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지난 수백만 년 동안 사회를 이루고 문화와 문명을 일구며 살아왔다. 이처럼 인류가 이 땅에서 문화와 문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말을 하고 자신들이 보고 듣고 사유한 것을 문자로 적어 지식을 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언어와 문자는 인간의 역사 문화 ...
인류는 지난 수백만 년 동안 사회를 이루고 문화와 문명을 일구며 살아왔다. 이처럼 인류가 이 땅에서 문화와 문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말을 하고 자신들이 보고 듣고 사유한 것을 문자로 적어 지식을 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언어와 문자는 인간의 역사 문화와 가장 가까이 호흡하며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근자에 문학ㆍ역사ㆍ철학으로 대표되는 인문학이 위기라는 우려 속에서도 사회와 학계의 관심과 성원으로 말미암아 작으나마 인문학이 붐을 이루고 있는데, 인문학 연구에 바탕을 이루는 연구 분야는 역시 언어학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중국 인문학 연구에 있어서 중국어와 한자의 연구는 매우 깊은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인류문명의 시작을 열었던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등의 다른 문명들이 오늘날 이미 거의 단절된 상태로 인류의 문화유산 정도로만 남아 있지만, 중국의 경우에는 고대 문명이 오늘날까지 그 명맥이 면면이 이어오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점은 오늘날 중국학 연구에 있어서도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한자(漢字)는 고대로부터 오늘날까지도 중국과 중국인들의 고유한 문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한자는 표의문자(表意文字)로서 고안될 당시 중국에 살고 있던 인류 사유방식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한자가 만들어진 원리와 변화 발전의 양상을 잘 살펴보면 중국 문화의 근원은 물론 그 흐름의 대강을 파악하는 데에 관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 문명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코드는 단연 한자(漢字)문화라고 할 수 있으며, 한자 문화가 싹트고 중국 문화의 원형이 형성된 시기는 상(商: B.C.1600~B.C. 1046)과 주(周: B.C. 1046∼B.C. 771)나라 때이다. 상나라는 성읍(城邑)국가의 형태를 띠기는 하였지만, 고대 중국에서 최초로 청동기를 근간으로 발전하였고, 한자의 원형이 되는 갑골문자(甲骨文字)를 고안해서 썼던 만큼 중국 역사에서 왕조국가의 체제를 비로소 갖추었다. 주나라는 앞선 상나라의 비인문적(非人文的)인 요소를 떨어버리고 인간 중심의 사회질서 체계로서 봉건제(封建制)적인 종법제(宗法制)를 근간으로 하는 봉건제도(封建制度)를 세웠으며, 주나라 후반기인 춘추전국시대에는 제자백가의 학술사상가들이 나와서 중국 사상의 황금시기를 열었던 때이다. 그래서 이 시기를 이른바 인간문화가 중심이 되는 인문의 시대가 비로소 열렸다고 일컫는 것이다.
본래 인문학이란 문학, 역사, 철학을 중심으로 인간과 인간 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현상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을 가리키며, 서구 문예부흥기에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중세의 기독교적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나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문화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인간성을 회복하려던 정신운동을 인문주의(humanism)라고 일컫는데, 중국의 주(周)나라 역시 신정(神政)정치를 펼쳤던 상(商)나라와는 달리 정치의 주체를 하늘의 상제(上帝)로부터 인간에게로 옮겨온 시대로서 이 시대는 인간이 세상 사물을 보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사유를 하며, 또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을 통해서 표출하기 시작하였던 시대라고 할 수 있으니, 이 시대야말로 고대 중국에서 인문사조가 비로소 움트던 때라고 할 수 있다.
주(周)나라 이후 인문사조가 열리면서 언어[名]를 통해서 현상으로 드러나 보이는 실질[實] 혹은 형상[形]을 지배하는 정치적인 구조가 형상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일찍이『관자(管子)ㆍ구수(九守)』편에서 “이름을 닦아 실질을 살피고, 실질에 의거하여 이름을 정한다. 이름과 실질은 서로 보완되는 것이다.(修名而督實, 按實而定名, 名實相生.)” 戴望 著,『管子校正-諸子集成 五』, 北京, 中華書局, 1986, p.302.
라고 하였고, 공자(孔子)가 정치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우선해야 할 것으로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않고,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名不正, 則言不順.)” 朱熹 撰,『論語集注-四書章句』, 北京, 中華書局, 1995, p.142
이라고 한 정명론(正名論) 등 한 대(漢代)이래 유지되어 오던 유가와 한자 문화 체계가 근대 5`4운동 시기 신문화운동 이후 흐트러지기까지 중국의 역사에서는 늘 언어와 문자를 중심으로 한 문화요소가 정치적인 지배논리를 펴기 위한 명분(名分)으로 작용하여 왔다.
그러므로 본 연구를 통해서 중국 상고시대에 해당되는 상주(商周)시대 당시의 언어와 문자가 어떻게 연원하여 형성되고 발전하였는지를 연구하는 것은 오늘날 중국학 연구의 초석이 되는 것이며, 과거로부터 면면이 흘러내려온 지금의 중국을 이해하는 근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