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에서 연구자는 오규원의 후기시를 대상으로 현상학적 지각을 통해 심층생태주의의 복잡성을 도출하고자 한다.
현상학은 무엇에 대한 의식의 지향성으로서 판단을 부정하며, 모든 의식이 대상에 대해서 갖는 직접적인 관계를 강조한다. 주관과 객관의 분리 이전의 ...
이 연구에서 연구자는 오규원의 후기시를 대상으로 현상학적 지각을 통해 심층생태주의의 복잡성을 도출하고자 한다.
현상학은 무엇에 대한 의식의 지향성으로서 판단을 부정하며, 모든 의식이 대상에 대해서 갖는 직접적인 관계를 강조한다. 주관과 객관의 분리 이전의 근원적 관계를 재정초하는 데 목표를 두는 것이다. 현상학(現象學)은 독일 철학자 Edmund Husserl(1859~1938)에 의해 고안된 철학적 사고의 한 방법으로, 우연적인 현실 존재보다는 본질에 관심을 둔 ‘엄밀한 학으로서의 철학’을 지향한다. 현상학은 사변이 아닌 세계의 사태성(事態性)에 입각해 본질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한마디로 사물 자체의 사태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메를로퐁티, 김화자 역,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책세상, 2005, 106쪽 참조.
현상학은 대상을 인식하고자 하는 지향적 의식을 의식의 작용과 의식의 대상이 합쳐진 통일체로 간주함으로써 물질과 정신의 유기체성을 강조하는 심층생태주의의 복잡성과 통한다.
오규원은 후기시에 이르러 스스로 규정한 현상적인 창작 방법에 주목한다. 그의 후기시에 등장하는 소재는 자연과 풍경, 생명에 대한 관심이 주조를 이룬다. 대상들의 이미지는 시인의 눈에 순간적인 촬영처럼 전개된다. 그는 판단을 소거한 상태에서 한 장면에서 다른 장면으로 넘어가는 카메라의 이동과 같은 방법으로 현상학적 사태를 묘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주체와 대상의 경계를 무화시키고 평등을 지향함으로써 심층생태주의와 통하며, 고정되지 않고 변화하는 생성을 환기함으로써 복잡성과 통한다.
복잡성 개념의 원천은 불교의 화엄사상이다. 화엄사상에서 진공묘유(眞空妙有)는 혼돈으로부터의 생성이라는 의미를 담지하며, 신과학 이론의‘카오스(chaos)’로 변주된다. 카오스는 몇 개의 결정주의적 공식에 의해 작용하지만 장기적으로 예측이 불가능한 궤적들의 집합을 말한다. 단순한 사건으로부터 예측이 불가능한 형태의 패턴을 만들어내는 카오스의 메타포는 오규원의 후기시에서 허공, 시간, 사이, 그림자, 어둠, 고요, 공기 등으로 표현된다. 오규원은 또한 세계를 동사로 파악한다. 세계는 살아 숨쉰다는 것이다. 또한 그의 시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허공’, ‘사이’, ‘그림자’등은 비가시성으로서 생성과 변화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운동을 환기한다. 이들은 각 개체와 동시에 출현함으로써 진공묘유를 담지하며, 혼돈으로부터의 생성으로 논의가 가능하다.
화엄사상의 사사무애(事事無碍)역시 심층생태주의에서 제시하는 유기론적 복잡성의 대표적인 원리이다. 복잡성의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실재는 유동적인 가운데 생성하는 국면을 의미한다. 존재는 생성하는 순간의 궤적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사무애의 사유로 볼 때, 일체의 사물, 현상은 연기의 상태로 나타날 뿐, 실체성, 고정성을 갖지 않는다. 모든 대상과 상황이 관련되어 있는 가운데 개체와 전체가 변화 생성한다는 사사무애는 복잡성을 대표하는 것이다.
오규원의 후기시에 등장하는 대상들은 다른 존재의 영역을 방해하지 않고 함께 재현된다. 또한 오규원 시에서 관계에 의해 의미를 맺는 대상은 항상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고찰되며, 이러한 언술방식은 개체와 전체의 유기체성을 환기한다. ‘사이’의 빈번한 사용 또한 사이가 양쪽으로 나뉜 대상을 합치는 기준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면 사사무애의 유기체성을 암시한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현상학적 지각을 통한 심층생태주의의 복잡성으로서 사사무애의 논의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또한 자기유사성은 유기체적 존재인 동물과 식물들이 왜 그 자신이 자연과 유사성을 가지는지 설명해준다. 자기유사성은 그 신체의 틈새인 경계 부위에 물리적 자연의 변화하는 여건이 복합체를 이룬다는 사실을 질서로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오규원의 시에서는 어휘의 유사한 형태의 방복, 서술어의 반복 등으로 그와 같은 현상을 표현함으로써 자기유사성의 논의가 가능하다.
이 연구에서는 오규원의 후기시를 현상학적 지각의 특성으로서 진공묘유, 사사무애, 자기유사성으로 논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