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성과물검색
유형별/분류별 연구성과물 검색
HOME ICON HOME > 연구과제 검색 > 연구과제 상세정보

연구과제 상세정보

근대 동아시아 지평에서 본 정인보 조선학의 사상적 토대
A Study on the Philosophical Foundations of Inbo Jeong’s Theory of Korean Studies(Joseonhak) in the light of National learning in Early Modern East-asia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신진연구자지원사업& #40;인문사회& #41;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6S1A5A8019029
선정년도 2016 년
연구기간 1 년 (2016년 05월 01일 ~ 2017년 04월 30일)
연구책임자 김윤경
연구수행기관 조선대학교 우리철학연구소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동아시아를 풍미하고 있는 ‘한류 문화’나 중국 ‘중원 문명 탐원 공정’의 역사 왜곡,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등 현대 사회는 각 문화의 정체성과 발전 방향에 대한 다각적인 고민과 연구가 필요한 시대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학은 미래 지향적이며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필수적인 연구 영역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 중요성에 비해 연구 성과가 적고 무엇보다 한국학의 학문적 연원이나 정체성에 관한 토대 연구가 미흡하다. 한국학의 학문적 연원이나 정체성연구는 한국학자체에 대한 탐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근대 한국학 연구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근대 한국학은 최근 1930년대 ‘조선학 운동’ 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지만, 그 연원과 정체성을 규명하는 연구는 아직까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근대 한국학을 대표하면서 풍부한 철학적 토대를 지닌 인물로는 정인보(1892-?)를 들 수 있다. 그는 최남선, 신채호, 박은식 등 당대 지식인과의 교류를 통해 일본의 ‘국학’ 및 양명학을 접하고 있었고 중국 국학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하면서 조선학 연구의 모범으로서 항상 장병린을 거론했었다. 이런 맥락에서 일본․중국의 국학이 정인보의 조선학 연구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조선학 연구는 근대 동아시아 국학과 같은 국수주의의 산물인가, 혹은 정인보의 조선학 연구 일본․중국의 국학과 다른 특성은 무엇인가 하는 부분은 근대 동아시아 지평에서 조선학이 차지하는 위상을 조망할 수 있는 중요한 기틀이 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 분야가 본격적으로 연구되지 않았다. 따라서 정인보의 조선학 연구와 관련된 일정한 키워드를 중심으로 일본의 국학과 중국의 국학 인물들을 비교 분석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국학이라는 용어는 일본의 메이지유신 이후에 널리 퍼진 개념이지만, 일본의 국학이라는 학문이 정립된 것은 그 보다 약 100년 전이었던 것처럼 한국에서 조선학이라는 개념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 이전으로 소급할 수 있다. 근대 한국학을 제대로 규명하려면 근대 동아시아(일본․중국) 국학과 관계라는 외재적인 측면의 연구 뿐만 아니라, 전통 철학적 연원과 발전이라는 내재적인 측면의 종합적 연구가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정인보의 스승이자 강화 양명학파의 한 사람인 이건방과 정인보의 조선학 및 사상 비교연구도 진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근대 한국학의 중심에 서 있었던 정인보를 당대 대표적인 국학 사상가인 장병린, 하가야이치, 다카세 다케지로와 비교하고 그의 학문적 뿌리인 강화학파 이건방과 철학적 계승성을 검토하여 근대 한국학의 철학적 토대와 정체성을 규명하고자 한다.
  • 기대효과
  • 1.한국학 연구의 질적 제고 및 동아시아 ‘국학’비교 연구의 기반 마련
    근대의 대표적인 한국학자인 정인보의 사상적 지형도 구축을 통해 당대의 다양한 한국학 연구 연원과 양상을 재검토할 수 있고 본격적인「근대 동아시아 국학의 비교연구」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본 연구의 초점으로 삼았던 정인보의 한국학을 당시 일본, 중국의 국학의 주요개념과 전통 철학의 관련성을 재검토함으로써 정인보 보다 앞서 조선학 연구를 시도한 최남선(崔南善), 박은식(朴殷植), 신채호(申采浩)의 연구 또한 근대 동아시아 지평에서 조망할 수 있게 된다. ‘朝鮮學’으로 명명되는 근대 한국학 및 일본․중국의 국학을 비교하는 작업은 추후에 국내 뿐만 아니라 근대 동아시아 국학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근대 한국학의 대표주자이면서 내외적으로 다양한 사상 흐름 속에 놓였던 정인보 조선학을 종합 고찰하는 일은 바로 본격적인 근대 동아시아 국학 연구의 기초 작업이 될 수 있다.
    2.조선학 연구의 사상적 토대 연구를 통해 전통 철학의 시대적 역할 재조명
    근대 동아시아 사상계의 지평에서 조선학의 사상적 기반을 조망함으로써 근대 지식인과 현실대응 방안과 전통 철학의 시대적 역할을 재조명할 수 있다. 근대라는 시기는 외래 문화 및 학술사조에 대한 수용과 대응이라는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박한 시기였다. 근대 한국학의 철학적 토대를 검토하는 작업은 근대시기 지식인의 외래 사조 수용 및 전통의 재해석, 현실대응방안 등 그 사상 형성전반을 재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며, 특히 그들의 자기인식과 주체사유의 기반이 과연 어디에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이들에게 전통철학이 중요했다면 근대 사상과 민족 운동을 전통의 부정 혹은 단절 속에서 파악하는 인식을 재고해야 할 것이며, 외래사상을 적극 활용했다면 그 속에 자기 중심사유과 현실 대안론을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런 과정은 근대가 만들어낸 현대에서 전통을 재해석하고 현실에 응용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3. 강화 양명학파의 학문적 정체성 탐구에 관한 후속 연구의 활성화
    본 연구에서 이건방과 정인보의 사상적 관계를 검토 하는 것은 근대 한국학의 내재적 발전 요인인 강화학파(江華學派)의 주체사유와 그 계승성을 확인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것은 근대 한국학 연구의 연원 및 계보, 그리고 강화학파의 학문적 정체성에 관한 후속 연구의 활성화로 지속될 수 있다. 한국에서 진행된 한국학의 내용적 형성은 근대 이전 세대까지 소급해볼 수가 있다. 이 점은 조선의 역사나 언어 연구에 대한 일반적인 학술 사조의 형성과 전개를 고찰할 때 충분히 설정 가능하며, 강화학파의 조선 연구가 그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근대의 한국학 연구를 선도했던 정인보의 ‘조선학’을 전통 철학과의 연계선상에서 고찰한다면 ‘조선학 형성의 토대’, 다시 말해 근대 한국학의 연원 문제를 좀더 심도 깊게 논의할 수 있다. 선행 연구에서 명․청 교체 이후 동아시아 사상계에서 전통적 중화의식의 균열이 일어나고 지역성이 발견되는 과정에서 조선의 독창성을 모색하는 일련의 학술 풍토가 일었으며 이 과정에서 ‘조선학’ 의 기반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지만, 북학파의 문학활동 중심의 연구였다. 조선 후기 한국학 연구의 다양한 양상 중에 하나인 강화학파 조선 연구의 철학적 계승성을 고찰하면 한국학 연구의 다른 양상인 북학파의 조선 연구 양상과 철학적 기반도 비교 검토할 수 있고 상호 관련성도 확인할 수 있다.
  • 연구요약
  • 1. 연구의 내용: 근대 동아시아의 국학론과 정인보 조선학론의 비교 분석을 통해 상호 연관성 및 특성 규명한다. 근대 동아시아의 국학론과 정인보 조선학론의 비교 분석을 통해 상호 연관성 및 특성을 규명하여 정인보의 조선학이 동아시아 한국학의 지평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정인보가 사용하는 국학 개념인 ‘조선학’의 의미, 그 정신적 기반인 ‘조선의 얼’, 조선학 전개 원칙 인 '자기 일은 자기 스스로에 대응하는 일본과 중국의 국학 용어를 비교 분석할 것이다. 근대 국학을 가장 먼저 형성한 일본의 국학을 ‘학’으로서 건립한 모토오리 노리나가를 발견하고 국학 건립자로 소개하면서 국학의 개념과 일본의 국학 정신을 규정해 나간 사람은 바로 하가 야이치(芳賀矢一)였다. 하가 야이치는 국학을 문헌학으로 규정하고 실증을 중시하면서도 신화적 사유를 용인하고 국체와 일본정신을 중시했다. 또 이 점은 일본 정신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고 일본정신으로서의 덕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가를 양명학 속에서 찾으려 했던 다카세 다케지로(高瀨武次郞)와 상보관계에 있다. 다카세 다케지로(高瀨武次郞)는 양명학을 매우 簡易하고 時宜適切한 학문으로 여기고 국가주의를 추동하는 정신으로 삼았는데, 박은식(朴殷植), 양계초(梁啓超), 장병린(章炳麟)과 같은 한․중의 지식인들도 일본의 발전이 실천중심적 양명학의 추구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이를 계몽운동과 한국학운동의 실천정신으로 응용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같은 시기를 살았던 정인보는 일본이 타자인 서양이나 중국과는 다른 순수 일본학을 추구한 것과 마찬가지로 순수 조선적인 것의 추구로 조선학의 개념을 사용하지도 않았고 양명학에 대해서도 실천 정신보다는 주체정신에 주목했다. 장병린과 정인보의 주체관념은 당시 문명개화론자들이 주장했던 개인, 즉 문화적인 측면에서만 주체성을 갖는 존재로서 체재에 순응하는 개인상이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도덕적 차원의 전방위적 주체성이 요구되는 개인 상에 부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장병린은 민족 중심적 배타주의를 주장했고 정인보는 얼을 매개로 전통 유학에서 ‘친친(親親)’을 통해 ‘애민(愛民)’으로 진화해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만물일체(萬物一體)의 대동사회 상을 주장했다. 본 연구에서는 이런 맥락에서 장병린과 정인보의 주체 개념을 좀더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양자의 관련성을 검토한다.
    2. 연수의 방법: '자기 일은 자기 스스로라는 정인보(鄭寅普) 조선학 체계의 주요 개념과 1)하가야이치(芳賀矢一)의 ‘국학’, ‘일본정신’, 2)다카세 다케지로(高瀨武次郞)의 양지론(良知論), 3)章炳麟의 ‘依自不依他’론 4)이건방(李建芳) 의 ‘眞’, ‘假’ 개념 및 양지론을 비교 분석한다. 지금까지 본 연구 주제와 직결된 선행 연구 성과는 없기 때문에 먼저 각각의 선행연구를 먼저 검토하고 1차 자료를 분석하여 비교하는 과정을 거친다. 또한 국학 자체의 개념 규정 비교, 국학 연구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목적성의 비교, 국학 연구의 사상적 기조 비교를 통해 각 국학의 정체성을 비교하되 상호 연관성이 추정되는 부분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3. 연구의 범위: 본 연구에서는 1)鄭寅普의 저술 모음집 2)하가 야이치(芳賀矢一)의 저술 모음집 3)다카세다케지로(高瀨武次郞)의 저술 모음집 4)章炳麟의 저술 모음집 속에 나타난 국학 주요 개념과 주체이론을 중심으로 검토한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는 한국학의 학문적 연원과 정체성연구의 일환으로 근대 동아시아 지평에서 한국학 연구를 선도했던 ‘정인보’사상의 철학적 토대를 고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본 연구에서는 정인보를 근대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국학자인 章炳麟(중국), 芳賀矢一(일본)와 비교하고 그의 학문적 뿌리인 강화학파 이건방과 철학적 계승성을 검토하여 근대 한국학의 철학적 토대와 정체성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1. 정인보와 章炳麟 의 주체 사상은 각각 '저는 저로서 함'과 '자기에게 의지하지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다(依自不依他)'라는 명제로 집약된다. 그러나 章炳麟 의'依自不依他'는 임시적인 幻我를 초월하여 無我를 증득함으로써 주체를 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혁명을 주도하는 것을 말하며 정인보의 '저는 저로서'는 주체가 본심을 환기하고 불안이라는 도덕적 긴장 속에서 속일 수 없는 본심을 회복해나감으로써 주체를 확립하며, 민중의 감통을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章炳麟과 정인보가 지향한 주체는 '초월적인 자아'이며 '실존적인 자아'로 대비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양자는 상호 소통가능하지만, 사상적 영향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2. 정인보의 조선학 연구는 그가 제시한‘조선 얼’의 원류, 전개, 미래지향이라는 세 구조에 맞추어 진행되었다. 정인보 조선 얼은 원류에서부터 그것의 전개와 미래 지향점까지 ‘자기에게 의존함(依自)’와 생명을 ‘널리 이롭게 함(弘益)’라는 두 축으로 이루어져있다. 정인보는 음악과 가무, 東夷의 명칭을 가지고 조선 얼의 원류를 설명하고, 조선 얼의 전개를 말할 때는 주체적인 도덕의식으로 민중을 구원한 역사적 실례와 조선 불교의 依自利他 정신, 감통에 근본하는 威武정신 등을 예로 들었다.
    3. 정인보의 주체 의식과 조선학 연구는 朝鮮혹은 東國을 주된 연구로 삼았던 강화 양명학파의 학문 형태와 그의 스승인 이건방의 주체의식을 계승한 것이다. 또 당시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응하는 대응논리로서 민족 주체성을 되찾고자 한 시대적 사명의 실현이었다. 이는 군국주의를 추구한 高瀨武次郞이나 일본 정신의 확립을 목표로 민속학 연구에 치중했던 芳賀矢一와 다른 연구경향이다. 정인보의 조선학 연구대상은 ‘주체적’으로 조선 ‘민중의 복리’를 추구한 것이었다. 여기서‘민중의 복리’는 경제적 복지가 아니라 정신적 복리에 해당한다.
    정인보의 조선학은 조선의 문제를 주체적으로 고민한 것에 중점을 둔 것이지, 芳賀矢一의 경우처럼 자국의 고유정신의 탐색과 확립, 국수적 전개와는 거리가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주체사상은 章炳麟 의 영향이 아니며, 依自利他 정신으로 민중의 福利를 추구한 것이다.
  • 영문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philosophical foundation of ‘Jeong In-bo’, who led the Korea Studies in the horizon of modern East Asia, as part of the academic origin and identity research of Korea Studies. This study compared Jeong In-bo with Zhang Binglin (China) and Haga Yaichi (Japan), the representative national studies scholars of modern East Asia and reviewed the philosophical succession and Lee Geon-bang in Kanghwa Schools who was Jeong’s academic root, in order to clarify the philosophical foundation and identity of modern Korea Studies.
    1. Jeong In-bo and Zhang Binglin’s juche thought is integrated into statements ‘I act as myself’ and ‘Rely on yourself, not others’ respectively. However, Zhang Binglin’s ‘Rely on yourself, not others’ refers to ‘overcoming a temporary child-self and acquire non-self to establish one’s juche and to lead a revolution in society based on it, while Jeong In-bo’s ‘I as myself’ means the main subjective awakens the true intent and recover the true intent that cannot be deceived amid the ethical tension of anxiety, thereby establishing juche and realizing empathy of the people. What Zhang Binglin and Jeong In-bo aimed for is ‘transcendent self’ and can be compared to ‘existential self’. To conclude, both can communicate with each other, but their ideological influence relationship is not valid.
    2. Jeong In-bo’s Chosun Studies has been carried out according to the structures of the ‘ideological basis, development, and future orientation of the Soul of Chosun’ he proposed. According to him, Soul of Chosun consists of two axes: ‘Self-reliance’ and ‘humanitarianism for all’ from its ideological basis to its development and future orientation. Jeong In-bo explained the ideological basis of the Soul of Chosun with music, dance, and the Eastern ethnic group, and when talking about the development of the Soul of Chosun, he gave historical examples that saved the people with an independent, autonomous moral consciousness, ‘Benefiting others to benefit oneself’ in Buddhism, and pacification spirit based on empathy of the people.
    3. Jeong In-bo’s juche thought and Chosun Studies inherited the academic form of Kanghwa Yang-ming Studies that mainly focused on Chosun or the Nation of the East as well as the juche principle of his teacher Lee Geon-bang. In addition, Jeong’s thought was also a realization of a calling in the time to regain national independence in response against the Japanese militarism. This is a different tendency of research from Takese Takejiro who pursued militarism or Haga Yaichi who focused on folklore studies to solidify the sense of Japan-ness. Jeong In-bo’s Chosun Studies ‘independently’ pursued the ‘welfare and benefit of the people’ of Chosun, and here, ‘the welfare of the people’ is spiritual welfare, not economic welfare.
    4. Jeong In-bo’s Chosun Studies mainly concerned the problems of Chosun independently, and is far from the exploration and consolidation of a nation’s own spirit or nationalistic development as in Haga Yaichi. Moreover, his juche thought is not an influence of Zhang Binglin, and is a pursuit of the well-being of the people through ‘benefitting others for the benefit of oneself’.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한국학의 학문적 연원과 정체성연구의 일환으로 근대 동아시아 지평에서 한국학 연구를 선도했던 ‘정인보’사상의 철학적 토대를 고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본 연구에서는 정인보를 근대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국학자인 章炳麟(중국), 芳賀矢一(일본)와 비교하고 그의 학문적 뿌리인 강화학파 이건방과 철학적 계승성을 검토하여 근대 한국학의 철학적 토대와 정체성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1. 정인보와 章炳麟 의 주체 사상은 각각 '저는 저로서 함'과 '자기에게 의지하지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다(依自不依他)'라는 명제로 집약된다. 그러나 章炳麟 의'依自不依他'는 임시적인 幻我를 초월하여 無我를 증득함으로써 주체를 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혁명을 주도하는 것을 말하며 정인보의 '저는 저로서'는 주체가 본심을 환기하고 불안이라는 도덕적 긴장 속에서 속일 수 없는 본심을 회복해나감으로써 주체를 확립하며, 민중의 감통을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章炳麟과 정인보가 지향한 주체는 '초월적인 자아'이며 '실존적인 자아'로 대비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양자는 상호 소통가능하지만, 사상적 영향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2. 정인보의 조선학 연구는 그가 제시한‘조선 얼’의 원류, 전개, 미래지향이라는 세 구조에 맞추어 진행되었다. 정인보 조선 얼은 원류에서부터 그것의 전개와 미래 지향점까지 ‘자기에게 의존함(依自)’와 생명을 ‘널리 이롭게 함(弘益)’라는 두 축으로 이루어져있다. 정인보는 음악과 가무, 東夷의 명칭을 가지고 조선 얼의 원류를 설명하고, 조선 얼의 전개를 말할 때는 주체적인 도덕의식으로 민중을 구원한 역사적 실례와 조선 불교의 依自利他 정신, 감통에 근본하는 威武정신 등을 예로 들었다.
    3. 정인보의 주체 의식과 조선학 연구는 朝鮮혹은 東國을 주된 연구로 삼았던 강화 양명학파의 학문 형태와 그의 스승인 이건방의 주체의식을 계승한 것이다. 또 당시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응하는 대응논리로서 민족 주체성을 되찾고자 한 시대적 사명의 실현이었다. 이는 군국주의를 추구한 高瀨武次郞이나 일본 정신의 확립을 목표로 민속학 연구에 치중했던 芳賀矢一와 다른 연구경향이다. 정인보의 조선학 연구대상은 ‘주체적’으로 조선 ‘민중의 복리’를 추구한 것이었다. 여기서‘민중의 복리’는 경제적 복지가 아니라 정신적 복리에 해당한다.
    정인보의 조선학은 조선의 문제를 주체적으로 고민한 것에 중점을 둔 것이지, 芳賀矢一의 경우처럼 자국의 고유정신의 탐색과 확립, 국수적 전개와는 거리가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주체사상은 章炳麟 의 영향이 아니며, 依自利他 정신으로 민중의 福利를 추구한 것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 한국학 연구의 질적 제고 및 동아시아 ‘국학’비교 연구의 기반 마련
    근대의 대표적인 한국학자인 정인보의 사상적 지형도 구축을 통해 당대의 다양한 한국학 연구 연원과 양상을 재검토할 수 있고 본격적인「근대 동아시아 국학의 비교연구」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본 연구의 초점으로 삼았던 정인보의 한국학을 당시 일본, 중국의 국학의 주요개념과 전통 철학의 관련성을 재검토함으로써 정인보 보다 앞서 조선학 연구를 시도한 최남선(崔南善), 박은식(朴殷植), 신채호(申采浩)의 연구 또한 근대 동아시아 지평에서 조망할 수 있게 된다. ‘朝鮮學’으로 명명되는 근대 한국학 및 일본․중국의 국학을 비교하는 작업은 추후에 국내 뿐만 아니라 근대 동아시아 국학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근대 한국학의 대표주자이면서 내외적으로 다양한 사상 흐름 속에 놓였던 정인보 조선학을 종합 고찰하는 일은 바로 본격적인 근대 동아시아 국학 연구의 기초 작업이 될 수 있다.

    ▶ 조선학 연구의 사상적 토대연구를 통해 전통 철학의 시대적 역할 재조명
    근대 동아시아 사상계의 지평에서 조선학의 사상적 기반을 조망함으로써 근대 지식인과 현실대응 방안과 전통 철학의 시대적 역할을 재조명할 수 있다. 근대라는 시기는 외래 문화 및 학술사조에 대한 수용과 대응이라는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박한 시기였다. 근대 한국학의 철학적 토대를 검토하는 작업은 근대시기 지식인의 외래 사조 수용 및 전통의 재해석, 현실대응방안 등 그 사상 형성전반을 재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며, 특히 그들의 자기인식과 주체사유의 기반이 과연 어디에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이들에게 전통철학이 중요했다면 근대 사상과 민족 운동을 전통의 부정 혹은 단절 속에서 파악하는 인식을 재고해야 할 것이며, 외래사상을 적극 활용했다면 그 속에 자기 중심사유과 현실 대안론을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런 과정은 근대가 만들어낸 현대에서 전통을 재해석하고 현실에 응용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 강화 양명학파의 학문적 정체성 탐구에 관한 후속 연구의 활성화
    본 연구에서 이건방과 정인보의 사상적 관계를 검토 하는 것은 근대 한국학의 내재적 발전 요인인 강화학파(江華學派)의 주체사유와 그 계승성을 확인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것은 근대 한국학 연구의 연원 및 계보, 그리고 강화학파의 학문적 정체성에 관한 후속 연구의 활성화로 지속될 수 있다. 한국에서 진행된 한국학의 내용적 형성은 근대 이전 세대까지 소급해볼 수가 있다. 이 점은 조선의 역사나 언어 연구에 대한 일반적인 학술 사조의 형성과 전개를 고찰할 때 충분히 설정 가능하며, 강화학파의 조선 연구가 그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근대의 한국학 연구를 선도했던 정인보의 ‘조선학’을 전통 철학과의 연계선상에서 고찰한다면 ‘조선학 형성의 토대’, 다시 말해 근대 한국학의 연원 문제를 좀더 심도 깊게 논의할 수 있다. 선행 연구에서 명․청 교체 이후 동아시아 사상계에서 전통적 중화의식의 균열이 일어나고 지역성이 발견되는 과정에서 조선의 독창성을 모색하는 일련의 학술 풍토가 일었으며 이 과정에서 ‘조선학’ 의 기반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지만, 북학파의 문학활동 중심의 연구였다. 조선 후기 한국학 연구의 다양한 양상 중에 하나인 강화학파 조선 연구의 철학적 계승성을 고찰하면 한국학 연구의 다른 양상인 북학파의 조선 연구 양상과 철학적 기반도 비교 검토할 수 있고 상호 관련성도 확인할 수 있다.

    ▶ 근대 전환기 강화양명학 사상의 교과서 반영
    정인보는 근대전환기 인물로 후기강화학파에 속한다. 현행윤리교과서에는 한국의 양명학 혹은 강화양명학파 사상에 대한 서술이 매우 미흡하다. 강화양명학파의 계승성 및 근대기 활동 양상에 대한 연구성과가 없기 때문이다. 정인보는 근대 전환기를 대표하는 전통지식인으로서 전통 학문 속에서 사상적 보편성과 특수성을 발굴하고 이를 선양하려는 근대적 사명의식을 철저히 실행한 인물이다. 정인보의 주체사상과 조선학연구의 철학적 토대는 일본이나 중국의 국학열풍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강화양명학파 내의 專內實己, 一眞無假의 實學에 기반한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현행 중등교과서에 반영하여 우리 사상의 정체성 교육에 기여할 수 있다.
  • 색인어
  • 근대, 동아시아, 조선학, 정인보, 국학, 장병린, 다카세다케지로, 하가야이치,정체성, 민중복리
  • 연구성과물 목록
데이터를 로딩중 입니다.
데이터 이용 만족도
자료이용후 의견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