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이론가들은 시민 참여에 대해 그 자체로 가치있고 권장되어야 할 덕목으로 간주하지만, 참여정도가 정치안정에 미치는 영향은 성격이 다른 문제이다. 최근 들어 참여의 하락과 불평등을 우려하는 시각이 많지만, 한 세대 전만 해도 폭증하는 정치참여가 가져올 통치불 ...
정치이론가들은 시민 참여에 대해 그 자체로 가치있고 권장되어야 할 덕목으로 간주하지만, 참여정도가 정치안정에 미치는 영향은 성격이 다른 문제이다. 최근 들어 참여의 하락과 불평등을 우려하는 시각이 많지만, 한 세대 전만 해도 폭증하는 정치참여가 가져올 통치불능 상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이러한 논의는 참여의 양적인 측면에만 초점을 맞출 뿐, 참여의 질적인 측면은 간과하고 있다. 본 연구는 참여양식(modes of participation) 간의 연계와 배분에 주목함으로써 정치참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한다. 대부분의 기존연구는 개인적 변수(성별, 교육, 소득, 종교, 지역 등)와 정치제도(권력구조, 선거의 비례성, 선거구 크기), 정당체제(유효정당수, 경쟁양식)와 같은 맥락적 변수들이 각각의 참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 왔다. 이와 달리, 우리는 참여간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서, 비제도적 참여에 열성적인 사람은 제도적인 참여에도 그러한지 규명하고자 한다. 자원이론(resource theory)에 따르면, 소득이나 교육수준과 같은 사회경제적 위치가 참여수준을 결정한다. 사정이 나은 사람일수록 참여에 필요한 지식․정보가 많고 소통능력도 높아서 시민적 기술(civic skill)이 뛰어나다. 이런 관계는 모든 참여양식을 가로질러 일관되게 나타난다. 반면, 갈등이론(conflict theory)에서는, 참여의 동기를 불만(grievance)에서 찾는다 . 참여를 자극하고 봉기를 낳을 수도 있는 불만은 사회적 약자들 사이에 쌓이기 마련이므로, 자원이 없기 때문에 참여에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반된 이론적 예측을 모두 충족할 수 있는 방안으로, 우리는 자원, 동기, 정향이 정치참여에 미치는 조건적 영향(conditional effect)을 밝혀내려는 것이다. 정치효능감 연구에서 제도적-비제도적 참여가 분기할 가능성을 열어둔 바 있다. 갬슨에 따르면, "높은 정치효능감과 낮은 정부신뢰의 결합이 동원을 위한 최적의 조건이며, 이럴 때에 사람들은 영향력 행사가 가능할 뿐 아니라 필요하다고 여기게 된다". 이러한 '불신-효능감 가설'(mistrustful-efficacious hypothesis)을 적용하면이 제도적 참여는 낮지만, 비제도적 참여는 높은 '비순응적 반대자'가 있을 수 있다. 자원이론에 따르면, 제도적-비제도적 참여는 동조하지만, 갈등이론에서는 이러한 반대자 유형이 도출된다. 서구에서는 1970년대 이래로 투표율이 하락하는 동안 비제도적 참여가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과거에는 이러한 반대자들이 늘어나면 정부 정통성에 대한 부정이 높아지므로, 민주주의의 위험징후로 여겨졌다. 이제는 전반적인 교육수준의 상승과 인터넷․SNS 등의 활성화로 계몽된 시민들이 늘어남에 따라, 비제도적 참여에 나서는 시민에 대해 ‘불신하는 민주주의자들’(distrusting democrats)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민주주의를 위협하기는커녕 정부의 책임성을 제고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이러한 논리가 신생민주주의에도 적용되는지 평가하게 될 것이다. 위의 유형론에 입각해서 신생민주주의 국가에서 '반대자'의 정치적 태도를 밝혀야 할 것이다. 민주제도에 적대적인가, 긍정적인가, 다른 유형에 비해 불만의 강도가 높은가 하는 질문들에 답하고자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반대자’를 늘리는 외생적(exogeneous) 조건으로 경제적 불평등에 주목한다. 경제적 불평등이 높을수록 제도적 참여에서 이탈하고, 비제도적 참여에 가담하는 ‘반대자’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이러한 가설을 통해서 경제 불평등이 정치참여를 낮춘다는 최근의 발견과 경제 불평등이 정치 불안정을 확대한다는 고전적 통찰이 논리적인 정합성을 갖게 된다. 즉, 경제불평등이 심화하는 동안, 투표장에 나타나지 않는 하층계급은 목소리를 잃어버린 것처럼 비치지만, 비제도적 참여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투표참여에는 개인적 변수만이 아니라 집합적 수준의 제도나 환경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므로, 위계적 선형모형(hierarchical linear model)을 통해서 추정한다. 이러한 분석을 위해서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 Survey: WVS)와 선거체제비교연구(Comparative Study of Electoral System: CSES), 세계은행(World Bank)과 펜실베니아대학이 구축한 Penn World Table을 활용한다. 한국에서 투표율 연구는 주로 자원이론을 적용하는 데에초점이 맞춰졌는데, 사회경제적 위치(SES)에 따른 참여불평등이 나타나는지를 검토해 왔다. 대부분의 경험적 발견은 연령을 제외하면 투표참여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설문자료에는 투표에 대한 과다응답(over-reporting)이 지나쳐서 정확한 추정을 가로막는다. 우리는 집합자료를 활용하여 불평등이 정치참여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