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식민지 시기 일본 본토와 식민지 조선이 하나의 ‘제국’(帝國)으로 통합되면서 발생하게 된 특수한 역사적 상황이 한국 근대소설의 서사적 차원에 미친 영향을 제국의 수도 ‘동경’(東京)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광수, 김동인, 염상섭 등 근대 초기 대부분 ...
본 연구는 식민지 시기 일본 본토와 식민지 조선이 하나의 ‘제국’(帝國)으로 통합되면서 발생하게 된 특수한 역사적 상황이 한국 근대소설의 서사적 차원에 미친 영향을 제국의 수도 ‘동경’(東京)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광수, 김동인, 염상섭 등 근대 초기 대부분의 작가들은 동경유학생들이었으며, 동경은 이들이 서구문명을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었던 “서구 근대문학의 출장소”였다. 소설의 중심인물들도 대부분 동경유학생들이었고, 동경을 지향하며, 그곳에서 신문물을 접하고 성장하여 고국으로 되돌아왔다. 유학생들과 함께 고려해야 할 또 다른 부류로는 경제적 목적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던 다수의 조선인 노동자들이다. 조명희나 송영 등 카프 작가들은 당시 일본에 거주하는 절대 다수의 조선인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려 노력하였다. 유학생과 노동인구의 동경 유입은 조선사회가 식민지적 근대화 과정을 거치는 가운데 ‘중심’(內地)과 ‘주변’(外地)이라는 제국적 문화구조가 만들어낸 사회문화적ㆍ역사적 현상이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동경에 체류했던 조선인들이 그곳에서 어떠한 체험을 했으며, 어떠한 감정을 느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동일한 공간이라도 그곳을 체험하는 사람의 민족ㆍ계층ㆍ젠더ㆍ세대적 정체성에 따라 그 반응은 상이하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당시 조선인들이 동경에서 접한 체험과 정서적 반응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더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동시대 동경의 도시환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1) 동경을 서부(긴자 중심)와 동부(아사쿠사 중심)로 양분하여 파악한 후, (2) 35개(도심 15구, 교외 20구)의 세부 구역의 지역적 특성과 한국 근대소설이 펼쳐지는 공간적 분포와 서사적 특성 등을 세밀하게 검토하고자 하였다.
에도 시대까지는 스미다 강을 중심으로 한 아사쿠사가 동경의 중심을 차지했었다. 그렇지만 1923년 관동대진재가 발생한 후, 동경의 중심은 ‘긴자’로 빠르게 이동해 갔다. 그리고 근대적 신시가지인 서부와 에도 시대의 분위기가 남은 구시가지인 동부로 양분 발전하게 되었다. 각 구역에는 서로 다른 계층이 거주하며 저마다의 문화를 형성해갔으며, 그 구역을 주로 다루는 문학텍스트의 성격이나 분위기에서도 일정한 차이가 나타났다. 특정 문학 하위 장르는 특정 도시구역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각 구역은 자신과 적합한 장르를 가지고 있다.
본 연구에서 다루는 작가들은 모두 1923년 관동대진재 이후에 유학이나 체류를 통해서 ‘동경’을 체험한 작가들로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1) 1년차 연구─조선인 노동자와 동경의 동부와 외곽지역(구시가): 송영의 「늘어가는 무리」(1925), 「용광로」(1926), 「석탄 속의 부부들」(1928), 「우리들의 사랑」(1929), 「정의의 칸바스」(1929), 조명희의 「아들의 마음」(1928), 이명식의 「소년직공」(1929), 유진오의 「귀향」(1930) 등(아사쿠사, 혼조, 후카가와, 닛포리 등)
(2) 2년차 연구─동경 유학생과 동경의 서부지역(신시가): 박태원의 반년간(1933), 이태준의 별은 창마다(1942), 청춘무성(1940), 제2의 운명(1933), 불멸의 함성(1934), 염상섭의 무화과(1931), 불연속선(1936), 광분(1930), 이광수의 그 여자의 일생(1934), 유진오의 화상보(1940) 등(긴자, 신주쿠, 간다, 혼고 등)
(3) 2년차 연구─‘이중어 글쓰기’의 작가들과 혼종적 구역: 김사량의 「빛 속으로」(1939), 장혁주의 무지개(1933), 정인택의 「촉루」(1935), 「미로」(1939), 「여수」(1941), 「부상관의 봄」(1941) 등
첫째는 동경의 조선인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작가들로 송영, 조명희, 유진오, 이명식 등이다. 이들의 작품은 구시가지인 동경의 동부, 그리고 스미다강 너머의 동경 외곽을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둘째는 동경유학생들의 삶을 다룬 작가들로 이광수, 이태준, 박태원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의 작품은 신시가지인 동경의 서부 일대를 주요 배경으로 한다. 박태원, 염상섭, 유진오 등은 신시가와 구시가를 각각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남긴 작가들이다. 마지막으로는 조선어와 일본어로 ‘이중어 글쓰기’를 했던 김사량, 장혁주, 정인택의 작품들을 대상으로 한다. 이들은 여타 다른 조선인 작가들과는 다른 독특한 시각을 보여주며, 공간적으로도 양 구역을 가로지르는 혼종적 특성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