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9세기 중후반의 일본이 안고 있었던 위기의식(배외사상, 경계심)의 실태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당시 문제시되었던 ‘신라해적’과 당해문제를 해결하는 가운데서 위력‧효험을 발휘한(혹은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 ‘신(神)’, ‘불(佛)’에 초점을 맞춘다 ...
본 연구는 9세기 중후반의 일본이 안고 있었던 위기의식(배외사상, 경계심)의 실태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당시 문제시되었던 ‘신라해적’과 당해문제를 해결하는 가운데서 위력‧효험을 발휘한(혹은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 ‘신(神)’, ‘불(佛)’에 초점을 맞춘다. 일본열도 속에서 특정한 ‘신’, ‘불’이 ‘진호(鎭護)’의 논리와 어떻게 연결되어 가는지, 또 그 가운데서 ‘신라해적’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고찰해나가는 것이다.
9세기 일본의 대외인식, 그 가운데서도 對신라인식에 대해서는 마크로적인 흐름을 중시하는 경우, 선행연구들이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이 ‘배외사상(排外思想)’, ‘경계의식(警戒意識)’, ‘신라(인)에 대한 적시(賊視)‧적시(敵視)’, ‘긴장관계’ 등으로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거시적 분석방법으로는 ‘긴장관계’, ‘배외사상’, ‘경계의식’, ‘적시(賊視), ’적시(敵視)‘가 생겨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나 배경을 면밀히 설명하기 힘들다. 사적 전개의 역동성을 고려하면서 미크로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외인식을 생각할 때에도 시기차(時期差)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본 연구에서 시기를-9세기 중후반으로- 어느 정도 한정하여 고찰하고자 하는 것도 그와 관계가 있다.
위기의식의 표출에 관해서는 죠간연간(貞觀年間)의 여러 사정이 대단히 주목된다. 우선 ‘신국일본(神國日本)’의 성립과 관련지어 생각해보자. 이미 여러 논자에 의해 지적되고 있는 것처럼, 죠간연간의 지배층이 이세신궁(伊勢神宮), 이와시미즈 하치만구(石清水八幡宮), 그리고 큐슈의 주요 신사에 폐백을 바치고, 국가 내지 왕권의 안녕을 기원하는 모습으로부터 일본을 ‘신국’으로 보는 사상이 확인된다. 구체적인 예로는 『일본삼대실록』에 보이고 있는 ‘고문(告文)’을 들 수 있다. 고대 일본의 조정은 국가가 직면한 곤란하면서도 중요한 현안이 있을 때마다 그 내용을 여러 신사 및 산릉에 고하고 ‘신’의 힘에 귀의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다. 한편, 같은 죠간연간에 행하여진 ‘태원수법(太元修法)’도 주목을 끈다. 입당승려 죠교(常曉)에 의해 당에서 전래되었다고 하는 불교(밀교) 수법 가운데 하나인 ‘태원수법’을 행함으로써 다양한 문제를 해소·타개해나가려고 했던 것이다. 이로부터는 ‘불’의 힘에 의지하여 ‘인국적난(隣國賊難)’에 맞선다고 하는 인식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지금까지는 죠간연간에 이루어진 ‘신’, ‘불’에 대한 기도가 대외문제, 그 가운데서도 특히 ‘신라해적’으로 표상되는 신라문제를 의식한 것이라 생각되어 왔으나, 본 연구에서는 열도사회 내부의 각종 재이(災異)에 의해 고양된 위기감이 ‘신’, ‘불’이라는 사상적 기재를 통하여 신라에 대한 배외의식으로 나타났으며, 그 흐름 속에서 신라해적사건이 강조되게 된 측면을 상세히 분석할 예정이다. 또 죠간연간(구체적으로는 죠간11년=서력 869년)의 신라해적사건이 당시 조정이 직면하고 있던 여러 국내 상황에 강하게 규제되었으며, 일종의 지배 이데올로기로써 도구화되어가는 역사적 경위에 대해서도 고찰하려고 한다.
기존의 연구들이 9세기 일본의 대외자세가 전환되어 가는 현상을 신라 내지 내항신라인들의 동향 등 ‘외적 계기’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해왔다면 본 연구에서는 대외인식의 주체인 열도 내부 상황에 착목하여 당시 국가 내부에서 발동하고 있던 ‘내적 계기’를 통해 형성·전개된 측면이 강하다는 사실을 구조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이로써 ‘9세기 일본과 신라는 긴장관계에 있었다’, ‘9세기에 진입하면서 일본과 신라의 관계가 악화되었다’는 도식적 설명방식의 재고를 도모하고, 동시에 당시 기록에서 보이는 신라(인)에 대한 적개심이 가지고 있는 본질을 구명하는 것, 그것이 본 연구가 필요한 이유이자 본 연구가 목표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