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크리톤>에서 민주주의: 철학과 정치의 만남 및 논의 내용과 형식의 긴장을 중심으로 Democracy in Plato’s Crito: The Encounter of Philosophy and Politics, and the Tension between Contents and Forms of Discussions
이 연구는 1) 플라톤의 <크리톤>이 민주주의와 어떻게 만나는가를 탐색하여, 2) 플라톤 철학이 민주주의에 대해 적극적으로 제출하는 혹은 제출할 수 있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해명함으로써, 3) 플라톤 정치 철학이 오늘날 우리의 정치적 삶과 실천에 보다 적실하고 현실 ...
이 연구는 1) 플라톤의 <크리톤>이 민주주의와 어떻게 만나는가를 탐색하여, 2) 플라톤 철학이 민주주의에 대해 적극적으로 제출하는 혹은 제출할 수 있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해명함으로써, 3) 플라톤 정치 철학이 오늘날 우리의 정치적 삶과 실천에 보다 적실하고 현실성을 가진 방식으로 대면하는 장을 모색하는 데 목적이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 이 연구는 1) <크리톤>에서 민주주의가 어떤 본성, 목표, 특징, 가정 등을 지닌 것으로 전제되거나 표상되면서 대화자들의 논의에 이용되는지를 고찰하되, 특히 논의의 내용과 형식의 긴장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그럼으로써 논의 내용에만 집중하던 기성 연구가 자칫 놓치기 쉬운 사항들을 조명하는 동시에, 기성 연구가 가질 수밖에 없던 편협한 시야와 선이해를 벗어나려 시도한다. 이를 통해 2) 플라톤이 민주주의자냐 반민주주의자냐 하는 이분법적 구도에 매몰될 수밖에 없었기에 옹호든 반대든 플라톤 철학이 민주주의에 대해 소극적으로 반응하는 양상에만 주목해온 기성 연구의 틀을 벗어나 그가 민주주의를 향해 적극적으로 취하는 태도와 관점이 어떤 것이고 또 어떤 것일 수 있는지를 전향적으로 탐색한다. 종국적으로 이 연구는 3) 정치와 철학의 만남을 구현한 플라톤 정치 철학이 오늘 우리 정치 현실에 과연 어떤 적실성과 현실적 함축을 구체적으로 제공할 수 있을지를 보다 생생하게 모색하려 한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너무도 당연하게 바람직한 것으로 전제되어 그것의 의미나 정당성에 대한 숙고가 거의 실종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플라톤 철학은 또 너무도 자연스럽게 민주주의와 반대편 지점에 정위되어 그것이 오늘날 민주주의에 대해 제공할 수 있는 함축을 읽어내려는 노력은 아주 제한적이고 인색하다. 플라톤 시대와 우리 시대 사이에 놓인 간격만큼이나 큰 당대 희랍 민주주의와 오늘날 우리 민주주의의 간격 역시 플라톤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보다 전향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도록 우리 사유의 걸음을 방해하는 데 일조한다. 플라톤 등 일련의 지식인들이 문제점을 지적하며 반대한 희랍 민주주의는 오늘날 거의 모든 사회,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문제 삼지 않고 이상적인 것으로 전제하는 민주주의와 매우 다르다. 1987년의 이른바 ‘민주화’ 이후 벌써 30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가 그토록 애타게 추구한 민주주의가 과연 무엇이(었)고 우리가 그것을 제대로 성취해내고 있는가, 특히 민주주의로 과연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음미와 성찰은 여전히 우리가 풀어 가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그 과제에 접근하는 데 가장 유효적절한 도구 가운데 하나일 수 있는 플라톤 텍스트는 그가 반민주주의 입장에 속한다는 강렬한 선입견에 가려 이런 방향과 목적의식 하에서 조명 받을 기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했다. 이 연구는 이런 반성에 입각하여 출발하며, 플라톤의 텍스트 <크리톤>을 통해 민주주의에 관한 플라톤 철학의 적극적인 함축을 해명해보고자 한다. 이제 국내에서 조금씩 연구되기 시작한 <법률>의 경우 혼합정체를 적극 고려하면서 <국가>보다 더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플라톤 입장의 근본적인 변화를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실은 그런 <법률>의 전향적 태도의 이면에 <크리톤>에서부터 나타나는 플라톤의 민주주의관이 깔려 있다는 것이 본 연구자의 작업 가설이다. 이는 기성 연구자들처럼 <크리톤>을 그저 평면적이고 상투적으로 대화자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합의되는 내용만이 아니라 논의와 합의가 진행되고 발전하며 반성되는 형식적 측면에 집중 조명을 가하면서 내용-형식의 긴장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새로운 방식의 작업의 통해 보다 분명히 조명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기대효과
기성 학계가 플라톤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소극적으로, 매우 한정된 범위 내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데는 ‘플라톤은 반민주주의자인가?’라는 질문으로 대표되는 이분법적 선입견이 작용한 탓도 있지만, 관행적인 연구 경향 탓도 적지 않다. 즉, 민주주의 연구자들은 ...
기성 학계가 플라톤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소극적으로, 매우 한정된 범위 내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데는 ‘플라톤은 반민주주의자인가?’라는 질문으로 대표되는 이분법적 선입견이 작용한 탓도 있지만, 관행적인 연구 경향 탓도 적지 않다. 즉, 민주주의 연구자들은 플라톤 텍스트를 전면적,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고, 플라톤 연구자들은 민주주의에 연루된 다양한 이론적, 실천적 쟁점들에 충분히 개입하지 않은 채 텍스트 이해에만 머무는 경향을 보여 왔다. 플라톤과 민주주의의 만남은 온전하게 접근된 텍스트와 이론적, 실천적 함축이 충분히 성찰된 콘텍스트의 만남을 통해서만 제대로 성취될 수 있다. 이 연구는 이런 만남의 초석을 마련하는 데 기여하리라 기대한다. 또한 논의 내용에만 집중하던 기성 연구에 비해 내용과 형식 둘 다에 주의를 기울이는, 이 분야 연구의 기초가 되어 온 연구 방법을 활용함으로써 그 타당성을 입증하는 동시에, 이런 내용-형식 관계에 대한 고려가 결국 민주주의 자체의 성격 조명에도 적용된다는 점을 확인하는 부수적이면서도 실천적 함축이 큰 성과를 얻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직 철학-수사학 이분법과 크리톤의 비철학성을 기조로 한 웨이스(R. Weiss) 식 해석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 학계의 <크리톤> 논의를 일신하는 데 일조하면서, <국가> 등 명망 있는 대 저작에 한정된 정치 철학 연구의 시야를 확대하여 <법률> 등 충분한 조명이 요구되는 저작에 대한 연구의 활성화를 유도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학문적 효과를 넘어 사회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파급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 연구는 내용-형식의 근본적인 긴장이 민주주의 자체에 내재해 있다는 통찰을 제공하게 된다. 이런 통찰을 통해 민주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 모두가 자주 경험하는 문제, 즉 확신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열린 자세로 민주적 대화를 나눌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일정한 조망을 제공할 수 있다. 이 연구는 자기 확신과 열린 대화의 태도가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하고 성취할 것인데, 이는 (특히 정치와 종교 영역에서) 대화 단절과 독선에 사로잡힌 우리 담론 문화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 유용한 자극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연구가 성공적으로 수행되면 날로 늘어가는 인문학에 대한 시민들의 사회적 수요에 부응할 수 있는, 실천적 삶과 긴밀히 연결된 양질의 성찰 자료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이로써 인문학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대중적 관심과 사회적 효용 요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하는 인문학 수행 모델을 구축하는 데 밑거름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처럼 사회적 효과를 염두에 두면서 <크리톤>을 민주주의와의 관계라는 관점 하에 읽고 조명하려는 이 연구는 기존 학계와 대중 사이에 존재할 수도 있는 편향적인 <크리톤> 이해 방식, 더 나아가 고대 지성사 전체를 바라보는 관점에 일정한 균형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인문학의 대중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우리 사회에 비교적 폭넓게 공유되어 있지만, 어떤 인문학이어야 하는지, 어떻게 소비되어야 하는지는 아직 충분히 성찰되지 않았다. 이 연구는 학문적인 중요성이 공감되는 매우 중요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사회적,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적용 가능성이 높은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그런 까닭에 연구 성과의 적절한 대중적 변환에 성공한다면, 인문학의 산출 방식만이 아니라 소비 방식 자체에 대해서도 연구 집단이나 대중 모두에게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가 이 모든 일들을 단숨에 해내리라고 기대할 수는 물론 없지만, 이런 시도들이 축적되고 재미와 의미가 어우러진 인문학 담론들이 산출, 유통되는 데 중요한 촉매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마지않는다.
연구요약
이 연구는 플라톤이 민주주의에 대해 매우 한정되고 소극적인 접근 태도를 취한다는 선입견에 도전한다. 그가 남긴 작품들 고유의 독립성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민주주의에 대한 플라톤 정치 철학의 복합적이고 정교한 접근과 착상을 발견해내어 조명하는 것이 플라톤을 ...
이 연구는 플라톤이 민주주의에 대해 매우 한정되고 소극적인 접근 태도를 취한다는 선입견에 도전한다. 그가 남긴 작품들 고유의 독립성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민주주의에 대한 플라톤 정치 철학의 복합적이고 정교한 접근과 착상을 발견해내어 조명하는 것이 플라톤을 통한 오늘날 철학함의 바람직하고 유효한 방향이 아닌가 하는 성찰이 이런 연구 기획의 배경을 이룬다. 이 연구를 큰 틀에서 추동하면서 중점 연구 내용을 이루게 될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1)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2) <크리톤>은 이 민주주의와 어떻게 만나는가? 두 질문에 접근하면서 이 연구는 편협한 이분법에 기인한 잘못된 문제 설정에서 나온 ‘플라톤은 반민주주의자인가?’라는 질문 대신 질문 1)을 구체화한 다음 두 세부 질문을 묻는다. 1-1) 민주주의의 표지(signs)는 무엇인가? 1-2) 민주주의의 ‘짝퉁’은 무엇인가? 두 질문을 통해 질문 1)에 해당하는 예비적 성격의 작업을 진행한 후 이 연구의 본령에 속하는 질문 2)로 나아간다. 우선, 질문 2)를 다음과 같이 구체화한다: <크리톤>은 민주주의와, 그러니까 민주주의의 표지 및 짝퉁과 어떻게 만나는가? 그 다음으로, 질문 2)를 다시 세부 질문으로 나누는데, 내용에 관한 것에서 시작하여 형식의 문제로 옮겨 심화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2-1) 플라톤이 민주주의의 어떤 부분을 문제 삼고 어떻게 대응하는가? 2-2) 그는 대화자들이 어떻게 문제에 접근하고 어떻게 대화(합의)하게 만드는가? 2-1)은 대화편 논의 전체를 대상으로 그 내용을 문제 삼는 것으로서, 이 연구의 배경을 이룬다. 2-2)는 본 연구자가 ‘메타 논의’(meta-discussion)라 부르는 네 부분, 즉 46b1~47a5, 48b10~49a3, 49c11~e3, 54d3~e2를 중심으로 대화의 형식과 틀을 문제 삼는 것으로서, 이 연구의 직접적인 대상이다. 2-1)을 통해 2-2)로 나아가며, 특히 2-2)에 주목함으로써 이 연구는 이 대화편과 민주주의의 만남을 조명하고 해명하는 관건으로서 내용과 형식의 긴장을 포착하려는 전략을 취한다. 그 긴장은 이중적이다. 일차적으로는 소크라테스-크리톤 간 대화가 담고 있는 내용-형식의 긴장이다. 2-1)에서 밝혀지겠지만, 내용상 그 대화는 다수의 지혜와 결정을 의문시하는 전문가주의를 주된 초점으로 삼는다. 그런데, 2-2)에 의해 드러날, 대화의 형식적인 흐름은 전문가주의와 거리가 있어 보이는 민주주의적인 절차와 방식으로, 그러니까 집단 지성 내지 집합적 지혜를 존중하는 절차와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보다 근본적인 긴장은 민주주의 자체가 담고 있는 내용-형식의 긴장이다. 작품 표면에서 대화자들이 재현하는 긴장의 이면에는, 작품의 배경을 이루면서 동시에 작품에서 거론되는 주제인 민주주의가 동일한 방식의 긴장을 내장한 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대화자들의 의식과 사고와 행위를 지배하고 있다. 그 근본적인 긴장이란 사실 역사적으로 많은 지식 엘리트들을 괴롭혀 온 다음 물음으로 잘 표현된다. 확신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열린 자세로 민주적 대화를 나눌 수 있는가? 이런 물음은 진실(정의) 대 수사, 앎 대 의견, 소수 전문가 대 다수 대중 등의 대비 형태로 플라톤 저작에서 자주 표현되며, 소크라테스와 아테네의 대면 혹은 철학과 정치의 대면을 플라톤은 이런 도식으로 자주 표현하곤 했다. 과연 이런 물음에 우리는 플라톤에 기대어, 혹은 플라톤이 재현하는 소크라테스로 ‘빙의’하여 어떤 대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이 연구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문제의 최종 지점이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국문
이 연구는 플라톤이 민주주의에 대해 매우 한정되고 소극적인 접근 태도를 취한다는 지배적 가정 내지 선입견에 도전한다. 플라톤이 남긴 작품들 고유의 독립성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민주주의에 대한 플라톤 정치 철학의 복합적이고 정교한 접근과 착상을 발견해내어 조명 ...
이 연구는 플라톤이 민주주의에 대해 매우 한정되고 소극적인 접근 태도를 취한다는 지배적 가정 내지 선입견에 도전한다. 플라톤이 남긴 작품들 고유의 독립성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민주주의에 대한 플라톤 정치 철학의 복합적이고 정교한 접근과 착상을 발견해내어 조명하는 것이 플라톤을 통한 오늘날 철학함의 바람직하고 유효한 방향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이런 문제의식 하에서 이 연구는 플라톤의 <크리톤>이 민주주의와 어떻게 만나는가를 탐색하여, 플라톤 철학이 민주주의에 대해 적극적으로 제출하는 혹은 제출할 수 있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해명함으로써, 플라톤 정치 철학이 오늘날 우리의 정치적 삶과 실천에 보다 적실한 방식으로 대면하는 장을 모색한다. 첫째, 예비 단계의 작업으로서 민주주의의 표지와 짝퉁이 무엇인지가 고찰된다. 평등, 자유, 법치, 집단 지성(대중 교육) 등이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표지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집단 지성은 <크리톤>에서 플라톤이 부정적으로 문제시하고 집중적으로 거론, 조명하는 항목이다. 그리고 투표나 다수결이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짝퉁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불가피한 도구로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들이기도 하다. 둘째, 본격적인 논의의 첫 단계로서 플라톤이 민주주의의 어떤 부분을 문제 삼고 있는가 하는 내용의 측면에서 <크리톤>의 논의들이 음미된다. 이 대화편에서 플라톤은 민주주의가 다른 기술처럼 전문가에게 우선권을 주지 않고 다수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것을 문제 삼는다. 결국 그는 의술 유비 등을 통해 전문가주의를 옹호한다. 다수가 아니라 하나 혹은 소수의 아는 자에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소크라테스의 생각은 다수가 최대의 선과 악을 산출할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다수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크리톤의 생각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다수가 선악에, 즉 이익과 해악 산출에 효과적 원인을 제공하는 능동자인가 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대립의 근원이다. 그런데 자기 결정권이나 자기 이해 관계에 대한 앎을 강조하는 자유주의 옹호자가 내세우는 민주주의 이념을 플라톤이 어떻게 논파하거나 봉쇄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셋째, 이 연구의 주된 작업으로서 민주주의의 형식적 측면이 주목되면서 <크리톤>의 메타 논의가 분석된다. 메타 논의에서 두 사람의 대화는 ‘공동의 숙의’로 설정되고, 합의의 공정한 진행에 주의가 기울여지며, 소크라테스는 진심을 담은 의견의 표명을 촉구한다. 특히 민주주의 담론의 실제 절차들을 연상케 하는 은유를 구사하면서 소크라테스는 철저하게 상대를 설득하여 동의를 구하는 ‘동료 시민’ 수준으로 자신을 정위한다. 명실상부한 ‘민주주의적’ 대화요 설득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작품 표면에서 대화자들이 재현하는 긴장, 즉 전문가주의에 대한 확신이라는 이야기 내용과 상대의 동의를 구하는 민주주의적 절차라는 이야기 형식 간의 길항 내지 긴장은 그 이면에 민주주의 자체가 내장한 같은 취지의 긴장을 반영하는 것이다. 다른 작품들(예컨대 <국가>나 <법률> 등)에서 플라톤이 반대한 민주주의는 엄밀하게 말해서 민주주의 자체라기보다는 민주주의의 나쁜 형태, 즉 교육 부재나 극단적 자유(exousia) 추구이며, 그가 심각한 문제로 여긴 것은 다수 지배나 추첨제 등 민주주의의 특정 형식이나 제도라기보다는 무자격자의 지배, 즉 정치 교육의 부재였다. 민주주의와 연관된 플라톤의 이야기들은 대체로, 소수에게만 앎이 가능하다는 자연적 전제에 대한 수정만 가능하다고 하면, 얼마든지 현대 민주주의에 선용할 수 있는 것들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이 ‘수’의 문제가 아니라 ‘이성’과 ‘교육’의 문제라는 통찰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오늘날 우리의 민주주의를 성찰하고 개선하는 데 플라톤 철학은 얼마든지 재조명되고 재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영문
This study challenges against the dominant assumption or prejudice that Plato takes a very restricted and passive stance towards democracy. In this study I ask how Plato's Crito faces democracy, and elucidate what are the messages that his philosophy ...
This study challenges against the dominant assumption or prejudice that Plato takes a very restricted and passive stance towards democracy. In this study I ask how Plato's Crito faces democracy, and elucidate what are the messages that his philosophy proposes or can propose concerning democracy, so that we can see how his political philosophy can be accommodated or applied to our own political life and practice today. First, I examine what the signs and counterfeits of democracy are. Second, I explore which parts of democracy Plato calls into question in the Crito, analyzing main discourses in the Crito. Finally, I analyze meta-discussions of the Crito and illuminate the tension between Socrates' professionalist conviction and his open democratic attitude of dialogue, which can be seen as the tension between contents and forms of the dialogue, and also reflects the tension to the same effect which is built in democracy itself. The democracy which Plato opposes in other works like the Republic or the Laws is, strictly speaking, not so much democracy itself as a bad form of it, i.e., the absence of education or the pursuit of extreme freedom (exousia). It was unqualified persons' rule, i.e. the absence of political education, not certain forms or institutions of democracy such as majority rule or lottery, that he considers as a serious problem. His discourses concerning democracy can, on the whole, be made good use of as much as we like, under the condition that we can make some correction to his natural assumption that knowledge is available only to a few. If we can accept the insight that the core of democracy is not number but reason and education, then Plato's philosophy can quite be re-illuminated and reused for our reexamining and improving our own democracy today.
연구결과보고서
초록
이 연구는 플라톤이 민주주의에 대해 매우 한정되고 소극적인 접근 태도를 취한다는 지배적 가정 내지 선입견에 도전한다. 플라톤이 남긴 작품들 고유의 독립성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민주주의에 대한 플라톤 정치 철학의 복합적이고 정교한 접근과 착상을 발견해내어 조명 ...
이 연구는 플라톤이 민주주의에 대해 매우 한정되고 소극적인 접근 태도를 취한다는 지배적 가정 내지 선입견에 도전한다. 플라톤이 남긴 작품들 고유의 독립성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민주주의에 대한 플라톤 정치 철학의 복합적이고 정교한 접근과 착상을 발견해내어 조명하는 것이 플라톤을 통한 오늘날 철학함의 바람직하고 유효한 방향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이런 문제의식 하에서 이 연구는 플라톤의 <크리톤>이 민주주의와 어떻게 만나는가를 탐색하여, 플라톤 철학이 민주주의에 대해 적극적으로 제출하는 혹은 제출할 수 있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해명함으로써, 플라톤 정치 철학이 오늘날 우리의 정치적 삶과 실천에 보다 적실한 방식으로 대면하는 장을 모색한다. 첫째, 예비 단계의 작업으로서 민주주의의 표지와 짝퉁이 무엇인지가 고찰된다. 평등, 자유, 법치, 집단 지성(대중 교육) 등이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표지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집단 지성은 <크리톤>에서 플라톤이 부정적으로 문제시하고 집중적으로 거론, 조명하는 항목이다. 그리고 투표나 다수결이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짝퉁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불가피한 도구로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들이기도 하다. 둘째, 본격적인 논의의 첫 단계로서 플라톤이 민주주의의 어떤 부분을 문제 삼고 있는가 하는 내용의 측면에서 <크리톤>의 논의들이 음미된다. 이 대화편에서 플라톤은 민주주의가 다른 기술처럼 전문가에게 우선권을 주지 않고 다수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것을 문제 삼는다. 결국 그는 의술 유비 등을 통해 전문가주의를 옹호한다. 다수가 아니라 하나 혹은 소수의 아는 자에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소크라테스의 생각은 다수가 최대의 선과 악을 산출할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다수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크리톤의 생각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다수가 선악에, 즉 이익과 해악 산출에 효과적 원인을 제공하는 능동자인가 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대립의 근원이다. 그런데 자기 결정권이나 자기 이해 관계에 대한 앎을 강조하는 자유주의 옹호자가 내세우는 민주주의 이념을 플라톤이 어떻게 논파하거나 봉쇄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셋째, 이 연구의 주된 작업으로서 민주주의의 형식적 측면이 주목되면서 <크리톤>의 메타 논의가 분석된다. 메타 논의에서 두 사람의 대화는 ‘공동의 숙의’로 설정되고, 합의의 공정한 진행에 주의가 기울여지며, 소크라테스는 진심을 담은 의견의 표명을 촉구한다. 특히 민주주의 담론의 실제 절차들을 연상케 하는 은유를 구사하면서 소크라테스는 철저하게 상대를 설득하여 동의를 구하는 ‘동료 시민’ 수준으로 자신을 정위한다. 명실상부한 ‘민주주의적’ 대화요 설득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작품 표면에서 대화자들이 재현하는 긴장, 즉 전문가주의에 대한 확신이라는 이야기 내용과 상대의 동의를 구하는 민주주의적 절차라는 이야기 형식 간의 길항 내지 긴장은 그 이면에 민주주의 자체가 내장한 같은 취지의 긴장을 반영하는 것이다. 다른 작품들(예컨대 <국가>나 <법률> 등)에서 플라톤이 반대한 민주주의는 엄밀하게 말해서 민주주의 자체라기보다는 민주주의의 나쁜 형태, 즉 교육 부재나 극단적 자유(exousia) 추구이며, 그가 심각한 문제로 여긴 것은 다수 지배나 추첨제 등 민주주의의 특정 형식이나 제도라기보다는 무자격자의 지배, 즉 정치 교육의 부재였다. 민주주의와 연관된 플라톤의 이야기들은 대체로, 소수에게만 앎이 가능하다는 자연적 전제에 대한 수정만 가능하다고 하면, 얼마든지 현대 민주주의에 선용할 수 있는 것들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이 ‘수’의 문제가 아니라 ‘이성’과 ‘교육’의 문제라는 통찰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오늘날 우리의 민주주의를 성찰하고 개선하는 데 플라톤 철학은 얼마든지 재조명되고 재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크리톤>은 그 대중적 인지도나 학문적 중요성에 비해 국내 연구 성과가 양적으로 상당히 제한되어 있고, 접근 방식이나 논의 방향 또한 서양의 유력한 관점(즉, 철학적 논변과 수사학적 설득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관점)이나 쟁점(즉, <변명>-<크리톤> 문제)에 의존하 ...
<크리톤>은 그 대중적 인지도나 학문적 중요성에 비해 국내 연구 성과가 양적으로 상당히 제한되어 있고, 접근 방식이나 논의 방향 또한 서양의 유력한 관점(즉, 철학적 논변과 수사학적 설득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관점)이나 쟁점(즉, <변명>-<크리톤> 문제)에 의존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이는 단지 <크리톤>이라는 작품이나 저자 플라톤에 대한 이해의 문제를 넘어 철학과 담론을 이해하는 우리 사회의 시야와 안목을 편협하고 편향적이게 한다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발생시킨다. 플라톤을 그저 반민주주의자라는 프레임 속에 고정시켜 놓고 보는 안일한 관점도 문제지만, 철학은 으레 대중의 상식과 기대를 저버려도 되는 ‘고답적’이고 ‘고급한’ 문화라는 생각, 대중의 눈높이에서 그들과 호흡을 맞추려는 설득적 노력을 ‘저급한 수사학’으로 규정하며 선을 긋는 태도, ‘진리’를 추구하는 ‘진지한’ 철학 대 진리와 상관없이 수신자의 마음을 얻기만 하면 된다는 ‘게임적’인 수사학을 양자택일적 구도로 구분하는 관점, 그래서 지나치게 진지하여 ‘죽기 살기’로 달려들어 재미없어지거나 지나치게 지적 유희에 치중하여 의미 없어지기 일쑤인 것이 우리 담론 세상이다. 수사학도 진지하게 진리를 추구할 수 있고 철학도 재미있게 의미를 나눌 수 있는 세상, 그것이 우리가 가꾸어 가야 할 담론 세상이다. <크리톤>과 민주주의의 만남을 입체적이고 종합적으로 읽어내려 한 이 연구는 기존 학계의 이런 편향적인 <크리톤> 이해 방식과 고대 지성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균형을 제공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의 발표를 통해 이런 기획 의도가 일차적으로 현실화되는 것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연구의 보다 실제적이고 적실한 활용은 오히려 보다 대중적이고 폭넓은 매체의 활용에서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논문 발표 이후에도 본 연구자는 이 연구의 결과물에 적절한 변환을 가하여 보다 쉽고 재미있는 저서나 칼럼, 강연 등 다양한 형태로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이 연구가 이런 방식의 소통과 확산을 거치게 되면, 이분법적이고 유아독존적인 우리 사회의 담론 문화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문화적 자산을 대중이 향유하고 소비하는 데 일정한 도움을 줄 수 있게 되리라 기대한다. 이 연구가 장기적으로 의도하는 이런 방향의 일들이 특정 연구 성과 하나로 단숨에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할 수는 물론 없지만, 이런 시도들이 축적되어 재미와 의미가 어우러진 철학 담론들이 지속적이고 다양하게 산출되고 유통되는 데 중요한 촉매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