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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의 번역과 근대 한일 문화의 창조적 상호작용
Translation of Popular Songs between Modern Korea and Japan: The Creative Interaction of Culture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4S1A5A2A01014642
선정년도 2014 년
연구기간 3 년 (2014년 05월 01일 ~ 2017년 04월 30일)
연구책임자 박진수
연구수행기관 가천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는 ‘최근 100년간 한일 양국 대중가요에 있어서의 번역’이라는 문제를 다각적으로 검토하려는 시도이다. 가사의 문학성과 멜로디의 음악성 및 시대적 상황과 경제적 조건, 그리고 언어표현과 대중의 심성 등이 복잡하게 얽혀 형성된 문화현상에 대한 연구인만큼 문학, 음악학, 역사학, 번역학의 대상과 문학연구 및 문화연구의 방법론이 결합된 인문학과 사회과학, 예술학의 융복합연구라고 할 수 있다. 또 ‘대중’과 ‘대중문화’ 혹은 ‘대중가요’를 어떻게 정의 내리는가에 따라 대중가요의 출발점이 달라질 수 있겠으나 여기서는 레코드와 라디오 등 ‘음향의 기술 복제 미디어에 의한 상품으로서 노래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시작된 시점’을 기준으로 삼고자 한다.
    일본 근대 대중가요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에 예기치 않게 레코드 발매 2만 장을 기록하여 일세를 풍미한 <카추샤의 노래(カチューシャの唄)>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1914년 문학자 시마무라 호게쓰가 쓴 가사에 그의 제자인 청년 작곡가 나카야마 신페이가 서양 음악의 기법으로 일본 대중의 심정을 멜로디화한 획기적 사건이 있었다. 도쿄음악학교를 막 졸업한 나카야마는 극단 예술좌의 제3회 공연 톨스토이 원작『부활』에서 극중에 여배우 마쓰이 스마코가 부르는 <카추샤의 노래>를 작곡한 것이다. 이것이 소위 일본에서의 레코드 유행가 제1호이다. 당시의 보급률로 볼 때 축음기를 보유한 거의 모든 사람이 구입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성공의 비결은 요나누키음계(ヨナ抜き音階)라는 독특한 작곡법에 기반한 멜로디 체계 때문이다. 그런데 이 요나누키음계는 메이지 초기의 학교 교육에 있어서 서양의 음악을 도입하여 일본식으로 가공하여 만든 창가의 창작에 주로 쓰이던 방식이다. 서양의 음계는 도레미파솔라시의 7음계인데, 동아시아 지역의 전통적 음계는 이 중 파와 시를 제외한 도레미솔라의 5음계와 같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네 번째인 파와 7번째인 시를 제외했다고 해서 일본에서는 ‘요(4)나(7)누키(제외)’ 음계라 불리는데 이는 서양 음악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발생된 일종의 ‘음악의 번역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대중가요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그것이 가사의 번역이든 멜로디의 변형에 따른 것이든 ‘번역’은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노래가 ‘번역’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문화접촉과 문화교섭에 의한 문화전파, 문화침투, 문화수용과 변용 등 여러 가지로 표현될 수 있는 문화적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결과에 다름 아니다. 노래가 가진 시적 특질을 고려하면 일종의 사회문화적 맥락에서의 ‘번안’이기도 한 대중가요의 번역은 아무리 충실한 축어적 번역이라 하더라도 늘 일차적인 의미와 이차적인 의미 사이의 긴장 관계를 벗어날 수가 없다. 번역된 노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대중의 뇌리에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가 한동안 혹은 상당히 오랜 기간 불리어져 오면서 어느 사이에 또 하나의 독립된 의미체계를 구축하는 경우가 많다. 번역이야말로 문화 전달과 수용의 과정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인데, 그 중에서도 대중가요의 번역이야말로 다른 어떤 장르의 번역보다 그 복잡성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한 점에서 ‘번역’이라는 관점에서 대중가요를 다루는 연구 작업의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반드시 검토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① 오늘날 그 중요성이 날로 부각되고 있는 20세기의 대중문화 현상을 인류사의 문화적 흐름 속에서 올바르게 위치 짓고 역사적 의미를 파악하려 하는 점
    ② 한국 대중가요의 역사에 있어서 서양 음악 및 일본 대중가요와의 상호 교섭 문제를 실제 가요 텍스트의 번역에 초점을 맞추어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다룬 본격적 연구가 아직 많지 않은 점
    ③ 한류의 세계화와 관련하여 언어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서의 ‘번역’이 갖는 중요성을 인식하고 향후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
  • 기대효과
  • 본연구는 다음과 같이 진행될 것이다.
    1차년도에는 일본에 서양 음악이 도입되는 초기부터 1920~30년대 본격적인 대중가요가 출현하기 전단계까지의 노래의 번역과정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것이다. 우선 지금까지의 국내외의 학술적 성과들을 토대로 서양의 곡들이 일본에 번역되어 전파되는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겠다. 또 한국의 경우 그 곡들과 함께 일본의 창가, 군가, 서양의 찬송가가 유입되어 유통되는 경로를 추적해 보려 한다. 그 위에 실제로 일본어와 한국어 간의 번역이 얼마만큼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이루어졌고 그 번역이 끼친 영향은 무엇인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2차년도에는 대중가요의 출현 이후 레코드나 라디오 방송을 매개로 일본의 것이 얼마나 한국에 알려지고 한국의 것이 얼마나 일본에 알려졌는지 그 정도에 관해 알아보고, 실제의 내용도 텍스트를 중심으로 세밀히 살펴보려 한다. 그러한 가운데 전쟁시기로 접어들면서 노래가사에 있어서의 일본어와 한국어의 운명은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파악해보도록 하겠다. 또 한편 서양의 대중음악은 전쟁 시기에 어떠한 방식으로 다루어졌는지도 알아보고자 한다. 나아가 전후 GHQ 점령 시기의 문화정책과 관련한 대중가요의 변모 또 1950, 60년대 한국의 대중가요와 일본 대중가요의 관련 양상도 조사 범위에 넣어 진행하겠다.
    3차년도에는 1970년대 이후 현재까지 일본과 한국의 대중가요의 직접적인 교섭 상황을 다루어 텍스트에 대한 보다 정밀한 검토가 요구되는 J-POP과 K-POP, 한류의 전개 상황까지 시야에 두고 연구를 전개하겠다.
    본 연구가 성공적으로 수행된다면 학문의 발전에 다음과 같은 기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대중가요를 비롯한 대중문화의 본격적인 연구에 직접적인 진보를 이룩할 수 있다. 20세기 이후의 문화 현상은 대부분 대중문화와 관련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중문화는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정신사의 일부이며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의미화하는 직접적인 매개이다. 이에 관한 학술 연구는 시대가 진행될수록 더욱 절실히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오락과 흥미의 대상이기만 했던 대중문화 현상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은 대중문화에 대한 새로운 입장을 정립함으로써 인간의 일상을 더욱 풍요롭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둘째, 한국과 일본의 자국 문화연구를 넘어서 광역의 문화연구 다시말해 동아시아문화권의 대중문화 연구를 열어가는 기초를 다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다른 많은 분야의 연구처럼 대중문화의 연구에 있어서도 국적이 중요했다. 그러나 이제는 대중문화 현상 자체가 초국가적인 현상으로 바로 이해를 해야 할 때이다. 한류 문화를 즐기는 전세계의 젊은이들을 볼 때 이러한 현상은 향후 더욱 가속화 할 것이며 따라서 문화에 대한 좀 더 넓은 지평에서의 이해가 필요한 바, 본 연구는 그러한 방향의 지침을 조금이나마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번역학에 대한 새로운 기여가 기대된다. 지금까지 번역학은 주로 소설 등 문학 장르에 치중된 감이 있으나 대중가요의 가사와 같은 일상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텍스트를 취함으로써 학문의 대상 영역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학문과 생활의 거리를 더욱 좁혀 실제의 언어생활에 의미 있는 연구가 되리라 생각한다.
  • 연구요약
  • 동아시아의 대중음악은 전통과 서구가 접맥되어 매우 독특한 새로운 문화적 양식을 창출한 결과라 할 수 있다. 100년 전 일본이나 한국에서 사람들이 주로 읊조리던 노래는 멜로디의 면에서나 가사의 면에서 오늘날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한국이나 일본의 경우 100년 동안 ‘음악’ 혹은 ‘소리’에 대한 감각 자체가 매우 이질적인 방향으로 변했다. 서구 음악을 받아들이면서 그 변화 과정에서 전통 음악과 절묘하게 접합한 케이스가 바로 일본에서 ‘엔카(演歌)’라고 부르고 한국에서는 ‘트로트(trot)’라고 부르는 매우 유사한 대중가요 장르이다. 비슷한 시기에 나타나 20세기 전반기를 풍미한 대중가요의 대표 장르로서 양자는 상호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물이다.
    본 연구는 20세기 전반 식민지와 제국의 관계였던 한국과 일본의 문화교류에 관해 다소 색다른 관점에서부터 출발하려 한다. 지금까지 20세기 전반의 한일 문화교류에 관해서는 지배와 피지배 혹은 수탈과 굴종을 키워드로 하는 이분법적 구도의 연구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따라서 이 시기 문화의 양상에 관한 연구는 식민지 조선에 있어서의 서구문물의 일본식 수용과 관련한 문화전파 또는 각 분야에서의 일본 근대 문화의 일방적 영향을 전제로 한 연구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최근 일본의 식민지 조선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사실상 꾸준한 ‘붐’을 이루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특히 대한제국을 병합한 직후인 1910년대에는 일본에서 조선어 학습열이 급격히 증가했고, 1920년대에는 조선의 언어, 지리, 역사, 민속학에 대한 연구열과 함께 민예, 미술 등 전통문화 및 문화유산에 관한 관심도가 높아지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문학, 연극, 영화, 음악, 무용 등 여러 장르에 걸쳐 식민지 조선의 동시대 예술 장르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크게 증가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조선과 일본 간의 쌍방향적 문화교섭 현상을 규명하여 문화담론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엔카’와 ‘트로트’는 동아시아의 문맥에서 볼 때 서구 음악을 수용하되 전통 음악의 특징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성공적인 대중음악 장르이다. 서구 문화와 동아시아적 전통 사이에서 탄생한 ‘엔카’와 ‘트로트’는 적어도 ‘문화는 일방적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는 서양 음악과 동아시아 대중음악의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엔카’와 ‘트로트’ 사이의 문제에도 적용되는 테제이다. 노래의 역사는 대중의 마음의 역사이다. 마음, 공감, 정서와 같은 것에 대해 이분법적 우열이 있을 수도 없고 따지기도 어려울 것이다. 문화의 전개 과정은 이렇게 단순하지 않고 좀 더 복잡하고 입체적인 양상으로 존재한다. 문화는 사람 간의 직접적인 접촉 혹은 미디어를 매개로 전파되는 것이지만 언제나 창의적으로 수용되고 변용되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다. 그 과정은 크건 작건 쌍방향적 소통의 장을 열어 놓는다.
    본 연구에서는 대중가요 가사의 개별 텍스트와 번역 언어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함께 크게 볼 때는 실제 문화교섭 상황에서 쌍방향적 ‘번역’이 작용했다는 가설을 전제하고 그 검증을 통해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밝혀가고자 한다. 미시적으로 보면 번역은 출발어와 도착어 간의 일방향적 소통 과정이라 할 수 있지만 거시적으로는 문화적 만남으로부터 파생되는 지극히 쌍방향적인 작용의 결과라 아니할 수 없다.
    사실 조선과 일본 사이에 가로 놓인 현해탄(玄海灘)은 당시 문화담론이 생성되고 소비되는 통섭의 공간이었으며, 나아가 혼종적인 문화 주체들이 상호 영향 하에 만들어지는 상생의 공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배와 피지배라는 이항대립적인 관계 구조에 구속되면서도 이에 의해서 규정되지 않는 다양한 주체와 타자들이 교류하던 네트워크 공간이었던 것이다. 여기서는 바로 이러한 현해탄의 상징적인 의미를 구체적인 문화 텍스트를 통해서 고찰하고, 근대 일본과 조선의 문화가 삼투되는 혼종적인 문화 공간으로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문화의 창조적 상호작용을 검증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는 ‘최근 100년간 한일 양국 대중가요에 있어서의 번역’이라는 문제를 다각적으로 검토하려는 시도이다.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대중가요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그것이 가사의 번역이든 멜로디의 변형에 따른 것이든 ‘번역’은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연구의 초기 단계에서는 서양 음악이 일본에 도입된 이후 번역창가와 문부성창가의 성립 및 서양 음악적 감성이 일반에 보급 확대되는 과정에서부터 초기 유행가의 성립 그리고 조선에의 영향 등을 살펴보았다.
    일본 근대 대중가요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에 예기치 않게 레코드 발매 2만 장을 기록하여 일세를 풍미한 <카추샤의 노래>로부터 시작된다. 1914년 문학자 시마무라 호게쓰가 쓴 가사에 그의 제자인 청년 작곡가 나카야마 신페이가 서양 음악의 기법으로 일본 대중의 심정을 멜로디화한 획기적 사건이 있었다. 나카야마는 극단 예술좌의 제3회 공연 톨스토이 원작 『부활』에서 극중에 여배우 마쓰이 스마코가 부르는 <카추샤의 노래>를 작곡한 것이다. 이것이 소위 일본에서의 레코드 유행가 제1호이다. <카추샤의 노래>는 1916년 극단 예성좌의 『부활』 공연을 통해 한국어 가사로 번역되어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도 크게 인기를 얻었는데 이것이 한국 최초의 ‘번역 유행가’이다.
    레코드 발매 수의 면에서 한국 최초의 유행가라 할 수 있는 것은 루마니아의 작곡가 요지프 이바노비치(Iosif Ivanovici)의 왈츠곡 <다뉴브강의 물결> Valurile Dunării에 한국어로 가사를 붙인 윤심덕의 <사의 찬미>이다. 그 외에도 일본의 「철도창가」가 한국에서 「학도가」로 변신했고, 소설 「금색야차」가 「장한몽」으로 번안되었듯이 그 노래 역시 나오자마자 곧바로 번안되었던 사실 등 많은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했다.
    1931년 일본에서 고가 마사오가 작곡하고 후지야마 이치로가 부른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는 단숨에 28만 매를 기록했다. 이들 콤비는 이전 시대와 구별되는 탁월한 음악성과 전기 취입에 적합한 독특한 창법으로 대중들을 매료시켜 레코드가요 시대를 이끌어갔다. 이들의 애조를 띤 멜로디와 함께 눈물과 한숨 등의 소재는 이후에 펼쳐지는 일본 대중가요의 원형을 이루는 요소가 되었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이 곡을 가수 채규엽이 한국어로 번역해서 불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국 최초의 직업 가수이자 1930년대 최고의 인기 가수였던 그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많은 유행가를 취입했다.
    이렇게 볼 때 한국과 일본의 대중음악, 특히 ‘가요곡’ ‘유행가’는 그 뿌리가 같다고 볼 수 있다. 한일 대중의 마음 속에서 수십 년간 애창된 분위기가 비슷하거나 같은 멜로디의 노래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소위 ‘엔카’, ‘트로트’라고 부르는 한일 양국의 전통가요는 늘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온 것이라 할 수 있다.
  • 영문
  • This research is a try that consider a problem as 'translation in the popular songs which are both countries, Japan and Korea, recently for 100 years' from various faces. After Western music was introduced into Japan at the early stage of the study, the Western music-like sensitivity as well as formation of a translation song and songs selected by the Ministry of Education checked formation of an early stage popular song and influence to Korea from the process which generally spreads and expands.
    History of a Japanese modern popular song isn't expected about 100 years before now, and 20,000 of record sale is recorded, and it starts from the< song of> Katyusha which took the world by storm. Youth composer Nakayama Shinpei where I'm his pupil was a technique of Western music in the lyrics man of letters Shimamura Hogetsu wrote in 1914, and the remarkable event which melody-ized sentiment of Nihon University people was here. Nakayama was the 3rd time performance in theatre group Geijutsuza Theater and the "renaissance" of Tolstoy original work, and actress's Matsui Sumako wrote sung< song of> KACHUSHA. This is a 1st number of so-called record popular song in Japan. < song of KACHUSHA> was translated by Korean lyrics through a "recovery" performance in a theatre group performance constellation in 1916, and even colony Korea in those days won popularity big. This is 'translation popular song' at the beginning of Korea.
    They're a popular song at the beginning of Korea and the one by which the one you can say put Korean lyrics on the waltz song of Romanian composer.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최근 100년간 한일 양국 대중가요에 있어서의 번역(飜譯)’이라는 문제를 다각적으로 검토하려는 시도이다.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대중가요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그것이 가사의 번역이든 멜로디의 변형에 따른 것이든 ‘번역’은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연구의 초기 단계에서는 서양 음악이 일본에 도입된 이후 번역창가와 문부성창가의 성립 및 서양 음악적 감성이 일반에 보급 확대되는 과정에서부터 초기 유행가의 성립 그리고 조선에의 영향 등을 살펴보았다.
    일본 근대 대중가요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에 예기치 않게 레코드 발매 2만 장을 기록하여 일세를 풍미한 <카추샤의 노래(カチューシャの唄)>로부터 시작된다. 1914년 문학자 시마무라 호게쓰(島村包月, 1871~1918)가 쓴 가사에 그의 제자인 청년 작곡가 나카야마 신페이(中山晋平, 1887~1952)가 서양 음악의 기법으로 일본 대중의 심정을 멜로디화한 획기적 사건이 있었다. 도쿄음악학교(東京音楽学校)를 막 졸업한 나카야마는 극단 예술좌(芸術座)의 제3회 공연 톨스토이 원작『부활』에서 극중에 여배우 마쓰이 스마코(松井須摩子, 1886~1919)가 부르는 <카추샤의 노래>를 작곡한 것이다. 이것이 소위 일본에서의 레코드 유행가 제1호이다. <카추샤의 노래>는 1916년 극단 예성좌(藝星座)의『부활』공연을 통해 한국어 가사로 번역되어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도 크게 인기를 얻었는데 이것이 한국 최초의 ‘번역 유행가’이다. 그러나 레코드 발매 수의 면에서 한국 최초의 유행가라 할 수 있는 것은 루마니아의 작곡가 요지프 이바노비치(Iosif Ivanovici, 1845~1902)의 왈츠곡 <다뉴브강의 물결> Valurile Dunării(1880)에 한국어로 가사를 붙인 윤심덕(尹心悳, 1897~1926)의 <사(死)의 찬미(讚美)>이다. 그 외에도 일본의 「철도창가」(鉄道唱歌, 1900년)가 한국에서 「학도가」로 변신했고, 소설「금색야차」(金色夜叉)가 「장한몽」으로 번안되었듯이 그 노래 역시 나오자마자 곧바로 번안되었던 사실, 일본의 레코드 유행가 제1호라 할 수 있는 「카츄샤의 노래」(カチューシャの唄, 1914년) 등이 거의 동시적으로 가사까지 그대로 번역되어 불리워진 것 등 많은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했다.
    1930년대 초 일본 콜롬비아사는 작곡가 고가 마사오(古賀政男, 1904~1978)와 성악가 후지야마 이치로(藤山一郎, 1911~1993) 콤비를 기용해 빅터사에 뒤지고 있던 상황을 역전시켰다. 이른바 ‘고가 멜로디’의 출현이다. 1931년 센티멘탈리즘에 젖은 기타 반주를 베이스로 부른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酒は涙か溜息か)>는 단숨에 28만 매를 기록했다. 쇼와 공황, 취직난, 인신매매, 전쟁의 불안을 반영한 이 노래에는 모더니즘의 도시 뒷골목에 존재하는 일종의 짙은 슬픔이 묻어난다. 고가 마사오와 후지야마 이치로의 콤비는 이전 시대와 구별되는 탁월한 음악성과 전기 취입에 적합한 독특한 창법으로 대중들을 매료시켜 레코드가요 시대를 이끌어갔다. 이들의 애조를 띤 멜로디와 함께 눈물과 한숨 등의 소재는 이후에 펼쳐지는 일본 대중가요의 원형을 이루는 요소가 되었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1927년에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 호출부호는 JODK) 이 개국했고 일본과 거의 동시대적인 대중문화의 전개양상이 나타났다. 1931년 일본에서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가 유행하자 1933년 콜롬비아사 소속의 가수 채규엽(蔡奎燁, 1906~49)이 번역곡 <술은 눈물일가 한숨이랄가>를 불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국 최초의 직업 가수이자 1930년대 최고의 인기 가수였던 그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많은 유행가를 취입했다. 고가 마사오는 1911년부터 20년대 초까지 가족과 함께 조선에서 거주한 재조일본인이었다. 청소년기를 조선에서 보내면서 많은 음악적 영감을 얻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볼 때 한국과 일본의 대중음악, 특히 ‘가요곡’ ‘유행가’는 그 뿌리가 같다고 볼 수 있다. 한일 대중의 마음속에서 수십 년간 애창된 분위기가 비슷하거나 같은 멜로디의 노래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소위 ‘엔카’, ‘트로트’라고 부르는 한일 양국의 전통가요는 늘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온 것이라 할 수 있다.한일 양국의 전후 및 1950년대 및 60년대의 대중가요가 생산과 유통, 소비의 면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다르게 전개되었고 서로에 대한 쌍방향적 영향의 양상을 살펴보면서 한편으로는 미국 문화 등 세계적 동시성의 문제를 짚어보았다. 다만 대중가요 자체가 양적으로 증가한 만큼 시대적 상징성을 갖는 노래를 잘 선별하여 분석하고자 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첫째, 대중가요를 비롯한 대중문화의 본격적인 연구에 직접적인 진보를 이룩할 수 있다. 20세기 이후의 문화 현상은 대부분 대중문화와 관련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중문화는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정신사의 일부이며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의미화하는 직접적인 매개이다. 이에 관한 학술 연구는 시대가 진행될수록 더욱 절실히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오락과 흥미의 대상이기만 했던 대중문화 현상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은 대중문화에 대한 새로운 입장을 정립함으로써 인간의 일상을 더욱 풍요롭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둘째, 한국과 일본의 자국 문화연구를 넘어서 광역의 문화연구 다시 말해 동아시아문화권의 대중문화 연구를 열어가는 기초를 다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다른 많은 분야의 연구처럼 대중문화의 연구에 있어서도 국적이 중요했다. 그러나 이제는 대중문화 현상 자체가 초국가적인 현상으로 바로 이해를 해야 할 때이다. 한류 문화를 즐기는 전세계의 젊은이들을 볼 때 이러한 현상은 향후 더욱 가속화 할 것이며 따라서 문화에 대한 좀 더 넓은 지평에서의 이해가 필요한 바, 본 연구는 그러한 방향의 지침을 조금이나마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번역학에 대한 새로운 기여가 기대된다. 지금까지 번역학은 주로 소설 등 문학 장르에 치중된 감이 있으나 대중가요의 가사와 같은 일상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텍스트를 취함으로써 학문의 대상 영역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학문과 생활의 거리를 더욱 좁혀 실제의 언어생활에 의미 있는 연구가 되리라 생각한다.
  • 색인어
  • 대중문화, 대중음악, 한일대중가요, 창가, 가요곡, 트로트, 엔카, 식민지, 번역, 카츄샤의 노래, 사의 찬미,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 황성의 적, 나카야마 신페이, 고가 마사오, 후지야마 이치로, 채규엽, 전수린, 이애리수.
  • 연구성과물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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