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미래를 낙관하는 자는 많지 않다. 인류는 기술의 발전이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지녀 왔지만 지금-여기의 현실은 그 믿음을 철회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하다. 다가올 미래를 디스토피아적으로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전쟁, 전염병, ...
인류의 미래를 낙관하는 자는 많지 않다. 인류는 기술의 발전이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지녀 왔지만 지금-여기의 현실은 그 믿음을 철회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하다. 다가올 미래를 디스토피아적으로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전쟁, 전염병, 식량난, 기후변화, 방사능 유출 등 파국을 예견할 근거는 도처에 존재한다. 국경의 의미를 축소시킬 정도로 늘어난 국가간의 교류는 다양한 문화적 갈등을 양산하고 있으며 문화적, 민족적, 역사적인 기억에서 비롯된 갈등도 증폭하는 추세다. 또한 자원 확보를 위한 군사력 경쟁도 격화되고 있다. 첨단과학은 인류를 파국에 몰아넣을 정도의 무기를 개발케했으며 언제, 어떤 방식으로든 인류는 절명할 수 있다는 공포가 가중되고 있다. 대표적인 디스토피아 소설로 꼽히는 예브게니 자마찐의 <우리들>(1920),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1932), 조지 오웰의 <1984>(1949) 등은 인류의 파국을 극단적으로 그린 작품들이다. 이 소설들은 발달된 기술이 인류의 자유와 개성을 어떻게 억압하는가를 잘 다루고 있다. 각기 다른 시기에 발표된 이 소설들은 모두 미래가 전체주의 사회로 귀결되는 것으로 상상하면서 기술이 억압하는 도구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파국은 요란스럽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 연구에서 주목한 것은 기술에 의한 인간의 억압은 가시적이고 폭력적인 강요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동의'를 거치면서 온건하게 진행된다는 점이다. 자발적 동의는 공포와 불안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죽음과 질병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다. 그러므로 의학의 발전은 인간이 자발적으로 체제에 복종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질병과 죽음으로부터의 해방, 다시 말해서 '건강'을 지켜야 한다는 위생학적 당위성을 거부할 수 있는 자는 드물다. 죽음과 질병에 대한 두려움에서 생성된 공포와 불안을 상당부분 해소시켜줄 수 있는 것은 의학기술이지만, 권력과 연루되면서 이것은 일종의 '통치술'로 진화한다.
이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의학 기술이 현재보다 더욱 발달한 미래사회를 그린 해외와 국내의 문학텍스트들을 주목했다. 먼저 해외 텍스트로는 일본계 영국작가 가즈오 이시구로(Kazuo Ishiguro)의 <나를 보내지 마>(Never let me go), 독일 작가 율리 체(Juli Zeh)의 소설 <어떤 소송>(Corpus Delicti)을 주목했다. 슬라보예 지젝이 지적했듯이 생명정치란 궁극적으로 공포의 정치이며 부당하게 희생자가 될 지도 모른다는, 혹은 괴롭힘을 당할 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이용하는 통치술이다. ‘안전이 확보되어야 하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안전하지 못한 것들의 자유’는 쉽게 박탈된다. 이 소설들은 모두 '건강'과 '쾌적한 삶'을 절대적인 가치로 상정하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위협하는 것들을 배제하는 미래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한편 최근에 발표된 국내 문학 텍스트인 정용준의 <바벨>과 김조을해의 <힐>에도 의학 기술과 권력이 결탁한 미래에 인간이 '언어'를 잃고, 육체의 안락을 위해 정신을 포기하게 되는 모습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해외와 국내 텍스트들은, 질병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하여 새로운 통치를 허용하고 점차 '안락한 파국'의 세계로 진입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연구는 해외와 국내의 디스토피아 소설들을 교차적으로 응시하면서 이들 텍스트에서 '생명권력'이 작동되는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인류가 장차 겪을지도 모를 파국은, 특정 국가나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범인류적이고 동시적인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해외텍스트와 국내텍스트를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이유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문학만의 특징이 아니라 사회학과 철학, 역사학의 방법론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학은 다양하고 생생한 인간의 모습이 텍스트 안에 존재한다는 결정적인 장점이 존재한다. 문학은 도래할 미래를 예측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반응과 한계, 극복의지를 다루면서 미래를 보다 역동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생명권력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를 다룬 국내외 텍스트를 비교하는 이 연구는 다가올지도 모를 파국을 예방하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기대효과
기술의 발달은 늘 명암이 존재한다.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기술, 특히 의학기술은 인간의 삶을 연장시키고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인간다운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윤리적인 논쟁도 격화되고 있다. 기업들은 개인의 민감한 신 ...
기술의 발달은 늘 명암이 존재한다.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기술, 특히 의학기술은 인간의 삶을 연장시키고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인간다운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윤리적인 논쟁도 격화되고 있다. 기업들은 개인의 민감한 신체-질병 데이터를 상업적인 목적으로 활용하고, '위생학'은 새로운 '우생학'을 변질되기도 한다. 또한 아직 치료법을 발견하지 못한 질병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것은 또다른 공포와 불안을 생성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질병과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은 종종 의학 기술에 대한 과도한 신봉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권력에 결합되면서 생명권력이 작동된다. 생명권력은 자발적 순응으로 활성화되는데 이는 일종의 공포의 통치술과 같다. 이것은 특정 국가나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모든 질병이 정복된 미래 사회를 다룬 율리 체의 <어떤 소송>과 장기 이식용 복제인간을 양육하는 미래 사회가 등장하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는 생명권력의 작동 양상을 적실하게 보여주는 텍스트다. 두 소설과 비슷한 풍경이 그려진 한국의 문학텍스트들도 있는데 정용준의 <바벨>과 김조을해의 <힐>을 거론할 수 있다. 각기 다른 국가에서 다른 시기에 창작된 텍스트들이지만 이 소설들은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각 국가별로 전공 어문학이 분리된 한국의 특성상 디스토피아 서사를 다룬 문학텍스트들은 주로 특정 국가의 작품을 해당 전공자들이 해석하는 데 치우친 경향이 있다. 그리고 번역작업을 통해서 언어, 문화적인 차이를 극복하는 '주석으로의 독해'와 특정 작품의 의미를 묻는 '해석으로서의 독해'가 주로 행해지고 있는데 이 연구에서는 전공학문 중심의 틀을 벗어나서 '디스토피아'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범인류의 미래를 예측하는 한국과 해외 텍스트들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은 다가올 파국을 예방하기 위한 성찰에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각기 다른 국가의 작가들이 지닌 세계인식을 비교하는 것은 지금-여기의 한국 문학을 풍성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작업은 철학, 사회학, 역사학과의 교류와 융합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 아울러 대학을 비롯한 교육현장에서도 다양한 문학 텍스트들을 비판적으로 감상하는 강의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미래라는 불안에 직면한 현재에 디스토피아 서사에 대한 연구는 매우 의미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연구요약
이 연구는 '디스토피아'를 소재로 한 국내와 해외 문학 텍스트들을 교차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다. 지금-여기에서 인류의 미래를 낙관하기는 쉽지 않다. 발달된 과학기술, 특히 의료 기술은 복잡한 윤리적 문제들을 양산하고 있으며 권력과 결합되어 새로운 통치술로 진 ...
이 연구는 '디스토피아'를 소재로 한 국내와 해외 문학 텍스트들을 교차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다. 지금-여기에서 인류의 미래를 낙관하기는 쉽지 않다. 발달된 과학기술, 특히 의료 기술은 복잡한 윤리적 문제들을 양산하고 있으며 권력과 결합되어 새로운 통치술로 진화하는 것이 현실이다. 상상력의 산물인 문학 텍스트에는 당대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예측이 다양하게 반영된다. 그러므로 미래를 비관적으로 상상하는 문학텍스트들의 의미는 각별하다. 현실데 대한 문제제기와 다가올 파국을 예방하려는 사유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연구에서는 '디스토피아'를 다룬 다양한 작품들 중에서 '생명권력'의 작동 양상이 드러난 국내외 텍스트들을 비교하고자 한다. 대상이 되는 해외 텍스트는 율리 체의 <어떤 소송>,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이고 국내 텍스트는 정요준의 <바벨>, 김조을해의 <힐>이다. 이 작가들의 텍스트들에는 생명권력의 작동양상과 체제의 통제에 순응하는 인간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먼저 각 텍스트들을 해석하면서 작가들의 상상력에서 나타나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보고, 생명권력이 작동되는 양상들을 되돌아 볼 것이다.
비관적인 미래를 예측하는 데 있어서 문학텍스트들을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자명하다. 문학은 도래할 미래를 예측만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상황에 던져진 인간의 모습을 통해 미래를 보다 역동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한다. 디스토피아적인 상황에서 인간의 번민과 고통, 저항과 극복의지를 다루는 문학텍스트들은 다가올 파국을 예방하는 사유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연구는 1)개별 텍스트 분석과 작가들의 세계 인식 2)국내외 작가들의 상상력이 교차되는 지점 3)텍스트에 나타난 생명권력의 작동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푸코와 슬라보예 지젝, 아감벤, 한나 아렌트 등의 철학적 사유를 경유하여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대비하는 데 있어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성찰이 무엇인지를 되묻고자 한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국문
인류의 미래를 낙관하는 자는 많지 않다. 인류는 기술의 발전이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지녔지만 현실은 그 믿음을 철회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하다. 다가올 미래를 디스토피아적으로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전쟁, 전염병, 식량난, 기후변화 ...
인류의 미래를 낙관하는 자는 많지 않다. 인류는 기술의 발전이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지녔지만 현실은 그 믿음을 철회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하다. 다가올 미래를 디스토피아적으로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전쟁, 전염병, 식량난, 기후변화, 방사능 유출 등 파국을 예견할 근거는 도처에 존재한다. 이 연구에서 주목한 것은 기술에 의한 인간의 억압이 가시적이고 폭력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동의'를 거치면서 온건하게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자발적 동의는 공포와 불안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죽음과 질병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다. 그러므로 의학의 발전은 인간이 자발적으로 지배당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건강한 삶을 원치 않는 자는 없다. 그러나 점차 의학은 권력과 연결되면서 일종의 '통치술'로 진화한다. 2015년 한국에서 발생한 메르스 사태는 생명정치의 부정성을 예고하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 연구는 생명정치를 다룬 해외와 국내의 디스토피아 텍스트들에 '생명권력'을 이 재현되는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다가올 미래의 파국은 특정 국가나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범인류적인 문제일 것이다. 이것이 해외텍스트와 국내텍스트를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이유이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일본계 영국작가 가즈오 이시구로(Kazuo Ishiguro)의 소설 <나를 보내지 마>(Never let me go), 독일 작가 율리 체(Juli Zeh)의 소설 <어떤 소송>(Corpus Delicti)는 의학 기술이 현재보다 더욱 발달한 미래사회를 다루고 있다. 한편 최근 한국 문학에도 디스토피아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문학작품들이 출간되고 있는데 이들은 해외의 디스토피아 텍스트과 상당부분 일치한다. 생명정치란 궁극적으로 공포의 정치이며 ‘안전’을 위해서 ‘자유’를 쉽게 박탈하는 사회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함께 안전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한편 각종 전염병의 위협이 고조되는 지금-여기에서 생명정치를 다룬 디스토피아 소설들을 분석하는 연구는 다가올 미래를 상상하고 파국을 대비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함께 안전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한편 각종 전염병의 위협이 고조되는 지금-여기에서 생명정치를 다룬 디스토피아 소설들을 분석하는 연구는 다가올 미래를 상상하고 파국을 대비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영문
The Interface of Biopolitics and Dystopian Literatures between Korean Texts and Foreign Texts
Few have an optimistic view about the future of human beings. Though technology is believed to solve the problems humans are confronted with, the belie ...
The Interface of Biopolitics and Dystopian Literatures between Korean Texts and Foreign Texts
Few have an optimistic view about the future of human beings. Though technology is believed to solve the problems humans are confronted with, the belief is easily withdrawn in the reality. It is not difficult to imagine the coming future in a dystopian way, because the predictable conditions such as war, epidemic, food shortage, climate change and radioactivity emanation exist everywhere. This study is committed to the fact that the oppression of humans by technology proceeds not in a visible and violent way, but by a ‘spontaneous agreement.’ Spontaneous agreements originate from fear and anxiety. Men are under the influence of death and disease. Medical developments, therefore, are considered as an important cause that dominates human beings. No one denies a healthy life. But medicine increasingly evolves into a sort of ruling technology via the relation of power. The MERS outbreak in South Korea in 2015 was a symbolic event warning the negativity of bio-politics. This study explores representative aspects of ‘biopolitics’ in the dystopian texts produced in Korea and other countries. The upcoming catastrophe is not confined to just a country or a region but a universal one. That’s why Korean texts and foreign countries’ texts are to be examined together. Never Let Me Go by Kazuo Ishiguro, a Japanese-English writer, a Nobel Prize winner this year and Corpus Delicti by Juli Zeh, a German writer deal with a future society with advanced medical technology. Some literary works that have been recently published in Korea are based on a dystopian way of imagination, and those texts quite correspond with the foreign ones. Biopolitics eventually rules a society with fear, and deprives human beings of ‘freedom’ for ‘safety.’ While there has been an increasing interest in the threats of epidemics as well as safety and health in the now-here, the study on dystopian novels with the story of biopolitics can make a contribution to preparing for the upcoming future and catastrophe.
연구결과보고서
초록
인류의 미래를 낙관하는 자는 많지 않다. 인류는 기술의 발전이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지녔지만 현실은 그 믿음을 철회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하다. 다가올 미래를 디스토피아적으로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전쟁, 전염병, 식량난, 기후변화 ...
인류의 미래를 낙관하는 자는 많지 않다. 인류는 기술의 발전이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지녔지만 현실은 그 믿음을 철회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하다. 다가올 미래를 디스토피아적으로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전쟁, 전염병, 식량난, 기후변화, 방사능 유출 등 파국을 예견할 근거는 도처에 존재한다. 이 연구에서 주목한 것은 기술에 의한 인간의 억압이 가시적이고 폭력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동의'를 거치면서 온건하게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자발적 동의는 공포와 불안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죽음과 질병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다. 그러므로 의학의 발전은 인간이 자발적으로 지배당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건강한 삶을 원치 않는 자는 없다. 그러나 점차 의학은 권력과 연결되면서 일종의 '통치술'로 진화한다. 2015년 한국에서 발생한 메르스 사태는 생명정치의 부정성을 예고하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 연구는 생명정치를 다룬 해외와 국내의 디스토피아 텍스트들에 '생명권력'을 이 재현되는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다가올 미래의 파국은 특정 국가나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범인류적인 문제일 것이다. 이것이 해외텍스트와 국내텍스트를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이유이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일본계 영국작가 가즈오 이시구로(Kazuo Ishiguro)의 소설 <나를 보내지 마>(Never let me go), 독일 작가 율리 체(Juli Zeh)의 소설 <어떤 소송>(Corpus Delicti)는 의학 기술이 현재보다 더욱 발달한 미래사회를 다루고 있다. 한편 최근 한국 문학에도 디스토피아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문학작품들이 출간되고 있는데 이들은 해외의 디스토피아 텍스트과 상당부분 일치한다. 생명정치란 궁극적으로 공포의 정치이며 ‘안전’을 위해서 ‘자유’를 쉽게 박탈하는 사회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함께 안전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한편 각종 전염병의 위협이 고조되는 지금-여기에서 생명정치를 다룬 디스토피아 소설들을 분석하는 연구는 다가올 미래를 상상하고 파국을 대비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함께 안전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한편 각종 전염병의 위협이 고조되는 지금-여기에서 생명정치를 다룬 디스토피아 소설들을 분석하는 연구는 다가올 미래를 상상하고 파국을 대비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과학기술의 발전, 특히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은 인류의 미래를 어떤 방식으로 바꿀 것인가. 이것은 오래 전부터 제기된 질문이다. 생명공학의 발전은 난치병 환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고, 인류의 복지에 기여했다. 그러나 생명공학의 발전은 더욱 정교하게 인간은 관리 ...
과학기술의 발전, 특히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은 인류의 미래를 어떤 방식으로 바꿀 것인가. 이것은 오래 전부터 제기된 질문이다. 생명공학의 발전은 난치병 환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고, 인류의 복지에 기여했다. 그러나 생명공학의 발전은 더욱 정교하게 인간은 관리, 감독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생명공학을 비롯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통치와 결탁하는 동시에 인간의 언어와 사고, 생황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의료보험정보의 유출과 복제기술의 위험성은 이미 가시화된 문제가 되었다. 우리는 2015년의 메르스 사태에서 이미 방역을 명분으로 내세운 인권유린을 경험한 바 있다. 무엇보다도 질병에 관한 정보의 독점은 무분별한 공포를 확산시킬 수 있고, 권력의 통치수단으로 이용될 위험도 있다. 그렇지만 전염병과 난치병으로부터 인간을 구하기 위한 연구를 축소하거나 중단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술의 발전에 '후퇴'가 없다면, 우리는 기술의 발전이 바꾸어 놓을 미래를 다양하게 상상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에브게니 자마찐의 <우리들>(1920)이나 조지 오웰의 <1984>(1947)에서 상상했던 감시체계는 멀지 않은 미래에 현실화되었다. 또한 인류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새로운 전염병의 도래와 공포는 까뮈의 <페스트>나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이미 형상화된 바 있다. 이 연구에서는 생명공학이 권력과 결탁했을 때 인간의 언어와 사고,관계, 관습, 생활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상상한 문학작품들을 먼저 분석했다. 독일 작가 율리 체의 소설 <어떤 소송>은 모든 질병이 정복된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모든 질병이 정복된 사회의 인간들은 건강한 삶을 만끽할 것이라고 예상하기 쉽지만 소설 속에 그려진 '소독된 사회'의 모습은 공포스럽다. 질병을 예방한다는 목적 아래 수행되는 수많은 정책들은 개인의 사생활을 빈틈없이 관리하고, 체제가 정한 계획표에 어긋난 생활을 하는 자들을 정부가 철저하게 제어한다. 그 사회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자행되는 감시에 속수무책이다. 한편 201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나를 보내지 마>는 복제인간이 대량으로 양산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삼은 텍스트다. 이 소설에서 정부는 '헤일섬'이라는 지역구에 복제인간들을 모아놓고 원래의 인간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사육'한다. '헤일섬'에서 성장하는 복제인간들의 수명은 대략 20년을 넘지 못한다. 성인의 신체와 비슷하게 성장하는 10대 후반에 이들은 헤일섬 바깥의 원래 인간들에게 장기를 제공하고 죽어야만 한다. 그러나 탈출이나 저항은 없다. 교육을 통해서 그들은 자신들의 짧은 수명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 텍스트들은 모두 생명공학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1990년대 이후에 창작되었다. 텍스트에 등장하는 '소독된 사회'와 '헤일섬'이라는 공간은 극단적인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건강과 생명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작동되는 정책들과 권력의 정보독점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다. 율리 체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들을 경유하면서 이 연구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생명공학과 권력의 결합이 빚어내는 디스토피아를 우리의 가까운 미래로 만들지 않기 위해 필요한 사유는 무엇인가. 또한 최근 한국문학에서 창작되는 디스토피아 소설들과 외국 소설들의 교집합은 무엇이며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이 연구는 미셀 푸코를 비롯한 철학자들의 (생명)권력이론을 통해서 생명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살펴보고, 텍스트의 분석과 함께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생성하는 요인들을 검토한다.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상상하는 텍스트들은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상상은 늘 지금-여기의 현실에서 잉태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연구는 다양한 위기에 직면한 우리가 미래를 대비하는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기술의 발전에 동반되는 부작용을 사유함으로써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소외시키고 도구화하는 것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사유를 제공할 것이다. 아울러 외국문학과 한국문학의 비교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이며, 문학을 기점으로 사회와 정치, 역사를 논하는데도 좋은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