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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 상세정보

로메오 카스텔루치 작품에서의 '담론적' 연출
Mise en scene discursive des pieces de Romeo Castellucci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시간강사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7S1A5B5A07062260
선정년도 2017 년
연구기간 1 년 (2017년 09월 01일 ~ 2018년 08월 31일)
연구책임자 하형주
연구수행기관 청운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2011년부터 우리 연극이론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 하에 이루어졌었던 포스트모던 연극에 대한 반성으로서 단순히 ‘전시적’이거나 “대안없는 해체”로 향하는 연극텍스트(공연, 희곡)들에 대한 비판이 이루어졌다. 파트리스 파비스는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미학』에 실려있는 자신의 글, 「포스트드라마 연극에 관한 고찰들」에서. 한스-티스 레만의 “포스트드라마 연극”은 포스트모던 연극이론을 그 개념적 토대를 형성하고 있기에, 포스트모던 연극이 반성되는 지금, 포스트드라마 연극에 대한 반성 역시 요구된다고 하면서 포스트모던 연극에 대한 반성적 사유를 촉구하였다. 하지만, 우리 연극계에서는 포스트모던 연극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그 대안에 대한 이론적 연구는 요원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포스트모던 연극의 대표적 연출가로서 90년대 후반까지 자신의 작품에서 오브제의 현전성을 드러내는데 몰두하였지만 포스트모던 예술의 한계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통해 오브제를 너머 ‘새로운’ 연출 작업을 하고 있는 이탈리아 연출가 로메오 카스텔루치(Romeo Castellucci, 1960~ )의 작품을 통해 ‘새로운 글쓰기’, 이미지의 ‘조작’을 통한 ‘담론적’ 글쓰기를 통해 그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포스트모던 연극에서 부각된 “재현의 불가능성”이라는 주장은 모든 합의 가능성을 철저히 제거하며 형상적인 것, 재현적인 것은 어느 것이든 거부하면서 모든 종류의 유사성을 배제시켰다. 그래서 포스트모던 연극/예술은 스스로를 오브제의 특성들이 초래하는 단순한 귀결, 단어들, 오브제들의 현전이 지니는 물성만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미지의 종언을 애도하고 이미지가 유래하는 다른 곳을 직접적으로 증언하는 이타성(l’altérité)의 부재를 한탄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 1940~ )는 자신의 저서, 『이미지의 운명 Le destin des Images』에서, 이미지의 종언을 애도하고 이미지가 유래하는 다른 곳을 직접적으로 증언하는 이타성의 사라짐을 한탄하는 이들은 자기동일적이어야 하는 재현적 이미지 구성을 예술의 고유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지적한다.(J. Rancière, Le destin des Images, p.17) 따라서 이 철학자는 사람들이 애도하는 사라진 ‘이타성’을 더 이상 이미지의 ‘기원’으로서가 아니라 이미지의 구성 자체에 관여하는 예술가의 ‘조작(l’opération)’으로 설명한다. 이 조작은 예술작품이 단순히 던져진 ‘전시’의 상태에 머무르거나 혹은 우연에 의해 작동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형태들을 전시하는 표면과 말을 기입하는 표면 사이의 관계”(J. Rancière, ibid., p.91)를 만들어내며 어떤 것을 예술로서 간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21세기 연극예술이 요구하는 ‘이타성’은 물질적 생산 양식 자체로부터 시작해 이미지의 시뮬라크르와의 구분을 가능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예술가에 의해 행해진 이 ‘이타성’은 볼 수 있는 것(le visible)과 그 의미작용을 묶기도 하고 분리시키기도 하는 작용으로 기대를 낳고 어기는 조작이다. 바로 이 관점은 본 연구에서 로메오 카스텔루치의 연출 작업이 가지는 새로운 글쓰기로서 ‘담론적 연출’을 가능하게 하는 지점이다.
    이러한 관점과 함께, 2000년대 이후 그는 포스트모던 연극/예술의 한계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통해, 오브제를 너머 ‘새로운’ 연출 작업, 즉 이미지의 ‘담론적’ 글쓰기를 무대 위에서 실천하고 있는 연출가, 로메오 카스텔루치의 작품들, <비극적 형식의 내적 자동생산 Tragedia Endogonidia, #6>(2003), <봄의 축제 Le Sacre du Printemps>(2015) 그리고 <신의 아들 얼굴의 컨셉에 관하여 Sur le concept du visage du fils de Dieu>(2013)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전시된 연극’이나 또는 ‘대안없는 해체’로부터 포스트모던 연극의 한계를 극복하며 이미지의 ‘조작’을 통해 ‘담론적 글쓰기’를 현대 연극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는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는데 본 연구의 목표가 있다.
  • 기대효과
  • 본 연구, 이미지 예술의 ‘담론적’ 연출을 통해,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 1940~ )의 사유에 기대어, 연극이 단순히 사물들의 물질성에 머무르며, 모든 종류의 유사성을 배제하지 않음을 이해할 것이다. 또한 랑시에르는 사람들이 애도하는 사라진 ‘이타성’을 더 이상 이미지의 ‘기원’으로서가 아니라 이미지의 구성 자체에 관여하는 예술가의 ‘조작(l’opération)’으로 설명한다. 그래서 예술가가 행하는 이 이미지들의 관계의 ‘조작’은 작품이 드러내고자 하는 ‘이타성’으로서 이 이타성은 볼 수 있는 것(le visible)과 그 의미작용을 묶기도 하고 분리시키기도 하는 작용으로 기대를 낳고 어기는 조작으로서 ‘담론적’ 연출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에서 다루고자 하는 이미지 예술의 담론적 연출은 포스트모던 연극의 ‘전시된 연극’ “대안없는 해체”에 대한 대안으로서 우리 연극계의 새로운 글쓰기로 미학적 지평을 확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뿐만 아니라, 이미 앞서 새로운 글쓰기의 작업을 하고 있는 많은 예술가(작가/연출가)들의 예술작품들을 이해하는데 기여하며 우리 연극/예술계의 미학적 지평을 확장시킬 것이라 기대된다. 또한, 본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던 로메오 카스텔루치의 작품들, <신의 아들 얼굴의 컨셉에 관하여 Sur le concept du visage du fils de Dieu>, <봄의 축제 Le Sacre du Printemps> 그리고 <비극적 형식의 내적 자동생산 Tragedia endogonidia>의 연출미학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며, 그의 작업에 대한 많은 이해와 학문적 연구를 촉발시키며 우리연극 현장에 다양한 예술활동의 지평을 확장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 연구요약
  • 본 연구, 이미지 예술의 ‘담론적 연출’의 첫 번째 단계는 랑시에르에의 사유에 기대어 반-재현이 결코 유사성을 배제하지 않음을 이해하고, 이미지 예술의 개념과 ‘이타성’으로서의 예술가의 ‘조작’을 고찰하고자 한다. 랑시에르는 재현적 체제와의 단절이 의미하는 것이 “고대의 전사들 대신에 흰 사각형이나 검은 사각형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포스트모던 예술에서 주창된 “재현불가능성”은 모든 형상적인 것, 재현적인 것을 거부하면서 모든 종류의 유사성을 배제시켰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미지의 종언을 애도하고 이미지가 유래하는 다른 곳을 직접적으로 증언하는 이타성의 부재를 한탄한다. 랑시에르는 이미지의 종언을 단언하는 이들은 자기동일적이어야 하는 재현적 이미지 구성을 예술의 고유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이 철학자에 의하면, "이미지의 종언에 대한 문제는 반-재현을 주장하던 모던 예술을 반-모방적인 운명으로, 비-형상으로 단순하게 이해하면서 야기된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미지는 더 이상 생각이나 감정을 코드화한 것이 아니며, 산출하는 것과 산출되는 것 사이의 무매개적 관계를 위해 단순한 ‘직접적인 반영을 해고하는’ 유사성이다. 이미지는, 랑시에르의 표현으로 “사물 자체가 말하고 침묵하는 방식”이다. 이 “말못하는 이미지”는 ‘사물의 신체에 직접적으로 기입된 사물의 의미작용’이며, 또한 아무런 의미를 드러내지 않는 이미지의 “집요한 무언이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물질적 생산과 동일한 방식으로 출발해서 참된 이미지를 자신의 시뮬라크르와 구별하고 싶어하는 현대의 주장 이다. 이 관점에서, 랑시에르는 사람들이 애도하는 사라진 ‘이타성’을 더 이상 이미지의 ‘기원’ 로서가 아니라 이미지의 구성 자체에 관여하는 예술가의 ‘조작(l’opération)’으로 설명한다. 이 조작은 예술작품이 단순히 던져진 ‘전시’의 상태에 머무르거나 혹은 우연에 의해 작동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형태들을 전시하는 표면과 말을 기입하는 표면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내며 어떤 것을 예술로서 간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가에 의해 행해진 이 ‘조작’은 '볼 수 있는 것'과 그 의미작용을 묶기도 하고 분리시키기도 하는 작용으로 기대를 낳고 어기는 조작이다. 바로 이 지점이 로메오 카스텔루치의 연출 작업이 가지는 새로운 글쓰기로서 ‘담론적 연출’을 가능하게 하는 지점이다.
    두 번째 단계에서 로메오 카스텔루치의 예술형식과 강렬한 연극개념을 앙토넹 아르토의 ‘잔혹극’이론과의 관계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이는 단순히 아르토가 연극만의 고유한 언어를 회복하고자 말과 언어를 배제한 것처럼, 카스텔루치가 자신의 급진적이고 격앙된 공연에서 이미지와 소리를 위해 텍스트를 삭제한다는 점, 혹은 그가 공연 창작시 텍스트가 차지하는 부분이 신체들의 부분에 비해 약화되도록 노력하며, 이를 위해 시각적, 소리/음향적, 그리고 후각적인 좋은 방법들을 발견하고자 애쓴다는 단순 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다. 이는 카스텔루치의 연출 미학에서 드러나는 ‘잔혹성’이 다른 이미지와의 관계 안에서 가지는 파토스적 충돌을 아르토의 잔혹극 이론을 벗어나 설명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르토가 자신의 책, Théâ̂tre et son double에서 잔혹성은 “잠자고 있는 감각을 뒤흔들어 깨우고, 무의식을 해방시키며 [...] 한데 모인 집단에게 이해하기 힘든 영웅적 태도를 받아들이도록 한다”고 언급한다. 이 관점은 카스텔루치 작품에서도 명백히 드러나는데, 그는 작품에서 잔혹한 이미지들, 그리고 거칠은 음향들의 피륙을 통해 고통받고 상처입고 기만당하고 있는 인간성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연출가는, 사회가 반응하게 하기위해 연극은 잔혹함을 창조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를 통해 어떤 순수한 사유를 환기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카스텔루치는 연극경험에 대한 목표가 관객을 무관심하게 두지 않고 이들이 반응하게 하기 위해 잔혹함을 창조한다는 점에서 이 연출가에게 끼친 아르토의 영향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의 세 번째 단계에서, 포스트모던 연극의 오브제의 현전성에 몰두되었던 작업에서 벗어나 새로운 글쓰기를 행하는 카스텔루치의 작품들을 살펴보면서, 이미지 예술의 특징과 이들 이미지들에게 가하는 예술가의 ‘조작’을 그리고 새로운 글쓰기로서의 그의 ‘담론적’ 연출이 어떻게 구체화되어지는지 고찰하고자 한다.
    이 관점에서 본 연구는 포스트모던 연극 이후 대안없는 해체로 방향성을 상실한 우리 연극계에 새로운 글쓰기로서 ‘담론적 글쓰기’를 통해 미학적 지평을 제시하고자 하며, 또한 카스텔루치의 작품에 대한 이해를 통해 우리 연극계에 예술적 담론을 확장시킬 것이라 기대한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현재 우리 연극계에서는 포스트모던 연극에 대한 비판적 논의보다는, 오히려 포스트모던 예술로서의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 대한 인식과 함께, 그럼에도 다른 한편에서는 이미 포스트모던 연극/예술의 한계를 너머 작업하고 있는 연출가들의 작업들을 생각하며, 본 논문에서는 한국 연극계의 다가온 혹은 곧 다가올 과제로 포스트모던 연극에 대한 성찰로서 대안을 제시하는 ‘담론적’ 글쓰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하지만, 이 ‘담론적’ 글쓰기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 메시지를 전달하며 관객을 선동하고자 하는 글쓰기로서가 아니다. 이는 오브제들의 현전성에 머무르거나 작품을 우연적 요소에 의해 작동되게 하면서 ‘전시된’ 연극에 머무르게 했었던 포스트모던 예술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연극예술의 가능성을 고찰하기 위해서이다.
    이를 위해, 필자는 포스트모던 예술의 한계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행하면서 21세기 새로운 연극예술을 행하고 있는 로메오 카스텔루치(Romeo Castellucci, 1960~ )의 작품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이탈리아 연출가는 1990년대 후반까지 자신의 작품에서 오브제의 현전성(물질성)을 드러내는데 몰두하였던 포스트모던 연극의 대표적 연출가였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카스텔루치 작품의 변화가 행해지는데, 이 이탈리아 연출가는 단순히 오브제들의 현전이 지니는 물질성만을 강조하거나 전시된 연극에 머무르게 했었던 포스트모던 연극예술의 한계를 너머 무대 위에서 이미지를 통한 새로운 ‘담론적’ 글쓰기를 제시하고 있다. 이런 변화된 관점은 카스텔루치 스스로 ‘연극 공간은 결코 피해자와 피의자가 동등하게 말하는 법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더욱 명백해진다.
    그리고 카스텔루치의 몽타주를 통한 이 새로운 글쓰기의 이론적 근거를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 1940~ )의 사유에 기대어 살펴보고자 한다. 랑시에르는 포스트모던 예술의 이타성(l’altérité)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이들에게 이타성으로서의 예술가의 ‘조작(l’opération)’을 제시한다. 그래서, 본 연구는 아직까지 한국 연극계에서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던 로메오 카스텔루치의 연출미학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며 그의 작업에 대한 많은 이해와 학문적 연구를 촉발시키며 우리연극 현장에 다양한 연출작업의 미학적 지평을 확장하고자 한다.
  • 영문
  • Nowadays, in our Korean theatre fields, various post-modern experiments have been executed, but there was not so much theoretical considerations about the post-modern practices in both criticism and scholarship. With this critical background and my own participation as a spectator in many of those post-modern performances of some Korean directors done beyond the boundary of the post-modern theatre/arts, in this paper, I examine ‘a discursive writing’ as a critical tool for the theoretical discussions undercurrent or coming in the future of Korean theatre. The purpose of the discursive writing does not lie in delivering certain artistic messages and propagandas but in illuminating the possibility of ‘new’ theatre arts over the limits of the post-modern arts, which have been accused for staying as the arts of presence of objects or the ‘displayed’ theatre being operated just by a chance.
    In order to fulfill the purpose of this paper, first, I look at the artistic achievements of Romeo Castellucci, who has been trying to overcome the limits of the post-modern arts with his own unceasing reflection on the arts. By the end of 1990’s, as a director, Castellucci represented the post-modern arts, delving into the issue of the presence(materiality) of objects and a displayed theatre. Meanwhile, after 2000’s, a change transpired in the arctic career of Castellucci, who challenged the limts of the post-modern arts and began to suggest a new discursive writing through the images created on the stage. His transformation in artistic viewpoints can be highlighted in his assertion that metaphorically speaking theatrical space is not a court offering the same legal rights to both the accused and the plaintiff.
    Second, for the sake of the purpose of this paper, I discuss the critical thoughts of Jacques Rancière as the theoretical bases of this new writing done through Castellucci’s works on theatrical montages. Rancière presents the artistic operation of an artist as the possible altruism of the post-modern arts, which have sometimes been accused for their self-indulgence. Therefore, in this paper, I deal with the aesthetic aspects of Castellucci’s directing arts which have been rarely investigated in Korea. Through this paper, by providing the theoretical bases for Castelluci’s artistic work, I hope that my research can help provoking thoughts among people interested in Castellucci’s direcing aethtetics and broaden the aesthetic horizon of various directing works in our Korean theatre field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현재 우리 연극계에서는 포스트모던 연극에 대한 비판적 논의보다는, 오히려 포스트모던 예술로서의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 대한 인식과 함께, 그럼에도 다른 한편에서는 이미 포스트모던 연극/예술의 한계를 너머 작업하고 있는 연출가들의 작업들을 생각하며, 본 논문에서는 한국 연극계의 다가온 혹은 곧 다가올 과제로 포스트모던 연극에 대한 성찰로서 대안을 제시하는 ‘담론적’ 글쓰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하지만, 이 ‘담론적’ 글쓰기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 메시지를 전달하며 관객을 선동하고자 하는 글쓰기로서가 아니다. 이는 오브제들의 현전성에 머무르거나 작품을 우연적 요소에 의해 작동되게 하면서 ‘전시된’ 연극에 머무르게 했었던 포스트모던 예술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연극예술의 가능성을 고찰하기 위해서이다.
    이를 위해, 필자는 포스트모던 예술의 한계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행하면서 21세기 새로운 연극예술을 행하고 있는 로메오 카스텔루치(Romeo Castellucci, 1960~ )의 작품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이탈리아 연출가는 1990년대 후반까지 자신의 작품에서 오브제의 현전성(물질성)을 드러내는데 몰두하였던 포스트모던 연극의 대표적 연출가였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카스텔루치 작품의 변화가 행해지는데, 이 이탈리아 연출가는 단순히 오브제들의 현전이 지니는 물질성만을 강조하거나 전시된 연극에 머무르게 했었던 포스트모던 연극예술의 한계를 너머 무대 위에서 이미지를 통한 새로운 ‘담론적’ 글쓰기를 제시하고 있다. 이런 변화된 관점은 카스텔루치 스스로 ‘연극 공간은 결코 피해자와 피의자가 동등하게 말하는 법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더욱 명백해진다.
    그리고 카스텔루치의 몽타주를 통한 이 새로운 글쓰기의 이론적 근거를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 1940~ )의 사유에 기대어 살펴보고자 한다. 랑시에르는 포스트모던 예술의 이타성(l’altérité)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이들에게 이타성으로서의 예술가의 ‘조작(l’opération)’을 제시한다. 그래서, 본 연구는 아직까지 한국 연극계에서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던 로메오 카스텔루치의 연출미학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며 그의 작업에 대한 많은 이해와 학문적 연구를 촉발시키며 우리연극 현장에 다양한 연출작업의 미학적 지평을 확장하고자 한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포스트모던 예술에서 부각된 “재현의 불가능성”이라는 주장은 모든 합의 가능성을 철저히 제거하며 형상적인 것, 재현적인 것은 어느 것이든 거부하면서 모든 종류의 유사성을 배제시켰다. 그래서 포스트모던 예술은 스스로를 오브제의 특성들이 초래하는 단순한 귀결로 제시하였다. 이 관점 하에서, 글쓰기는 단어들, 오브제들의 현전이 지니는 물성만을 강조하고, 우연적 요소에 의해서 작동되면서 등가적인 사태들의 무의미로서 어떤 것도 읽혀질 수 없게 하며 ‘전시된 연극’에 머무르고 있는 한계를 지닌다. 이렇게 포스트모던 연극/예술이 사물들의 물질성에 머무르며, 모든 종류의 유사성을 배제하면서, 사람들은 이미지의 종언을 애도하고 이미지가 유래하는 다른 곳을 직접적으로 증언하는 이타성(l’altérité)의 부재를 한탄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 1940~ )는 결코 모든 유사성이 배제되지 않았음을 설명한다. 또한 이 철학자는 사람들이 애도하는 사라진 ‘이타성’을 더 이상 이미지의 기원으로서가 아니라 이미지의 구성 자체에 관여하는 예술가의 ‘조작(l’opération)’으로 설명한다. 그래서 예술가가 행하는 이 이미지들의 관계의 ‘조작’은 작품이 드러내고자 하는 ‘이타성’으로서 이 이타성은 볼 수 있는 것(le visible)과 그 의미작용을 묶기도 하고 분리시키기도 하는 작용으로 기대를 낳고 어기는 조작으로서 ‘담론적’ 연출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 예술은 한편으론 유사성을 창출해내는 기계적인 것으로부터 자신의 조작을 분리시키는 작업을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어떤 다른’ 유사성을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예술이 순수하게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과 함께, 이미지의 구성 자체에 관여하는 예술가의 ‘조작’은 작품이 드러내고자 하는 ‘이타성’임을 철학자 랑시에르의 사유에 기대어 이해한다.
    본 연구에서 이미지 예술의 ‘담론적’ 연출은 포스트모던 연극의 ‘전시된 연극’ 대안없는 해체에 대한 대안으로서 우리 연극계의 새로운 글쓰기로 미학적 지평을 확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뿐만 아니라, 이미 앞서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많은 예술가(작가/연출가)들의 예술작품들을 이해하는데 기여하며 우리 연극/예술계의 미학적 지평을 확장시킬 것이라 기대된다. 또한 본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던 로메오 카스텔루치의 작품들, <신의 아들 얼굴의 컨셉에 관하여 Sur le concept du visage du fils de Dieu>, <봄의 축제 Le Sacre du Printemps> 그리고 <비극적 형식의 내적 자동생산 Tragedia endogonidia>의 연출미학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며, 그의 작업에 대한 많은 이해와 학문적 연구를 촉발시키며 우리연극 현장에 다양한 예술활동의 지평을 확장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 색인어
  • 로메오 카스텔루치, 자크 랑시에르, 이미지, 조작, 이타성, 잔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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