 및 스코틀랜드교회(Church of Scotland)와 경쟁하고 있는 특유한 상황에 대한 반추함이 역사적 전거로 설명될 수 있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존 로스는 최소한 1870년대 말부터 1892년의 선교예양을 결정한 만주선교위원회의 회의에 이르기까지 연합장로교회 해외선교부와 전방위적인 갈등을 가졌다. 그의 주된 갈등의 소재는 성서번역과 한국북부지역선교 이외에도, 교단 내 선교기금의 모집과 사용, 독자적 선교헌금의 모금, 선교지 부동산의 구매와 운용, 그리고 새로운 선교지부의 설립과 새로운 전도인의 임명 등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갈등의 원인은 본국의 해외선교부가 너무 구체적인 개입을 요구하는 것과 존 로스가 절차와 규정을 넘어서서 사역을 추진하였던 것도 있을 것이다. 1890년대 말까지 서간도 한인촌을 누볐던 존 로스의 열정은 1900년 이후에 만주를 찾아온 미북장로교회 선교부와 한국장로교회의 선교사들에게로 계승되었다.
  • 영문
  • John Ross had a conflict with the Foreign Mission Committee of the United Presbyterian Church at least from the late 1870s to the time when the meeting of the Manchuria Committee that participated in the 1892 Mission Comity. His conflicts occurred over the issues of the collection and use of the mission fund of the church, separate collection of mission fund, purchase and management of the mission property, and establishment of new mission station and appointment of new evangelists. The reasons of the conflicts might be in both the facts that the FMC interfered with the affairs in the mission field and John Ross was not enough to respect for the due procedures. The passion of John Ross, who worked for the West Kando (Seogando) until the last 1890s, was inherited by the Presbyterian mission and the missionaries from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이 연구는 존 로스와 해외선교부가 1) 한국어성서번역의 사역 우선권에 관하여 큰 견해 차이를 보였으며, 2) 서간도 한인선교문제에서는 서로 연합 내지는 허용하였고, 3) 강계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선교의 확장에 관하여는 사실상 해외선교부가 거절하였음을 보여준다. 1880년대 초엽에 해외선교부가 존 로스의 한국어성서번역에 대하여 견제하였던 것은, 직접적 선교방법들에 우선권을 두라고 하는 주문이며 한국에 대한 관심을 제지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해외선교부는 1892년의 선교예양 결정에서 만주지역의 한인들, 즉 서간도한인촌 선교를 미북장로교 선교부에 이양하지 않았다. 강계지역의 선교문제는 1892년 이후로 미북장로교에 넘겨졌지만, 결정과정에서 해외선교부가 주체적 입장을 취하지 못한 것은 로스에게는 상당히 아쉬움으로 남았을 것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학술 발표회 성료

    한국기독교역사학회 제338회 학술발표회 연구발표회
    2015년 9월 5일 (토)

    사 회 자 : 송현강(한남대 겸임교수)
    주제발표1 : 존 로스와 연합장로교회 해외선교부의 한국선교에 대한 갈등
    발 표 자 : 박형신(남서울대 교수)
    논 찬 자 : 최성일(한신대 교수)
    주소: 서울 마포구 동교로23길 118 열송재 2층 (성산1동 226-4)

    2. 연구결과 활용계획
    1) 학술지 게재 (계획)
    2015년 10-11월 투고예정: 기독교신학논총, 한국교회사학회지, 또는 신학사상
    2015년 겨울 학술지 출판 희망

    2) 존 로스 선교사에 대한 추가 연구논문 프로젝트
    a. 픽트족(Pict) 선교사 존 로스 연구
    존 로스 선교사가 살던 스코틀랜드 Highlands지방, 존 로스의 가족사, 및 존 로스의 정신세계를 연구함으로 그가 중국의 만주에서 만주인, 중국인, 및 한국인들을 만났던 경험들을 재조명하고 그의 세계를 탐구함.
    b. 존 로스와 연합장로교회의 동아시아 정치문제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출신으로서 성공회와는 여러모로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연합장로교회의 동아시아 정치에 대한 입장문제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자 한다.

    3) 존 로스 선교사 번역 총서 프로젝트
    a. 존 로스 선교사 서한문 번역
    이번에 National Library of Scotland 방문연구에서 알게 된 존 로스 및 해외선교부의 편지들을 중심으로 하는 문서들을 번역하는 프로젝트 구상 중
    cf. BFBS & (NBSS?)와의 편지 글은 이미 출판됨
    b. UPMR 등에 실린 보고서
    c. 잡지 기고문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 etc.)
    d. 그의 설교문들
    e. 책자 및 소책자: The Manchus, Old Wang, Blind Chang, etc.
    이러한 책자들은 로스의 중국선교사로서의 면모를 부각시킬 수 있으며, 또한 동아시아 교회사의 전망을 위하여도 도움이 될 것임.
    f. 개인서신
    g. 그 외 로스의 문서들
    h. 로스에 대한 글들: 동료 선교사, 선교부, 중국, 한국, 비문 등.

    4) 존 로스 선교사 평전 출판 프로젝트
    a. 먼저 연구논문들과 번역총서를 통하여 능력을 신장함.
    b. 연구 환경이 갖추어지면, 평전의 출판을 희망함.
  • 색인어
  • 존 로스, 연합장로교회 해외선교부, 만주선교위원회, 한국어성서번역, 강계지역, 서간도한인촌, 미북장로교 한국선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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