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멸망이라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지도자들은 어떻게 공동체를 일깨우는가? 이 연구는 고대 유대역사가 요세푸스(Flavius Josephus)가 기록한 『유대전쟁사』(Bellum Judaicum, BJ)에서 그레코-로마 시대의 유대인들이 공동체에 닥친 재난을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하였 ...
민족의 멸망이라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지도자들은 어떻게 공동체를 일깨우는가? 이 연구는 고대 유대역사가 요세푸스(Flavius Josephus)가 기록한 『유대전쟁사』(Bellum Judaicum, BJ)에서 그레코-로마 시대의 유대인들이 공동체에 닥친 재난을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하였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그 중에서도 네 명의 지도자들--아그립바 왕[BJ 2.345-401], 아나누스 대제사장[BJ 4.163-92], 투항한 전 반군지도자 요세푸스[BJ 5.362-419], 그리고 반군지도자 엘르아잘[BJ 7.323-88]--이 동족을 향해 행했던 네 편의 연설이 연구의 소재가 된다. 문헌학적, 그리고 해석학적 연구로서 이 연구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연구는 헬레니즘이라는 통합적 문화현상의 유형과 본질을 다룬다. 『유대전쟁사』에 기록된 네 연설은 전쟁으로 인한 민족멸망이라는 극단적인 고통과 절망의 상황을 헬레니즘과 유다이즘의 언어, 철학, 종교의 틀로 표현해 내고 있다. 헬레니즘의 기원과 성격 전반에 대해서는 그루언, 월방크 등의 조직적, 이론적 연구가 있어왔으며, 유다이즘의 헬레니즘적 성격에 대한 규명 또한 상당 부분 이루어졌다(헹엘, 체리코버, 사프라이와 스턴 등). 이러한 선행연구의 토대 위에서 본 연구는 헬레니즘의 문화적 복합성(hybridity)이 유대전쟁이라는 특정한 역사적 정황 안에서 구체적으로 발현되는 양상을 포착하고자 한다. 유대 지도자들이 행한 네 연설에는 영혼 선재 사상과 운명론, 명예와 수치, 덕의 윤리 등 그레코-로마 세계의 철학적, 사회적 가치체계가 유대인들의 언약공동체 의식과 결합되어 나타나며 당시 널리 알려진 여러 수사적 기법들도 포착된다. 네 연설 중 아그립바와 엘르아잘의 연설은 가바와 바우어파인트-미헬이 각각 개별적으로 분석한 바 있지만 나머지 두 연설들과 비교, 대조의 관점에서 연구된 적은 없다. 따라서 네 연설이 지닌 수사적 성격을 염두에 두면서 연설자와 청중, 그리고 연설이 행해진 정황의 사회적, 종교적 성격을 분석하고 이를 서로 비교, 대조하는 본 연구의 시도는 창의적이며 새롭다. 이 연구는 국내의 열악한 요세푸스 연구는 물론 제2성전기 유대교 일반을 포함한 고대 문화사 연구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둘째, 유대전쟁의 역사적 함의를 초기 기독교 형성 과정이라는 정황 속에서 밝힌다. 유대전쟁은 이후 로마제국의 정치적 발전과 유대인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성격 변화을 초래했을 뿐 아니라 기독교의 배태 과정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기독교 기원이나 초기 유대교에 대한 연구는 신구약 성서와 랍비문헌 해석에 기초한 교리적, 신학적 연구에 치중되었으며, 역사적 현상으로서의 통시적이며 역동적인 요소가 충분히 규명되지 못했다. 네 편의 연설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신학적 개념들, 예를 들어 아그립바와 요세푸스가 말하는 하나님의 섭리와 심판사상, 엘르아잘이 언급하는 내세의 약속, 아나누스 연설에서 발견되는 성전 중심 사상 등은 초기 기독교인들에 의해 계승, 변형, 발전되었다. 유대전쟁과 그에 대한 유대인들의 극적 반응을 그려내고 있는 네 편의 연설 연구를 통해서 본 저술은 초기 기독교의 정체성에 대한 보다 통전적인 이해에 기여할 것이다.
셋째, 이 연구는 공동체가 재난을 해석하고 그것에 대응하기 위해 사용하는 서사와 수사의 한 예를 제시할 것이다. 『유대전쟁사』는 그 자체로 일종의 재난 서사로 읽을 수 있으며 특히 아그립바, 아나누스, 요세푸스, 그리고 엘르아잘의 연설은 제 각기 절박하면서도 다양한 재난의 여러 국면에서 공동체를 설득하며 교육하는 방식들을 보여준다. 로마의 절대 패권에 대한 인정(아그립바, 요세푸스의 연설), 인생와 역사에 작용하는 일정한 주기와 질서에 대한 인식(아그립바의 연설), 조상들이 유사한 재난에 대처했던 방식에 대한 회고(아나누스의 연설), 명예로운 죽음과 내세의 약속에 대한 확신(엘르아잘의 연설) 등이 바로 그런 예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세월호 사건, 일본 원전 사고, 북한으로부터의 끊임없는 위협 등 여러 자연적, 혹은 인위적 재난을 겪었으며, 일제식민지배와 한국전쟁의 공동체적 트라우마가 아직도 집단적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다. 이런 재난 의식에 대한 반응으로 소설이나 영화 등 예술작품의 형태로 재난 서사를 구성하여 공동체를 향한 경고, 교육, 치유 등을 시도하는 노력이 나타났다. 본 연구는 요세푸스의 재난 서사를 분석함으로써, 공동체가 재난을 수용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건강한 희망의 출구를 모색하는 데 필요한 하나의 모델 혹은 통찰을 제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