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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羅海賊과 國家鎭護의 神‧佛에 관한 연구
Research on God and Buddha that protected the state from Silla pirates in the 9th century Japan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시간강사지원사업
연구과제번호 2014S1A5B5A07042509
선정년도 2014 년
연구기간 1 년 (2014년 09월 01일 ~ 2015년 08월 31일)
연구책임자 정순일
연구수행기관 명지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는 9세기 중후반의 일본이 안고 있었던 위기의식(배외사상, 경계심)의 실태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당시 문제시되었던 ‘신라해적’과 당해문제를 해결하는 가운데서 위력‧효험을 발휘한(혹은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 ‘신(神)’, ‘불(佛)’에 초점을 맞춘다. 일본열도 속에서 특정한 ‘신’, ‘불’이 ‘진호(鎭護)’의 논리와 어떻게 연결되어 가는지, 또 그 가운데서 ‘신라해적’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고찰해나가는 것이다.
    9세기 일본의 대외인식, 그 가운데서도 對신라인식에 대해서는 마크로적인 흐름을 중시하는 경우, 선행연구들이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이 ‘배외사상(排外思想)’, ‘경계의식(警戒意識)’, ‘신라(인)에 대한 적시(賊視)‧적시(敵視)’, ‘긴장관계’ 등으로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거시적 분석방법으로는 ‘긴장관계’, ‘배외사상’, ‘경계의식’, ‘적시(賊視), ’적시(敵視)‘가 생겨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나 배경을 면밀히 설명하기 힘들다. 사적 전개의 역동성을 고려하면서 미크로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외인식을 생각할 때에도 시기차(時期差)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본 연구에서 시기를-9세기 중후반으로- 어느 정도 한정하여 고찰하고자 하는 것도 그와 관계가 있다.
    위기의식의 표출에 관해서는 죠간연간(貞觀年間)의 여러 사정이 대단히 주목된다. 우선 ‘신국일본(神國日本)’의 성립과 관련지어 생각해보자. 이미 여러 논자에 의해 지적되고 있는 것처럼, 죠간연간의 지배층이 이세신궁(伊勢神宮), 이와시미즈 하치만구(石清水八幡宮), 그리고 큐슈의 주요 신사에 폐백을 바치고, 국가 내지 왕권의 안녕을 기원하는 모습으로부터 일본을 ‘신국’으로 보는 사상이 확인된다. 구체적인 예로는 『일본삼대실록』에 보이고 있는 ‘고문(告文)’을 들 수 있다. 고대 일본의 조정은 국가가 직면한 곤란하면서도 중요한 현안이 있을 때마다 그 내용을 여러 신사 및 산릉에 고하고 ‘신’의 힘에 귀의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다. 한편, 같은 죠간연간에 행하여진 ‘태원수법(太元修法)’도 주목을 끈다. 입당승려 죠교(常曉)에 의해 당에서 전래되었다고 하는 불교(밀교) 수법 가운데 하나인 ‘태원수법’을 행함으로써 다양한 문제를 해소·타개해나가려고 했던 것이다. 이로부터는 ‘불’의 힘에 의지하여 ‘인국적난(隣國賊難)’에 맞선다고 하는 인식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지금까지는 죠간연간에 이루어진 ‘신’, ‘불’에 대한 기도가 대외문제, 그 가운데서도 특히 ‘신라해적’으로 표상되는 신라문제를 의식한 것이라 생각되어 왔으나, 본 연구에서는 열도사회 내부의 각종 재이(災異)에 의해 고양된 위기감이 ‘신’, ‘불’이라는 사상적 기재를 통하여 신라에 대한 배외의식으로 나타났으며, 그 흐름 속에서 신라해적사건이 강조되게 된 측면을 상세히 분석할 예정이다. 또 죠간연간(구체적으로는 죠간11년=서력 869년)의 신라해적사건이 당시 조정이 직면하고 있던 여러 국내 상황에 강하게 규제되었으며, 일종의 지배 이데올로기로써 도구화되어가는 역사적 경위에 대해서도 고찰하려고 한다.
    기존의 연구들이 9세기 일본의 대외자세가 전환되어 가는 현상을 신라 내지 내항신라인들의 동향 등 ‘외적 계기’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해왔다면 본 연구에서는 대외인식의 주체인 열도 내부 상황에 착목하여 당시 국가 내부에서 발동하고 있던 ‘내적 계기’를 통해 형성·전개된 측면이 강하다는 사실을 구조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이로써 ‘9세기 일본과 신라는 긴장관계에 있었다’, ‘9세기에 진입하면서 일본과 신라의 관계가 악화되었다’는 도식적 설명방식의 재고를 도모하고, 동시에 당시 기록에서 보이는 신라(인)에 대한 적개심이 가지고 있는 본질을 구명하는 것, 그것이 본 연구가 필요한 이유이자 본 연구가 목표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 기대효과
  • 본 연구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다음과 같다.
    (1) 연구 미진 분야의 극복
    한국학계에 신라해역에 대한 전론적 연구는 물론, 이 문제와 고대 일본의 위기의식이 가지는 본질의 관계를 종합적 설명해주는 연구가 전무한 상황에서 본 과제의 수행은 그 자체로 커다란 성과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학문적 의의는 비단 한국학계만의 성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본학계, 나아가 세계의 동아시아학 연구자그룹 전체의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

    (2) 한국사 연구영역의 확장
    ‘신라해적’은 일본의 타자인식이 반영된 개념인 만큼 한국측 사료에는 관련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그 때문에 종래에는 학문적 관심의 바깥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신라해적’은 용어 그 자체에서도 잘 나타나듯 한국고대사와도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는 연구주제라 할 수 있다. 본 연구가 학계에 발표‧소개된다면 다양한 학술적 논의가 촉발되고, 한국사에 대한 이해가 보다 풍성해질 것이라 기대된다.

    (3) 학제연구의 가능성
    ‘신라해적’ 연구, 일본삼대실록의 연구, 태원수법의 연구는 기본적으로 관련 사료의 특성상 일본사의 과제라 할 수 있지만 불교학(특히 밀교연구), 서지학 등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 연구수행과정에서 다루어질 ‘고문(告文)’ 및 ‘선명체(宣明體)’한문의 분석은 일본어학과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따라서 본 연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인접학문 분야의 발전을 촉진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일본고대사 연구가 학제연구 및 융합연구에 있어서도 유의미한 제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동아시아학으로서의 확장성 또한 확인해줄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된다.

    (4) 동아시아사 연구 및 교육에 기여
    본 연구는 동아시아사 연구 및 교육에도 활용될 수 있다. 현재까지 ‘동아시아사’ 연구 및 교육에서는 동아시아 각 지역‧국가들의 공통적인 문화요소에 주목해 온 측면이 강하다. 한자, 유교, 불교, 율령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관련논의를 보게 되면 중국을 중심으로 주변 지역‧국가에 해당 문화요소가 시간차를 두고 전파‧수용되었다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와 같은 사고 틀은 동아시아라는 지역공간을 은연중에 중심과 주연(주변)으로, 또는 문화수준이 높은 곳과 낮은 곳으로 이분하도록 강요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동아시아의 각 지역‧국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동등한 레벨에서 상호영향을 주고받은 역사적 사례를 연구와 교육을 통해 실제로 보여주는 작업이라 생각된다. 본 연구에서 주목하고 있는 ‘신라해적’은 동아시아 지역 간 교류의 매개자이자, 교류의 최전선에서 활약한 담당자에 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 연구요약
  • 869년(죠간11년) 신라해적사건의 피해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조정은 이 사건을 매우 크게 의식하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869년 신라해적사건 직후 일본의 각 신사 및 산릉에 올라간 ‘고문(告文)’과 토지문서(東寺文書)의 일부로 전해지는 ‘태원수법소장(太元帥法奏状)’이다.
    특히 ‘고문’의 내용을 검토를 통해서는 당시 일본조정이 신라해적사건을 부각시키고 있었던 실질적인 이유가 ‘국가대화(國家大禍)’로 인식되고 있었던 열도사회의 내부적 현안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 ‘國家大禍’로 인식되던 대규모 자연재해 및 각 지방에서 발생하고 있던 각종 병란은 수취체제의 근간인 公地公民制의 변질을 초래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조정의 위기의식은 점차 고조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중앙정계에서는 귀족들 간의 권력투쟁이 사라지지 않았고, 급기야 ‘오텐몬의 변’이라는 정치사건이 발생하게 되어 혼란은 가중되고 있었다. 9세기 중엽 이후 더욱 뚜렷해진 일본 국내 정치상황의 변동과 사회경제적 시스템의 변질이라는 악순환이 점차 위기의식으로 전화되어 갔던 것이다.
    일본조정은 그들이 경험하고 있던 위기상황의 타개를 위해 실질적인 정책을 제시하기보다는 관념적인 ‘진호(鎭護)’의 논리를 정립해나갔다. 이 과정에서 신라인― 구체적으로는 ‘신라해적’―의 존재가 강하게 의식되었다. 일본의 변경지역에서 신라인에 호응하는 세력이 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9세기 중후반 일본조정을 고민하게 만든 것은 외부 세력으로서의 신라인들이었다기보다 신라인들과 사적으로 결합하고 있었던 국내세력 그 자체였다. 일본조정의 신라에 대한 인식은 신라ㆍ신라인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계기가 되어 형성되었다기보다는, 변경지역 사람들의 자율적인 교역활동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과정 속에서 파생되어 나타난 측면이 강하였던 것이다.
    869년의 신라해적사건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실체와는 별개로 일본조정에 의해서 부각된 배경에는 신국사상(神國思想)에 기반을 둔 전통적인 신라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869년을 전후하여 발생한 일본 국내의 각종 재변으로 인해 고조된 위기의식이 신국사상이라는 이념적 기재를 통해 신라에 대한 배외의식으로 표출된 것이고, 그 과정에서 신라해적사건이 부각되게 된 것이다. 당시 일본조정이 느끼고 있던 피침략의 가능성이라는 것도 현실적으로 존재했다기보다는, 일본사회에 내재하고 있던 ‘국가대화’를 통해 형성ㆍ고조된 위기의식이 869년 신라해적사건을 계기로 하여 강하게 표출된 이데올로기적 양상이었던 것이다. 즉, ‘진호’의 논리 및 통치안정화의 이데올로기로써 신라해적사건이 기능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는 일본 죠간연간(貞觀年間: 859~877년)에 표출된 위기의식의 실태를 분석한 것이다. 특히 당시 문제시되었던 ‘신라해적’과, 또 당해문제를 해결하는 가운데서 위력‧효험을 발휘한(혹은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 ‘신(神)’, ‘불(佛)’에 초점을 맞추었다. 먼저, 『일본삼대실록』(고대 일본의 正史 가운데 하나)의 ‘고문(告文)’을 검토하여, 일본의 조정이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신’의 힘이 귀의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모습을 밝혔다. 다음으로, 승려 쵸주(寵寿)가 남긴 ‘태원법주장(太元法奏状)’을 분석하여, 국가가 당으로부터 전래된 불교를 통해 다양한 문제를 해소·타개해나가려했던 양상을 논증하였다.
    9세기 후반의 일본은 열도사회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던 정치상황의 변동과 사회경제적 시스템의 변질에 대한 위기의식을 신라에 대한 적대감으로 표출하였다. ‘진호’의 논리 및 통치 안정화의 이데올로기로서 ‘869년의 신라해적사건’을 활용하였던 것이다.
  • 영문
  • This study is an analysis of the nature of the sense of crisis that was displayed during the period of Jogan(貞觀年間: 859-877). Especially it focuses on Sillan piracy that was a great cause of concern for the Japanese statesmen and Japanese gods and Buddha that were expected to be effective in alleviating the problematic situation. First of all, this study examines the Komon(告文) texts from the Nihon Sandai Jitsuroku(日本三代實錄) in order to show how the Japanese Court resorted to the power of the Japanese gods whenever important issues aroused. Secondly it looks into Taigen no Ho Sojo(太元法奏状) by Chouju(寵寿) and in doing so discloses how the Japanese government tried to solve various problems through Buddhism introduced from Tang. The hostilities displayed by the Japanese towards Silla in the late ninth century stemmed from both the political instability in Japanese society and the sense of crisis created by the deterioration of the social and economic system. The Japanese rulers used the so-called the ‘869 incident of Sillan piracy’ and the argument of Jingho(鎭護) as their ruling ideology.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일본 죠간연간(貞觀年間: 859~877년)에 표출된 위기의식의 실태를 분석한 것이다. 특히 당시 문제시되었던 ‘신라해적’과, 또 당해문제를 해결하는 가운데서 위력‧효험을 발휘한(혹은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 ‘신(神)’, ‘불(佛)’에 초점을 맞추었다. 먼저, 『일본삼대실록』의 ‘고문(告文)’을 검토하여, 일본의 조정이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신’의 힘이 귀의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모습을 밝혔다. 다음으로, 승려 쵸주(寵寿)가 남긴 ‘태원법주장(太元法奏状)’을 분석하여, 국가가 당으로부터 전래된 불교를 통해 다양한 문제를 해소·타개해나가려했던 양상을 논증하였다.
    9세기 후반의 일본은 열도사회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던 정치상황의 변동과 사회경제적 시스템의 변질에 대한 위기의식을 신라에 대한 적대감으로 표출하였다. ‘진호’의 논리 및 통치 안정화의 이데올로기로서 ‘869년의 신라해적사건’을 활용하였던 것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연구 미진 분야의 극복: 한국학계에 신라해역에 대한 전론적 연구는 물론, 이 문제와 고대 일본의 위기의식이 가지는 본질의 관계를 종합적 설명해주는 연구가 전무한 상황에서 본 연구의 학문적 의의는 비단 한국학계만의 성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본학계, 나아가 세계의 동아시아학 연구자그룹 전체의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
    (2) 한국사 연구영역의 확장: ‘신라해적’은 일본의 타자인식이 반영된 개념인 만큼 한국측 사료에는 관련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그 때문에 종래에는 학문적 관심의 바깥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신라해적’은 용어 그 자체에서도 잘 나타나듯 한국고대사와도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는 연구주제라 할 수 있다. 본 연구가 학계에 발표‧소개된다면 다양한 학술적 논의가 촉발되고, 한국사에 대한 이해가 보다 풍성해질 것이라 기대된다.
    (3) 학제연구의 가능성 : ‘신라해적’ 연구, 일본삼대실록의 연구, 태원수법의 연구는 기본적으로 관련 사료의 특성상 일본사의 과제라 할 수 있지만 불교학(특히 밀교연구), 서지학 등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 연구수행과정에서 다루어질 ‘고문(告文)’ 및 ‘선명체(宣明體)’한문의 분석은 일본어학과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따라서 본 연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인접학문 분야의 발전을 촉진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4) 동아시아사 연구 및 교육에 기여: 본 연구는 동아시아사 연구 및 교육에도 활용될 수 있다. 현재까지 ‘동아시아사’ 연구 및 교육에서는 동아시아 각 지역‧국가들의 공통적인 문화요소에 주목해 온 측면이 강하다. 그런데 관련논의를 보게 되면 해당 문화요소가 시간차를 두고 전파‧수용되었다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와 같은 사고 틀은 동아시아라는 지역공간을 은연중에 중심과 주연(주변)으로, 또는 문화수준이 높은 곳과 낮은 곳으로 이분하도록 강요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동아시아의 각 지역‧국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동등한 레벨에서 상호영향을 주고받은 역사적 사례를 연구와 교육을 통해 실제로 보여주는 작업이라 생각된다. 본 연구에서 주목하고 있는 ‘신라해적’(실질적으로는 ‘해상활동 신라인’)은 동아시아 지역 간 교류의 매개자이자, 교류의 최전선에서 활약한 담당자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 색인어
  • 9세기 일본, 신라해적, 신(神), 불(佛), 일본삼대실록, 태원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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