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성과물검색
유형별/분류별 연구성과물 검색
HOME ICON HOME > 연구과제 검색 > 연구과제 상세정보

연구과제 상세정보

고려후기 東北面의 지방제도 변화
Change of the local administrative system of the Dongbuk-Myeon(東北面) in the late days of the Goryeo Dynasty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4S1A5A2A01015135
선정년도 2014 년
연구기간 1 년 (2014년 05월 01일 ~ 2015년 04월 30일)
연구책임자 윤경진
연구수행기관 경상국립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영토 확장 과정은 한국사 연구에서 일찍부터 주목을 받았지만, 이는 단순히 일정한 공간을 확보했다는 것만으로 그 이해가 마무리되지 않는다. "확보된 영토를 어떤 식으로 편제하고 운영했는가"라는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이 부분은 일반적인 '영토사'의 관점에서는 소화하기 어려우며, '지방제도사' 연구와 접목되어야 한다.
    북방 개척은 고려시기에 집중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고려시대를 이해하는 키워드로 중시되었다. 따라서 고려 지방제도 연구의 일환으로서 "영토 개척과 편제"라는 주제를 설정할 수 있다. 이것은 영토 개척의 내용과 의미를 구체화하는 동시에 지방제도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동안 고려 지방제도 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토 개척에 따른 제도적 편제 과정은 제대로 조망되지 못하였다. 특히 고려후기 동북 방면의 주진 편제는 아직 연구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다.
    이처럼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연구되지 않은 고려후기 동북 방면의 영토 개척과 지방제도 편제 과정을 분석하여 그 실체를 해명하는 것이 이 연구의 목적이다.
    건국 초기 서북 방면의 개척에 주력하던 고려는 예종대 동북 방면의 여진족을 축출하고 9성을 건설하였으나 1년 만에 돌려주었다. 동북 9성은 단기간에 폐기됨으로써 그 역사적 실체를 알기 어렵게 되었고, 그 구성과 범위를 둘러싸고 현재까지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그 뒤 고려는 몽고와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기존 東北面(東界) 북부의 和州 일대를 상실하였다. 元은 이곳에 雙城摠管府를 두고 직할지로 다스렸다. 고려는 공민왕 5년(1356) 비로소 무력으로 이곳을 수복하였고, 그 여세를 몰아 현 吉州 일대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고려는 이곳에 새로이 州府를 설치해 나갔고, 이 추세는 조선초기에도 이어졌다. 결국 세종 때 4군과 더불어 6鎭을 개척함으로써 압록강-두만강을 기준으로 하는 국경이 확정되었다.
    和州 일대의 상실과 수복, 그리고 그 이북으로의 진출이라는 일련의 과정은 고려초기 서북 방면의 개척과 더불어 우리 역사에서 영토 개척과 지방제도 편제의 역동적 과정을 보여주는 주제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결국 고려후기 동북면에서 진행된 일련의 변화는 고려의 동북 방면 영토 개척이라는 역사적 추세를 종합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방안이 된다. 동북 9성의 개척, 쌍성총관부 설치와 수복, 장성 이북으로의 영토 개척, 그리고 조선초기 6진의 건설에 이르는 역사적 과정을 이해하고 그 구체적인 모습을 제시하는 작업의 첫발로서 이 연구의 필요성이 설정되는 것이다.
  • 기대효과
  • 이 연구의 성과는 관련 분야의 연구를 발전시키는 데 다음과 같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첫째, 그동안 연구의 공백으로 남아 있던 고려후기 지방제도 변화에 대한 구체적인 성과를 이끌어냄으로써 차후 다른 지역에서 진행된 지방제도 변화의 구체적인 이해를 도모할 수 있다. 이 연구는 가장 큰 변화를 보인 동북면 지역을 대상으로 했지만, 여기에서 나타난 변화의 추세는 北界 지역과 5도 일반에 대한 연구로 확장할 수 있다. 또한 州鎭 단위의 개편에서 유도되는 道의 운영체계 변화를 조망하기 위한 기반을 제공할 수 있다.
    둘째,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지방제도 변화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아직도 고려와 조선을 시기적으로 나누어 보는 경향이 짙다. 이로 인해 두 시기의 이해가 단절되는 문제를 낳곤 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조선초기의 체제는 고려의 것을 그대로 유지하는 바탕에서 개편이 모색된 것이었다. 따라서 제반 부문에서 고려말 조선초의 역사는 계기적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방제도는 사회적 기반의 연속성으로 인해 '지속'의 바탕에서 '변화'의 추이를 제시하는 데 효과적이다. 이 연구의 성과는 그동안 영토 확장이라는 단선적 이해를 벗어나 행정체계 편제라는 구조적 관점은 물론, 영토 개척을 뒷받침하는 영토의식의 역사성과 의미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
    셋째, 고려말 長城 이북으로 진행된 영토 개척은 예종대 실행된 동북 9성 개척과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동북 9성은 자료 부족과 후대 인식의 투영 등으로 인해 아직도 그 실체를 구체화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려말의 변화상을 구조적으로 이해함으로써 역으로 그 前史가 되는 동북 9성의 문제를 새롭게 풀어 가는 단서를 얻을 수 있다.
  • 연구요약
  • 이 연구는 시기 구분과 분석 내용에서 크게 두 주제로 나뉜다. 하나는 화주 일대의 상실과 수복에 이르는 시기에 나타난 지방제도 변화를 이해하는 것이다. 쌍성총관부 설치에 따른 州鎭의 南遷과 僑寓 상황, 그리고 쌍성 수복 후 진행된 행정체계 개편 등을 다루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쌍성 수복 후 장성을 넘어 영토를 개척하고 州府를 설치하는 과정을 확인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동북 9성의 경험에서 유도되는 영토의식과 편제 양상이 연결되어 있으므로 이를 함께 고려할 것이다.
    고종 45년(1258) 和州에서 반란을 일으킨 趙暉 등은 이 일대를 장악한 후 몽고에 투항하였다. 몽고는 화주에 雙城摠管府를 설치해 다스림으로써 고려는 화주 일대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하였다. 이곳에 있던 州鎭들은 남쪽으로 내려와 행정기능을 유지해 가게 되었다.
    곧이어 쌍성총관부는 그 영향력을 넓혀 登州 일대까지 관할하였고, 이곳에 있던 주진들마저 추가로 南遷하였다. 원-고려 관계가 안정되면서 고려는 추가로 沒入된 지역을 돌려 받았지만, 처음 몰입된 화주 일대는 그대로 원의 지배를 받았다.
    동북면의 주진들은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일차로 官號의 변동을 겪었다. 기존 관호를 유지한 경우도 있지만, 屬縣으로 재편된 곳도 있었다. 쌍성 수복 후 본거지로 돌아가면서 주진의 관호 변동과 통폐합이 전면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과정은 그동안 5도와 양계로 나뉘었던 고려의 이원적 행정체계가 일원적 체계로 개편되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조선에서는 일원적인 八道體制를 수립하였다.
    {高麗史} 地理志에 정리된 고려말 신설 州府는 정리 형태상 두 가지고 나뉜다. 하나는 동북 9성 연혁에 연결된 것으로서 咸州와 吉州, 福州(端州)가 여기에 해당한다. 다른 하나는 追錄 형태로 말미에 정리된 것으로서 北靑州府와 甲州府가 여기에 해당한다. {고려사} 지리지의 연혁 연결이 일정한 자료적 근거가 있는 것이라면, 이는 동북 9성의 위치와 연혁을 새롭게 설정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제반 문제를 명확하게 이해하려면 먼저 해당 연혁 기사를 면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지리지 연혁 기사는 구체적인 자료에 의거하는 경우도 있고, 자료간의 대비를 통해 설정되는 경우도 있으며, 찬자의 판단, 혹은 의도적인 편집에 따라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각 기사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 검토를 진행할 것이다.
    공민왕대 이후 진행된 고려의 동북 방면 개척은 동북 9성의 경험에서 비롯된 영토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었다. 고려는 고종대에 이미 咸州를 인식하고 있었고, 人口 推刷 과정에서 三撒(北靑), 海陽(吉州) 지역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것은 과거 동북 9성이 설치된 지역으로서 고려가 자신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고려의 영토의식은 공민왕대 쌍성 수복 후 영토 개척을 진행하면서 전면화되었다. 고려는 수복한 화주 일대는 물론 그보다 북방으로 진출하여 端州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이 지역이 본래 고려의 영토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이러한 인식은 조선에도 이어져 영토 개척의 이념적 기반이 되었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이 연구는 고려후기 東北面에서 진행된 지방제도 변화의 내용을 州鎭 단위의 변화를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다.
    和州에서 발생한 반란의 결과로 雙城摠管府가 설치되면서 이곳에 있던 주진들은 남쪽으로 이동하여 다른 군현의 영역 안에 僑郡으로 유지되다가 옛 땅을 수복한 후 본거자로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주진은 그전과 같은 군사적 성격을 잃고 일반 군현과 같은 형태로 관호가 바뀌었으며, 규모가 작은 곳은 통폐합되었다.
    그리고 고려는 장성을 넘어 새로 영토를 개척하여 새로 군현을 설치해 나갔다. 이들은 일부는 고려 중기에 설치된 東北 9城의 연혁을 이어받은 곳도 있고, 새로 설치된 곳도 있었다. 처음에는 군사 거점으로서 萬戶府로 운영되다가 점차 일반 군현으로 전환되어 나갔다.
  • 영문
  • Due to the insurrection that broke out in Hwaju(和州), the Ssangseong Chong’gwan-bu(雙城摠管府) Magistrate was established, and the Jujin areas in the region moved to southern locations, entering realms of other Gun and Hyeon areas as “Gyo-gun(僑郡)” areas. They only returned to their original positions after the old realm was reclaimed. In the process, they lost their primary functions as defensive spots, and became civilian units just as other units were in the southern regions of the Korean peninsula. Their names were changed, and small ones were merged with each other.
    The Goryeo government continued to occupy new regions beyond the borderline, and created new Gun and Hyeon units. Some of them overlapped with the Nine North-eastern Fortresses(“東北9城”) that had earlier been established in the middle period of Goryeo by General Yun Gwan, while some of them were newly annexed and settled. As strategic areas with defensive capabilities, they were operated by the Manho-bu(萬戶府) units for some time, before they were later turned into civilian Gun/Hyeon unit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이 연구는 고려후기 東北面에서 진행된 지방제도 변화의 내용을 州鎭 단위의 변화를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다.
    고종 45년 和州에서 발생한 반란으로 인해 雙城摠管府가 설치되면서 文州 이북의 州鎭들이 남쪽으로 이동하였다. 이들은 다른 군현의 영역 안에 자리하며 행정 기능을 유지하는 僑郡이 되었다. 이어 登州 등이 다시 南遷하였다. 나중에 몰입된 지역은 충렬왕 때 반환되면서 바로 本城으로 돌아갔지만, 처음 몰입된 지역은 공민왕 5년에 무력으로 수복한 뒤에 비로소 돌아갈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州鎭은 그전과 같은 군사적 성격을 잃고 일반 군현과 같은 형태로 바뀌었다. 防禦使와 鎭將이 知州事와 縣令으로 개편되었고, 和州가 牧官으로 승격하고 登州가 副使가 되었다가 다시 知府事로 승격하는 변동도 있었다. 그리고 규모가 작은 주진은 병합되었고, 다른 군현의 屬縣(鎭司)이 되거나 直村으로 폐합되었다.
    고려는 쌍성 수복 후 長城을 넘어 새로 영토를 개척하여 새로 군현을 설치해 나갔다. 이 중 咸州와 吉州, 端州(福州)는 고려 중기에 설치된 東北 9城의 연혁을 이어받았는데, 端州의 읍호가 달라진 것은 당시에 이미 福州라는 읍호가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北靑州府와 甲州府는 이전 연혁이 확인되지 않아 신설 군현으로 ■고려사■ 지리지 말미에 추록 형태로 실렸다. 이들은 처음에는 군사 거점으로서 萬戶府로 운영되다가 점차 일반 군현으로 전환되어 나갔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이 연구의 결과로 고려후기 東北面에서 진행된 州鎭 단위의 행정적 변화를 구체화할 수 있었다. 그것은 주진의 南遷과 僑寓, 官號 변동과 통폐합, 그리고 군현의 신설 등으로 정리된다. 이러한 결과는 다음과 같이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첫째, 고려후기 지방제도 변화에 대한 여타 주제의 연구에 자료적 활용과 연구 시각의 토대로 삼을 것이다. 또한 주진의 변화는 그 상위체계로서 道의 운영체계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道 단위의 변화를 조망하는 토대가 된다.
    둘째,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지방제도 변화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반으로 활용할 것이다. 조선초기의 체제는 고려의 것을 그대로 유지하는 바탕에서 개편이 모색된 것이다. 지방제도는 사회적 기반의 연속성으로 인해 ‘지속’의 바탕에서 ‘변화’의 추이를 제시하는 데 효과적이다.
    셋째, 고려말 長城 이북으로 진행된 영토 개척은 예종대 실행된 동북 9성 개척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아직 논란이 많은 동북 9성 연구의 발판이 될 수 있다, 또한 영토 개척과 州府 설치에 동북 9성에서 연원하는 영토의식이 투영되고 있다고 할 때, 그와 연계된 조선초기 영토의식을 해명하는 매개가 될 수 있다.
  • 색인어
  • 東北面, 雙城摠管府, 僑郡, 東北 9城, 萬戶府
  • 연구성과물 목록
데이터를 로딩중 입니다.
데이터 이용 만족도
자료이용후 의견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