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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 상세정보

唐代 書僧의 서예와 서예시
Monk Calligrapher’s Calligraphy and Poems on Calligraphy in Tang Dynasty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7S1A5A2A01023989
선정년도 2017 년
연구기간 2 년 (2017년 07월 01일 ~ 2019년 06월 30일)
연구책임자 우재호
연구수행기관 영남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당대는 불교가 성행하면서 사찰과 승려도 많아졌고, 승려의 수가 많아지면서 문화적 소양이 높은 승려도 많이 배출되었다. 불교가 발전함에 따라 문학과 예술에도 많은 영향을 미쳐, 불교 문학과 불교 예술이 함께 발전하였다. 문학 분야에서는 유명한 詩僧도 많이 등장하였고, 예술 분야에서는 석굴 등의 불교조각을 비롯하여 서예와 회화가 발달하였고, 인도로부터 불경이 전해져 불경 번역작업이 진행되면서 승려와 일반인들의 불경 寫經작업이 성행하면서 유명한 書僧도 많이 출현하였다. 불교가 보편적으로 유행하면서 승려들과 일반 문인사대부와의 교류도 많아져, 유명한 서승들과 이들의 서예를 읊은 시 역시 당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당대는 玄奘을 대표로 하는 불교 경전 번역이 크게 유행하였던 터에, 불경의 전파와 개인의 공덕을 쌓기 위해 일반인과 승려들의 寫經 행위가 보편화 되었던 까닭에 서예로 유명했던 승려 역시 많았고, 이에 따라 당대에 창작되었던 다양한 내용의 시 중에 서예를 제재로 하여 시승이나 시승의 서예작품을 읊은 서예시도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현재까지 당시에 대한 연구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발표되었으나, 수많은 연구업적 중에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서승의 시와 서예만을 다룬 연구는 거의 발표되지 않은 상황이다. 당대 불교에 대한 연구도 상당히 많이 진척되었으나 서승만을 전적으로 다루고 있는 선행연구는 없는 듯하며, 당대 서예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논문도 비교적 많지만 서승의 서예만을 다루고 있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은 실정이다. 이는 중국문학 연구자들은 서예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지 못하고, 서예에 대한 지식을 지닌 서예가들은 중국문학이나 한문고전 독해 능력이 충분하지 못하여 당시를 번역하고 분석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유명한 시승의 시와 시론에 대한 연구는 한국에서도 상당히 많이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문학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당대 시가와 조형 예술의 주요 범주인 서예가 서로 결합된 영역이랄 수 있는 서승의 시와 서예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전무한 듯하다. 따라서 당대부터 출현하였던 서승들의 시와 그들의 서예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 별로 다루지 않은 듯하므로, 본 연구에서는 당대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던 서승의 시와 서예에 대해 연구해보고자 한다.
  • 기대효과
  • 필자는 궁극적으로 중국역대 서예시의 통시적 연구를 진행해보고자 하는 비교적 거시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다. 서예시의 창작이 중국 당대부터 시작되었으므로, 당대부터 송원명청의 역대 서예시의 사적 정리를 위해서는 본 연구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과정이다.
    지금까지 당대 시가에 대한 연구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발표되었으나, 이러한 수많은 연구업적 중에 서승의 시를 다룬 연구는 별로 발표되지 않은 상황이며, 아울러 당대 불교에 대한 연구도 상당히 많이 진척되었으나 서승만을 전적으로 다루고 있는 선행연구는 별로 없는 듯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당대 불교에서 서승이라는 집단의 역할과 불교 예술사에서의 문화사적 의의 등에 대한 보충적인 연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당대 서예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경우는 상당히 많지만 서승의 서예와 서승의 서예시만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은 실정이다. 이는 중국문학 연구자들은 서예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지 않고, 서예에 대한 지식을 지닌 서예가들은 중국문학사에 대한 지식과 한문고전 특히 당시 해독 능력이 충분하지 못하여 당시를 번역하고 분석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당대 서예 예술사에서 서승이란 문화 예술인의 역할과 업적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당 이후에도 일반 문인과 승려들이 교류하면서 문인들이 승려의 서예를 읊은 시들이 상당히 많이 출현하였다. 따라서 당 이후의 문인과 서예가들이 서예를 읊거나 승려들의 서예를 읊은 수많은 서예시들을 추출하고 연구하는데 하나의 기초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에서는 중국서법사 등과 같은 연구물들이 이미 많이 발표되었으나 한국에서는 아직 독자적인 연구물이 존재하지 않은 상황이므로 한국 학술사와 예술사의 수준을 한층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필요 작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서예가 한국 서예사에 미친 영향과 한중 서예의 교류사 연구에도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한중일 동아시아 서예의 교류와 영향 관계를 연구하는 기본 작업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연구요약
  • 본 연구에서는 당대 書僧의 서예 작품과 이들의 서예를 읊고 있는 시가를 연구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당대에 서승으로 명성을 날린 대표적인 승려를 대략 당대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개괄해 보면, 당대 전기의 서승으로 懷渾, 懷仁, 大雅, 行滿, 湛然, 辯才, 行敦, 知至, 澄觀, 遺則, 智佺, 懷素, 鑒眞, 獻上人, 廣利大師 등을 들 수 있고, 당대 후기의 서승으로는 道秀, 玄應, 建初, 高閑上人, 䛒[辯]光大師, 亞棲, 貫休, 禪月大師 등을 들 수 있다. 中國書法史에 따르면 이들 외에도 당대 사경승의 이름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이들 중 시와 서예작품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으면서 후대 시인과 평자들의 시가와 평론이 전해지는 대표적인 서승으로는 懷素를 들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회소를 1차년도의 연구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회소의 서예를 읊은 시는 당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조대에 걸쳐 창작되었으므로, 현전하는 이러한 회소 초서를 읊은 시가가 일차 연구대상이 될 것이다. 이처럼 회소 서예를 읊은 역대 시가가 많이 존재하는 것은 회소 초서의 작품성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본 연구에서는 현전하는 회소 초서 진적과 회소 초서를 읊은 시가 작품을 서로 대조하면서 회소 서예의 예술성에 대해 분석해보고, 더 나아가 이들 시가에서의 표현과 비유 양식 등에 대해서도 분석해보고자 한다.
    2차년도 연구과제로 당대 서승이 지은 시를 전당시를 기준으로 개괄해 보고, 아울러 일반 시인들이 서승에 관해 지은 시를 선별하여 개괄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회소의 시 외에 다른 서승의 시가 있는지 전당시를 검색하여 시가 작품들을 선별해본다. 기타 서승의 시와 서예시가 있다면, 먼저 서승의 시에 대해 분석해보고, 이들 시가를 통해 서승의 시와 書僧의 서예에 대해 탐색해보고자 한다. 서승의 서예를 읊은 시를 추출함과 동시에 詩僧의 서예시, 시승이 서승에 관해 읊은 시, 그리고 일반 文人이 서승과 서승의 서예에 관해 읊은 시들도 함께 선별하여 가능하다면 당대 詩僧과 書僧의 관계에 대해서도 탐색해보고자 하며, 이를 통해 詩僧과 書僧의 서예시에서 어떠한 차이점이나 변별점이 있는지를 비교해보고자 한다. 또한 당대 서승의 서예 진적 중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작품이 있는지 이들을 추출하여 그들의 서예시와 비교 대조 분석해보고자 한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에서는 당대 書僧의 서예와 이들의 서예를 읊고 있는 시가를 연구대상으로 하였다. 이들 당대 서승을 현전하는 시와 서예작품을 기준으로 분류해보면 대체로 『全唐詩』에 시도 있고 현재까지 서예작품도 전해지고 있으면서 후대 시인과 평자들의 시가와 평론이 전해지는 서승, 『全唐詩』에 시는 남기고 있지 않으나 본인의 서예작품은 전하는 서승, 그리고 『全唐詩』에 시가도 서예작품도 전하지 않지만 『全唐詩』에 실린 타인의 시가 또는 다른 문헌 기록상에 이름이 전해지는 서승 등 몇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당대의 서승 모두를 한 편의 짧은 논문에서 모두 다룰 수 없기 때문에, 당대 서승과 서승의 서예에 대한 연구의 일환으로, 1차년도 연구에서는 먼저 회소의 서예 작품과 회소 초서를 읊고 있는 역대 시가를 추출 정리하여 분석해보았다. 회소는 일단 생졸 연대도 논란이 있었으므로 먼저 회소의 생애와 회소 초서에 대해 대략적으로 다루어본 후, 당대 회소 초서가와 당 이후의 역대 회소초서가에 대해서 탐색하였다. 필자가 추출한 당대의 회소초서가는 王邕의 「회소 상인의 초서가(懷素上人草書歌)」를 비롯하여 총 13수, 당 이후 회소 초서를 읊고 있는 시로는 五代 楊凝式의 「회소의 주광첩 뒤에 제하다(題懷素酒狂帖後)」를 비롯하여 각 조대의 총 15수를 분석 대상으로 하였다. 이를 토대로 회소초서가의 특징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역대 회소초서가의 특징을 시제, 형식, 내용, 표현 기법 등 4가지 방면으로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체로 당대에 지어진 회소초서가는 구체적으로 회소의 어떤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을 명확히 밝힌 경우가 거의 없는데 반해, 당 이후 회소초서가는 詩題에 구체적인 회소의 초서 작품명이 명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둘째, 당대의 회소초서가는 거의 대다수가 칠언 고시 또는 칠언 위주의 가행체 형식으로 칠언시가 95%이상을 점하고 있다. 이는 자유분방하고 종횡으로 거리낌 없이 연결되는 광초의 특성을 십분 살리면서 광초의 풍미를 가장 잘 읊어낼 수 있는 시가 형식으로 장단이 자유롭고 형식이 자유로운 가행체와 잡언체를 주로 채택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아울러 칠언시가 다수를 점하고 있는 이유도 광초의 풍격과 형식을 비유적인 표현을 빌려 묘사하기에는 오언의 짧은 리듬보다는 좀 더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칠언시를 시인들이 상대적으로 더 선호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송대 이후 회소 초서를 읊은 시들에서는 여전히 칠언시가 다수를 점하긴 하지만, 가행체가나 고시가 다수를 점한다는 등의 별다른 특징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칠언절구나 오칠언 율시가 반 이상을 차지하였는데, 이는 청대에 유행했던 ‘論書絶句’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셋째, 회소초서가 대부분은 기본적으로 회소 초서를 찬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회소초서가의 내용을 살펴보면 회소의 인품과 성격, 행동 등에 대한 묘사가 먼저 기술되는 경우가 많고, 그 다음으로 초서를 휘호할 때의 자태, 자유분방하고 광일한 초서의 형태와 풍격 등을 비유적으로 묘사하였다. 즉 회소의 초서를 감상하고 시를 지을 경우에는 회소 초서의 특이함과 우수함을 부각시키는 긍정적인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넷째, 회소초서가에 나타난 표현 기법상의 특징으로는 직유와 은유 등 비유적인 표현을 특히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비유가 시적 언어에서 중요한 한 부분임에는 분명하지만, 회소초서가에서는 비유적 수사기교가 유난히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는 초서의 필획을 직설적으로 묘사하는 것보다 여러 비유 대상을 활용하는 것이 더 구체적으로 대상을 형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예시는 초당부터 꾸준히 창작되었지만, 유명 서승과 이들의 서예를 읊은 문인사대부들의 시와 시승이 지은 서예시는 주로 중만당 이후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당대에는 문화적 소양을 갖춘 승려도 많이 배출되어 유명한 詩僧과 글씨를 잘 썼던 書僧과 그림을 잘 그렸던 畵僧 역시 상당히 많이 출현하였으나 이들 시승, 서승, 화승도 중만당에 들어서야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일반 문인사대부들과 승려와의 교류도 많아져 유명 서승과 이들의 서예를 읊은 문인사대부들의 시 역시 당대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중당 시기부터 보편화되었던 듯하다. 또 皎然과 貫休 같은 시승이나 화승이 회소나 변광 같은 서승의 서예를 읊은 경우도 거의 대다수 중만당 시기에 창작되었다.
    2차년도에서는 당대 서승과 서승의 서예를 개괄적으로 소개한 후에, 당대 서승의 서예를 읊은 서예시를 추출하여 분석해보았다. 아울러 당 이후에 당대 서승의 서예를 노래한 시가를 선별하여 분석함으로써 당대 서승에 대한 후대의 평가에 대해서도 알아보았고, 이를 통해 당대 서승의 서예와 서예시의 특징 및 의의에 대해 궁구해보았다.
    당대에 서승으로 명성을 남기고 있는 승려를 주요 서론 전문 서적에 수록된 법명만을 열거해보면 먼저 淸代 倪濤(1669-1752)의 『六藝之一錄』 권333 「唐釋氏」에는 懷素, 辯才, 懷仁 등 41명의 서승을 순서대로 나열하고 있고, 또 清代 孫岳頒(1639-1708)의 『御定佩文齋書畵譜』 권30에는 당대 서승으로 辯才, 懷仁, 智辯 등 모두 86명의 서승을 열거하고 있는데, 이 두 전적에서 서로 중복되지 않는 당대 서승이 45명이나 된다. 이에 더하여 근래에 발간된 『佛法與書法』에서는 역대의 서승을 소개하면서 이중 당대의 서승으로 慧齡, 明璿, 智威, 道暹 등 모두 108명을 열거하고 있다. 이들 108명 중에는 『御定佩文齋書畵譜』와 『六藝之一錄』 두 전적에 수록되지 않은 서승 22명이 더 보충되어 있다. 앞에서 이미 거론한 전적 이외에 기타 현대에 간행된 문헌에도 이들 전적에 수록되지 않은 당대 사경승과 서승 역시 상당히 많은데, 송대부터 청대에 이르기까지 간행된 여러 서론 專著에서는 이들 서승의 서예와 이들의 서예와 관련한 평론 등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2차년도에는 우선 이러한 당대 서승들의 서예에 대해 각 서승이 뛰어났던 주요 서체별 기준으로 분류해보았다. 역대 전적에 수록된 당대 서승의 서예를 서체별로 분류해 보았을 때, 正書와 草書에 뛰어났던 서승이 각각 29명과 23명으로 가장 많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다가 두 가지 서체 모두에 뛰어났던 서승 중 초서에 뛰어났던 서승이 7명 정도 있으므로 이들을 초서승에 합하면 초서에 뛰어났던 서승이 30명 이상 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정서에 뛰어났던 서승보다 그 수가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로 볼 때 당대 유명 서승이 주로 구사했던 빼어난 서체는 정서와 초서였다고 하겠다. 아마도 정서는 불경 사경 작업에 필수적으로 채택되었던 서체였기에 정서에 뛰어났던 서승이 많았으며, 시기적으로 주로 초중기에 많이 분포하고 있으면서 당대 전체적으로 고루 분포하고 있다. 이에 반해 초서에 뛰어났던 서승은 거의 대다수가 당대 중후기에 출현하였다. 초서승으로 처음 등장하는 유명 서승이 懷素인데, 회소가 대략 開元 25년(737년)에 태어나 貞元 15년(799년)에 사망한 것이 정설로 정착되었고, 초서에 뛰어났던 초서승은 모두 회소 이후에 활동했던 서승만이 수록되어 있으므로, 초서승 대부분은 당대 후기에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당대 후기에는 초서가 서승의 가장 주요한 서체였음을 알 수 있다. 정서와 초서에 비하여 八分書, 隸書, 篆書, 梵書에 빼어났던 서승은 그 수가 많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비록 당대에는 정서와 초서에 뛰어났던 서승이 가장 많았지만, 주로 정서로 필사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寫經僧의 서예를 시로 노래한 경우는 전무하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이들 수많은 서승 중에서『全唐詩』 등 각 전적에 서예 관련 시가를 남기고 있는 당대 서승의 서예와 서예시만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당대 초중기에는 문인이 서승의 서예를 읊은 시가 대부분이었으나, 당대 중후기에는 시승이 서승의 서예를 읊은 시도 많이 보인다. 이는 중만당으로 갈수록 시적 교양을 갖춘 시승의 수가 많아졌고, 서승의 서예가 문인뿐만 아니라 시승에게도 관심을 많이 받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대 서승의 서예시 중에서 초서 이외의 서체를 읊은 경우는 黃滔의 「동림사 관휴스님이 전서와 예서로 쓴 시(東林寺貫休上人篆隸題詩)」(권706-30)와 齊己의 「서천 담역대사의 소전 글씨에 감사하며(謝西川曇域大師玉箸篆書)」(권846-70) 등 篆隷에 관한 시 두 수밖에 없고, 서승의 서예시는 대다수가 초서와 관련한 시였다. 이로 볼 때 서승의 서예를 읊은 서예시는 초서를 읊은 시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懷素, 高閑, 辯光 등 당대에 가장 유명했던 서승 대부분이 초서에 뛰어났던 초서승이었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 승려와 초서가 밀접한 관련을 가지게 된 것은 아마도 隋代의 유명한 초서승인 智永의 영향과 그에 대한 추앙, 그리고 張旭에서 비롯된 당대 초서가 특히 발전하게 된 시대적 추이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아울러 서승의 서예시, 특히 초서를 읊은 서예시는 형식적으로 歌行體가 가장 많은 수를 점하고 있어, 초서를 읊은 서예시는 가행체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자유분방함을 특징으로 하는 초서의 특징을 역시 장단의 구사가 자유롭고 길이와 편폭의 제한이 없어 자유분방하였던 가행체 형식이 가장 잘 드러내주었기 때문에, 시인들은 초서승의 초서를 노래하면서 시가 형식으로는 가행체 시를 의도적으로 선택하였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 가행체 시가가 초서를 노래하려는 시인의 의도와 가장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본 연구자는 이러한 가설을 바탕으로 「唐代 草書와 歌行體 草書歌의 상관성」이란 논문을 구상 집필하여 학술대회에서 발표하였고 이 결과물을 등재학술지에 게재하였다. 아울러 회소 이외에 당대 시인들이 초서가를 남기고 있는 대표적인 서승으로 高閑, 辯光, 貫休 등이 있는데, 이들 서승의 서예와 서예시에 대한 연구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자 한다.
  • 영문
  • This paper is a part of study on monk calligrapher and poetry of monk calligrapher who were engaged in activities since the beginning of Tang Dynasty. Since I can not deal with all the poems on calligraphy and monk calligraphy of many generations in one short essay, I first year selected and analyzed Cursive song poetry on the Huai Su(懷素)'s Cursive style of writing. Among the numerous monk calligraphers, Huai Su's calligraphy and poetry created by contemporary poets have been passed down to the present day, and since then Huai Su is represented as a typical monk calligraphy. Since the date of birth and entire life of Huai Su was not even clear yet, in the first chapter, I tried to summarize the life of Huai Su. And in the next chapter, I selected and analyzed 13 pieces of Cursive song poetry on the Huai Su's Cursive style of writing in Tang Dynasty, and 15 pieces of that in next many dynasties. Based on this, I summarized the poetic characteristics of Cursive Song Poetry on the Huai Su's Cursive style of writing of many generations in four areas such as title, form, content, and expression technique.
    Second year study analyzed monk calligraphers’ calligraphy and poems on calligraphy in the Tang Dynasty. In this regard, this study made a general introduction of monk calligraphers in the Tang Dynasty, and then extracted the poems on their calligraphy and categorized them into calligraphy poems. Further, this study selected and analyzed the poems on calligraphy written by monk calligraphers since the Tang Dynasty, and investigated the later evaluation of monk calligraphers in the Tang Dynasty.
    In the early and middle Tang Dynasty, most of the poems were written by literary men about monk calligraphers’ calligraphy, while, in the middle and late Tang Dynasty, quite a number of poems were written by monk poets about monk calligraphers’ calligraphy. The closer the Tang Dynasty was to the middle and late period, the greater the number of monk poets with great poetic skills was. It can be said that monk calligraphers’ calligraphy received much attention from monk poets as well as literary men. As for calligraphic script styles other than Cursive script, there are only 2 poems that Huangtao(黃滔) and Qiji(齊己) wrote about Seal script and Clerical script. Monk calligraphers’ poems on calligraphy are all related to Cursive script. This shows that poems related to Cursive script occupies the absolute majority of monk calligrapher’s poems on calligraphy. This reflects the fact that most of the famous monk calligraphers in the Tang Dynasty, including Huaisu(懷素), Gaoxian(高閑), and Bianguang(䛒光), were excellent in Cursive script. What made monks so closely related to Cursive script? It seems to have been due to the influence and praise of Zhiyong(智永), a famous monk calligrapher who mastered Cursive script in the early Tang Dynasty, and the trend of the times that Cursive script in the early Tang Dynasty created by Zhang Xu(張旭) was remarkably developed. These poems on calligraphy in the Tang Dynasty had a great influence on later poems on calligraphy since the Tang Dynasty, with the Cursive script of monk calligraphers excellent in Cursive script having a particular influence on later Cursive script.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당대 書僧의 서예와 이들의 서예를 읊고 있는 시가를 연구대상으로 한다. 1차년도 연구에서는 먼저 회소의 서예 작품과 회소 초서를 읊고 있는 역대 시가를 정리 분석하였다. 회소는 일단 생졸 연대도 논란이 있으므로 먼저 회소의 생애와 회소 초서에 대해 대략적으로 다루어본 후, 당대 회소 초서가와 당 이후의 역대 회소초서가에 대해서 탐색하였다. 필자는 당대의 회소초서로는 王邕의 시를 비롯하여 총 13수, 당 이후 회소 초서를 읊고 있는 시로는 五代 楊凝式의 시를 비롯하여 각 조대의 총 15수를 분석 대상으로 하였다. 이를 토대로 회소초서가의 특징에 대해서 알아보았고, 역대 회소초서가의 특징을 시제, 형식, 내용, 표현 기법 등 4가지 방면으로 요약하였다. 첫째, 대체로 당대에 지어진 회소초서가는 구체적으로 회소의 어떤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을 명확히 밝힌 경우가 거의 없는데 반해, 당 이후 회소초서가는 詩題에 구체적인 회소의 초서 작품명이 명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둘째, 당대의 회소초서가는 거의 대다수가 칠언 고시 또는 칠언 위주의 가행체 형식으로 칠언시가 95%이상을 점하고 있다. 이는 자유분방하고 종횡으로 거리낌 없이 연결되는 광초의 특성을 십분 살리면서 광초의 풍미를 가장 잘 읊어낼 수 있는 시가 형식으로 장단이 자유롭고 형식이 자유로운 가행체와 잡언체 칠언시를 주로 채택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셋째, 회소초서가의 내용을 살펴보면 회소의 인품과 성격, 행동 등에 대한 묘사가 먼저 기술되는 경우가 많고, 그 다음으로 초서를 휘호할 때의 자태, 자유분방하고 광일한 초서의 형태와 풍격 등을 비유적으로 묘사하였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회소 초서를 감상하고 시를 지을 경우에는 회소 초서의 특이함과 우수함을 부각시키는 긍정적인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넷째, 회소초서가에 나타난 표현 기법상의 특징으로는 직유와 은유 등 비유적인 표현을 특히 많이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초서의 필획을 직설적으로 묘사하는 것보다 여러 비유 대상을 활용하는 것이 더 구체적으로 대상을 형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차년도에서는 당대 서승과 서승의 서예를 개괄적으로 소개한 후에, 당대 서승의 서예를 읊은 서예시를 추출하여 분석해보았다. 아울러 당 이후에 당대 서승의 서예를 노래한 시가를 선별하여 분석함으로써 당대 서승에 대한 후대의 평가에 대해서도 알아보았고, 이를 통해 당대 서승의 서예와 서예시의 특징 및 의의에 대해 궁구해보았다.
    우선 당대 서승들의 서예에 대해 각 서승이 뛰어났던 주요 서체별 기준으로 분류해보았다. 역대 전적에 수록된 당대 서승의 서예를 서체별로 분류해 볼 때 당대 유명 서승이 주로 구사했던 빼어난 서체는 정서와 초서였다. 아마도 정서는 불경 사경 작업에 필수적으로 채택되었던 서체였기에 정서에 뛰어났던 서승이 많았으며, 주로 초중기에 많이 분포하였다. 이에 반해 초서에 뛰어났던 서승은 거의 대다수가 당대 중후기에 출현하였다. 초서승으로 처음 등장하는 유명 서승이 懷素인데, 회소가 대략 貞元 15년(799년)에 사망한 것이 정설로 정착되었고, 초서에 뛰어났던 초서승은 모두 회소 이후에 활동했던 서승이 수록되어 있으므로, 초서승 대부분은 당대 후기에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고, 당대 후기에는 초서가 서승의 가장 주요한 서체였음을 알 수 있다.
    당대에는 정서와 초서에 뛰어났던 서승이 가장 많았지만, 주로 정서로 필사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寫經僧의 서예를 시로 노래한 경우는 전무하다. 그리고 당대 초중기에는 문인이 서승의 서예를 읊은 시가 대부분이었으나, 당대 중후기에는 시승이 서승의 서예를 읊은 시도 많이 보인다. 이는 중만당으로 갈수록 시적 교양을 갖춘 시승의 수가 많아졌고, 서승의 서예가 문인뿐만 아니라 시승에게도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대 서승의 서예시 중에서 초서 이외의 서체를 읊은 경우는 黃滔의 관휴스님 전예와 齊己의 서천 담역대사의 소전 등 篆隷에 관한 시 두 수밖에 없고, 서승의 서예시는 대다수가 초서와 관련한 시였다. 이로 볼 때 서승의 서예를 읊은 서예시는 초서를 읊은 시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懷素, 高閑, 辯光 등 당대에 가장 유명했던 서승 대부분이 초서에 뛰어났던 초서승이었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 승려와 초서가 무엇 때문에 밀접한 관련을 가지게 된 것은 아마도 隋代의 유명한 초서승인 智永의 영향과 그에 대한 추앙, 그리고 張旭에서 비롯된 당대 초서가 특히 발전하게 된 시대적 추이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아울러 서승의 서예시, 특히 초서를 읊은 서예시는 형식적으로 歌行體가 가장 많은 수를 점하고 있어, 초서를 읊은 서예시는 가행체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연구 수행기간 중의 연구 성과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등재학술지 게재 논문
    「唐代 書僧의 書藝와 書藝詩」, 동북아문화연구 60輯, 동북아시아문화학회, 2019.09.30, pp.93-111
    「唐代 草書와 歌行體 草書歌의 상관성」, 中國語文學 79輯, 嶺南中國語文學會, 2018.12.31, pp.163-189
    「懷素 草書와 역대 懷素草書歌에 대하여」, 中國語文學 77輯, 嶺南中國語文學會, 2018.04.30, pp.5-41
    2. 국내외 학술대회 논문 발표
    Monk Calligrapher’s Calligraphy and Poems on Calligraphy in the Tang(唐) Dynasty, The 39th International Conference of The Association of North-East Asian Cultures, Kazakh Abali Khan University of International Relations and World Languages, 2019.07,07
    「唐代 書僧 䛒光의 書藝와 書藝詩」, 東亞大學校 孔子學院ㆍ大韓中國學會, 2019年度 春季 學術大會: 중국의 전망, 중국학의 미래, 2019.06.01
    「唐代 書僧 高閑의 書藝와 역대의 평가」, 韓國中語中文學會, 2018年度 韓國中語中文學會 秋季聯合學術大會: 텍스트와 방법론 사이에서의 중어중문학, 2018.11.17
    The Correlation Between the Cursive Style of Writing(草書) and The Narrative Folk Song Style's Cursive Song Poetry(歌行體草書歌) During the Tang(唐) Dynasty, Joint International Conference of Association of North-East Asian Cultures, North-Eastern Federal University, Yakutsk, 2018.07.14
    1. 연구결과 활용계획
    본 연구자는 궁극적으로 중국역대 서예시의 통시적 연구를 진행해보고자 하는 비교적 거시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다. 서예시의 창작이 중국 당대부터 시작되었으므로, 당대부터 송원명청의 역대 서예시의 사적 정리를 위해서는 본 연구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과정이다. 각 조대별 중국 서예시를 단행본으로 번역 소개하려는 작업의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당대 시가에 대한 연구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발표되었으나 서승의 시를 다룬 연구는 별로 발표되지 않은 상황이며, 아울러 당대 불교에 대한 연구도 상당히 많이 진척되었으나 서승만을 전적으로 다루고 있는 선행연구는 별로 없는 듯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당대 불교에서 서승이라는 집단의 역할과 불교 예술가에서의 문화사적 의의 등에 대한 보충적 연구가 될 것이다. 또한 당대 서예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경우는 상당히 많지만 서승의 서예와 서승의 서예시만을 다루고 있는 경우는 전무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당대 서예 예술사에서 서승이란 문화 예술인의 역할과 업적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당 이후에도 일반 문인과 승려들이 교류하면서 문인들이 승려의 서예를 읊은 시들이 상당히 많이 출현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는 당 이후 문인들이 승려의 서예를 읊은 수많은 서예시들을 추출하고 연구하는데 하나의 기초자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회소 외에 당대의 대표적인 서승으로 高閑, 辯光, 貫休 등이 있는데 이들 서승의 서예와 서예시에 대한 연구에 기본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 자료를 토대로 시승이 서승에 관해 읊은 詩僧의 서예시, 文人이 서승의 서예에 관해 읊은 시들을 비교 분석하면서 당대 詩僧과 書僧의 관계에 대해 탐색해보고, 이를 통해 詩僧과 書僧의 서예시에서 차이점이나 변별점이 있는지, 시승의 서예시와 문인의 서예시에는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를 비교해볼 수 있으며, 또 당대 서승의 서예 진적 중 현전 작품이 있다면 이들을 추출하여 그들의 서예시와 비교 대조 분석해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현전하는 당대 시승의 서예시가 그다지 많지 않아 이에 대한 연구는 쉽지 않고, 회소의 진적 이외에 당대 서승의 서예 작품으로 현전하는 것이 거의 없어 이에 대한 연구까지 심화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앞으로 더 많은 당대와 송원명청대 서예시 관련 자료를 추출한다면 이에 대한 연구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를 진행하면서 당대 문인사대부들과 서승의 교류, 중만당 시기 시승과 서승과 화승의 교류, 그리고 시가 이외에 회소 초서를 평하고 있는 散文 書論에 대한 연구도 필요함을 인지하였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을 것인데, 본 연구 결과들은 이러한 연구를 진행하는데 필요한 선행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에서는 중국서법사 등과 같은 연구물들이 이미 많이 발표되었으나 한국에서는 아직 독자적인 연구물이 존재하지 않은 상황이므로 한국 학술사와 예술사의 수준을 한층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필요 작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서예가 한국 서예사에 미친 영향과 한중 서예의 교류사 연구에도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한중일 동아시아 서예의 교류와 영향 관계를 연구하는 기본 작업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색인어
  • 서승(書僧), 서예(書藝), 서예시(書藝詩), 초서(草書), 초서가(草書歌), 회소(懷素), 고한(高閑), 변광(䛒光)
  • 연구성과물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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