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형단계의 연구주제는 “남한과 북한의 마음체계 비교연구”다. 1단계 주제인 “접촉지대와 마음체계의 통합”에 대한 연구의 결과, 남북한의 접촉지대에서 나타난 갈등과 협력은 한반도 분단 이후 남한과 북한이 독립적으로 형성해 온 마음체계에 대한 심층연구를 통해 ...
중형단계의 연구주제는 “남한과 북한의 마음체계 비교연구”다. 1단계 주제인 “접촉지대와 마음체계의 통합”에 대한 연구의 결과, 남북한의 접촉지대에서 나타난 갈등과 협력은 한반도 분단 이후 남한과 북한이 독립적으로 형성해 온 마음체계에 대한 심층연구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형단계의 비교연구의 목적은 남북한 통일과 사회통합이란 목표를 위해 남북한 두 사회에 형성되어 있는 마음체계를 총체적으로 재구성하여, 마음체계가 어떤 ‘주체들’을 생산하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북한의 마음체계 연구는, 은유적으로 ‘마음의 지질학’(geology of mind)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다. 접촉지대의 연구에서 잠정적으로 확인한 북한적 마음의 지층구조는, 기저에 한반도라는 지리적 조건들—지정학적, 지경학적, 지문화적 조건들—에 기초한 한(韓) 민족의 마음과 그 위에 각기 다른 역사적 기원을 가지는 분단/사회주의 마음, 탈분단/체제전환의 마음 그리고 개별 사건들과 인간들의 마음 등이 퇴적된 중층적 형태를 띠면서 하나의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 지층구조는, 프랑스의 아날학파(Annales)가 제시한 세 가지 역사학의 시간개념—장기지속(longue durée), 주기적 국면(conjoncture), 개별적 사건—과 그 시간구분에 기초하여 개념화한 집합적 마음의 구조화된 질서인 ‘집단심성’(mentalité)을 떠올리게 한다. 북한의 마음체계에 적용해 본다면, 한민족의 마음은 장기지속적 시간을, 분단/사회주의 마음과 탈분단/체제전환의 마음은 국면의 변화를 반영하는 사회사적 시간을, 북한주민이나 탈북민의 마음은 각각 개별적 시간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주민의 집단심성은 이 시간들의 집합들을 가로지르며 형성된다.
무관계적으로 보이는 마음조차 자아 내부의 산물이지만 자아의 외부적 맥락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고, 외부 세계에 표현될 때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마음의 한 구성요소가 외부의 ‘타자’를 통해 자신을 규정하며 자신(self)과 타자(other)의 경계를 긋는 과정에서 만들어질 때, 이 경계가 사회과학적 의미에서 “나는 또는 우리는 누구인가”를 결정하는 정체성(identity)을 생산한다.
마음의 ‘체계’(system)란 개념을 사용하는 이유는, 다양한 마음‘들’이란 구성요소가 상호작용하며 만들어내는 집합적 관계특성에 주목하기 위해서다. 마음이 성(性), 정(情), 의(意), 지(志)를 모두 포괄한다고 할 때, 마음의 활동은 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하며, 이해하고, 사용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또한 ‘정보처리체계’(information processing system)일 수 있다. 이 정의에 기초하여 우리는 성, 정, 의, 지를 구성요소로 하는 구조화된 질서인 마음체계가 “주체를 만들어내는 담론적 혹은 비담론적 요소들의 네트워크”로 기능한다고 생각한다. 기능주의적 시각에서 마음이 ‘하는 일’은 주체의 호명이기 때문이다.
이 이론적 기반에 입각한 북한적 마음체계의 지층구조에 대한 지질학적 탐사는 두 방향으로 진행된다. 첫째, 각 지층형성의 기원을 찾는 마음의 역사학이다. 특히 사회사적 시간범주를 담지하고 있는 분단/사회주의 마음과 탈분단/체제전환의 마음이 왜 그리고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라는 질문에 답하는 작업이다. 분단/사회주의 마음이 남한이란 타자와의 경계짓기를 통해 형성된 것이라면, 탈분단/체제전환의 마음에서는 북한 스스로가 타자화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두 마음의 형성과정은 차이를 보인다. 마음의 표현이 이루어져야 그 마음의 지층을 추론할 수밖에 없다고 할 때, 정치, 경제, 사회, 사회심리 등의 분야에서 마음을 표현하는 다양한 언어적, 비언어적 매개체들을 통해 마음체계의 기원과 ‘원형’(prototype)을 찾는 연구를 수행할 것이다.
둘째, 북한적 마음체계는 서로 기원을 달리하는 다양한 마음들이 접합(articulation)되어 있는 복합체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동시에 서로 모순되는 마음들이 갈등하며 탈구(disarticulation)되고 있는 구성체이기도 하다. 1단계 접촉지대 연구에서 우리는 북한적 마음체계 내부에서 접합과 탈구를 동시적 과정으로 만드는 변수들이 ‘공간적 효과’(spatial effects)와 ‘결정적 사건’(critical incident)임을 발견했다. 공간적 효과가 결정적 사건과 결합될 때, 마음체계의 탈구가 현저하게 드러난다.
중형단계에서는 각 년차의 연구주제를 사회문화, 정치, 경제, 사회심리 등의 각 수준들(instances)로 분리하여 각 수준에서 형성된 마음체계를 검토할 것이다. 각 수준별로 배치되어 있는 주제의 다양성처럼, 본 연구의 방법론 또한 다원적 성격을 가진다. 현장연구, 암묵적 연합검사, 설문조사, 텍스트 분석, 관객분석, 결정적 사건분석 등의 방법을 결합하여 사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