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에서는 몽골 유목민의 생활과 풍속에 나타나는 세계 중심에 대한 양상과 그 상징적 의미를 천착하고, 개인 및 사회적 삶의 근원적인 원리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주거생활의 중심, 자연지리의 중심, 신앙물의 중심에 대한 현상과 관념을 언어적, ...
본 연구에서는 몽골 유목민의 생활과 풍속에 나타나는 세계 중심에 대한 양상과 그 상징적 의미를 천착하고, 개인 및 사회적 삶의 근원적인 원리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주거생활의 중심, 자연지리의 중심, 신앙물의 중심에 대한 현상과 관념을 언어적, 생활적, 상징적 의미면에서 고찰하고, 몽골인의 삶의 기제와 세계관을 살펴보는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중심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점’이라 할 수 있으며, 이 중심점으로부터 모든 시간과 공간, 생명과 풍요 등의 삶이 생성되고 또 이곳으로 삶이 수렴되기도 한다. 이 지점은 에너지가 충만한 천지우주와 연결되는 생명력의 중심으로 실제적이면서 동시에 영적 특성을 띤다. 세계 공통적으로 이 점을 ‘배꼽’이라고 부르는데, 신성한 산은 대지의 배꼽을 중심으로 수직적 축을 이룬다. 이곳은 신이 내리는 곳으로 천상계와 연결된다. 한편 몽골의 신앙적 돌무지인 오보 역시 일종의 세계 중심인 배꼽 터에 세워진 수미산이요, 오보 위 중앙에 세워진 버드나무는 신이 오르내리는 세계수의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말뚝이나 기둥에 대한 신앙으로 이어지는데, 이들은 모두 조령의 처소이자 신령이 오르내리는 통로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녀왔으며, 이는 북극성 신앙과도 관련이 있다.
점이 확장된 것으로 지점을 뜻하는 몽골어로는 ‘өр’(우르)가 있는데, 이것은 횡격막 주변 부위로 명치가 있는 곳을 이른다. 여기서 우르는 게르의 ‘생명 중심’이란 뜻을 내포한다. 게르의 중심을 ‘우르’라는 단어로 사용한 것은 게르를 단순한 주거가 아니라 인간이란 생명체를 품고 있는 살아있는 유기체적인 세계 내지 소우주로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우르에서 천창 덮개인 ‘우르흐’(өрх)라는 단어가 파생되는데, 이것은 천창의 상징적 대용물로 언급된다. 우르흐가 게르 중심의 생명력을 위로 상승시키는 계단이자 천체의 신령한 기운이 내리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 이처럼 ‘우르’와 ‘우르흐’는 세계의 중심 자리의 상징성을 띠면서 게르 공동체가 하나의 세계 즉, 소우주를 이루는 알레고리를 형성한다.
게르의 중심터인 ‘우르’와 중심 통로인 ‘우르흐’를 연결하는 집안의 핵심은 갈 골롬트(гал голомт)이다. ‘우르’와 ‘골롬트’, ‘우르흐’는 하나의 축을 이루는 가정 내지 세계 중심이지만 이 가운데서도 중심을 이루는 것은 불 즉 ‘갈’(гал)이라 할 수 있다. 이 중심의 불을 지키는 일종의 성역을 ‘골롬트’라고 한다. 불은 원래 천상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오고 올라가며 생명력과 발전을 도모하고 상승시키는 에너지의 원천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한 가정의 골롬트는 국가의 온상의 한 부분을 이루면서 동시에 독자적인 세계를 이룬다. 게르의 기둥(багана)은 중심을 틀로 세워 불을 지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불의 신체’요, ‘불의 영혼’이라고 보며, 일종의 조상의 영이 거하는 세계수의 역할을 하는 생활 속의 신앙적 상관물이다.
지역의 ‘중심’, ‘중앙’을 의미하는 몽골어는 ‘투브(төв)’이다. 이 단어는 ‘마음의 중심’, ‘중립’, ‘안정’ 등의 의미로 확장되어 쓰인다. 인간이 모여 사는 중심 지역을 ‘투브’라고 칭하는 것은 개인의 정서적, 윤리적 중심과 지역의 중심을 하나로 통합하는 의미가 있으며, 공동체의 평화로움을 중심화시키는 외연을 갖는다. 중심에 관련하여 중요한 단어는 ‘탯줄’, ‘배꼽’을 뜻하는 ‘후이’(хүй), ‘후이스’(хүйс)인데, 후이스(배꼽, 탯줄)는 몽골의 강이나 지명에 적지 않게 사용된다. 이렇게 지명에 후이스가 사용되는 것은 자연만물에 생명의 중심이 되는 지점이 있으며, 그곳은 에너지가 충만한 천지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몽골인들의 생태적 자연관과 관련이 있다. 예로부터 이곳은 생명의 핵심이기 때문에 ‘안정’과 ‘풍요’의 상징성을 갖는 길한 곳으로 여겨졌다.
몽골의 중심 개념은 생명과 풍요, 영원한 번영, 발전의 근원적 원천이라 할 수 있으며, 이것은 인간의 내면적인 특성 즉,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심지를 의미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자아가 사회와 세계, 우주의 중심으로 합일되는 관념을 반영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