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兵學을 통해 본 17∼19세기 동아시아 사상의 지평 - 조선후기와 에도시대의 中國 兵書 수용과 비평을 중심으로 -
Horizon of East Asia Thought Looked through the Military Science from the 17th to 19th Centuries - Focusing on the Acceptance and Criticism of the Chinese Books on Military Art in th Late Choson and the Japanese Edo Period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학문후속세대양성& #40;박사후국내연수& #41;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6S1A5B5A01022349
선정년도 2016 년
연구기간 2 년 (2016년 07월 01일 ~ 2018년 06월 30일)
연구책임자 김홍백
연구수행기관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임병양란 이래의 17∼19세기 동아시아는 冊封-朝貢 체계의 중세 질서가 점차적으로 해체되어간 시대이다. 이는 동시에 사상의 영역에서도 한자문명권의 정신적 기반인 儒學이 여타의 사상과 경합하며 안팎으로 변모해간 과정이기도 하다. 그 중 특기할 사안은 동아시아 삼국이 출전한 임란 이후 중국과 조선, 일본에서 공히 ‘兵學’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유학과 병학의 종주국인 중국과의 지리적ㆍ문화적 遠近에 따라 조선과 일본에서 병학에 주목했던 방식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의 병학이 17세기 이래의 조선과 일본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비평되었는지를 검토하는 것은, 동아시아 사상사의 전개를 ‘유학’만이 아니라 ‘병학’과의 관계를 통해 좀 더 입체적ㆍ역동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아울러 이러한 시각은 조선과 일본의 사상적ㆍ정신적 토대에 관한 종래의 근대주의적 통념을 새롭게 재인식하는 계기를 제공해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이며 일본은 ‘사무라이의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이는 전자가 崇文으로 인해 文弱하고 후자가 尙武로 인해 武强하다는 사고로 연결된다. 그 근저에는 朝日 사상사를 ‘조선의 儒學[文]’과 ‘일본의 兵學[武]’이라는 대립적 도식으로 단순화하여 파악하고자 하는 통념이 놓여 있다. 그러나 임란 이후 조선의 많은 유학자와 문인지식인들은 ‘병학’을 대대적으로 주목하였고, 사무라이가 지배했던 근세 일본의 지성사에서도 ‘유학’은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유학이 주류였던 사회에서 ‘병학’은 어떻게 사고되고 유학 내에 용해되었는가?(조선) 병학이 주류였던 사회에서 ‘유학’은 어떻게 사고되고 병학 내에 용해되었는가?(일본) 비슷한 듯 전혀 다른 이 질문은, 중세 동아시아 공동의 문명권 안에서 이질적인 정치적ㆍ사회적 기반 위에 존재했던 조선과 일본 사상사의 각 독자적 위상에 대한 비교적 규준을 마련하기 위한 핵심적 의제설정이 될 수 있다 생각한다.
    따라서 본 연수희망자는 병학을 중심축으로 17∼19세기 동아시아 사상의 지평을 탐색하고자 동아시아 병학의 연원인 중국의 병서를 조선과 일본에서 각각 어떻게 수용하고 비평했는지 비교 검토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조선 후기 병학 담론의 고유한 특질을 동아시아 사상의 지평 안에서 구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학계에서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조선 사대부의 병학 담론’을 검토하고자 16세기 말 이래 19세기 말까지의 조선 문인지식인들의 문집 내 ‘병학 비평자료’를 전수조사하여 군사적 측면에 한정되지 않는 ‘병학 담론’의 다양한 성격을 실상 그대로 드러냄으로서 각 시기별 흐름과 경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그 정치적ㆍ문학적ㆍ사상적 의미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나아가 동시대 일본의 병학 담론과의 비교 분석을 통해, 그간 ‘조선의 선비와 일본의 사무라이’ 내지 ‘조선의 유학[文]과 일본의 병학[武]’ 등의 도식으로 통념화되었던 朝日 사상사의 구도를 동아시아적 지평에서 비판적으로 재음미하고 재검토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 기대효과
  • 본 연수희망자는 조선 후기와 에도 시대 병학 담론에 관한 비교 검토를 통해 17∼19세기 동아시아 사상의 지평을 탐구한 본 연수가 다음 몇 가지의 연구 성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
    (1) 중국의 武經七書와 明代 兵學이 임란 이후의 조선과 일본에서 각각 어떻게 수용되고 변용되었는가를 구체적으로 비교 고찰함으로서 동시대 조선과 일본의 사상사적 지형도의 同異를 보다 심층적으로 조감할 수 있다.
    (2) 조선 후기 지성사가 일정부분 병서를 매개로 하여 유학과 병학 내지 전쟁(정치)의 영역과 문학의 영역이 상호 밀접하게 교섭하면서 전개되어간 과정을 동아시아 사상의 구도 안에서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3) ‘병학’을 중심축으로 삼아 동아시아적 지평에서 조선과 일본 지식인들의 ‘華夷觀’과 ‘서양 대응 담론’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들을 재음미함으로써, 근대 한일 관계와 동아시아론에 관한 풍성하고 의미있는 관점과 논리들을 재발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연구요약
  • 본 연수희망자는 병학을 중심축으로 삼아 17∼19세기 동아시아 사상의 지평을 새로이 탐구하고자 조선후기와 에도시대 병학 담론의 각 구체적 실상을 밝히고 비교 검토하기 위해 1∼2년차에 걸쳐 단계적으로 다음 네 가지 측면에서의 접근을 시도하고자 한다.
    첫째. 조선과 일본의 병학 담론을 검토하기 위한 사전작업으로서, 동아시아 병학의 연원이 되는 先秦∼明代 병학 담론의 특징적 면모를 개괄할 것이다. 주요 兵書를 산출해낸 병학의 학파인 兵家는 제자백가의 하나로서 탄생 초기부터 여타 諸家와 경쟁하고 섞이며 일종의 ‘사상’으로서 발전하였기에, 본 연수에서는 武經七書를 중심으로 여타 諸子書와 先秦兩漢 텍스트 내 兵 담론까지 아울러 살펴봄으로써 중국 병학 담론의 기본 특질을 군사적 측면 외에도 ‘유가 사상’과의 관련 속에서 종합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둘째. 이상의 중국 병학 담론이 조선후기의 문인지식인들에게 어떻게 수용되고 비평되었는지 한국문집총간 소재 병학 비평자료를 대상으로 검토할 계획이다. ‘첨부1’에 정리한 〈조선후기 兵學 비평자료 목록〉에 의거하여 임란 이래 구한말의 李南珪까지 중국과 조선의 병서 등에 관해 주목할 만한 논평을 남긴 총 50여명의 유학자ㆍ문인지식인들의 비평자료를 통시적으로 분석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조선 지식인들이 병서를 古文으로 인지했던 경향과 用兵의 전술을 작문론에 등치시켰던 점, 특히 병학을 당대의 사회경제적 현실 속에서 利用厚生의 유가적 경세론으로 전용했던 경향 및 병서를 단초로 삼아 王=覇 내지 文=武 간의 관계를 균형적이고 통일적으로 파악하고자 했던 태도 등을 검토함으로서, 조선 지식인들이 중국의 병학 담론을 자신들의 정치적ㆍ문학적 현실 속에서 어떻게 주체적으로 소화하며 변용했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이상의 1년차 연수에서 분석한 조선후기 병학 담론의 고유한 특징은 동시대 일본의 병학 담론과 비교함으로서 보다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를 위해 2년차 연수에서는 먼저 일본의 병학 담론을 통시적으로 정리하고 분석하여 이를 조선의 병학 담론과 구체적으로 비교 고찰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첨부2’에 정리한 〈에도시대 병학 비평자료 목록〉에 의거하여 에도 초기 막부의 기본법인 『武家諸法度』부터 막말의 木戶孝允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일본의 병서 등에 관해 주목할 만한 논평을 남긴 총 34명의 병학자ㆍ유학자들의 비평자료를 통시적으로 분석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병학자 외에도 근세 일본 사상사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朱子學者와 古學者 등의 병학 인식의 공통적 지반과 차이에 대해 유학과 병학, 통치론의 관계와 武國 담론 및 『孫子』와 『韓非子』 등의 병서와 제자서에 대한 수용방식 등에 관해 입체적으로 탐색하고자 한다.
    넷째. 본격적으로 조선후기와 에도시대 병학 담론의 동이와 그 의미에 대해 비교사상사적 고찰을 수행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크게 다섯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검토하고자 합니다. (1) 병학과 유학의 관련 양상과 추이, (2) 武經七書 수용 방식과 동이, (3) 明代 兵學書 수용 방식과 동이, (4) 병학의 수용과 華夷觀의 변모, (5) 병학의 創新과 서양 대응 담론 등의 측면에서 다각도로 비교 검토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조선이 병학을 유학 안에서 유가적 실용주의 경세론으로 용해시켰다면, 일본은 병학을 유학보다 우위에서 武威的 통치론으로 확장시켰던 양상과 의미를 보다 뚜렷이 파악할 수 있다. 또 이는 중국 병학의 수용태도와도 연결되는바, 각 병서에 대한 양국에서의 수용방식의 동이를 집중적으로 탐색할 예정이다. 아울러 양국의 병학에 큰 영향을 끼친 『紀效新書』와 『武備志』등 명대 병학에 관한 수용방식의 동이를 비교 검토할 예정이다. 나아가 논의를 확장하여 병학을 중심축으로 삼아 양국의 華夷觀과 서양 대응 담론에 대해서도 검토할 계획이다. 이상의 다섯 가지 항목으로 양국의 병학 담론을 비교 고찰해가면, 17∼19세기 동아시아 사상의 지평에서 조선과 일본 사상사의 각 고유한 지점을 더욱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는 병학을 중심축으로 17∼19세기 동아시아 사상의 지평을 탐색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동아시아 병학의 연원인 중국의 병서를 조선과 일본에서 각각 어떻게 수용하고 비평했는지 비교 검토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통해 조선 후기 병학 담론의 고유한 특질을 동아시아 사상의 지평 안에서 구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먼저 학계에서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조선 사대부의 병학 담론’을 검토하기 위해 16세기 말 이래 19세기 말까지의 조선 문인지식인들의 문집 내 ‘병학 비평자료’를 전수조사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각 시기별 흐름과 경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그 정치적ㆍ문학적ㆍ사상적 의미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군사적 측면에 한정되지 않는 ‘병학 담론’의 다양한 성격을 실상 그대로 드러내고자 하였습니다. 나아가 동시대 일본의 병학 담론과 비교하고 분석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예전에는 ‘조선의 선비와 일본의 사무라이’ 또는 ‘조선의 유학[文]과 일본의 병학[武]’ 등의 도식으로 통념화되었던 조선과 일본의 사상사의 구도를 동아시아적 지평에서 비판적으로 재음미하고 재검토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였습니다.
  • 영문
  • The study will explore the horizon for East Asian thoughts in the 17th to 19th centuries centering on Military Science(兵學). For this reason, I tried to compare and examine how Choson and Japan accepted and criticized Chinese Military Science(兵學) records, which are the source of East Asian Military Science(兵學). I believe that through this, we can specifically illuminate the characteristics inherent in the late Choson military discourse in the level of East Asian thought. First of all, in order to examine the theory of military science of Choson archives, which has not been noticed in the academic world, we conducted a comprehensive survey on military criticisms of Choson intellectuals from the end of the 16th century to 19th centuries. As a result, the flow and trends of each period were clearly organized, and the political, literary and ideological implications were comprehensively examined. I tried to demonstrate the various characteristics of the military discourse. In addition, I analyzed it by comparing it with the theory of military Science of the same age in Japan. Through this process, I wanted to provide an opportunity to critically re-examine and re-examine the structure of Choson and Japanese thought history, which were commonly believed in such diagrams as 'Seonbi of Choson and Samurai of Japan' or 'Confucianism of Choson' and 'Military Science of Japan'.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수자는 병학을 중심축으로 삼아 17∼19세기 동아시아 사상의 지평을 새로이 탐구하고자 조선후기와 에도시대 병학 담론의 각 구체적 실상을 밝히고 비교 검토하기 위해 우선 1년차 연수에서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의 접근을 시도하고자 했습니다.
    첫째. 조선과 일본의 병학 담론을 검토하기 위한 사전작업으로서, 동아시아 병학의 연원이 되는 先秦∼明代 병학 담론의 특징적 면모를 개괄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중국 병학 담론의 기본 특질을 군사적 측면 외에도 ‘유가 사상’과의 관련 속에서 종합적으로 검토하고자 했습니다.
    둘째. 이상의 중국 병학 담론이 조선후기의 문인지식인들에게 어떻게 수용되고 비평되었는지 한국문집총간 소재 병학 비평자료를 대상으로 검토하였습니다. 임란 이래 구한말의 李南珪까지 중국과 조선의 병서 등에 관해 주목할 만한 논평을 남긴 총 50여명의 유학자ㆍ문인지식인들의 비평자료를 통시적으로 분석하였습니다.
    셋째, 아울러 조선과 일본에서의 ‘文과 武’, ‘王道와 覇道’, ‘天道와 放伐’에 관한 비평자료를 정리했습니다. 각각은 양국에서 주요하게 논의되었던 병학 담론을 유가 사상과의 관련 하에서 조망하기 위한 핵심 키워드라는 점에서, 유학과의 긴장관계 속에서 발원하였던 고대 중국의 병학 담론이 조선후기와 에도시대라는 동시대의 상이한 공간에서 어떻게 각국의 사상사적 맥락 안에서 나름의 논리로 수용ㆍ변용되었는지 보다 예각화하여 조감할 수 있습니다.

    2년차 연수에서는 1년차 연수의 성과 위에서 다음 네 가지 측면에서의 접근을 시도하고자 했습니다.
    첫째, 18세기 실학자들의 ‘병학-유학 담론’을 에도시대 지식인의 ‘병학-유학 담론’과 비교하였습니다. 조선 실학자들의 병학 담론은 병제 또는 병법을 자신들의 유학에 기반한 實事的 사고 위에서 당대 조선의 시의적 난국을 돌파하기 위한 원리적 단초로 전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세 일본의 병학자들이 센코쿠 시대에 성행했던 주술적인 軍紀術 중심의 병법에서 벗어나 병학의 도덕학화와 정치학화를 꾀했던 것과 대비됨을 밝혔습니다. 그 대표적 인물인 17세기 전반의 北條氏長와 山鹿素行 등을 검토하였습니다.
    둘째, 조선과 일본에서의 무경칠서 수용 태도를 비교하였습니다. 가령 무경칠서 중의 하나인 <司馬法>의 수용 태도를 비교해보면, 조선의 유몽인은 <司馬法>의 첫 번째 항목인 <仁本> 조에서 본디 설파되고 있는 ‘權道[전쟁]의 불가피성에 대한 현실론’을 원래의 문맥과 상관없이 그 문면상 의미인 “仁을 근본으로 한다”라는 유가적 대의만을 부각시켜 가렴주구를 일삼는 관리들에 대해서는 중형으로 다스려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펴야 한다는 ‘유가적 경세론’으로 전용했습니다. 반면 일본의 堀景山은 “<司馬法>에 ‘천하가 비록 평안해도 武를 잊으면 반드시 위태롭다.(天下雖安, 忘武必危)’라고 적혀 있는 것을 구실로 삼아 軍學이 나의 道라는 마음가짐, 이를 존중하여 믿는다”(<不盡言>)처럼, <司馬法>에서 설파되는 武에 대한 경계를 근세 일본의 다테마에(タテマエ)이자 대원칙으로 도리어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司馬法󰡕과 전술한 󰡔孫子󰡕 등 무경칠서의 각 병학 텍스트를 조선과 일본에서 어떻게 수용ㆍ변용했는지 그 동이를 집중적으로 탐색하였습니다.
    셋째, 조선과 일본 병학 담론에 큰 영향을 끼친 ‘明代 兵學’에 관한 수용 태도와 방식의 동이를 비교 검토하였습니다.
    넷째, 나아가 이상의 검토를 기반으로 논의를 확장하여 ‘병학 담론’을 중심축으로 삼아 조선과 일본의 ‘華夷觀’과 ‘서양 대응 방식’에 대해서도 검토하였습니다. 北學派의 華夷論을 계승한 朴珪壽의 경우를 古賀侗庵ㆍ佐久間象山과 비교 검토하였습니다. 그 결과 근세 일본은, 병학조차 유학 안에서 용해시킨 조선과 달리, 병학이 ‘大道’였기 때문에 서양의 충격에 대해 신속히 군사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동시에 중국과 조선을 침략하기에 이르는 부국강병과 연결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조선 후기와 에도 시대 병학 담론에 관한 비교 연구를 통해 이러한 병학 담론의 양면성을 공평하게 직시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수자는 조선 후기와 에도 시대 병학 담론에 관한 비교 검토를 통해 17∼19세기 동아시아 사상의 지평을 탐구한 본 연수가 다음과 같은 기대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1) 조선 후기 지성사가 일정부분 병서를 매개로 하여 유학과 병학 내지 전쟁(정치)의 영역과 문학의 영역이 상호 밀접하게 교섭하면서 전개되어간 과정을 동시대 일본과의 비교 하에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2) 중국의 武經七書와 明代 兵學이 임란 이후의 조선과 일본에서 각각 어떻게 수용되고 변용되었는가를 구체적으로 비교 고찰함으로서 동시대 조선과 일본의 사상사적 지형도의 同異를 동아시아적 구도 안에서 보다 심층적으로 조감할 수 있습니다.
    (3) 조선과 일본에서의 ‘文과 武’, ‘王道와 覇道’, ‘天道와 放伐’ 등의 개념을 다면적ㆍ종합적으로 접근함으로서, 고대 중국에서 유학과의 긴장적 관계 속에서 발원하였던 병학 담론이 각각 조선후기와 에도시대라는 동시대의 상이한 공간에서 어떻게 각국의 사상사적 맥락 안에서 나름의 논리로 수용ㆍ변용되었는지 보다 예각화하여 조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4) ‘병학’을 중심축으로 삼아 동아시아적 지평에서 조선과 일본 지식인들의 ‘華夷觀’과 ‘서양 대응 담론’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들을 재음미함으로써, 근대 한일 관계와 동아시아론에 관한 풍성하고 의미있는 관점과 논리들을 재발굴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 색인어
  • 병학(兵學), 유학(儒學), 담론, 조선후기, 에도시대, 동아시아, 사상, 문무(文武), 왕패(王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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