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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 상세정보

오대십국시기의 도성과 의례-전·후촉과 남당을 중심으로
Capital City and States Ritual in the Five Dynasties and Ten States Period: Focusing on the Former, Later Shu and Southern Tang.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7S1A5A2A01027036
선정년도 2017 년
연구기간 2 년 (2017년 07월 01일 ~ 2019년 06월 30일)
연구책임자 김상범
연구수행기관 한국외국어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이 연구는 오대십국시기 前·後蜀과 南唐의 수도가 위치했던 成都와 江寧府(金陵)를 중심으로, 지역전통이 강한 南方정권에 있어서 都城의 전통적인 ‘의례기능’이 어떻게 계승되고 변화되는지 검토해 봄으로써 격변기의 도시사적인 변화를 분석해보려는 취지로 기획하였다. 필자는 먼저 성도와 강녕부의 도성 축조과정과 도시구조상의 특징을 개괄해보고, 도성의 상징적인 地表 역할을 해온 전통의례공간의 운영정황과 변화 양상에 대해서 검토해보겠다. 다음으로 前·後蜀과 南唐 정부의 예제운영과 종교정책을 살펴보고, 성도와 강녕부 주변지역의 민간사묘들이 국가의례의 일원으로 편입되는 배경과 과정 그리고 도성 의례공간에 가져온 변화와 도시사적인 의의에 대해서 조명해보겠다. 이를 통해서, 통일제국의 붕괴와 지방정권의 수립이라는 정치적 변동과 인구와 자원의 유동성이 대폭 증가하는 사회경제적 변화가 맞물리면서 발생한 도시사적인 변화가 송대이후 도성사의 전개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함께 검토해보겠다.
  • 기대효과
  • 唐末에서 宋代에 이르는 시기는, ‘唐宋變革期’라 일컬을 정도로 中國史의 전개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는 정치․경제․사회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사상과 신앙적인 측면에서도 상응하는 변화가 출현했는데, 다양한 上層의 문화적 변동과 더불어 간과할 수 없는 것이 民間信仰의 약진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신앙이 출현하거나 급격한 종교적 변화가 있을 때마다 目睹했듯이, 이러한 변화의 배후에는 새로운 사회적 변화가 주목된다. 본고는 오대십국시기 도시사적인 변화와 지역신앙의 관계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검토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서 전통 국가의례를 기반으로 형성된 도시의 경관이 지역적‧기층적 요소에 의해 어떻게 변모하는지 살펴보고, 도시의 경관변화와 함께 발생하는 도시민들의 일상생활의 변화에 대해서도 주목해보고자 한다. 또한 중앙의 공식적인 정책과 행정구역 그리고 통치이념에 예속된 피동적 존재로 인식되어온 기층민들의 능동적인 삶을 복구하여 총체적인 사회문화사에 접근해 보도록 하겠다. 구미학계에서는 역사학자․인류학자․문학비평가 들을 중심으로 통속문화에 대한 토론이 중국학 연구의 중요한 분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미국의 사회문화사 연구자들은 비문과 통속문학자료 등의 분석을 통해서, 巫術․異端등의 민간신앙에 대한 초보적 접근에서 시작하여, 주변인이나 서민들의 일상생활에 대한 탐구를 거쳐 최근에는 인쇄물의 문화적의의, 群衆行動의 상징적 의미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성도와 강녕부의 지역신앙과 자발적 사회조직의 구성 등에 주목하여, 오대십국시기 도성 주민들의 통속문화와 그들의 일상생활에 나타나는 변화양상을 고찰해 보는 것도 본 연구의 주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이다.
  • 연구요약
  • 오대십국시기 도성사의 전면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天子之國’을 지향했던 前·後蜀, 吳·南唐, 南漢, 閩 뿐 아니라, 중원왕국을 正朔으로 인정하면서도 실질적인 독립왕국을 유지하려 했던 吳越, 楚의 도성에 관한 개별적인 접근과 비교사적인 접근이 동시에 요망된다. 본 연구에서는 우선 역사적인 영향력과 자료문제를 고려하여 成都와 江寧府를 연구의 대상으로 설정하였다. 1차 년도에는 성도를, 2차 년도에는 강녕부를 중심으로 각각 전통유교의례의 계승과 지역의례의 수용 과정을 면밀하게 검토해보고, 종합적으로 비교해보면서 공통점과 차이를 분석해 볼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첫 번째로 전, 후촉과 남당시기 도성의 구조와 전통 의례공간의 특징에 대해서 검토해 볼 것이다. 해당지역의 지형적 특징과 군사적으로 각축을 벌이던 현실적 정황을 함께 고려하면서 『周禮考工記』의 “左祖右社, 面朝后市”의 공간개념이 어떻게 계승되고 변용되는지 살펴볼 것이다. 두 번째로는 성도와 강녕부의 의례공간에 당대 후반기이래로 발생하는 예제의 변화가 어떻게 반영되었는지에 대해서 검토해보면서, 그 시대적 의의에 대해서 고찰해 것이다. 당대후반기 국가의례에 발생하는 가장 중요한 변화는 도교의 국가의례 진입과 의례의 개방성 증대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현종 天寶연간부터 본격화되는데, 天寶8載(749)에 현종은 唐室의 조상신으로 받들어지던 노자에게 ‘聖祖大道玄元皇帝’라는 존호를 추증하였다. 天寶10載(749)에는 태청궁에서 親祭를 올리고 다음날에는 太廟에서 제사를 받든 뒤 삼일 째에 南郊 원구단에서 제천의례를 거행했는데, 이후 太淸宮-宗廟-南郊로 이어지는 일련의 새로운 대제사체계가 정례화 되었다. 前蜀의 王建은 杜光庭을 황태자의 스승으로 초청하여 闕內에서 金籙齋를 거행한 바 있으며, 王衍 역시 靑城山 上淸宮을 방문하여 직접 초재에 참여하였다. 또한 唐이 老子를 聖祖로 추존한 것을 모방하여, 同姓 仙人 王子晉을 ‘聖祖至道玉宸皇帝’로 추존하고 상청궁에 銅像을 봉안하여 제사를 받들었다. 당말이래 예제의 변화가 십국정권에 의해서도 계승되고 있음을 반영해주는 일례인데, 좀 더 다양한 사례들에 철저한 분석을 통해서 이 시기 도성의례의 전개에 보이는 특징과 의의에 대해 검토해 볼 것이다. 세 번째로 본 연구에서 지역사묘 등 현지 지역신앙이 도성의 경관변화와 도시민의 일상생활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주목해 볼 것이다. 왕건은 전촉 건국과 더불어 先賢제사의 일환으로 張魯, 諸葛亮, 張儀, 張飛, 鄧艾등에게 王號와 公號를 추존하였으며, 후촉은 도성의 劉備廟 옆에 諸葛武侯祠를 건립한 바 있다. 또한 李氷에게도 大安王과 應聖靈感王이라는 존호를 추증하여 지역수호신의 위상을 공인해주었다. 지역신에 대한 우대조치는 南唐정부에서도 확인되는데, 당시 절서지역에서 戰神으로 폭넓게 받들어지던 陳果仁 神에게 武烈帝의 帝號를 책봉해주고, 도성 강녕부에 ‘正南面之尊’을 반영하여, 사묘를 건립해주었다. 지역신앙이 의례공간의 변화에 미친 영향을 고찰하기 위해서, 우선 成都와 江寧府의 현지지역신앙과 외지민간신앙의 유입과 변동과정을 면밀하게 검토할 것이다. 다음으로 지방지와 비문 등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도시 내외의 사묘분포도를 작성하고 주변 환경과의 연관관계에 대해서도 검토해 볼 것이다. 지방의례와 廟會의 준비과정과 전개과정에 대한 검토를 통해서 의례와 도성사회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이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이 연구는 오대십국시기 前·後蜀과 南唐의 수도가 위치했던 成都와 江寧府(金陵)를 중심으로, 지역성이 강한 南方정권에 있어서 都城의 전통적인 ‘의례기능’이 어떻게 계승되고 변화하는지 검토해 보고, 이를 통해서 격변기의 도시사적인 변화를 새롭게 탐색해보려는 취지로 기획하였다.
    都城은 방대한 정부 기구의 소재지이자 天子와 官僚 그리고 일반 서민들이 기거하는 생활공간이었다. 하지만 일찍이 중앙집권체제를 실현한 中華帝國의 도성은 도시에 거주하는 다수의 주민들보다는 황제를 중심으로 한 국가권력의 입장에서 설계되고 운영되었다. 도성은 권력과 관련된 상징부호로 충만한 ‘정치도시’이자 ‘의례도시’였다. 정부는 中軸線을 중심으로 宗廟와 社稷을 위시한 다양한 의례공간을 배치하여 유교의 이상 정치를 구현하고자 했다. 물론 장기적인 논쟁을 반영하여 체계화된 국가의례도 󰡔大唐開元禮󰡕와 󰡔大唐郊祀錄󰡕의 세부항목에 보이는 차이에서 확인되듯이, 통치자의 의도와 시대적 정황에 따라 부단히 변해왔다.
    도성을 중심으로 거행되는 국가의례의 전개에 있어서 특별히 주목되는 시기는 ‘오대십국시기’이다. 대당제국이 붕괴하며 지방정권으로 분화해 가는 과정 속에서, 다양한 지역적 요소들이 새로운 지방정권의 수립과 운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동일한 맥락에서 지역주민들이 장기적으로 공유해 온 신앙적 정서와 습속 역시 지방정권의 종교정책과 의례 운영에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이 제기되는데, 정책적 차원의 검토와 더불어 도성내외에 분포하던 지역사묘의 공공적 기능과 사묘를 중심으로 형성되던 사회적 네트워크 그리고 도성의 구조와 거주민들의 일상생활에 미친 영향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필자는 먼저 성도와 강녕부의 도성 축조과정과 도시구조상의 특징을 고찰해보고, 도성의 상징적인 地表 역할을 해온 전통의례공간의 운영정황과 변화 양상에 대해서 검토해보았다. 다음으로 前·後蜀과 南唐 정부의 예제운영과 종교정책을 살펴보고, 성도와 강녕부 주변지역의 민간사묘들이 국가의례의 일원으로 편입되는 배경과 과정 그리고 도성 의례공간에 가져온 변화와 도시사적인 의의에 대해서 조명해보았다. 이를 통해서, 통일제국의 붕괴와 지방정권의 수립이라는 정치적 변동과 인구와 자원의 유동성이 대폭 증가하는 사회경제적 변화가 맞물리면서 발생한 도시사적인 변화가 송대이후 도성사의 전개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검토해보았다.
  • 영문
  • his study focuses on Chengdu(成都) and Jiangningfu(江寧府), where the former and Later shu(前後蜀) and Southern Tang(南唐) Capital Cities were located, and examines how the traditional ritual function of the capital is inherited and changed in the Southern region with strong locality.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plore new urban historical changes.
       The Capital City was the seat of a vast governmental organization and a living space for emperors, bureaucrats and ordinary people. However, the Capital City of the Chinese Empire, which realized the centralized system early on, was designed and operated from the standpoint of the state power centered on the emperor rather than the large number of residents in the city. The Capital City was a political city and a ritual city filled with symbolic and Monumental space related to power. The government wanted to embody the ideal politics of Confucianism by arranging various ritual spaces including Zongmiao[宗廟] and Sheji[社稷]. The period of particular attention in the development of State Ritual centered on the city is the the Five Dynasties and Ten States Period In the process of the collapse of the Tang Dynasty and the division into local regimes, various regional factors have had a significant impact on the establishment and operation of new local regimes. In the same vein, the religious sentiments and customs shared by the local people over the long term are also likely to influence the religious policies and rituals of local governments. There is a need for a comprehensive review of the social networks that have been formed around temples and temples, the structure of cities, and their impact on the daily lives of residents.
       To this end, I first reviewed Chengdu and Jiangningfu's urban construction process and characteristics of urban structures, and reviewed the operational status and changes of traditional ritual spaces. Next, the religious policy of The former and Later shu and Southern Tang was examined, and the background and process of incorporating the private mausoleums of the surrounding area as members of the State Ritual, and the changes brought to the Ritual space of the Capital City and the significance of urban history were examined. Through this, the political history of the collapse of the Unification Empire and the establishment of local governments, and the socio-economic changes that drastically increased the liquidity of the population and resources, were combined to examine the effects of urban history changes on the development of the Capital City after Song Dynasty.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이 연구는 오대십국시기 前·後蜀과 南唐의 수도가 위치했던 成都와 江寧府(金陵)를 중심으로, 지역성이 강한 南方정권에 있어서 都城의 전통적인 ‘의례기능’이 어떻게 계승되고 변화하는지 검토해 보고, 이를 통해서 격변기의 도시사적인 변화를 새롭게 탐색해보려는 취지로 기획하였다.
    都城은 방대한 정부 기구의 소재지이자 天子와 官僚 그리고 일반 서민들이 기거하는 생활공간이었다. 하지만 일찍이 중앙집권체제를 실현한 中華帝國의 도성은 도시에 거주하는 다수의 주민들보다는 황제를 중심으로 한 국가권력의 입장에서 설계되고 운영되었다. 도성은 권력과 관련된 상징부호로 충만한 ‘정치도시’이자 ‘의례도시’였다. 정부는 中軸線을 중심으로 宗廟와 社稷을 위시한 다양한 의례공간을 배치하여 유교의 이상 정치를 구현하고자 했다. 물론 장기적인 논쟁을 반영하여 체계화된 국가의례도 󰡔大唐開元禮󰡕와 󰡔大唐郊祀錄󰡕의 세부항목에 보이는 차이에서 확인되듯이, 통치자의 의도와 시대적 정황에 따라 부단히 변해왔다.
    도성을 중심으로 거행되는 국가의례의 전개에 있어서 특별히 주목되는 시기는 ‘오대십국시기’이다. 대당제국이 붕괴하며 지방정권으로 분화해 가는 과정 속에서, 다양한 지역적 요소들이 새로운 지방정권의 수립과 운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동일한 맥락에서 지역주민들이 장기적으로 공유해 온 신앙적 정서와 습속 역시 지방정권의 종교정책과 의례 운영에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이 제기되는데, 정책적 차원의 검토와 더불어 도성내외에 분포하던 지역사묘의 공공적 기능과 사묘를 중심으로 형성되던 사회적 네트워크 그리고 도성의 구조와 거주민들의 일상생활에 미친 영향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필자는 먼저 성도와 강녕부의 도성 축조과정과 도시구조상의 특징을 고찰해보고, 도성의 상징적인 地表 역할을 해온 전통의례공간의 운영정황과 변화 양상에 대해서 검토해보았다. 다음으로 前·後蜀과 南唐 정부의 예제운영과 종교정책을 살펴보고, 성도와 강녕부 주변지역의 민간사묘들이 국가의례의 일원으로 편입되는 배경과 과정 그리고 도성 의례공간에 가져온 변화와 도시사적인 의의에 대해서 조명해보았다. 이를 통해서, 통일제국의 붕괴와 지방정권의 수립이라는 정치적 변동과 인구와 자원의 유동성이 대폭 증가하는 사회경제적 변화가 맞물리면서 발생한 도시사적인 변화가 송대이후 도성사의 전개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검토해보았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唐末에서 宋代에 이르는 시기는, ‘唐宋變革期’라 일컬을 정도로 中國史의 전개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러한 시대적 변혁은 정치․경제․사회분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고, 사상과 신앙적인 측면에서도 상응하는 변화가 출현했는데, 다양한 上層의 문화적 변동과 아울러, 간과할 수 없는 것이 民間信仰의 약진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신앙이 출현하거나 급격한 종교적 변화가 있을 때마다 目睹했듯이, 이러한 변화의 배후에는 새로운 사회적 변화가 주목된다. 본고는 오대십국시기 도시사적인 변화와 지역신앙의 관계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검토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서 전통 국가의례를 기반으로 형성된 도시의 경관이 지역적‧기층적 요소에 의해 어떻게 변모하는지 살펴보고, 도시의 경관변화와 함께 발생하는 도시민들의 일상생활의 변화에 대해서도 주목해보고자 한다. 또한 중앙의 공식적인 정책과 행정구역 그리고 통치이념에 예속된 피동적 존재로 인식되어온 기층민들의 능동적인 삶을 복구하여 총체적인 사회문화사에 접근하는 것이 본 연구의 주된 목적이다.
    두 번째로는 구미학계에서는 역사학자․인류학자․문학비평가 들을 중심으로 통속문화에 대한 토론이 중국학 연구의 중요한 분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미국의 사회문화사 연구자들은 비문과 통속문학자료 등의 분석을 통해서, 巫術․異端등의 민간신앙에 대한 초보적 접근에서 시작하여, 주변인이나 서민들의 일상생활에 대한 탐구를 거쳐 최근에는 인쇄물의 문화적의의, 群衆行動의 상징적 의미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도성 거주민의 신앙과 자발적 사회조직의 구성 등에 주목하여 도성 주민들의 통속문화와 그들의 일상생활을 고찰해 보는 것도 본 연구의 주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이다.
    세 번째로는 본 연구를 동아시아 근세 기층사회연구의 일례로 설정하여 접근해 보고자 한다. 물론 동아시아 각국은 자연적 환경과 인문적 전통에 의해 엄연한 개별적 차이점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유교적 통치이념이나 기층의 신앙적 전통 등에 있어서 다른 지역과는 확연히 비견될 수 있는 공통적인 유산을 지녔음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이러한 유산은 도시의 구조와 의례공간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민간신앙’의 부상이 유교적 도시공간의 변화와 도시민의 생활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구체적으로 검토해봄으로써, 유교문화와 더불어 동아시아 민간신앙에 대해서도 새로운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 색인어
  • 도성, 국가제사, 민간신앙, 봉호, 오대십국, 전후촉, 남당, 성도, 강녕부, 도교,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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