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지적 행로를 그의 국ㆍ정체제관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a) 1841년까지 입헌군주국, b) 1843년 상반기까지 민주공화국, c) 1845년 후반기부터는 민주공화국을 반대하고 공산주의사회를 지지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특히 b)로부터 c)로 이행하는 과정에 크로츠나하 ...
마르크스의 지적 행로를 그의 국ㆍ정체제관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a) 1841년까지 입헌군주국, b) 1843년 상반기까지 민주공화국, c) 1845년 후반기부터는 민주공화국을 반대하고 공산주의사회를 지지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특히 b)로부터 c)로 이행하는 과정에 크로츠나하에서의 프랑스혁명에 대한 마르크스의 학습이 큰 기여를 했다. 그 학습의 결과는 1843년 후반기에 작성한 「유대인문제에 대하여」에서 드러난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바우어는 유대인이 유대교를 버리지 않고 정치적으로 해방되려면 즉 공민이 되려면 인권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유대인 스스로 비유대인에 대립함으로써 보편적인 인권으로부터 스스로를 배제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마르크스는 바우어의 이 주장을 비판하기 위해 프랑스의 ‘인권 및 공민권 선언’을 분석한다. 특히 1793년의 헌법 내용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는데 이 헌법이 이른바 프랑스 제1공화정(민주공화국)의 헌법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는 인권과 공민권은 시민사회와 정치적 국가 간의 분리로부터, 즉 정치적 해방으로부터 발생했다고 본다. 공민권과 달리 인권은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이기주의적 인간이 가지는 권리이다.
정치적 해방은 “인민으로부터 소외된 국가제도, 즉 지배자의 권력이 의존하는 낡은 사회”(MEW1, 367)를 해체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 혁명은 시민사회의 혁명”에 다름 아니다. 1789년의 프랑스혁명이 정치적 혁명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혁명이전의 낡은 사회의 성격은 “봉건성”(MEW1, 368)이고 “직접적으로 정치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낡은 사회에서는 시민적 삶의 요인들, 즉 “재산, 가족, 노동의 종류와 방식” 등이 국가적 삶의 요인들, 즉 “영주권, 신분, 조합”이라는 형식으로 고양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치적 혁명은 모든 “신분, 단체, 동업조합” 등으로부터 인민들을 분리시켜 자유를 주었다. 즉 정치적 혁명은 시민사회의 정치적 성격을 제거했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이것이 정치적 혁명의 긍정적 측면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에 의하면 정치적 혁명의 부정적 측면은 이 혁명이 “시민사회의 이기적 정신”을 만든 데 있다. 봉건사회의 해체가 인간을 “사회의 주인”(MEW1, 369)으로 만들었지만 이 인간은 “이기적 인간”이며 “인간과 공동체로부터 분리된”(MEW1, 364) 인간이다. 그러나 이 이기적 인간은 1789년의 인권선언문에서 인정을 받게 된다. 인권은 프랑스혁명 중 세 가지 (1791년, 1793년, 1795년의) 헌법에서 표현되었다. 인권은 시민사회 구성원의 권리이다. 네 가지 인권인 “자유, 평등, 소유, 안전”(MEW1, 354)은 “공동체로부터 분리된 개인”의 권리들이다. (1789년의 인권선언문 제2조에는 “자유, 소유, 안전 그리고 압제에의 저항권”으로 되어 있다. 마르크스가 위에서 인용한 것은 1793년 헌법, 즉 제1공화정 헌법에 근거한 것이다.) 자유는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는 한,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권리이고, 평등은 자유의 평등에 다름 아니다.
그 다음, 소유의 인권, 즉 “사유재산의 인권”이 ‘자유의 인권’을 실천적으로 유용하는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사유재산의 인권은 타인들과 단절하고, 사회와 독립하여 자신의 재산을 향유하고 처분할 수 있는 권리이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이 사유재산의 권리가 “시민사회의 근거”(MEW1, 365)라고 말한다. ‘안전의 인권’도 결국 시민사회구성원의 “인격, 권리, 소유를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마르크스는 인권에 대한 이러한 분석으로부터 인권선언문에는 인간이 “유적존재”로 파악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또 사회란 개인들 둘레에 쳐진 울타리 정도로 간주된다. 이 분열된 구성원들을 묶어주는 끈은 “자연필연성, 욕구, 사적이해 그리고 각자의 소유와 각자의 이기적 인격의 보존”(MEW1, 366)이다.
정치적 국가는 이런 이기적 인간을 인권의 형식으로 인정했다. 이기적 인간의 자유를 인정함으로써 이 인간의 무제한적 소유욕을 인정한 셈이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시민사회의 근거가 사유재산이라고 보았다. 마르크스는 투기와 화폐로부터의 해방이 인간해방이라고 생각한다. 투기와 화폐 물신주의의 토대는 사유재산제도이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인간해방이 사적소유를 폐기함으로써 가능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