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전환기에 독일에서 전개된 역사기념물 보존활동과 논쟁을 검토한다. 연구의 주안점은 1) 주요 보존 대상, 2) 활동 주체의 형성, 3) 보존 방식을 둘러싼 논쟁에 두었다.
구체적으로는, 역사기념물 보존활동을 주도했던 조직 중에서 당대를 ...
본 연구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전환기에 독일에서 전개된 역사기념물 보존활동과 논쟁을 검토한다. 연구의 주안점은 1) 주요 보존 대상, 2) 활동 주체의 형성, 3) 보존 방식을 둘러싼 논쟁에 두었다.
구체적으로는, 역사기념물 보존활동을 주도했던 조직 중에서 당대를 대표했던 라인 기념물보존·향토보호협회(RVDH)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특히 이 협회가 보호활동의 주 대상으로 삼았던 바하라흐(Waharach) 성곽, 슈탈레크(Schtaleck) 성, 비르네부르크(Virneburg)를 지세학적 배경 속에서 분석함으로써, 문화적 공론의 형성과정과 영향을 확인한다. 이와 함께, 역사기념물의 보존 방식을 둘러싸고 전개된 논쟁들을 검토한다.
논쟁은 ‘보전주의자’와 ‘복원주의자’ 간의 대결로 전개되었다. 복원주의자들이 과학적 연구를 통해 역사 건축물의 진정한 양식과 정신을 되살릴 수 있다는 인식에서 복원을 선호했던 데 반해, 보전주의자들은 이상적인 역사적 형식에 따라 기념물을 복원한다고 해서 진정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하였다. 건축가들이 복원주의적 입장을 대표했다면, 예술사가들은 보전주의적 입장을 선호하였다.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첫째, RVDH 구성원들의 면면을 사회적 지위에 따라 파악하였다. 둘째, 독일제국 시기에 진행되었던 역사보존 운동과 사업을 가운데 사회적 정치적 파장이 컸던 사례들을 검토하기 위해 현지조사를 진행하였다. 셋째, 역사보존 정책과 운동 주체들의 활동을 검토하면서, 이들의 활동이 지역과 중앙에서 각각 어떻게 수용되었는지 확인하고자 하였다. 넷째, 주요 입장을 대표하는 학자와 문화재 전문가, 관료와 운동조직가들 간에 전개되었던 논쟁을 검토하였다.
현지조사를 통해 살펴본 것은 다음과 같다.
먼저,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고성을 찾아 주변의 지세를 확인하고, 부분적 복원을 도모했던 현장을 확인하였다. 다음으로,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서 귀속을 반복한 알자스-로렌 지방을 답사하였다. 여기서는 특히 오 쾨니히스부르(Haut Koenigsbourg) 성과 함께 지근거리에 있는 소 쾨니히스부르(Petit Koenigsbourg) 성을 방문하여, 성 안팎의 경관과 축조방식의 특징, 그리고 부분적 보수의 역사를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쾨니히스부르 성은 전통적인 프랑스 성들과는 판이하며, 오히려 프로이센의 성 양식에 따라 축조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자는 라인 강을 따라 산재한 성과 요새들 가운데 바하라흐(Bacharach) 도시성곽과 슈탈레크(Stahleck)성, 그리고 폐허가 되어버린 슈탈베르크(Stahlberg) 성의 흔적을 답사하였다. 이를 통해 라인강 일대의 정치적 부침을 확인시켜주는 이 성(곽)들의 축조양식과 변모과정, 그리고 복원 여부와 방식을 둘러싼 논쟁을 건축과 지세를 통해 파악할 수 있었다.
문헌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중요 사항은, ‘보전(Erhaltung)’과 ‘복원(Wiederherstellung)’을 둘러싸고 당대에 전개된 논쟁의 논거들이다. 데히오(Georg Dehio)와 리글(Alois Riegl)을 중심으로 전개된 논쟁을 검토함으로써, 오늘날 보전-복원 논쟁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는 수준의 논점들을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