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엘리자베스 보웬(Elizabeth Bowen)의 『마지막 9월』(The Last September)을 분석하여, 모더니즘과 아일랜드 문학 연구에 기여함과 동시에, 국내외 아일랜드 문학 연구의 지평을 확대하고, 역사학 및 국문학과의 비교 연구가 가능한 지반을 제공하여 한국 내 ...
본 연구는 엘리자베스 보웬(Elizabeth Bowen)의 『마지막 9월』(The Last September)을 분석하여, 모더니즘과 아일랜드 문학 연구에 기여함과 동시에, 국내외 아일랜드 문학 연구의 지평을 확대하고, 역사학 및 국문학과의 비교 연구가 가능한 지반을 제공하여 한국 내 식민지 문학 연구에도 기여하는 데 그 목표가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본 연구는 『마지막 9월』에서 내러티브와 침묵 사이의 관계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봄으로써, 아일랜드의 역사 및 정치와 모더니즘의 형식이 맺는 관계를 살펴보려 한다. 보웬을 대표적 아이리쉬 모더니즘 작가로 분류한 뷔르츠(James F. Wurtz)는 이 장르가 모더니즘에 대한 오해, 즉 모더니즘이 정치 및 역사와 무관하다는 고정 관념을 깨부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마지막 9월』은 매우 흥미로운 텍스트이다. 작가나 작중 인물들의 역사 인식이나 정치적 발화는 모두 침묵 속에 숨어 있으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이 소설은 모더니즘의 정치성과 역사성을 반증한다.
특히, 앵글로 아이리쉬 작가로서 보웬의 작품은 아일랜드의 역사 및 정치와 특수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파티, 테니스, 음악, 산책 등의 평화로운 일상에 집중함으로써 역사 의식을 가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사멸해가는 앵글로 아이리쉬 계급의 심리적 불안감이 깔려 있으며, 이 불안감이 역설적이게도 이 평화로운 내러티브를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한편으로는 대저택의 방화라는 마지막 결말을 의식하고 이 목적론적 결말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침묵을 통해 이를 연기하고 회피하려 하는 양가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 양가적 속성이야말로 아일랜드의 식민지 현실에서 앵글로 아이리쉬 문학이 보여주는 특수성인 셈이다.
조이스(James Joyce), 예이츠(W. B. Yeats), 싱(J. M. Synge) 등의 주요 아일랜드 작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연구되었던 보웬은 해외에서는 이미 주요한 작가의 반열에 올랐으나, 국내에는 아직 그 연구가 아직 많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앵글로 아이리쉬 정체성 연구에서부터 전쟁 문학, 고딕 문학, 레즈비언 연구, 탈식민 연구, 여성 문학에 이르는 다양한 해외 연구에 비추어 볼 때, 보웬 연구는 역사, 사회, 심리, 장르 문학의 일부로서 수많은 가치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다양성에 기여하여 보웬 연구의 폭을 넓히는 데 그 목표를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