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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근대극(신극) 연출사 연구
A Study on the History of Modern Theatre(Shingeuk) Directing in the Japanese Occupation Era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학문후속세대양성_학술연구교수& #40;인문사회& #41;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7S1A5B5A02024913
선정년도 2017 년
연구기간 4 년 (2017년 07월 01일 ~ 2021년 06월 30일)
연구책임자 성명현
연구수행기관 순천향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는 일제치하 식민지조선의 ‘특수한 시대적 현실’ 속에서 동우회순회연극단(1921.봄-1921.8)의 아마추어 무대감독 김우진과 토월회(1923-1931)의 작가이자 연출가 박승희와 박진, 그리고 극예술연구회(1931-1939)의 배우출신 연출가 홍해성과 작가 겸 연출가 유치진의 연출이념과 그 실천적 국면인 초보적인 ‘연출적 행위’부터 수준 높은 ‘창조적 연출’까지의 족적을 재구하는 데 목적이 있다. 또 그들의 무대형상화 작업과 상연에서 드러나는 연출의 방법(론)과 특징 및 유형을 연극-사회문화사적 맥락에서 논구하여 연출사적 지점과 위상을 발견하는 데 목적이 있다. 마지막으로, 일제치하의 식민지라는 조선의 환경(좁게는 관객과 극계이며, 넓게는 사회현실) 속에서 신극의 생태학적 적응과 결과(변형 또는 변화)를 추적하고, 신극연출(가)에 내재된 문화적 혼종성과 잡종성 및 탈진실(post-truth)의 문제를 함께 고찰하고자 한다.
    이러한 본 연구는 현재까지 신극사와 연출사에서 간과되거나 오인된 부분을 밝히고 연구사의 공백을 채우는데 일조할 수 있다. 또한 본 연구는 일제강점기 신극연출사의 연한을 확장하여 재구하는 연구로써, 전통연희(극)의 당대적 재발견과 한국연극의 정체성을 찾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본 연구는 연극학과 문화인류학 분야의 예술인류학 및 민속학의 시각과 방법론을 적용하여 논구하는 학제 간 연구이자 또 연극사적 연출론의 유형과 특성을 사회과학적 시각에서 조망하고 기술하는 연구로써, 이는 기존의 연구성과에 새로운 관점과 이해를 더하는 의미가 있다.
  • 기대효과
  • 본 연구의 기대효과는 크게 학문적, 교육적, 사회적 측면으로 설명할 수 있다. 먼저 학문적 차원에서, 본 연구는 한국연극사 및 연출사에 대한 학문적 지식의 증진과 연구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동우회순회연극단을 신극상연의 주체로써 신극연출사 연구의 출발점에 두므로, 그동안 신극연구사에서 간과되거나 오인된 부분을 밝히고 연출사의 공백을 채우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또 유치진의 연출가로서의 면면에 대한 고찰을 통해 연극학의 시각에서 그의 연출가로서의 활동상을 조명함으로써 학문적 지식의 증대에도 기여할 수 있다.
    교육적 차원에서, 본 연구는 근대극 연출사에 대한 연극학과 예술인류학의 학제적 접근방식을 활용하므로, 그 성과는 한국연극에 대한 관심과 논의의 폭을 확장시키고 대학의 연극과 민속예능 및 예술문화 관련 분야의 수업 자료로 폭넓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말살·훼손된 전통연희(극) 및 외래 근대극의 형태가 당대 환경에서 재발견되는 양상을 밝힘으로써 학생들의 한국 근대연극사와 연출사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증진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는 그동안 비전문적이며 대중흥행에 치우친 연출가로 평가되던 박승희와 박진 및 주목받지 못했던 유치진의 연출사적 위상과 의미를 연구함으로써 연출가를 포함한 공연현장의 활동가들에게 그들의 연출작업과 방법론에 대한 새로운 정보와 이해를 제공할 것이며, 나아가 연극창작에서의 실험과 도전을 위한 선행방법론의 자료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본 연구는 연극문화사적 측면에서는 일제강점기 신극연출가들의 실험과 도전정신을 새롭게 조망하는 연구로써, 넓게는 한국연극사와 문화사의 정체성을 밝히는 노력의 일환에 기여할 것이다. 또 대외적으로는 한국문화와 공연예술사를 망라한 한국학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연구요약
  • 본 연구의 내용은 총 7장으로 구성될 계획이다. 이중 연출적 측면의 논제를 중심으로 대략의 연구내용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제3장. ‘동우회순회연극단(1921.봄-1921.8.18)의 무대감독 김우진과 (홍해성)’에서는 무대감독 김우진이 연극연출과 관련하여 당대 신게키계의 이해범주 하에 있었고 연출가연극의 개념에 대해서는 불분명한 상태였던 부분을 고찰할 것이다. 또 그가 실제 무대경험이 전무하여 신게키배우 도모다 쿄스케(友田恭助)의 도움에 의존한 정황과, 연출 면에서 아마추어였던 그의 ‘연출적 행위’에서 비롯된 결과의 연극문화사적 의미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이와 함께 신극연출사상 무대감독 김우진과 (홍해성)의 ‘연출적 행위’는 조선에서 처음으로 완성된 대본에 의거하여 연극의 제요소를 조율한 공연을 선보인 점에서 미약하나마 ‘연출가연극의 개막을 위한 준비단계’와 같은 의미가 있는 점에 대한 분석과 해석을 시도할 것이다. 제4장. ‘토월회(1923-1931)의 작가-연출가 박승희와 박진’에서는, 토월회의 작가-연출가 박승희와 후기의 조력자 박진의 대표작들에서 드러나는 작품 및 연출활동의 생태학적 적응추이를 고찰할 것이다. 즉, 초기에 대중적 신게키를 닮은 일명 ‘대중적 신극’ 내지 ‘신극류 공연’에서 중기에는 ‘신극류와 고전의 현대화 상연의 병행’으로 변모하였고, 특히 후기에는 ‘(희)가·악극의 전성기’로 특징될 만큼 대중본위의 공연으로 변화한 과정과 사회문화적 환경 간의 관계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또한 그 예로 박승희가 당대에 최장기 공연기록을 세운 연출작《춘향전》공연을 들어, 이것이 ‘역사적 사실주의 무대’에서 구현된 ‘고유한 극전통의 근대적 창출작’으로써 박승희의 실험적인 ‘연출가연극의 명백한 신호탄’과 같은 의미가 있는 점을 분석할 것이다. 제5장. ‘극예술연구회(1931-1939)의 배우-연출가 홍해성’에서는, 홍해성이 서구 사실주의 연극의 대부인 스타니슬랍스키의 연출론을 일본의 쓰키지쇼게키죠에서 스승 오사나이에게 배움으로써 당시에는 드물게 ‘전문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연출가’이자 ‘연출가연극의 선각자’로 평가되나, 사실 그의 극예술연구회에서의 연출활동은 쓰키지쇼게키죠식 무대형상화 기법을 답습하여 재현하는 ‘지향성 흉내내기’ 단계에 머문 점을 밝힐 것이다. 제6장. ‘극예술연구회(1931-1939)의 작가-연출가 유치진’에서는, 유치진의 ‘관중본위론’의 요지가 토월회의 작가-연출가 박승희의 ‘공연지상주의’와 일맥상통하며, 또 그가 조선의 연극문화 수립을 위해 조선적 정조를 담은 전통극의 보존과 전승 및 현대화와 대중화에 주력한 사실 및 그 대표작《춘향전》이 그의 연출에 담보된 실험적 지향을 특징하는 점에 대해 분석할 것이다. 작가-연출가 유치진이 독자적인 작품 해석력과 치밀한 무대구성력 그리고 형식상의 실험정신과 꾸준한 반복연습의 방법론을 구축한 연출가였다고 판단되지만, 그의 극예술연구회 시절의 연출 유형과 특징이 연출(사) 발전과정상에서 자리한 지점 및 작품의 완성도에 관한 문제는 연구과제로 남아있는 실정이다. 이에 본 연구는 이상의 토대적인 내용을 일제의 연극통제정책 및 영세한 식민현실과의 연망 속에서 심화·확대하여 논진할 것이다.
    연구방법으로는, 일제강점기 중 1915년부터 1939년까지의 도상자료와 언론기록을 포함한 문헌자료 및 DB자료에 기반한 실증주의적 연극사회사 서술방법을 활용한다. 또한 포스트콜로니얼 비평적 관점을 논저(論底)에 두며, 인류학자 프란츠 보아스의 역사적 특수주의와 줄리안 스튜어드의 문화생태학의 기본개념 및 용어를 차용한다. 이와 같은 연구방법은 연극학과 문화인류학 분야의 예술인류학 및 민속학의 시각과 방법론을 적용하는 학제적인 연구이자, 연극사적 연출론의 유형과 특성에 대한 사회과학적 시각에서의 조망과 기술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연구들과 차별점을 갖고 있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 신극운동사(新劇運動史)의 줄기를 이룬 ‘동우회순회연극단(1921.봄-8.18), 토월회(1923-1931), 극예술연구회(1931.7.8-1938.3)’의 활동상 중 연출 작업과 상연에 주안점을 두었다. 그리고 식민지 조선의 ‘특수한 시대적 현실’ 속에서 그들의 운영 구조적 추이와 더불어 형성된 근대적 연출 체제와 양상 및 저변의 동력인 연출 인식에 대해 고찰하고 연출사적 지평과 지형을 파악하는 데 목적이 있다. 나아가, 그들의 무대화 작업과 공연의 면면에 대해 포스트콜로니얼 비평적 관점에서 읽어내기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여기서 연출 체제에 대한 연구는 단체/극단의 운영 제도와 조직 구성(원) 및 제작 체계와 그 변천사에 대한 고찰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연출 양상은 그들의 대표적인 연출자들, 즉 동우회순회연극단의 무대감독 김우진과 (홍해성), 토월회의 무대감독-연출자(가) 박승희와 박진, 극예술연구회의 상임 연출자(가) 홍해성과 유치진 등의 상연 활동, 연출(자)의 직능 분화 과정, 무대화 작업과 체계, 공연 양식적 특성, 연출 유형적 특징 등에 대해 고찰하고 당시에 형성된 제작 판도와 창작 지평 및 지형을 파악하는 과제이다. 연출 인식의 문제는 그들/소속 연출자들의 연극관과 무대화 작업 방식, 공연의 면면(양식, 형식, 배역 등) 등에서 노정된 신극 이념과 실체 간의 탈진실(post-truth), 연출(자)에 내재된 문화적 혼종성과 잡종성 및 식민지적 (무)의식, 공연의 수용과 평가들에서 노정된 연출 인식과 지향성까지 상호 연관된 논제들에 대해 포괄적으로 고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연극학과 문화인류학 및 민속학 분야의 시각과 방법론을 취택한 학제적 연구를 지향하며 특히 세 가지 연구 방법을 주로 활용하였다. 첫째, 연구의 기초로서 ‘역사주의 사료비판 방법(론)’(성명현(2018):322-323)을 원용하여 사실(史實) 관계의 복원과 재구성에 주력하였다. 근거 자료는 일제 강점기 중 특히 1915년부터 극연이 해산된 1938년까지 기간에 공연 및 무대 사진이 수록된 기사와 광고 등의 언론 자료, 신극(운동) 당사자들 및 관계자들의 증언과 회고담을 포함한 문헌 자료와 DB 자료 등의 사료를 활용하였다. 둘째, 연출자 박승희, (홍해성), 유치진 등은 ‘고전의 현대화 상연’이나 ‘창작극 상연’을 위한 준비 과정에서 민속(극) 자료의 학술적 수집, 기원과 형식에 대한 고증적 작업, 탐문 조사, 현장 답사 등의 조사와 연구 활동을 선행하였다(성명현(2016-2):212-213, (2021):26-27, (2022-1):144,『극예술』1(1934.4):54).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 자체와 실천 내용을 민속학적 방법(론)에 비추어 조명하고 일제의 식민지 동화주의 정책 하에서 견지한 ‘항일의 저항성 전통주의’라는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셋째, 포스트콜로니얼 비평적 관점을 논저에 두고(성명현(2016-1):248-249), 인류학자 프란츠 보아스의 ‘역사적 특수주의(historical particularism)’와 줄리안 스튜어드의 ‘문화생태학(cultural ecology)’의 개념과 용어를 차용하여 논진하였다(성명현(2016-1):244, (2016-2):185).
    이와 같은 전제 하에 연구를 진행한 내용을 요약하면, 광의의 신극사상 연출(자)의 제도적 독립을 위한 시초는 ‘신극단 예성좌(新劇團 藝星座: 1916)’로 소급된다. 예성좌의 업무 분장에 의하면 단장의 직능에서 예술적 작업이 분업되었고 윤백남은 사상 첫 무대감독이 되었다. 그러나 극작과 상연을 모두 전담한 점에서 연출 영역의 실제적 독립은 요원하였다(성명현(2021):16).
    협의의 신극사상 1920년대 초에 신극운동의 서막을 연 동우회순회연극단(이하 ‘연극단’)의 공연부문(극예술협회 측, 이하 ‘극협’)에는 2명 이상의 무대감독(김우진, 홍해성 등)과 출연진 및 무대계 등이 편성되었다. 무대감독 김우진은 연극의 사회적 효용성을 중시한 ‘공리적 연극관’과 ‘무대감독(연출자) 중심의 해석적 연출관’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연극단의 연극 연습은 신게키(新劇)극단 와카모노자(ゎかもの座: 1921.4-1923)의 창설자 겸 배우 도모다 쿄스케(友田恭助)의 무대감독에 버금가는 조력에 의존하였다. 그 결과로 공연의 연출적 특징들 중 여장(女裝)배우(마해송)의 출연을 비롯하여 연기, 의상, 분장 등의 면면에서 당시의 과도기적 혼종적인 ‘초기 신게키’, 즉 서양의 근대극과 엄밀히 차연(差延)한 ‘근대적 신게키’의 모방·이식 양태가 드러났다(성명현(2018):315-316, 347-363, (2016-1):257, ‘근대적 신게키’는 254-258).
    1920년대에 신극운동상 제1기를 주도한 토월회-박승희는 약 9년의 활동기 동안 운영상의 변화(초기: 1인 대표 중심 체제->중기: 합자회사 체제->후기: 조선극장과 제휴·전속극단과 같은 체제)에 따라서 조직 구조와 제작 체제를 변경(초기: 연출부, 문예부, 미술부, 출연부, 박세련(혹은 박세민) 관현악단의 음악부 ->중기: 총경리, 전무, 연출부, 문예부, 미술부, 출연부, 경리부, 의상계 ->후기: 연출부, 문예부, 무대장치부 및 조명, 무용부, 출연부)하였다. 이를 통해 초창기부터 연출부와 문예부를 각기 독립 부서로 설치하는 등 극작과 연출의 독립성과 분업화를 지향하는 제도적 기반을 구축해갔다. 그리고 조선극장 시절(1929.10-1930.2)에 이르러 ‘연출(자)’라는 호칭을 표방하며 소위 ‘연출자가 연출을 하는 시대’를 개척하였다. 요컨대 극단 토월회 시기는 연출사상 개인이 연출과 제작의 각 부서를 대변하는 시기를 거쳐서 대표하는 시기로 넘어간 과도적 시기였다(성명현(2021):16-17, 18-19, 37, (2017):232-233).
    토월회에서 극작과 연출을 전담하다시피 한 박승희는 학생극 단체 시절부터 신파극 양식을 배격하였고 창작극 공연을 지향하였다. 그는 토월회 중기부터 고전과 전통의 수용과 현대화 상연을 병행하였다. 그 가운데 그의 연출에서는 낭만주의 극부터 사실주의 극까지 망라하며 근대적 형식의 대중적인 ‘가(假)신극’부터 근대극 양식의 신극까지 장르적 스펙트럼을 확장한 가운데 특히 가·무·악 기제를 활용한 음악극 기호가 두드러졌다(성명현(2016-2):197-212, (2021):21-22).
    그는 창작극의 무대화 작업에서 희곡에 충실한 지향의 해석적 구상에 기초하여 조선(인)의 생활상과 정서를 활사하고 재현하는 기법을 보였다. 그리고 배우들과의 연습에서는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위해 ‘무대 연습 전에 함께 대본 읽고 분석하기, 대사 암기, 반복 연습, 정확한 발음과 신체 훈련, 함께 연습, 개별 연습 등의 연습 방식을 구축해갔다(성명현(2019-2):316-317, (2021):24-31, 32-33). 무대 연출은 동양화가 원우전이 일임한 가운데 그와 함께 사상 평면적인 회화적 배경무대에서 입체적으로 건축된 장치로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또한 전통연희와 민속에 대한 고증적 작업을 통해 나름의 역사주의 무대 연출 방식을 체계화해 나갔다(양정현(1998):28, 성명현(2019):316-323).
    토월회 시기-박승희는 번안극과 번역극에서 낮설고 서툰 연출(력)과 전형화된 공연이란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반면에 창작(악)극의 연출에서는 식민지 조선의 실제 생활상과 슬픔의 정서를 그린 “조선정조를 담은 의미심장의 시대극”으로 소위 ‘토월회식 근대극’을 창출하였다. 그러나 그의 연출에 대한 평가들 중 ‘부빔밥 극본’, ‘신극적 진로로써는 아도(阿道)’ 등의 비판은 혼융된 혼종성과 잡종성의 극형식에서 벗어나 희곡의 내적 요구에 맞는 사실주의 양식의 조선적 신극을 촉구하는 연출 인식을 반영한다(성명현(2016-2):201, (2017):237, 244-245).
    1930년대 신극운동상 제2기를 대표하는 극예술연구회(이하 ‘극연’)는 약 7년의 활동기 동안 운영 방식을 동인제(1931.7.8-1932.12)로 시작하여 회원제(1933.1-1938.3)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조직의 구조는 사상 네 차례 이상 변경하였다. 특히 연출과 제작을 관할한 부처는 사업부(동인제 시기)에서 실천부(회원제 전반기)로 개정한 후에 다시 연출부(회원제 후반기)로 개편하는 도정을 거쳤다. 결과적으로, 극연은 회원제 후반기에 조직을 ‘총무국과 산하의 연출부, 문예부, 미술부, 경리부 및 산하의 반’의 구조로 개편하면서 공연 중심의 전문적 극단 체제를 수립하였다. 이와 함께 개인이 각 부서를 대변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각 부서를 대표하는 체제로 진입하였다. 그러나 연기 부문은 연출부 산하의 연기반으로 두어 당시까지 연기 체계가 미약한 실정을 노정하였다. 그 후 극연은 자금난 해소를 위해 영화부(1937.6-1938.3)를 추가로 특설하기도 했다(성명현(2022-1):117-118).
    극연은 사상 총 2회의 시연과 제3회부터 제17회까지 15회의 정기공연 및 2회의 임시공연(삼남수해구제공연, 연극경연대회)과 1회의 지방공연(인천)을 가졌다. 그 중 제1회 시연에서 ‘연출과 다른 연출자를 조력하는 직무의 무대감독’을 기용하여 연출자와 무대감독 편성 체제를 기초하였다. 이것은 연출사상 종래에 무대감독의 직능에서 연출의 영역이 분화된 시점을 가늠하는 데 있어서 준거적 의미가 있다(성명현(2022-1):126-129).
    극연 시기에 연출 부문은 ‘연출자, 연출보, 무대감독, 무대감독 조수, 프롬프터’의 구성(원) 체제를 이루었다. 무대미술 부문은 장치, 조명, 효과, 의상, 대․소도구 등의 제반 분야에서 구체적인 개인에게 구체적인 책임을 맡기는 분업 체제를 수립하였다. 극연의 연출진과 활동 내역을 공연 회차별로 정리한 ‘<표 1> 극연의 공연 목록과 관할 부서 및 연출진’을 분석한 결과, 극연 시기에 연출의 조력자들은 무대감독 또는 연출보 활동을 거쳐서 연출자로 데뷔하였다. 그리고 ‘<표 2> 극연의 무대미술 부문 관할 부서와 구성원’에 의하면, 외부의 실기 전문가를 영입하는 노력의 결과로 특히 장치와 조명 부문에서 해당 분야의 전공자와 숙련자가 전담하는 추세가 현저하였다(성명현(2022-1):130-141, 142-146). 그러나 제도상 연출 및 제작의 분업 및 전문 체제와 실무상 체계적 실천 사이에는 기실 적잖은 간극이 실재하였다. 극연 시기에 이러한 연출 및 제작 체제는 해방기까지 큰 변화 없이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성명현(2022-1):147, 149).
    극연 시기에 공연 활동은 ‘신극의 목표인 리얼리즘 극’, 즉 ‘조선(인)의 생활과 사상과 감정을 재현하며 비판하여 주는 창작극의 상연을 목표로’(유치진(1993):97, 김광섭(1933.2.2.):조선일보) 하여 단계적으로(동인제 시기: 새 종자 즉 서구 근대극을 우선 공연 ->회원제 초기: 번역극과 함께 창작극 공연의 병행 ->회원제 중·후기: 창작극 공연에 중심을 두는 방침) 추진되었다. 그 동안 상연을 추진한 작품은 40편이 넘었고, 그 중 실제로 공연된 작품은 약 31편이었으며, 그 중에 순수 창작극은 9편 정도였다(작품 목록과 산정 기준 성명현(2022-1):121, 142 <표 1>). .
    상임 연출자 홍해성과 유치진은 도쿄 체재기부터 두터운 교분을 나누었다. 그러나 연극 경험과 수학 경로 및 신극운동 방식에서 차이가 있었다. 홍해성은 1917년부터 ‘주오(中央)대학 법과생(1917-1921) ->도쿄조선고학생동우회 산하 극예술협회(1920-23) 회원으로 동우회순회연극단에서 조명희 작 <김영일의 사>의 무대감독 등을 담당(1921.봄-8.18) ->법학도에서 연극학도로 진도를 바꾸어 니혼(日本)대학 文科(1921년에 美學科로 신설되었다가 1924년 文學科 內 문학예술(학) 전공으로 개편) 통학 ->극단 쓰키지쇼게키죠(築地小劇場: 1924.5-1929.3)에서 배우로 활동(1924년 6월 제2회 공연-1929년 3월 극단의 해산때까지) ->쓰키지쇼게죠가 해산되자 잔류파가 모인 게키단 쓰키지쇼게키죠(劇團築地小劇場)에 가담 ->1930년 6월에 조선에 귀향’하는 경로를 거쳤다(관련 기사들 출처는 지면 여건상 생략, 유치진(1993):90-91, 95-99, 곽형덕(2007):5-7, 日本大學(http: //www.nihon-u.ac.jp/history/#chronology/)).
    그는 쓰키지쇼게키죠 시절에 오사나이 카오루, 히지카타 요시, 아오야마 스기사쿠(靑山杉作) 등 각기 다른 개성과 경향을 지닌 연출자들의 작품에서 다양한 배역을 맡으며 유수한 배우들과 한 무대에 섰다. (오사나이는 사실주의/자연주의 작품을 주로 연출한 데 비하여, 히지카타는 비사실주의 계열의 작품을 많이 선택했다면, 아오야마는 대체로 그 중간적인 작품을 상연하였다.) 또한 연극 제작과 연출에 관한 이론과 실제에 대해서도 수학하였다(오자사 요시오 저·명진숙·이혜정 역(2013):295, 341, 326, 서연호·이상우(편, 2005):393-401 <출연 연보>). 요컨대, 그는 일본 체재기 약 13년 중 10여 년 이상을 연극에 매진하면서 특히 연구극 중심의 신게키운동 노선에서 그들 식으로 체화된 신게키 양식을 수학하고 습득하였다.
    유치진은 1920년 16살의 나이로 일본 유학차 ‘도일(1920년 가을) ->도야마(豊山)중학 2학년에 편입-졸업(1921.4-1925) ->릿쿄(立敎)대학 예과(豫科) 진학(1926) ->영문과 입학(1927) ->방황기, 연극 이론서를 탐독하며 연극의 행동성에 매료, 연극의 실무적 부문에 대해 알기 위해 약 2년간 이념성이 강한 학구적 극단들 중 아마추어 대학생들의 극단 긴다이게키죠(近代劇場)과 아나키스트들만의 극단 가이호게치죠(解放劇場)에서 연기를 경험 ->학업에 복귀, 졸업 논문 <숀 오케이시 연구> 제출, 졸업(1931)’이란 수학 과정을 거쳤다. 그 동안 그는 연극은 사회와 인생을 표출할 수 있는 강한 무기라는 인식에서 현실 참여적 연극관을 형성하였다(유치진(1993):90-91, 65-74, 89-94).
    두 사람은 연출 유형도 서로 달랐다. 홍해성은 소위 ‘신게키 배우 출신의 연출자’로서 극연 시절(동인제 시기-회원제 초기)에 주로 번역극(<검찰관>(5막), <관대한 애인>(1막), <해전>(1막), <옥문>(1막), <기념제>(1막), <인형의 가>(3막), <홍발>(1막), <앵화원>(4막), 창작극은 유치진 작 <토막>(2막) 1편)을 연출하였다. 그는 연습 과정에서 미리 작성한 연출대본의 플랜에 따라서 수정이나 변경 없이 추진하는 방식을 지향하였다. 배우들과의 연기 연습에서는 등장인물의 내적 심리와 인물들 간의 상호 관계, 동작과 대사와 감정 등의 세세한 부분까지 일러주는 지도법을 활용하였다(성명현(2022-2).
    그러나 그의 연출 기법은 동인제 시기 시연기(1932)에 상연의 기조를 이룬 새 종자론의 논지, 즉 일본의 신게키(新劇)운동을 모범으로 하여 번역극 레퍼토리와 공연 형식 및 연극 자체까지 능동적인 모방과 복사를 지향한 ‘전면적 포괄적 이식주의’와 ‘축지식(築地式) 재이식주의’ 노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관련 기사들의 출처는 지면 여건상 생략, 노승희(2005):96-97, 167-172, 스가이 유키오 저·박세연 역(2005):28-29, 성명현(2022-2)). 그의 극연 시절은 연출자연극의 선진인 쓰키지쇼게키죠 식의 교본을 제시한 시기로 볼 수 있다.
    유치진은 ‘극작가 겸 연출자’ 내지 ‘자작·자연출자’로서 홍해성과 대조적인 갈래를 형성하였다. 그는 상임 연출을 맡은 회원제 중·후기에 총 상연 목록17, 8편(창작극 7편, 각색극 1편 또는 2편, 번안극 1편, 번역극 8편) 중 13, 4편(창작극 6편, 번안극 1편, 각색극 1편(<춘향전>(4막 9장)의 개작 <춘향전>(4막)을 포함하면 2편), 번역극 5편)의 연출을 맡았다. 그 중 <제사>, <자매>, <풍년기>와 <춘향전>은 <버드나무 선 동리의 풍경>(1막, 제5회 공연)과 같은 자작·자연출(自作自演出)’ 작품이었다. 그는 자작을 포함한 희곡의 취급과 연출에서 충실한 해석적 지향의 연출부터 희곡에서 자유로운 창조적 지향의 연출까지 폭넓은 창작 지평을 형성하였다. 그뿐 아니라 조선민속학회(원)나 조선인형극회(원) 등과 협력하면서 고전과 전통연희(극)의 계승과 현대적 부흥에 주지의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다(성명현(2022-1):131, 144, (2022-2)).
    그 예로, 그는 그간에 주창된 ‘민속극의 현대적 소화 내지 신극화’를 실천하는 차원에서 첫 실험작으로 고전 <춘향전>을 상연하였다. 그는 <춘향전>의 각색과 연출에서 ‘리얼리즘을 토대로 한 로맨티시즘 연극’이란 명제로 새로운 양식을 실험하였다. 공연은 송석하, 민영규 등의 의상, 소도구, 장치, 조명 등에 대한 고증적 작업을 거쳐서 ‘근대극 형식에 창과 무용의 조형적 미를 낭만적 요소로 가미한 형태’로 상연되었다. 극연 사상 <춘향전> 공연은 리얼리즘의 한계를 넘어서 대중성 있는 음악극까지 창작 지평을 넓히는 데 변곡점이자 시발점이 되었다(백현미(1997):154-157, 노승희(2005):145, 143-150, 성명현(2022-1):142, 144-145, (2022-3)).
    극연 시기에 연출자로서 유치진은 ‘입센형(型)의 사실주의 작품과 그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스런 연극적 형태의 작품’까지 새로운 장르적 갈래와 형식에 대한 실험성이 강했고 독자적인 해석적 연출과 창의적인 구상 및 창조적인 무대화 작업까지 숙련되지는 않았어도 유망한 역량을 드러냈다. 신극 단체 극연의 본격기와 마감기를 이끈 연출자 유치진의 활동상은 극연의 신극운동의 특성과 연출 지평 및 지형을 대변하는 의미가 있다(유치진(1937.1.21):조선일보, 관련 기사들의 출처는 지면 여건상 생략, 노승희(2005):116-117, 145-148).
    홍해성과 유치진은 연출의 직능과 무대화 작업 체계 및 연기 지도 면에서는 공통점을 가졌다. 그 중 연기 연습은 상임 연출자 홍해성이 기초한 연습 과정과 무대화 작업 방식의 연장선에서 상연 희곡과 배역이 결정되면 대본 독회, 동작과 표정 및 행동선 연습, 드레스 리허설, 무대 리허설 순으로 진행하였다. 연기 지도는 홍해성과 같이 유치진 역시 - 특히 초보 연기자들에 대해 - 움직임부터 대사의 높낮이까지 디테일하게 지도하는 방법을 활용하였다. 이러한 연출 방법과 연기 지도에 대해 배우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는데, 이러한 사실은 당시의 연출 인식을 일면 반영해준다(노승희(2005):122-129, 성명현(2022-1):146, (2022-3), 전일검(1936.4.25.):조선일보, 유치진(1937.3.19):조선일보).
    이상의 내용을 포함하여 본 연구 과제의 전체 고찰 성과는 최종적 결과물에서 총 5장으로 편성할 것이다. 제2장은 동우회순회연극단의 신극운동 중 공연 활동과 연출적 특성에 대한 연구이다. 제3장은 극단 토월회의 조직 구성력과 변화상에 대한 고찰 성과를 전제로 하여 공연 활동과 연출적 지향점에 초점을 둔다. 제4장은 극예술연구회의 운영 제도와 제작 체제 및 구성(원)에 대한 고찰과 공연 활동 및 연출적 지평에 관한 연구의 장이다. 이러한 목차 및 목표와 세부 목차에는 단체/극단의 연출 체제와 양상 및 인식의 사적(史的) 전개와 발전상의 단면을 반영할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동우회순회연극단-토월회-극연의 ‘신극(운동)’은 크게 보면 과도적인 가(假)신극 형태의 대중적 신극과 예술적 연구극(근대극/신극)의 자장 안에서 전개되었고 분화되었다. 그 중 토월회-박승희의 연출에서는 대중적 신극이 다수를 이루었고 그 가운데 악극의 일종인 장르도 창출되었다. 그에 비하여 극연-홍해성과 유치진 등의 연출 활동은 대개가 연구극의 범주에 속하였다. 한편, 연출자 박승희와 유치진은 모두 자작·자연출자로서 창작극 공연과 함께 전통연희의 복원 및 민속예능(극)과 고전의 현대화를 추구한 점에서 공통점을 지녔다.
    그러므로 최종적 결과물에서는 그들의 차이와 접점 내지 교차점을 드러내고 극연에 이르러 형성된 근대적 연출 체제와 양상의 골격과 현주소에 대해 상술할 것이다. 이를 통해 신극 연출사의 전체적 흐름과 맥락 및 특성까지 담아낼 수 있다. 또한 식민지 조선의 신극운동이 지닌 특수성, 신극의 이념과 실체 간의 양가성(성명현(2018):316, 363-367), 포스트콜로니얼 비평적 관점(성명현(2016-1):248-249)에 의거하여 연출자들 및 제작진의 식민지적 무의식이 녹아 있는 측면들(연습 및 제작 체계, 연기, 대사, 의상, 분장, 소품, 배역 등)에 대해 고찰한 내용을 적소에 첨부할 것이다.
  • 영문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not only to examine the modern directing system and aspect and the underlying driving force or the perception of directing, formed along with their operational and structural trends in 'particular historical realities' of colonial Chosun among the activities of Dongwoohoesunhoeyeongeukdan(1921.Spring-8.18), Towolhoe(1923-1931), and Geukyesulyeonguhoe(1931.7.8-1938.3)’ which revolve around the history of Shingeuk Movement, but also to figure out the current status and prospects for the directing history. Furthermore, it aims to read the various sides of their staging work and performances from a post-colonial critical point of view.
    The research method seeks interdisciplinary research taking the perspectives and methodologies of theatre studies, anthropology of art, and folklore, and in particular, three methods were mainly used. First, by citing the 'the method(ology) of historical record criticism' as the basis of the study, this study focused on the restoration and reconstruction of the relationship of historical facts based on historical records such as press records, literature data, testimonies, and memoirs at the time. Second, the scholarly collection of folk(play) materials for the 'modernized staging of classics' and 'staging of original play' at the time, inquiry investigations, and historical investigation on the origin and form, and historical facts such as field visits were examined in the light of a folkloristic method(ology). Third, based on the post-colonial critical point of view, it argued by borrowing the basic concepts and terminology of anthropologists Franz Boas's 'historical particularism' and Julian Steward's 'cultural ecology'.
    As a result of the research, the beginning for the systematic independence of Stage-Managers in the Shingeuk History in a large sense is traced back to ‘Troupe for New Theatre Yesungzoa(1916). In terms of the division of duties of Yesungzoa, artistic works were divided according to the director's function, and Yun, Baeknam became the first stage-manager in history. However, the independence of the directing field was some way off in that he was in charge of both playwriting and staging(Sung, Meungheyn(2021):16).
    ‘The Stage-manager Kim, Woojin’ from the ‘performance department(Geukyesulyeonguhoe)’ of Dongwoohoesunhoeyeongeukdan (hereinafter referred to as 'Yeongeukdan'), which was the prelude to the Shingeuk Movement in the early 1920s of Shingeuk history in a narrow sense, has ‘a utilitarian theatre view’ and ‘a view of stage-manager(director)-oriented interpretive directing’(Sung, Meungheyn(2018):348-351). However, the Yeongeukdan's practice relied on the assistance comparable to that of stage-manager of Shingeki actor Tomoda Kyosuke. He pursued a more natural and realistic acting style than conventional acting practices(Ohzasa Yoshio writing·Lee, Hyejeong translation(2006):69-71, Ohzasa Yoshio writing·Meung, Jinsuk·Lee, Hyejeong translation(2013):310, 288, 336). As a result, the transitional and hybrid 'early Shingeki' at the time in terms of acting, costumes, makeup, etc., namely 'modern Shingeki', which was strictly separated from the western modern theater, was imitated and transplanted(Sung, Meungheyn(2016-1):257, descriptions of ‘the Modern Shingeki’ in 254-258). Towolhoe-Bak, Seunghee, who led the first phase of the Shingeuk Movement in the 1920s, established the directing department and the literary arts department as independent ones from the initial stage, thereby laying an institutional foundation for the division of labor between playwrighting and directing, at least in a formal way(Sung, Meungheyn(2021):16). In addition, he opened ‘the era in which a stage manager directed, using the appellation ‘stage-manager’ at the Time of Chosun Theatre(1929.10-1930.2). The time of Towolhoe with the Shingeuk directing thought was a transitional period from a period in which an individual indicated each department of directing and production to a period of representation(「Chosun Theatre」advertising section of Chosunilbo:1929.11.7, 1929.11.4-1930.1.27, Noh, Seunghee(2005):89, Sung, Meungheyn(2017):235, 238, (2021):37).
    The stage-manager(director) Bak, Seunghee pursued original play performances while rejecting Sinpageuk style from the early stage while seeking the modernization and acceptance of classics and traditions. In particular, his taste for musical play(Akgeuk) was prominent as his directing extended the genre spectrum from a modern form of 'popular ‘Provisional Shingeuk’ to a modern form of Shingeuk, ranging from romantic to realistic theatre(Sung, Meungheyn(2021):21). From the beginning of Towolhoe, he pursued a technique of reproducing and describing vividly the life and emotions of Chosun people based on an interpretative conception that is faithful to theatre in directing. During the period of Towolhoe, he built up a realistic acting-oriented practice system and method with his actors. In terms of stage management, addition, he made a turning point from a flat pictorial background stage to a three-dimensional one with the oriental painter Woojeon Won appointed for stage management. In addition, he did historical works on traditional theatre and folklore(play), thereby systematizing his own historicism staging method(Sung, Meungheyn(2019-2).
    Towolhoe-Bak, Seunghee was criticized for his strange and poor directing and typical performances in both adaption and translation plays. On the other hand, in the case of original play and Akgeuk, he created the so-called 'Towolhoe-style modern drama' in the form of a 'significant period drama with the Chosun’s affective appraisals', depicting the life and sorrows of colonial Chosun. Among the evaluations of his directing, such criticisms as 'Bibimbap theatre script' and 'Edge path as a Shingeuk path' reflect the perception of directing that seeks Chosun-style Shingeuk(realism style), breaking away from the mixed hybridity(Sung, Meungheyn(2017):243-244, (2021):21, 27).
    Geukyesulyeonguhoe(hereinafter referred to as ‘Geukyeon’), representing the second period of the Shingeuk Movement in the 1930s, started with the coterie system(1931.7.8-1932.12), which shares the responsibilities and obligations by all members, in its operational scheme and then switched to a membership system(1933.1-1938.3), the organization structure was changed over four times. The department in charge of directing and production, in particular, went through a revision process from the Business department(during the period of coterie system) to the Practice department(during the mid period of membership system), then changed back to the Directing department(during the late period of membership system). The purpose of such changes was to equip with a professional theater group system and to perform the Shingeuk. The organization structure of operation in Geukyeon was established with ‘General affairs bureau and its sub-departments including Directing department, Literary department, Stage Arts department, and Accounting department(1936.7-1936.6). Moreover, each department had several sections. Under such a structural system, the ‘Movie Department (1937.6-1938.3)’ was newly established as a special case in order to address the financial pressures(Sung, Meungheyn(2022):117-118).
    Geukyeon introduced the ‘formation system of both stage-director and stage-management & -manager’ in the first demonstration of the coterie system period. This was a pioneering attempt that drives the division of labor in theater production together with securing the independence of directing. Afterward, the directing system of Geukyeon consisted of ‘stage-director, assistant stage-director, stage-manager & -management, stage-manager & -management assistant, and prompter’, and most of founding members and members typically took a path to debut as a stage-director after passing through stage-manager & -management or assistant stage-director. However, no boundary and authority of tasks have been established between stage-director and their assistants until the Geukyeon was dispersed. Accordingly, the division of their labors was not implemented and the assistants of a stage-director were just in a position to follow the instruction of a stage-director. In the case of stage production in Geukyeon, a division of labor system in which each individual takes responsibility in all domains such as devices, lighting, effects, costumes, and small and medium tools was established. In particular, as a result of efforts to recruit practical experts from outside in the device and lighting domains, a tendency of the ‘dedicated experts and skilled people’ was very prominent. It is, however, still questionable to what extent the collaboration system in each domain has been implemented and how much the effectiveness has been achieved(Sung, Meungheyn(2022):117-118).
    Geukyeon pursued performance activities step by step with the aim of realism theatre, the goal of Shingeuk, that is to say 'staging an original play that reproduces and criticizes the life, thought, and emotions of Chosun people'. Standing stage-director Hong, Haesung and Yu, Chijin had a significant difference in their theater experience, math path, and exercise method during their stay in Tokyo. While working as an actor in the Shingeki Truope Tsukiji Shogekijo, Hong Haesung studied and learned the Shingeki style embodied in their own way. In contrast, Yu, Chijin experienced acting in strongly ideological theater troupes, with a realistic and participatory theatre view that theatre is a strong weapon that can express society and life(Noh, Seunghee(2005):116, 167-172, Sung, Meungheyn(2022):126, Yu, Chijin(1993):90, 92-94).
    The two had different styles of directing. As a 'stage-director who used to be a Shingeki actor', Hong, Haesung mainly directed translation play during his Geukyeon years. He also directed without modification or change according to the plan of pre-established regie-book during his practice as a strict stage-director. In the acting practice with actors, he used a method of teaching the inner feelings of characters, the interrelationships between the characters, and even the details such as movements, lines, and emotions. However, his directing technique did not significantly deviate from the scope of the overall technical staging of theatre as an extension of the 'Tsukiji Style-oriented (Re-)Implanting Principle during the demonstration period(Sung, Meungheyn(2022-2), Noh, Seunghee(2005):116, 167-172). His Geukyeon years can be seen as the time when he provided the example of Tsukiji Shogekijo style that is the advancement of ‘stage-director’s theater’.
    Yu, Chijin is a sort of ‘self-playwriter·stage director’ who is a contrast to Hong, Haesung. In handling and staging of the playwriting, including his own playwriting, he expanded his creative horizons by experimenting with new genres, from interpretive directing true to the playwriting to creative directing free from the playwriting. He also worked with the ‘Chosun Folklore Society’ and the ‘Chosun Puppet Theater Society’ and made a concerted effort to discover and modernize Chosun's classics and traditional performances(Yu, Chijin(1937.1.21):Chosunilbo, Sung, Meungheyn(2022):114. 131). In Geukyeon, Yu, Chijin showed promising capabilities in his excellent interpretation of theatre, creative planning, and creative staging, even though he was not yet skilled. This can be regarded as the current status and prospects for directing in theatre represented by the stage-director Yu, Chijin who led the full-fledged phase and final stage of Geukyeon.
    Meanwhile, they had something in common in terms of directing skills, staging work system, and acting coach. In particular, acting practice was composed of script reading, movements and facial expressions, blocking practice, dress rehearsal, then stage rehearsal when theatre and its role are decided, as an extension of the practice process and the staging work method which the standing stage-director Hong, Haesung was based on(Hong, Haesung(1931.8.14-9.26):Dongahilbo, Kim, Goangseub(1932.5.14.):Chosunilbo, Shin, Kosong(1932.5.12.):Chosunilbo, Nah Ung(1932.5.11.):Chosugilbo Ko, Hyesan(1932.5.10.):Maeilshinbo). Hong, Haesung used the method of coaching every minute detail including lines, movements, and emotions of the characters at practice with the actors(Yu, Chijin(1937.3.19):Chosunilbo, Sung, Meungheyn(2022):146-147). Yu, Chijin also followed the detailed coaching from movement to the pitch of lines. The criticism that raised the question of guaranteeing the actor's creativity with respect to this directing method and attitude at the time indicates the aspect of the (directing) perception of acting(actor) as an autonomous creative work, as well as the critique of dictatorial directing(Yu, Chijin(1937.3.19):Chosunilbo, Jeon, Ilgeum(1936.4.25.):Chosunilbo, Sung, Meungheyn(2022):146-147).
    As the final result of this study, the content of this study is composed of a total of 5 chapters: Introduction (Chapter 1), Body (Chapter 2, Chapter 3, and Chapter 4), and Conclusion (Chapter 5). Chapter 2 is a study on the performance activities and directing characteristics of the Shingeuk Movement of Dongwoohoesunhoeyeongeukdan. Chapter 3 focuses on performance activities and directing purposes, based on the results of consideration of organizational composition and change of Towolhoe. Chapter 4 is a study on the operating system, production system, and composition (members) of Geukyesulyeonguhoe, as well as performance activities and directing prospects. This table of contents and goals reflect the development and progress of the system, aspect, and perception of the Shingeuk directing history.
    Also an investigation into the particularity of Shinguek Movement during the colonial Chosun, the ambivalence between the ideology and reality of Shingeuk from a post-colonial critical point of view(Sung, Meungheyn(2016-1):245, 266), the aspects (practice, production system, acting, lines, costumes, makeup, props, roles, etc.) where the colonial unconsciousness of the directors and producers is assimilated into, and the issue of post-truth will be attached in place.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일제 강점기 조선 신극운동사(新劇運動史)의 줄기를 이룬 ‘동우회순회연극단(1921.봄-8.18), 토월회(1923-1931), 극예술연구회(1931.7.8-1938.3)’의 활동상 중 식민지 조선의 ‘특수한 시대적 현실’에서 그들의 운영 구조적 추이와 함께 형성된 근대적 연출 체제와 양상 및 저변의 연출 인식에 대해 고찰하고 연출사적 지평과 지형을 파악하는데 목적이 있다. 나아가, 그들의 무대화 작업과 공연의 면면을 포스트콜로니얼 비평적 관점에서 읽어내기 하는데 목적이 있다. 연구 방법과 내용 구성은 연구 요약문란에서 기술한다. 광의의 신극사상 연출(자)의 체제적 독립의 시초는 ‘신극단 예성좌(新劇團 藝星座: 1916)’로 소급된다. 즉, 단장의 직능에서 예술적 작업이 분업되었고 윤백남이 사상 첫 무대감독이 되었다. 협의의 신극사상 신극운동의 서막을 연 동우회순회연극단(이하 연극단)의 공연부문(극예술협회 측, 이하 극협) 무대감독 김우진은 공리적 연극관과 무대감독 중심의 해석적 연출관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연극단의 연습은 신게키(新劇) 배우 도모다 쿄스케(友田恭助)의 무대감독에 버금가는 조력에 의존하였다. 그 결과로 노정된 연출적 특징들 중 여장(女裝)배우의 출연을 비롯하여 연기, 의상, 분장 등의 면면에서 과도기적이며 혼종적인 ‘초기 신게키’, 즉 서양의 근대극과 엄밀히 차연(差延)한 ‘근대적 신게키’를 모방·이식한 양태가 드러났다. 극단 토월회는 조선극장 시절(1929.10-1930.2)에 ‘연출(자)’라는 호칭을 표방하며 ‘연출자가 연출을 하는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연출부(원)와 문예부(원)가 극작과 연출을 병행하는 체제가 지속되었다. 토월회 시기는 개인이 연출과 제작의 각 부서를 대변하는 시기를 거쳐서 대표하는 시기로 넘어간 과도기였다. 극예술연구회(이하 극연)은 회원제 후반기(1936.7-1938.3)에 연출부를 독립 부서로 설치하면서 전문적 극단 체제를 수립하였다. 연출 부문은 ‘연출자, 연출보, 무대감독, 무대감독 조수, 프롬프터’로 구성되었다. 연출의 조력자들은 대체로 무대감독 또는 연출보 활동을 거쳐서 연출자로 데뷔하였다. 무대미술 부문 역시 제반 분야에서 분업 체제를 수립하였다. 특히 장치와 조명은 해당 분야의 전공자와 숙련자가 전담하는 추세를 이루었다. 그러나 제도상 연출과 제작의 분업 및 전문 체제와 실무상 체계적 실천 사이에 적잖은 간극이 있었다. 토월회의 ‘무대감독-연출자(가) 박승희’의 극작과 연출에서는 낭만주의 극부터 사실주의 극까지 망라하여 근대적 형식의 대중적 ‘가(假)신극’부터 근대극 양식의 신극까지 장르적 스펙트럼을 확장한 가운데 음악극 기호가 두드러졌다. 그는 희곡에 충실한 지향의 해석적 구상을 기초로 재현하는 연출 기법을 활용하였다. 그 중 창작(악)극에서 조선(인)의 식민 현실과 애환을 그린 ‘조선 정조를 담은 의미 심장의 시대극’으로 ‘토월회식 근대극’을 창출하였다. 무대 연출은 동양화가 원우전과 함께 사상 평면적인 회화적 배경무대에서 입체적으로 건축된 장치로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또한 전통연희와 민속(극)의 고증적 작업에 기반하여 나름의 역사주의 무대 상연 방식을 체계화하였다. 당시의 평가들 중 ‘부빔밥 극본’, ‘신극적 진로로써는 아도(阿道)’ 등의 비판은 혼융된 혼종성과 잡종성의 극형식에서 벗어나 조선적 신극(사실주의 극형식)을 촉구하는 연출 인식을 반영한다. 극연은 ‘조선(인)의 생활과 사상과 감정을 재현하며 비판하여 주는 창작극 상연을 목표로’ 추진하였다. 상임 ‘연출자(가) 홍해성과 유치진’은 연극 경험과 수학 경로 및 운동 방식에서 서로 차이를 가졌다. 홍해성은 극단 쓰키지쇼게키죠에서 배우로 활동하며 연구적 신게키 양식을 습득한 반면, 유치진은 보다 현실 참여적 연극관으로 이념성이 강한 극단들에서 연기를 경험하였다. 두 사람은 연출 유형도 달랐다. 홍해성은 ‘신게키 배우 출신의 연출자’로 극연 시절에 주로 번역극을 연출하였다. 그는 연출대본의 플랜에 따라 수정이나 변경 없이 연습하고 상연하는 주의였다. 그러나 연출 방식은 시연기의 ‘축지식(築地式) (재)이식주의’ 노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유치진은 ‘극작가 겸 연출자’로서 창작극 상연에 방점을 두었다. 그는 자작을 비롯한 희곡의 탁월한 해석력과 창의적인 구상 및 창조적인 무대화 작업까지 숙련되지는 않았어도 유망한 역량을 발휘하였다. 또한 연극 유산의 보존과 신극운동의 견지에서 고전과 민속극의 그 현대적 부흥을 위해 관심과 실천 노력을 기울였다. 이상은 극연의 본격기와 마감기를 이끈 연출자 유치진의 창작 활동을 통해 대변되는 극연의 신극운동의 특성이자 연출 지평이며 인식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 과제에 대한 고찰 성과는 최종적으로 총 5장으로 편성하여 논문 또는 저서로 발표하고자 한다. 그간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활용 계획 및 기대 효과에 대해 포괄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본 연구는 기존의 연구사와 달리 동우회순회연극단의 공연부문(극협 측)를 신극 상연의 주체로 보고 연출사 연구의 출발점에 두었다. 그 결과로 신극 연구사에서 간과되거나 오인된 부분을 밝히고 연출 활동의 배경에 자리한 공연 기획과 실천상의 공백을 채우는 성과를 거두었다. 본 연구는 일제 강점기에 악극의 시원과 토월회식 근대극 간의 영향 관계를 실증적인 문헌 자료에 기반하여 논구하였다. 그 성과는 근대 악극사의 기원과 갈래 등 복잡한 층위의 문제들을 정리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 또한 연출자 유치진에 대한 고찰이 미진한 현 시점에 그의 연출 방법과 활동 지평을 조명한 연구 성과는 학문적 지식의 증대에 기여할 수 있다.
    둘째, 그 동안 신극 연출에 관한 연구사에서는 1930년부터 활동한 홍해성이 한국연극사상 최초의 근대적 연출가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본 연구는 그에 앞서 연출 작업을 담당한 신극운동가 박승희, 박진 등의 연출적 행위부터 창의적 구상과 창조적 연출의 면까지 그 유형과 특징들에 대해 논구하여, 이를 통해 연출사의 연한을 확장하고 재구성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비전문적이며 대중 흥행에 치우친 연출자들로 평가된 박승희와 박진 및 관심이 적었던 유치진의 연출 작업과 방법론에 대해 심도 있게 조명한 연구 성과는 현대 연출가를 포함한 공연 현장의 활동가들에게 새로운 정보와 이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오늘날 한국연극 연구사에서 연극학 및 공연학적 접근과 문화론적 논의의 장은 좁게 형성된 실정이다. 그러나 본 연구는 일제 강점기 신극 연출사에 대해 연극-예술인류학 및 민속학의 학제적 접근 방식을 활용한 연구로 기존의 연구 성과에 차별화된 시각과 이해를 더하고 한국연극사와 -연출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연구 성과는 한국연극에 대한 관심과 논의의 폭을 확대시키고, 더불어 대학의 연극과 민속예능 및 예술문화 분야의 수업 자료로도 폭넓게 활용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후속 연구를 위한 토대를 넓히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넷째, 본 연구에서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 말살·훼손된 전통연희(극)와 외래의 근대적 극형식 및 근대극 형태가 당시의 환경에서 재발견된 양상에 대해 조명한 내용은 학생들의 한국 근대 연극사와 연출사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증진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다섯째, 본 연구는 연극문화사적 측면에서 일제 강점기 신극 연출자(가)들의 실험과 도전 정신을 새롭게 조망하는 연구로, 넓게는 한국연극사와 문화사의 정체성을 밝히는 노력의 일환에 기여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오늘날 해외 학계에서 근대 한국의 공연예술(사)에 대한 지식과 정보는 뒤져있는 형편이다. 그 가운데 본 연구가 지닌 이상의 사회적 기여도는 대외적으로 한국학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 색인어
  • 신극 연출사, 연출자 지배의 시대, 도쿄조선고학생동우회, 도쿄조선고학생동우회 산하 극예술협회, 동우회순회연극단, 아마추어 무대감독 김우진, 연출자 중심의 해석적 연출관, 무대감독-연출자(가) 박승희, 목적 연출, 신파양식 배격, 사실주의적 무대, 역사적 사실주의 무대 지향성, 전통연희의 수용과 개량, 고전의 현대화 상연, 창의적 연출, 민속학적 조사, 토월회식 근대극, 대중적 신극, 가(假)신극, 근대 악극 유형, 극예술연구회 운영구조, 조선민속학회 창립 회원들, 연출자와 무대감독 체제, 연극 제작의 분업화, 무대미술 부문의 전문가 전담 추세, 연출자 홍해성, 연구극, 새 종자(론), 번역극 수용과 형식 복사, 희곡의 전사적(轉寫的) 상연화, 축지식(築地式) (재)이식주의, 세세한 연기 지도법, 연출자 유치진, 창작극 진흥, 고전과 민속극의 신극화, 민속학적 고증, 희곡의 창의적 구상, 창조적 연출, 실험성, 근대적 연출 지평과 지형, 역사적 특수주의, 문화생태학, 역사주의 사료비판, 포스트콜로니얼 비평, 지향성 흉내내기, 양가성, 혼종성, 식민지적 (무)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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