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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후 유교계의 이념 분립에 대한 연구 : 정인보와 김태준을 중심으로
Confucian Separation between Leftist and Rightist in Post-Liberation Period : Comparing Chŏng Inbo and Kim Taejun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5S1A5A2A01009746
선정년도 2015 년
연구기간 1 년 (2015년 05월 01일 ~ 2016년 04월 30일)
연구책임자 이황직
연구수행기관 숙명여자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이 연구는 유교계 지식인으로서 일제강점기와 해방정국의 공론장과 정치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보였던 위당 정인보(鄭寅普)와 천태산인 김태준(金台俊)의 사상과 행적을 중심으로, 해방 이후 임시정부 계열 주도의 신탁통치반대운동 참여 과정에서 유교계가 좌우 이념으로 대립 ․ 분열된 계기를 분석하는 최초의 연구이다.
    그동안 해방 이후 유교사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었고, 그 가운데에서도 해방정국에서 6·25전쟁 전후 시기까지를 다룬 연구는 전혀 없었다. 유림측(유도회, 성균관) 입장의 짧은 서술만으로는 당시 유교계의 활동상을 거의 파악할 수 없다. 필자는 당시 유교인들의 정치활동을 역사적으로 복원하고 그 사회적 의미를 복원하는 작업을 통해, 기존 근현대사 서술에서 배제되었던 유교계 정치 ․ 사회운동의 지위를 복권시키고자 한다. 특히 그 과정에서 빚어진 좌우 조직상의 분열을 정인보와 김태준 사이의 ‘유교 개혁’을 둘러싼 오랜 학술적 이념적 대립의 측면에서 접근하여, 이들이 유교를 근대의 정치이념(민족주의, 민주주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과 결합시키는 방식의 차이를 분석하여 유교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양대 이념으로 분립하는 계기를 포착하고자 한다. 연구의 층위에 따라 이 연구는 다음 세 가지 세부 과제를 수행한다.
    첫째, 이론적 차원의 목표(유교와 정치이념 결합의 귀납적 이론화) : 많은 유교 연구가 베버 테제(Weber’s hypothesis)의 개신교와 자본주의 사이의 선택적 친화력 연구의 ‘기능적 등가물’로서 유교를 탐색해 온 데 반해, 이 연구는 유교와 정치이념 사이의 관계를 탐색해서 유교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모두에 대해 문화적 자원을 제공할 수 있었음을 논증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정인보와 김태준이라는 두 대표적 지식인이 각각 유교를 근대적으로 혁신시키려는 논리를 분석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통해, 유교의 복합적인 자원(경전과 교리, 세계상, 문화 습속 등)이 좌우 정치이념 정당화를 위해 선택적으로 활용되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경험적 차원의 목표(특정 국면에서 유교 정치사회운동의 사례연구) : 해방정국은 다양한 성향의 유교인과 유교단체들이 협력 ․ 경쟁하면서 사회개혁, 유교 부흥 등과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활동했던 시기이다. 신탁통치반대운동은 그러한 다양성이 배제되고 유교계를 좌우 두 이념으로 대립시켜 재편성시키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 연구는 정인보와 김태준의 정치적 실천을 중심으로 유교계 통합과 분열의 과정을 실증적으로 조사하여, 해방정국 연구의 외연을 확대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셋째, 실천적 차원의 목표(근대 유교사 재평가를 위한 학술적 개입) : 기존 유교사 서술에서 공백 상태인 해방 이후 ‘현대 유교사’를 복원하고, 일제하의 유교계 독립운동과 해방 후의 유교계의 움직임 사이의 ‘연속성’을 논증하여, 그동안 유교를 부정적 소극적으로 평가해 온 흐름을 대체할 수 있는 ‘역사적 근거’를 제시할 것이다. 이를 통해 유교가 민주주의 유지에 기능적이기 위해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해 추가 탐구의 기반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 기대효과
  • 전술한 바와 같은 세부 연구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이 연구는 다음과 같은 기대효과를 예상할 수 있다.
    (1) 학문적 기여 : 해방 이후 유교사 서술의 새 관점과 자료 제공
    첫째, 이 연구는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해방 이후 유교사를 일제강점기 유교 독립운동사의 연계성 하에서 파악하는 최초의 연구로서, 쇠락과 보수성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왔던 유교사를 능동적 자기혁신의 역사로 새롭게 조명하는 관점과 자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는 향후 유교사를 단순히 학술사 또는 종교사로 국한시키지 않고 정치적으로 관련지어 해석하는 방식으로 서술하는 데 필요한 기초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후속 연구를 촉발시킬 것이다.
    둘째, 이 연구를 통해서 해방정국에 대한 현대사 연구의 난점을 일부 보완할 수 있는 시각과 자료를 제공할 것이다. 그동안 해방정국 연구가 주로 운동사 위주로 진행됐기 때문에 당시 일반 시민들의 감정구조와 동떨어져 있던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전통적 조직 방식으로 작동하는 유교의 결사 방식은 대중의 의식을 훨씬 더 정확하게 반영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연구는 후속 연구의 방법론적 또는 이념적 다양성을 촉진시킬 것이다. 아울러, 유교와 정치이념 사이의 관련성을 교리적 측면과 조직적 측면을 결합시켜 분석하여, 향후 사회과학계의 유교 연구방법에 한 전범을 제공할 것이다.
    (2) 사회적 교육적 기여 : 유교적 시민 덕성 교육 및 유교민주주의 탐구 방향 제시
    지난 1990년대 이후 유교와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한 학문적 모색은 적지 않았고, 긍정과 비판의 토론 과정을 통해 최소한의 합의는 이루어진 상태이다. 그러나 이는 주로 1987년 ‘민주화 이후’의 상황에서 ‘유교가 민주주의와 공존할 수 있는가’ 또는 ‘유교적 가치가 민주주의의 토대인 시민적 미덕 형성에 기여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 대한 이론적 접근에 머물렀다. 이 성과들이 민주주의 공고화에 필수적인 시민 미덕 문제와 관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은 유교의 현실보다는 유교의 이상적 측면만을 강조했다는 한계를 가졌다.
    이 연구는 기존 현대 유교 연구의 형이상학적 성격을 보완하여, 실제 한국 현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유교적 가치와 ‘민주국가 수립’이라는 정치적 목표가 어떻게 접합되었는지를 분석할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형성된 한국 시민의 독특한 감정구조를 유교를 통해 이해하는 방법을 제공할 것이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 정치가 한계에 봉착한 현 시점에서 실제 유교 가치가 그것의 난점을 보완할 새로운 성격의 시민 덕성에 사회적으로 관심을 갖게 할 수 있을 것이다.
  • 연구요약

  • (1) 연구목적
    - 유교계 지식인으로서 일제강점기와 해방정국의 공론장과 정치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보였던 위당 정인보(鄭寅普)와 천태산인 김태준(金台俊)의 사상과 행적을 중심으로, 해방 이후 임시정부 계열 주도의 신탁통치반대운동 참여 과정에서 유교계가 좌우 이념으로 대립 ․ 분열된 계기를 분석하고 이후 좌우 유교계의 정치활동을 조사하여, 유교의 가치와 근대 정치이념 사이의 이론적 접합의 양상과 방식에 대해 귀납적 일반화의 기초를 제공한다.

    (2) 연구내용
    - 이 연구는 다음 세 가지를 주된 연구 내용으로 한다.
    첫째, 정인보와 김태준 각각에 대한 전기적 조사와 사상사적 탐구를 수행하고 이들의 대립적 관계를 조사한 후, 당대의 대표적 유교 지식인인 그들의 유교 개혁론을 검토하여 유교의 교리와 생활방식 등이 좌우 정치이념 정당화를 위해 선택적으로 활용되는 방식을 분석한다. 정인보와 김태준은 식민지 시기부터 각각 민족주의적 조선학과 사회주의적 조선연구 흐름을 주도했던 지식인이었는데, 해방정국에서는 각각 유도회총본부와 전국유교연맹을 주도하면서 유교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에 대한 정밀한 지성사적 비교 작업을 통해 당대 한국 사회의 지적 특성을 규명하고자 한다.
    둘째, ‘분산종교’적 성격을 갖고 있는 유교 특성과 학통 ․ 지연 ․ 이념 등으로 분열되어 있던 당시 유교인의 존재 양상으로 볼 때 단일 조직 형성이 어려운 데도 불구하고 해방정국에서 유교인들이 전국적인 단일 조직 수립에 성공한 이유를 분석한다. 본래 교단 조직이 없는 유교의 세속종교적 성격의 약점을 어떻게 극복하면서 해방정국의 가장 중요한 종교단체로서 유도회총본부가 결성되는가를 규명하고자 한다.
    셋째, 탁치반대운동 과정에서 유교계가 다시 좌우 이념에 따라 분립되는 과정을 조사하고 이들이 어떻게 점차 중도좌파에서 좌파로 변화되어 가는지를 정치사적 그리고 유교의 가능 논리에 비추어서 분석할 것이다. 본래 유교는 민본주의적 성격과 문사(文士)의 지배 이념의 성격을 함께 갖고 있는데, 이에 따라 개인의 도덕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흐름과 공동체의 복지를 강조하는 흐름으로 나뉠 수 있다. 유교계의 좌우 분립 과정의 논쟁을 통해 이들이 어떻게 유교를 근대적으로 혁신시키고자 했는지를 규명하고자 한다.

    (3) 연구방법
    - 이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음의 두 가지 분석 방법을 활용한다.
    첫째, 사료 비판을 포함한 역사학적 문헌 연구 방법 : 이 연구에 사용되는 사료는 공식문서(미군정청, 북한, 일제 식민지배기구, 한국 공안당국 등)와 비공식문서(개인문집, 회고, 일기, 대담 자료 등)로 구분되는데, 이 사료들은 모두 ‘작성자의 정치적 동기’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사료비판 작업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자료들을 다른 자료와 대조 ․ 검토하여 사실 확정 작업을 수행할 것이다.
    둘째, 종교로서의 유교의 특성과 행위자의 의식과 실천을 분석할 수 있는 종교사회학적 접근 방법과 문화사회학의 서사분석 방법 : 이 연구의 주요 대상은 ‘유교인’들이다. 이들이 때로 정치적 행위를 할지라도 그 행위의 바탕을 이루는 근본 동기는 ‘유교적 가치’에 있다. 유교의 종교적 특성에 비추어 기존의 종교사회학적 접근을 수정하는 기초 작업과 행위자의 의미 세계를 분석할 수 있는 문화사회학의 ‘두터운 기술’(thick description)의 방법의 필요성이 있다. 또한 해방정국 유교운동 참여자들의 주요 문헌 자료의 서사 구조를 분석하여 어떤 이야기 요소들이 사용되는지에 대한 문화적 분석(서사분석, 코드분석)을 활용하여 내면적 정당화의 기제를 확인할 것이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이 연구는 유교와 근대 정치와의 결합 가능성을 탐색하려는 목적으로 특히 해방정국의 유교계의 좌우 분열의 과정과 이념적 요인을 중심으로 분석했다. 그 시기 유교계 우파와 좌파를 각각 대표하는 정 인보와 김 태준의 갈등 양상을 해방 이전의 학문상의 갈등부터 해방 이후 유도회총본부와 전국유교연맹의 조직화 과정을 조사하여 정리했고, 그 과정에서 이들의 유교 이상이 각각 아나키즘과 사회주의라는 정치 관념과 관련을 맺고 있었다는 것을 논증했다.
    그 가운데 정 인보와 김 태준의 유교에 대한 인식을 비교한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정 인보는 조선의 유교 전통을 강하게 비판했지만 동시에 실심(實心)과 개혁의 유교 전통을 찾아내 이를 통해 근대의 과제에 유교가 대응하는 논리를 찾고자 했다. 반면에 김 태준은 유교 전통의 부정적 측면에만 주목하여 반유교적 태도를 견지했다. 이러한 대립은 해방 이전 조선학 및 한문학사 연구 분야에서의 갈등을 낳았다. 해방 이후 정 인보는 김 창숙과 함께 유교 혁신 및 부흥 운동을 전개하면서 이를 통해 완전 독립을 향한 국민운동에 나섰다. 김 태준은 1940년 이후의 성숙을 통해 유교 전통의 긍정성을 일부 확인했고 좌파 유교 운동을 조직화하여 유교 정치의 좌파적 이상을 실현하려 했다. 이처럼 정 인보와 김 태준의 유교에 대한 인식 차이와 변화는 해방정국에서 이들의 정치 이상 실현 시도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이 연구의 결론이다.
  • 영문
  • Confucian group activities in post-liberation period were very active and their influences were strong too. Confucian leaders who participated in organized activities of the time were mostly prominent fighters for independence or their descendents, especially related with ‘Paris Jang-sŏ Movement’(巴里長書運動). Confucians was so trustworthy that all political parties including leftist groups tried to gain confucians’ support to their side. Kim Chang-Suk(金昌淑), the most charismatic confucian leader, kept neutrality and fought only for complete independence. Mainstream confucians held out their doctrine supporting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and organized Yudo-hoe(統合 儒道會總本部). But, confucian participating in anti-trusteeship movement made leftist confucian group drift away and resulted in the birth of Jeon-guk Yugyo Yeonmaeng(全國儒敎聯盟). Confucianists who participated in Yugyo Yŏnmaeng were mostly prominent fighters for independence and talented youth scholars of Chinese classics. They were grouped into ‘National Front for Democracy’(民主主義民族戰線) and fought against confucian mainstream. As a result, confucian separation between leftist and rightist began throughout post-liberation period. During that time, Chŏng Inbo(鄭寅普) was the leader of rightist confucians. He had been the champion of Chosŏn-Hak in colonial Korea and revitalized the reform-oriented ethics of confucianism into a foundational idea for modern nationalistic movements. Throughout post-liberation period, Chŏng Inbo was backed up by anarchists who had fought against communists as well as Japanese colonialists. Chŏng Inbo and Anarchists took part in rebuilding confucianism and promoting Korean liberal democratism. Meanwhile, Kim Taejun(金台俊) was the leader of leftist confucians and youths. He had joined a secret ultra-leftist organization, Gyeongseong Communist Group(경성콤그룹) in Japanese Occupation. His attitude on confucianism was originally hostile. But, after being leftist organizer, he knew that confucian value and practices would be an important resource in order to mobilize the younger generation in a revolutionary protests against rightist confucians throughout post-liberation period. Chŏng Inbo and Kim Taejun stood in opposition and it was symbolic scene of confucian separation in post-liberation period.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이 연구는 유교와 근대 정치와의 결합 가능성을 탐색하려는 목적으로 특히 해방정국의 유교계의 좌우 분열의 과정과 이념적 요인을 중심으로 분석했다. 그 시기 유교계 우파와 좌파를 각각 대표하는 정인보와 김태준의 갈등 양상을 해방 이전의 학문상의 갈등부터 해방 이후 유도회총본부와 전국유교연맹의 조직화 과정을 조사하여 정리했고, 그 과정에서 이들의 유교 이상이 각각 아나키즘과 사회주의라는 정치 관념과 관련을 맺고 있었다는 것을 논증했다.
    그 가운데 정인보와 김태준의 유교에 대한 인식을 비교한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정인보는 조선의 유교 전통을 강하게 비판했지만 동시에 실심과 개혁의 유교 전통을 찾아내 이를 통해 근대의 과제에 유교가 대응하는 논리를 찾고자 했다. 반면에 김태준은 유교 전통의 부정적 측면에만 주목하여 반유교적 태도를 견지했다. 이러한 대립은 해방 이전 조선학 및 한문학사 연구 분야에서의 갈등을 낳았다. 해방 이후 정인보는 김창숙과 함께 유교 혁신 및 부흥 운동을 전개하면서 이를 통해 완전 독립을 향한 국민운동에 나섰다. 김태준은 1940년 이후의 성숙을 통해 유교 전통의 긍정성을 일부 확인했고 좌파 유교 운동을 조직화하여 유교 정치의 좌파적 이상을 실현하려 했다. 이처럼 정인보와 김태준의 유교에 대한 인식 차이와 변화는 해방정국에서 이들의 정치 이상 실현 시도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이 연구의 결론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연구결과: 이 연구는 유교와 근대 정치와의 결합 가능성을 탐색하려는 목적 하에 그러한 시도가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해방정국의 유교계를 좌우 분립의 과정과 이념적 요인을 중심으로 분석했다. 특히 그 시기를 각각 대표하는 정인보와 김태준의 갈등 양상을 해방 이전의 학문상의 갈등부터 해방 이후 유도회총본부와 전국유교연맹의 조직화 과정에서의 대립까지 조사하여 정리했고, 그 과정에서 이들의 유교 정치 이상이 각각 아나키즘과 사회주의라는 정치 관념과 관련을 맺고 있었다는 것을 논증했다. 그 가운데 정인보와 김태준의 유교에 대한 인식을 비교한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정인보는 조선의 유교 전통을 강하게 비판했지만 동시에 개혁 유교 전통을 찾아내 이를 통해 근대의 과제에 유교가 대응하는 논리를 찾고자 했다. 반면에 김태준은 유교 전통의 부정적 측면에만 주목하여 반유교적 태도를 견지했다. 이러한 인식 차이는 해방 이전 조선학 및 한문학사 연구 분야에서의 갈등을 낳았다. 해방 이후 정인보는 김창숙과 함께 유교 혁신 및 부흥 운동을 전개하면서 이를 통해 완전 독립을 향한 국민운동에 나섰다. 김태준은 1940년 이후의 성숙을 통해 유교 전통의 긍정성을 일부 확인했고 좌파 유교 운동을 조직화하여 유교 정치의 좌파적 이상을 실현하려 했다. 이처럼 정인보와 김태준의 유교에 대한 인식 차이와 변화는 해방정국에서 유교계의 좌우 분립과 그에 따른 정치 이상 실현 시도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이 연구의 결론이다.

    활용방안:
    1. 학술적 기여 : 해방 이후 유교사 서술의 새 관점과 자료 제공
    첫째, 이 연구는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해방 이후 유교사를 일제강점기 유교 독립운동사의 연계성 하에서 파악하는 최초의 연구로서, 쇠락과 보수성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왔던 한국 근현대 유교사를 능동적 자기혁신의 역사로 새롭게 조명하는 관점과 자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는 향후 유교사를 단순히 학술사 또는 종교사로 국한시키지 않고 정치적으로 관련지어 해석하는 방식으로 서술하는 데 필요한 기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후속 연구를 촉발시킬 것이다.
    둘째, 이 연구를 통해서 해방정국에 대한 현대사 연구의 난점을 일부 보완할 수 있는 시각과 자료를 제공했다. 그동안 해방정국 연구가 주로 운동사 위주로 진행됐기 때문에 당시 일반 시민들의 감정구조와 동떨어져 있던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전통적 조직 방식(즉 느슨한 네트워크)으로 작동하는 유교의 결사 방식은 대중의 의식을 훨씬 더 정확하게 반영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연구는 후속 연구의 방법론적 또는 이념적 다양성을 촉진시킬 것이다. 아울러, 유교와 정치이념 사이의 관련성을 교리적 측면과 조직적 측면을 결합시켜 분석하여, 향후 사회과학계의 유교 연구방법에 한 전범을 제공할 것이다.
    2. 사회적 기여 : 유교적 시민 덕성 교육 및 유교민주주의 탐구 방향 제시
    지난 1990년대 이후 유교와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한 학문적 모색은 적지 않았고, 긍정과 비판의 토론 과정을 통해 최소한의 합의는 이루어진 상태이다. 그러나 이는 주로 1987년 ‘민주화 이후’의 상황에서 ‘유교가 민주주의와 공존할 수 있는가’ 또는 ‘유교적 가치가 민주주의의 토대인 시민적 미덕 형성에 기여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 대한 이론적 접근에 머물렀다. 이 성과들이 민주주의 공고화에 필수적인 시민 미덕 문제와 관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은 유교의 현실보다는 유교의 이상적 측면만을 강조했다는 한계를 가졌다.
    이 연구는 기존 현대 유교 연구의 형이상학적 성격을 보완하여, 실제 한국 현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유교적 가치와 ‘민주국가 수립’이라는 정치적 목표가 어떻게 접합되었는지를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이 과정을 통해 형성된 한국 시민의 독특한 감정구조를 유교를 통해 이해하는 방법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 정치가 한계에 봉착한 현 시점에서 실제 유교 가치가 그것의 난점을 보완할 새로운 성격의 시민 덕성에 사회적으로 관심을 갖게 할 수 있을 것이다.

  • 색인어
  • 정인보, 김태준, 유교계 좌우 분열, 유도회, 전국유교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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