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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연유도기(鉛釉陶器)의 계통과 변천
A Study on Genealogy and Change Process in Lead-glazed ware of the Three Kingdoms Period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4S1A5A2A01015431
선정년도 2014 년
연구기간 1 년 (2014년 05월 01일 ~ 2015년 04월 30일)
연구책임자 이종민
연구수행기관 충북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 제안이유와 의미
    `연유(鉛釉)`란 도자기의 표면에 광택과 강도를 강화시키기 위해 입히는 유약(釉藥) 속에 산화납(PbO)을 넣은 유약을 말한다. 광택을 내는 돌가루가 중심 성분을 이루는 유약 속에 산화납을 포함시키면 도자기를 굽는 가마[窯] 안에서 유약의 용융점은 급격히 떨어져 700~800℃에서도 유약이 녹게 된다. 이 방법은 이미 기원전 10세기경 서아시아에서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한반도에서는 삼국시대에 들어가서야 등장하게 된다. 이렇게 도기[陶器]의 표면에 저화도유약(底火度釉藥)인 연유를 발라 구운 것이 이른바 `연유도기(鉛釉陶器)`이다.
    삼국시대의 연유도기가 갖는 의미는 국내에서 제작된 여러 도자기 중 최초로 유약을 발라구운 도자기라는 점이다. 당시에는 아직까지 높은 온도에서 유약을 녹이기 위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연유를 발랐을 때의 장점은 유약을 바르지 않은 일반 도기(흔히 토기라고도 부름)에 비해 광택이 강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며, 도기의 태토[점토]가 물기를 흡수하는 것을 차단해 주는 역할을 한다는데 있다. 또 그 결과물은 금속성의 느낌이 강하여 마치 금 ․ 은기를 대체하는 효과를 유도하기도 했었으리라 짐작한다. 그러나 반드시 중금속의 폐해가 뒤따라 당시에는 음식기로 사용했을 경우 납중독에 의한 문제도 분명히 야기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 현황과 필요성
    현재까지 많은 고고학적 발견을 통해 백제지역, 신라지역에서는 연유도기가 발견되었다. 이들 연유도기들은 지금까지의 관찰에 의하면 특정한 일부 그릇[器種]을 중심으로 제작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연유도기의 발견지는 특정한 지역을 중심으로 수집되는 것도 목도된다. 따라서 연유도기는 삼국시대에 `특정한 계층을 대상으로 특수한 목적을 위해 제작된` 도기임이 틀림없다. 이들이 발견되는 수량이 적지 않은 것을 볼 때, 연유도기는 매우 체계적인 시스템에 의해 기술개발이 이루어지고 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시대의 `연유도기`에 대한 학계의 특정한 관심은 현재까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인용할만한 관련 논문의 수가 거의 없다는 것이 이를 반증해주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고고학자들의 관심이 다른 영역이나 분야에 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본 신청인은 이에 주목하여 연유도기에 대한 학술적 접근을 시도하고자 한다.
    ■ 연구목적
    연유도기를 연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유약의 화학적 성분분석, 기술적 계통, 형태분석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화학적 성분분석은 상당한 비용이 소용되는 관계로 현실적인 접근이 가능한 연구영역을 선택하려 한다. 우선은 전국에서 학술적으로 보고된 자료들을 조사하여 실견하고, 삼국시대의 연유도기가 어디서 주로 발견되며 어떤 기형을 중심으로 제작되었는지를 파악하겠다. 이는 연유도기가 일반 도기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소비의 계층성은 어떤지를 알려주는 자료가 될 것이다. 또 유약의 중심 정색제(呈色製) 파악은 삼국 각 국간에 제작된 기종의 차이와 함께 계통성을 구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 중국 남북조시대의 연유도기와 비교하면 이것이 어디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도 추측이 가능하다.
    본 연구에서는 기초자료 분석을 활용하여 `삼국시대의 연유도기가 어떠한 계통에서 출발하여 어떤 방향으로 변모해 나갔는지를 밝힐 것이며, 시기별 ․ 국가 간에 제작된 기종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파악`할 것이다. 이 결과는 삼국시대에 각 국가 간에 앞 다투어 제작한 연유도기가 왜 만들어졌는지를 밝히는데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
  • 기대효과
  • ■ 학문적 기여도
    ① 삼국시대 도기발달사의 공백부분 해결
    - 연유도기는 분명 삼국시대 귀족층의 전유물이었을 것이다. 그 증거는 삼국의 수도와 더불어 익산 지역과 같은 수도에 준하는 도시에서 연유도기가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학술적 관심도는 매우 낮아 변변한 논문 한편조차 없는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이 연구를 통해 연유도기에 대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인 아니겠지만 분명 도지제작사의 한 축을 담당하는 연구가 가능해 짐으로 해서 균형감 있는 연구 성과와 함께 추가적인 연구가 가능해 질 것으로 기대한다.
    ② 추가적인 파생연구 가능
    - 연유도기는 원래 유약성분에 대한 화학적 연구가 기본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토대로 기술적인 연원과 계통의 추정이 가능하게 때문이다. 본 연구가 가능하다면 다음 단계는 융합연구를 통해 통일신라 연유와의 관계, 중국 남북조, 당대 연유도기와의 관계 설정이 가능해 질 것이며, 크게는 동아시아 연유도기(당삼채, 나라삼채 등)의 비교연구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한다.
    ■ 교육적 기여도
    ① 전공 학생들의 수업자료 활용
    - 본 신청자는 대학원에서 전공학생들을 많이 교육시키고 있다. 학부에서도 전공과 관련한 과목이 개설되어 심도 있는 강의를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본 연구의 결과는 삼국시대 도자를 강의하는 과정에서 강의 자료로 쓰임은 물론, 삼국시대의 도자유물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여 결과적으로는 전공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데 기여를 할 것이다.
    ② 발굴현장의 유물파악에 도움
    - 지금까지 각 박물관, 발굴조사 기관에서는 발굴조사를 통해 연유도기가 수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 조사인력의 무관심과 연구자료의 미비로 인해 연유도기를 서술과정에서 빼거나 간략하게 기술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향후 연구결과를 통해 연유도기의 실체가 밝혀진다면 발굴현장에서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을 확신한다.
  • 연구요약
  • ■ 연구목표(연구목적 달성을 위한 세부목표)
    ① 백제, 신라, 고구려(알려진 연유도기만 포함) 지역에서 출토된 연유도기의 유형을 파악한다.
    - 기종, 기형의 분석과 유약의 계통 확인. 각 나라마다 특정 기종의 선호도 확인
    ② 출토지역과 출토유적의 성격을 파악한다.
    - 소비계층의 문제, 제작지역의 추정
    ③ 중국 남․북방의 연유도기와 비교한다.
    - 삼국시대 연유도기의 계통성과 영향관계 확인
    ④ 시기별 연유도기 기형의 변천과정을 파악한다.
    - 개시단계부터 발전단계에 이르는 연유도기의 변천과정을 단계별로 추적
    ⑤ 최종적으로 삼국시대에 어떠한 이유에서 연유도기가 제작되었는지를 밝힌다.
    - 연유도기가 삼국시대 도기의 한 축을 이루게 된 배경파악
    ■ 핵심 연구내용 / 구상목차(조사 자료의 수용상태에 따라 연구 방향 일부 수정가능)
    1. 머리말 / 개념, 연구사, 연구목적, 연구방법, 연구범위, 의의, 한계
    2. 삼국시대 유적출토 연유도기의 기술적 ․ 조형적 특징
    1) 기술적 특징 / 삼국 간 유약배합의 특징, 시유방식의 특징, 번조방식의 특징
    2) 조형적 특징 / 삼국 간 주요 기종의 특징과 의미
    3. 삼국시대 연유도기의 계통문제
    1) 연원과 제작시기 / 각국에서 연유도기가 시작된 초전단계 확인
    2) 중국 남북조시대 연유도기와의 비교 / 중국 남방, 북방의 연유도기 특징과 삼국의 연유도기 비교
    4. 삼국시대 연유도기의 변천과정
    1) 도입기 / 도입기의 유약상태와 주요기종, 주요기형. 삼국간의 차이 확인
    2) 양산기 / 양산기의 유약상태와 주요기종, 주요기형. 삼국간의 차이 확인
    5. 삼국시대 연유도기의 도자사적 의의 / 기록을 통해 연유가 갖는 의미, 금속기와의 비교를 통해 대체품으로서의
    가능성 타진, 기술력 확보가 당대와 후대에 미친 영향 등
    6. 맺음말 / 요약 정리
    ■ 연구방법
    <유물실견>
    ① 1차로 보고서를 활용하여 관련자료 기초조사
    ② 해당유물 확인 후 협조를 통해 해당기관 방문조사
    ③ 유물확인 후 기록, 사진, 도면 확보
    <문헌자료조사>
    ① 중국 박물관 자료와 발굴기관자료 등에서 연유도기의 제작과 출토사례 확인
    ② 사료발췌를 통해 연유도기의 옛 명칭과 제작과정을 추측할 수 있는 단서 확인
    ③ 고구려 지역의 발굴조사 유물 보고서로 확인
    <자료분석>
    ① 삼국의 나라별 출토사례를 일정한 양식에 의거하여 제작상태, 번조상태, 기종, 기형 분석 기록
    ② 시기마다 유약, 기종의 차이점 분석 기록
    ③ 연유도기의 유입 추정 기록 분석
    <서술>
    ① 본문 Ⅱ, Ⅲ, Ⅳ, Ⅴ장 서술 후 유사전공자를 통해 서술상의 문제점 자문
    ② 수정 보완 후 원고 완성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의 목적은 삼국시대 각 국에서 제작된 鉛釉陶器의 계통과 제작된 器種이 무엇이고 기술적 淵源이 어디로부터 유래한 것인지를 밝히고자 한 것이다.

    고구려에서는 황녹, 황갈색의 연유도기가 생산되었다. 고구려의 연유는 정색제로 산화철(Fe2O3)을 사용하였으며 산화염 상태에서 燒成하였다. 생산된 주요 기종은 4~5세기에 제작된 접시, 항아리, 사이호(귀가 네 개 달린 항아리) 등이며 주로 무덤에서 발견된다. 형태적인 특징은 일상 생활용기와 특별히 다르지 않다. 기술적 연원은 漢代에서 北魏로 이어지는 중국 북방 중심의 연유기술이 정착하면서 고구려에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는 녹색계열의 연유도기[綠釉]를 생산하였다. 녹유는 정색제로 산화동(Cu0)을 활용하였고 역시 산화염 상태에서 구워 완성하였다. 녹유를 입힌 백제도기로는 기대(그릇받침), 병, 잔탁, 와당 등이 있으며 무덤, 주거지 등에서 다양하게 발견된다. 생산된 그릇의 종류로 파악할 때 백제의 경우는 祭器, 건축자재 등의 용도로 만든 것이 분명하다. 백제의 연유기술은 6세기 후반 경 사비시대에 와서야 구현되었으며 北齊, 北周와 같은 北朝와의 영향 속에서 유입된 것으로 판단된다.

    신라는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황갈색계열의 연유도기를 생산하였다. 현존하는 유물의 양식적 특징으로 판단하면 그 시기는 빨라야 7세기 초반 경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 근거로는 경주나 일본 등지에서 발견되는 초기 인화문이 표현된 유물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신라 연유기술의 연원은 唐으로 추정되며, 통일 이후 연유도기가 유행하는 배경을 이루게 되었다.
  • 영문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larify the genealogy of the Lead-glazed wares [LGW] and the kinds of LGW in the Three Kingdoms period, so to clarify the technical origin of LGW.

    In Goguryeo Dynasty the yellowish green LGW or the yellowish brown LGW were produced. The Goguryeo LGW were made of the material of the iron oxide(Fe2O3) and were baked in the oxidized flame. The kinds fo LGW were the dishes, the jars, the four-eyed pots and etc. which were discovered at the tombs. The characteristics of them were not different from the daily wares. It was supposed that the technical origin was the north Chinese technic of LGW, which was influenced from Beiwei(北魏), Han(漢) Dynasty.

    In Baekche Dynasty the green LGW were produced. The Baekche LGW were made of the material of the bronze oxides(CuO) and were baked in the oxidized flame. The kinds of Baekche LGW were the saucers of wares, the bottles, the cups, and the designed roof tiles etc. which were discovered at the tombs and the residential areas. It was supposed that the technics of LGW was realised in the late 6th century of the era of Sabi(泗沘), the technical origin of Baekche LGW was influenced from the north Chinese Bei-Je(北濟), Bei-Zhou(北周) Dynasty.

    In the Shilla Dynasty the yellowish brown LGW were produced like the Goguryeo Dynasty. Judged from the existing relics, it was supposed that the period of LGW was the early 7th century era as early as possible. The clues of it was the relic of the early pottery stamped design that was discovered in Gyongju or Japan. It was supposed that the technical origin of LGW was the Tang Dynasty of China. After the unification of Korean Penisula the green LGW were popular.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의 목적은 삼국시대 각 국에서 제작된 鉛釉陶器의 계통과 제작된 器種이 무엇이고 기술적 淵源이 어디로부터 유래한 것인지를 밝히고자 한 것이다.

    고구려에서는 황녹, 황갈색의 연유도기가 생산되었다. 고구려의 연유는 정색제로 산화철(Fe2O3)을 사용하였으며 산화염 상태에서 燒成하였다. 생산된 주요 기종은 4~5세기에 제작된 접시, 항아리, 사이호(귀가 네 개 달린 항아리) 등이며 주로 무덤에서 발견된다. 형태적인 특징은 일상 생활용기와 특별히 다르지 않다. 기술적 연원은 漢代에서 北魏로 이어지는 중국 북방 중심의 연유기술이 정착하면서 고구려에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는 녹색계열의 연유도기[綠釉]를 생산하였다. 녹유는 정색제로 산화동(Cu0)을 활용하였고 역시 산화염 상태에서 구워 완성하였다. 녹유를 입힌 백제도기로는 기대(그릇받침), 병, 잔탁, 와당 등이 있으며 무덤, 주거지 등에서 다양하게 발견된다. 생산된 그릇의 종류로 파악할 때 백제의 경우는 祭器, 건축자재 등의 용도로 만든 것이 분명하다. 백제의 연유기술은 6세기 후반 경 사비시대에 와서야 구현되었으며 北齊, 北周와 같은 北朝와의 영향 속에서 유입된 것으로 판단된다.

    신라는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황갈색계열의 연유도기를 생산하였다. 현존하는 유물의 양식적 특징으로 판단하면 그 시기는 빨라야 7세기 초반 경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 근거로는 경주나 일본 등지에서 발견되는 초기 인화문이 표현된 유물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신라 연유기술의 연원은 唐으로 추정되며, 통일 이후 연유도기가 유행하는 배경을 이루게 되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목차]
    Ⅰ. 머리말
    Ⅱ. 삼국시대 연유도기의 조형적 특징과 제작시기
    1. 고구려 연유도기의 조형과 제작시기
    2. 백제 연유도기의 조형과 제작시기
    3. 신라 연유도기의 조형과 제작시기
    Ⅲ. 삼국시대 연유도기의 기술적 특징과 계통
    1. 고구려의 연유기술과 계통
    2. 백제의 연유기술과 계통
    3. 신라의 연유기술과 계통
    Ⅳ. 연유도기의 성격
    Ⅴ. 맺음말

    [연구결과 요약]
    고구려의 경우 연유도기는 극히 한정된 기종이 확인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는 盤, 壺, 耳杯, 시루, 솥, 화덕, 四耳長頸壺, 四耳壺 등이 알려져 있다. 이들이 발견되는 곳은 주로 무덤유적으로써 장사를 지내는 용도, 혹은 부장용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도기가 발견되는 지점은 集安의 麻線溝 1호묘, 七星山 96호묘, 禹山下 41호묘, 撫順前屯 및 洼渾木의 무덤군 등과 大同郡 土浦里 大冢 등이다. 이들 지역은 고구려의 수도가 있었던 주변의 무덤들로써 국내성시대와 427년 장수왕이 수도를 평양으로 옮긴 이후에도 연유도기가 제작되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증거가 된다. 현재까지의 예로 볼 때 고구려의 연유도기는 4~5세기경에 집중적으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백제의 연유도기는 주로 사비기에 집중 생산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사비기에 생산된 연유도기의 기종으로는 器台, 長頸甁, 잔과 盞托, 臺付碗, 壺, 벼루, 서까래기와, 불상 등이 있으며 부여와 익산, 나주 등 사비시대의 수도나 중심도시에서 확인되고 있다. 연유도기가 발견되는 유적의 성격은 백제의 왕실관련 건물지나 사찰, 거점지역의 무덤 등으로 최상위층이 소비대상이었음을 알게 해준다. 사비기는 538년~660년 사이로 이 시기는 중국도자의 수입이 활발해지고 한쪽에서는 수입대체품으로써 중국자기를 번안한 토기들이 생산되고 있었다. 시기적으로 보면 고구려보다 1세기 늦은 시점에 왕성한 연유도기를 생산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에서 연유도기는 현재까지 지방 분묘와 경주 나정에서 출토된 예가 알려져 있다. 출토 기종으로는 고배, 대부완, 대부발, 장경호, 뚜껑, 기대 등이며 특이한 것은 초기 印花文이 시문되어 있다는 점이다. 인화문의 소재는 음각의 삼각집선문과 인화의 이중원문을 결합한 문양, 순수한 인화기법의 圓文류와 花文 등이 표현되었으며 당시에 제작되었던 無釉의 신라도기와 유사한 형태를 지닌다. 신라에서 연유도기가 제작된 시점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적은 편이지만, 기형의 양식과 문양의 변천과정으로 파악할 때 연유도기의 제작시점은 7세기 1/4분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렇게 본다면 신라의 연유도기 생산시점은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늦은 시점에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연유기술을 전해주었던 나라도 이들 국가와 달랐을 가능성이 높다.

    고구려의 연유도기는 황록색, 황갈색의 연유가 시유되어 있는 것들이 포함되어 다. 현재 알려진 연유도기의 유물관찰 결과 전면시유가 아닌 부분시유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전면시유를 할 경우 유약과 가마의 바닥이 들러붙어 불량이 발생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연유의 유색이 황록, 황갈색을 띠는 이유는 정색제로 사용된 금속산화물질의 핵심이 산화철(Fe2O3)이었기 때문이다. 산화철은 자연에서 채취할 수 있는 가장 흔한 발색제로 번조방식에 따라 여러 가지 색을 보인다. 고구려의 연유도기들은 가마에 도기를 재임한 후 번조하는 과정에서 산화염으로 번조한 듯하다. 연유기술은 고구려가 독자적으로 습득한 기술이 아니었다. 고구려의 외교관계는 북조, 남조를 가리지 않으나 당시 중국의 연유기술은 北朝계열의 왕조였다. 고구려와 외교관계를 갖고 있었던 나라는 北魏였으므로 漢代의 도자문화를 계승하고 있던 북위의 연유기술이 고구려에 접목되었다고 판단된다.

    백제의 연유도기는 녹유계통으로 산화동을 정색제로 활용한 것이다. 백제는 전통적으로 중국 남북조시대의 남조계통 왕조들과 교류를 하였다. 그러나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의 인물도용, 부여와 익산에서 발견된 첩화기법에 의한 청자항아리편 등은 중국의 북조와의 관련성을 추측하게 해주며 시간상으로 볼 때 북제, 북주와 같은 곳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신라의 연유도기는 황갈색조를 띠는 경우가 많아 정색제로 산화철(Fe2O3)을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는 진평왕 43년(621)부터 당에 꾸준히 사신을 보내 조공하면서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였다. 신라말기에 보이는 연유도기들은 이 시점에 받아들인 새로운 시유기술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연구결과 활용방안]
    1. 학부, 대학원 수업과정의 자료 활용
    2. 삼국시대 도기발달사의 공백부분 해결
    3. 추가적인 파생연구 가능





  • 색인어
  • 연유도기, 황갈유, 녹유, 정색제, 매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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