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언명령은 칸트 도덕철학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런데 칸트는 정언명령을 단 하나의 정식이 아니라 여러 정식들을 통해 표현하였다. 이 여러 정식들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은 칸트 윤리학을 풍부하게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며, 그런 만큼 지금까지 칸트 연구 ...
정언명령은 칸트 도덕철학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런데 칸트는 정언명령을 단 하나의 정식이 아니라 여러 정식들을 통해 표현하였다. 이 여러 정식들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은 칸트 윤리학을 풍부하게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며, 그런 만큼 지금까지 칸트 연구의 중요한 연구 주제였다. 이 논문도 정언명령의 세 주요 정식(보편법 정식, 목적 그 자체 정식, 자율성 정식)의 관계를 해명해 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별한 점은 이 관계 규정을 정언명령의 <연역>이란 관점에서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칸트는 이 연역 작업을 [윤리형이상학 정초(GMS)]의 마지막 3절에서 수행하고 있다. 그러니까 칸트가 펼치는 논증의 순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순으로 마지막 부분에서부터 앞쪽을 되돌아 보는 관점에서 칸트의 논증을 살펴볼 때 새롭게 보이는 것이 있다. 이 논문은 정언명령의 세 주요 정식들 간의 관계를 이런 관점에서 해명함으로써 칸트 도덕철학의 풍요로움에 대한 이해에 작은 기여를 하고자 한다.
기대효과
이 논문은 직간접적으로 다음과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칸트 연구자 및 칸트 도덕이론에 관심을 갖고 있는 연구자들, 특히 칸트를 공부하는 석박사과정의 학생들에게 유용한 참고문헌이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칸트 도덕철학의 이해의 심화와 ...
이 논문은 직간접적으로 다음과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칸트 연구자 및 칸트 도덕이론에 관심을 갖고 있는 연구자들, 특히 칸트를 공부하는 석박사과정의 학생들에게 유용한 참고문헌이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칸트 도덕철학의 이해의 심화와 확장에 기여할 수 있다. 둘째, 대학 교육에서 긍적적 효과를 낼 수도 있다. 대학 교육에서 칸트 윤리학은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이 논문이 전문연구자들의 칸트 이해에 기여하고, 그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들이 행하는 대학교육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세째, 보다 더 간접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지식 인프라 구축에 기여한다. 이 논문은 매우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일반인에게 직접 다가가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 사회에서 통용되는 일반 교양이 튼튼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전문적인 지식에 기반해야 한다. 이 연구는 그런 전문지식의 축적에 기여한다.
연구요약
칸트는 [윤리형이상학 정초(GMS)]에서 이 저작의 목적이 “도덕성의 최상의 원칙의 <탐색>과 <확립>”이라고 밝히고 있다(GMS: 392). 칸트는 “도덕성의 최상의 원칙”, 즉 정언명령을 단 한 가지 정식이 아니라 여러 정식들로 표현했기 때문에, 이 정식들 간의 관계를 밝히는 ...
칸트는 [윤리형이상학 정초(GMS)]에서 이 저작의 목적이 “도덕성의 최상의 원칙의 <탐색>과 <확립>”이라고 밝히고 있다(GMS: 392). 칸트는 “도덕성의 최상의 원칙”, 즉 정언명령을 단 한 가지 정식이 아니라 여러 정식들로 표현했기 때문에, 이 정식들 간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 칸트 연구의 중요한 주제이다. 나는 이 주제에 관한 적지 않은 수의 선행 연구들을 검토했는데 그것들은 (논문 저자가 분명히 의식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모두 정언명령의 <탐색>이란 관점에서 수행되어 있었다. ‘탐색’과 ‘확립’은 서로 구분되는 목표이다. ‘탐색’은 도덕성이란 것이 실제로 있다는 전제 하에, 그 도덕성의 원칙을 찾고 표현해 내는 작업이다. ‘확립’은 이렇게 찾아진 도덕성과 도덕원칙이 망상이 아니라 실제로 유효하고 타당한 것임을 입증하는 논증이다. 칸트는 후자를 정언명령의 “연역”이라고도 부른다(GMS: 454, 463). 나의 논문은 기존의 연구들과 다르게, 탐색이 아니라 <확립>, 즉 정언명령의 연역이란 관점에서 여러 정식들의 관계를 규명해 보려한다는 점에서 독창적인 시도이다. 이것이 새로운 시도인 만큼 그 만큼 논증부담도 크다. 먼저 (거의) 정설로 인정되고 있는 표준적 해석에 대한 조정이 이루어진다. 하나는 정언명령의 탐색은 GMS의 1절과 2절에서, 정언명령의 연역은 3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언명령이 여러 정식들로 표현되는 것은 2절이다. 이렇게 되면 연역의 관점에서 여러 정식들의 관계를 해명하려는 시도는 처음부터 빗나간 것일 수 있다. 나는 앞의 표준적 해석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GMS의 3절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연역에 대한 관심이 2절의 정언명령의 다양한 정식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존학설에 대한 첫 번째 조정이 미세 조정이라면, 두 번째 조정은 좀 더 도전적이다. 표준 해석에 따르면 정언명령의 연역의 문제는 자유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나는 GMS의 3절의 텍스트에 밀착해서 정언명령의 연역이 <이중의> 과제임을 밝힌다. 정언명령의 연역은 그것의 ‘객관적’ 가능성과 더불어 ‘주관적’ 가능성 또한 증명해야 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정언명령의 객관적 가능성은 자유의 가능성이다. 기존의 학설은 여기에만 집중해 왔다. 그러나 정언명령의 연역은 그것의 ‘주관적’ 가능성에도 달려있는데, 그것은 정언명령이 인간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행동으로 이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GMS 461 참조). 연역의 문제를 이렇게 이중 과제로 볼 때 우리는 비로소 정언명령의 세 주요 정식들 간의 논증적 역할분담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정언명령의 연역이란 관점에서 볼 때 정언명령의 세 주요 정식(보편법 정식, 목적 그 자체 정식, 자율성 정식)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논증상의 노동분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도덕법의 최상의 원칙”이 현실에서의 “도덕판단의 표준(Kanon)” 혹은 “척도(Richtmaße)”로 제시된 것이 정언명령의 보편법정식이다. 칸트는 이 정식이 우리의 판단을 이끄는 “나침반”처럼 사용될 수 있다고 봤다. 자율성 정식과 목적 그 자체 정식은 연역의 이중 과제 중 각각 하나씩을 준비하고 있다. 자율성 정식은 3절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자유의 가능성 증명에 맞추어져 있다. 객관적 측면에서 정언명령의 “최상의 조건”은 의지의 자율성이다(GMS 421). 그러나 정언명령의 주관적 가능성, 즉 도덕법이 무력하지 않고, 주체의 의지를 실제로 움직일 수 있는가와 관련해서는 목적 그 자체 정식이 정언명령의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을 목적 그 자체로 여기는 의지가 정언명령의 주체와 관련된 조건이다. 기존 연구들에 비춰볼 때 이 논문의 시도가 독창적인 것은 분명하지만(내가 아는 한 정언명령의 정식들의 관계를 연역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유일한 시도이다), 독창적 시도는 드물지 않게 엉뚱함으로 귀결되곤 한다. 나는 이 위험을 다음 두 가지 논증전략을 통해 피하고자 했다. 하나는 논증을 해나가면서 칸트 텍스트에 밀착하는 것이다. 이 논문은 많은 텍스트상의 전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다음으로 기존의 해석을 무겁게 여기는 것이다. 나는 논증을 펼 때 기존의 해석을 항상 염두에 두었으며, 그것은 기존 해석에 대한 조정과 대결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