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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경매가 예술가와 예술작품에 미치는 영향 - 밀레의 「만종」을 중심으로 -
The influence of art auction on artists and their works : The case of Millet’s The Angelus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시간강사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7S1A5B5A07063789
선정년도 2017 년
연구기간 1 년 (2017년 09월 01일 ~ 2018년 08월 31일)
연구책임자 안성은
연구수행기관 성신여자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예술작품의 재평가에는 무엇보다도 새로운 시각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본 연구는 미술경매를 통하여 19세기 프랑스 화가 장-프랑수와 밀레Jean-François Millet(1814-1875)의 대표작 「만종L’Angélus」을 동시대의 시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만종」은 1889년 경매로 세계적인 명성을 이루었다. 따라서 본 연구의 목표는 밀레와 만종의 평가에 있어서 1889년 미술경매의 영향을 알아보는 것이다.
    현재 경매시장은 국가 간의 문화예술 경쟁의 전쟁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예술시장의 선점이 국가적 위상을 나타내는 척도가 되고 있다. 이러한 구도는 19세기 「만종」의 경매에서도 이미 나타났다. 1889년 경매에서 경합을 벌였던 미국과 프랑스 그리고 막강한 자본력의 미국에 대항하여 「만종」의 유출을 막으려했던 프랑스 국내외 미술애호가들의 공조는 유럽연합이 형성된 21세기의 현 상황을 상기시킨다. 본 연구는 1889년 「만종」의 경매를 통하여 드러난 국가 간의 문화 경쟁의 구도를 분석하면서, 경매가 예술작품의 가치 평가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고, 예술시장이 나아갈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한다.
    예술작품의 진정한 평가는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의 시각에서 이루어지며, 명화는 시대를 초월하여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본 연구에서는 「만종」을 동시대인들의 관점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작품을 이해하고 평가한다.「만종」은 국전 출품작이 아니라 밀레 생전에는 대중이나 미술 비평가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였고 이 작품에 대한 언급조차 찾기 어려웠지만, 1889년 경매는 밀레와 「만종」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들이 출판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밀레와 「만종」에 대한 다각적이고 심도 있는 연구가 될 것이다.
  • 기대효과
  •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과 창조성이 강조되면서 국내의 정규교육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시민교육의 일환으로 공공기관이나 사설기관에서도 프랑스 문화예술 관련 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밀레는 위인전으로 출판될 정도로 예술적으로나 교육적으로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프랑스 화가이고, 그의 대표작 「만종」은 미술, 종교, 철학, 문학 등 각 분야에서 다양한 문화콘텐츠 개발의 원천으로 활용될 수 있다.
    본 연구는 경매를 통해 예술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미술, 경영, 언론 등 다양한 분야와 접목된 학제간의 연구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미술과 문화, 미술과 문학, 예술과 경영 등의 분야에 흥미로운 연구 방향을 제시한다. 또한 19세기에 이미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경매에 임하며 주요한 세계적인 문화예술품을 확보한 미국 미술연맹의 장점과 단점을 살펴보고, 이에 맞서서 자국의 예술작품을 보호하기 위한 유럽 미술애호가들의 전통적인 자세를 고찰해보면서, 문화예술의 지원방식을 개인적, 사회적 그리고 국가적 측면에서 다각적으로 분석하여 바람직한 문화예술지원의 방향을 모색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밀레 연구에 있어서 1889년 「만종」의 경매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분석은 미비하다. 미술사학자들이 간혹 「만종」의 가치에 대해 논할 때 경매의 낙찰가를 언급하기는 하지만, 제라르 모니에가 지적하는 것처럼 「만종」을 미국에 양도했던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듯, 프랑스의 문화적 자부심을 상하게 만든 이 경매에 관한 흥미로운 일화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다. 따라서 철저한 고증을 통한 1889년 「만종」의 경매에 대한 연구는 밀레와 그의 작품들을 재평가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지표를 제공할 것이다.
  • 연구요약
  • 미술경매가 예술가와 예술작품의 가치 평가에 미치는 영향을 밀레의 「만종」을 통하여 알아보고는 것을 본 연구의 목적으로 한다. 「만종」이 세계적인 명성을 이루는데 발판이 된 1889년 프랑스 파리의 경매를 중심으로, 예술작품의 가치 형성에 있어서 경매시장, 수집가, 비평가, 언론 그리고 국가의 역할과 그 중요성에 대해 고찰할 것이다.
    본 연구의 방법은 무엇보다도 19세기 당시 신문, 잡지들에 실린 기사들을 바탕으로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이루질 것이다. 효과적인 연구의 수행을 위해 광범위한 연구의 대상을 시기적으로 한정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1889년 경매를 중심으로 1909년 「만종」 기부까지를 연구대상으로 한다. 1889년 경매의 배경을 알아보고, 경매이후 밀레와 「만종」의 평가 변화를 분석하고자 한다.
    1) 1889년 「만종」의 경매
    1889년 경매 당시 「만종」의 소장자는 스크레탕Secrétan으로 19세기 프랑스 최고의 미술수집가였다. 1889년 그는 「만종」을 비롯하여 개인 소장품 192점을 파리 경매에 내놓았다. 카탈로그도 세권으로 구성될 정도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당대 가장 큰 경매였다. 시작 전부터 대중의 기대를 모으며 이목이 집중되었던 이 경매에서 가장 주목받은 작품은 바로 밀레의 「만종」이었다.
    「만종」은 경매 과정에서 프랑스와 미국의 치열한 경합을 불러일으켰다. 1889년 경매 이전인 1887년부터 미국은 「만종」의 구매 의사를 공공연하게 밝혀왔고, 프랑스 언론은 이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프랑스는 미술후원자 앙토냉 프루스트Antonin Proust를 중심으로 「만종」의 방출을 막기 위한 준비를 하였고, 주변국의 미술애호가들까지 공조하여 1889년 7월 1일 경매에 참여하였다. 미국과의 힘겨운 경합 중에 프랑스 정부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약속받고 나서야 겨우 「만종」을 낙찰 받을 수 있었다. 사전 경매가의 두 배에 달하는 낙찰가는 미국과 프랑스, 나아가 미국과 유럽의 치열한 경합이 아니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2) 경매 이후 밀레와 「만종」에 대한 평가 변화
    천문학적인 낙찰가는 곧 ‘「만종」이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예술작품인가?’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언론에서 연일 「만종」의 작품성에 대한 공방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1889년 7월 3일 프랑스에서 2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큰 사고가 일어났다. 이에 대한 수습이 시급해지면서, 「만종」과 같은 예술작품에 대한 지원보다는 국민 개인의 실질적인 삶을 위한 국가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결국 프랑스 정부는 「만종」에 대한 지원금을 철회하였고, 경매 15일 만에 낙찰이 번복되는 초유의 사태에 이르며 「만종」은 미국의 소유가 된다.
    1889년 경매의 여파는 컸다. 국가적으로는 문화강국으로서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사건이었고, 문화적 자부심이 강한 프랑스인들에게는 자신의 문화재조차 지켜내지 못했다는 상처를 남겼다. 이 경매의 결과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는 프랑스 정부에게 문화유산에 대한 정책적인 관심을 촉구하게 되었고, 자국의 문화보호에 있어서 문화적 예외주위를 반영하면서 국가적인 보호시스템을 더욱 강화하고, 추급권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문화예술보호에 있어서 국가의 역할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이다.
    현재 「만종」이 프랑스에 소장되어 있는 것은 기증 덕분이다. 루브르의 상가들을 소유한 대부호이자 미술애호가인 알프레드 쇼사르Alfred Chauchard가 1889년 55만 3천 프랑에 낙찰되었던 「만종」을 미국으로부터 80만 프랑에 매입하여 1909년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이처럼 「만종」의 경매는 프랑스에서 개인의 소장품을 국가에 기증하는 문화가 활성화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도 포므리Pommery부인이 「만종」을 잃은 국민적 상실감을 달래주기 위해 기증한 것이다. 프랑스 박물관이 세계적인 박물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일조한 예술애호가들의 기증 문화에 대해 「만종」의 예를 바탕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예술작품 경매의 낙찰가가 그 가치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술경매가 예술가와 예술작품의 평가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할 수는 없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미술경매의 역할을 프랑스 화가 장-프랑수아 밀레의 가장 대중적인 작품 「만종」을 통하여 알아보고자 하였다. 19세기 미술경매 역사상 중요한 1889년 파리 스크레탕 경매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1889년 경매에 주목한 이유는 「만종」이 55만3000프랑이라는 천문학적인 낙찰가를 이루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경매 시작 전부터 「만종」에 대한 구매 의지를 공공연히 나타냈던 미국미술연맹과 프랑스가 경매에서 치열한 경합을 벌였고, 그 결과 프랑스에 낙찰되었다. 프랑스가 루브르 박물관에 「만종」을 소장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로부터 지원을 약속받고, 28명의 미술 애호가들과 함께 러시아, 덴마크와 연합하여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이루어낸 성과였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금이 프랑스 의회에서 부결되면서 「만종」을 미국에 양도할 수밖에 없는, 미술경매 역사상 유례없는 초유의 사태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외부적인 사회적 요인이 결정적인 작용을 하였다.
    1889년 7월 1일 「만종」 경매 직후 비교적 호의적이었던 여론은 7월 3일 프랑스 생테티엔 지역의 광산 폭발 사고로 2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악화되었다. 프랑스 주요 언론들은 「만종」의 진정한 예술적 가치에 대해 공방을 벌였고,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 결국 1889년 7월 9일 「만종」은 미국의 소유가 된다. 「만종」의 경매 취하가 결정되자, 국가적인 예술품을 지켜내지 못하였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화가 밀레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면서 관련된 여러 가지 자료들이 발표되었다. 그 중에는 밀레의 작품들에 대한 비평들을 비롯하여 1860년 아르튀르 스티븐스와 체결한 밀레의 전속 계약서, 예술관이 표출된 화가의 편지, 밀레와 그의 가족과 관련된 흥미로운 일화들 등이 있다. 이는 밀레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가 된다. 따라서 1889년 「만종」의 경매는 경매 그 자체뿐만 아니라 두 차례의 외부적인 요인을 통하여 예술가와 예술작품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의미 있는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영문
  • It is sure that the winning bid of an art work does not justify its artistic worth. However, it is not possible either to neglect the influence that the art auction has on artists, works, and their evaluation. In this paper, the role of the art auction is studied through French painter Jean-François Millet’s most popular art piece: The Angelus. One of the most remarkable events in the history of 19th century art auction, ‘The Secrétan sale in 1889’, has mainly been focused on.
    Not only because The Angelus was contracted at the absurd price of 553,000 franc, are we giving attention to the event. Having showed interest openly in purchasing the art work, The American Art Association fiercely bid against France but it was in vain. To secure The Angelus in the Louvre, the French government pledged support, and even Russia and Denmark were in cooperation with France as well as 28 art enthusiasts. However, the promised financial support was revoked in the France assembly, leading to an unprecedented happening in the art auction history: The Angelus had to be handed over to the U.S. due to the cancelation of the bid. In this course of happening did external social factors have a decisive influence.
    The public opinion was still favorable right after the Secrétan sale, July 1st, 1889. Two days later, the Saint-Étienne mine disaster occurred, getting about 200 people killed and injured. After this accident the public opinion took a sudden turn for the worse. The French press exchanged arguments about The Angelus’ artistic worth. In this social atmosphere The Angelus came into the U.S. possession. When the cancelation of The Angelus’ bid was decided, an introspective voice arose for the loss of the national art piece. As interest increased in the painter Millet, many materials and references were published, including reviews on Millet’s art works, the exclusive contract between Millet and Arthur Stevens in 1860, letters displaying his artistic point of view, interesting anecdotes about Millet and his family, all of which are important in studying Millet. The auction of The Angelus in 1889 demonstrated us clearly that two external events as well as the auction itself gave rise to significant changes in the evaluation of artists and their work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예술작품 경매의 낙찰가가 그 가치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술경매가 예술가와 예술작품의 평가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할 수는 없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미술경매의 역할을 프랑스 화가 장-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의 가장 대중적인 작품 「만종L’Angélus」을 통하여 알아보고자 하였다. 19세기 미술경매 역사상 중요한 1889년 파리 스크레탕Secrétan의 경매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1889년 경매에 주목한 이유는 밀레 생전 1000프랑에 거래되었던 「만종」이 55만3000프랑이라는 천문학적인 낙찰가를 이루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경매 시작 전부터 「만종」에 대한 구매 의지를 공공연히 나타냈던 미국미술연맹American Art Association과 프랑스가 경매에서 치열한 경합을 벌였고, 그 결과 프랑스에 낙찰되었다. 프랑스가 루브르 박물관에 「만종」을 소장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로부터 지원을 약속받고, 28명의 미술 애호가들과 함께 러시아, 덴마크와 연합하여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이루어낸 성과였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금이 프랑스 의회에서 부결되면서 「만종」을 미국에 양도할 수밖에 없는, 미술경매 역사상 유례없는 초유의 사태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외부적인 사회적 요인이 결정적인 작용을 하였다.
    1889년 7월 1일 「만종」 경매 직후 비교적 호의적이었던 여론은 7월 3일 프랑스 생테티엔Saint-Étienne 지역의 광산 폭발 사고로 2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악화되었다. 프랑스 주요 언론들은 「만종」의 진정한 예술적 가치에 대해 공방을 벌였고,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 결국 1889년 7월 9일 「만종」은 미국의 소유가 된다. 「만종」의 경매 취하가 결정되자, 국가적인 예술품을 지켜내지 못하였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화가 밀레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면서 관련된 여러 가지 자료들이 발표되었다. 그 중에는 밀레의 작품들에 대한 미술 비평들을 비롯하여 1860년 아르튀르 스티븐스Arthur Stevens와 체결한 밀레의 전속 계약서, 예술관이 표출된 화가의 편지, 밀레와 그의 가족과 관련된 흥미로운 일화들 등이 있다. 이는 밀레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가 된다. 따라서 1889년 「만종」의 경매는 경매 그 자체뿐만 아니라 두 차례의 외부적인 요인을 통하여 예술가와 예술작품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의미 있는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에 머물렀던 1년 동안 「만종」은 순회 전시를 통해 세계적인 대중적 인기를 확보하였다. 1890년 알프레드 쇼사르Alfred Chauchard가 「만종」을 75만 프랑에 구매하여 1910년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하면서, 밀레의 이 유명한 그림은 프랑스가 소장한 주요 예술작품으로 1986년 오르세 박물관에 이전되어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는 19세기 프랑스 신문, 잡지에 출판된 자료들에 대한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만종」과 밀레의 세계적인 명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판단되는 1889년 스크레탕 경매에 대해 알아보았다. 먼저 「만종」의 제작 단계부터 1889년 경매 이전까지 매매 동향을 살펴보았고, 1889년 7월 1일 경매에서 프랑스가 「만종」을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하기 위해 미국과 치열한 경합 끝에 55만3000프랑에 낙찰 받는 과정에 대하여 면밀히 조사하였다. 경매 직후 천문학적인 낙찰가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호의적이었던 언론은 1889년 7월 3일 프랑스 생테티엔의 광산 폭발 사고 이후 급격히 악화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는 프랑스 의회에서 「만종」의 경매 지원금을 부결하면서 경매가 취소되는 데에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만종」이 미국의 소유가 되자, 오히려 프랑스에서는 고유의 문화재조차 지켜내지 못하였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덕분에 밀레와 그의 작품들에 관한 의미 있는 자료들이 출판되었다. 1889년 프랑스 언론에서는 ‘밀레의 「만종」이 경매 낙찰가에 부합하는 걸작인가?’에 대한 공방이 이어졌는데, 수집된 모든 자료들을 종합 분석해본 결과, 본 연구에서는 ‘「만종」은 밀레의 좋은 그림이지만 확실히 최고의 작품은 아니다’라는 벤자멩 콩스탕의 의견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만종」의 1889년 경매를 통하여 밀레를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로 만들었다는 사실에는 이의가 없으며, 이처럼 미술경매가 예술가와 예술작품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할 수 있었다는 데에 본 연구의 의의가 있다.
    본 연구의 결과는 교육, 사회, 학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발전과 활용을 기대해볼 수 있는데,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학제간의 연구를 통한 사회적 기여
    본 연구는 경매를 통해 예술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미술, 경영, 언론 등 다양한 분야와 접목된 학제간의 연구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미술과 문화, 미술과 문학, 예술과 경영 등의 분야에 흥미로운 연구 방향을 제시한다. 또한 19세기에 이미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경매에 임하며 주요한 세계적인 문화예술품을 확보한 미국미술연맹의 장점과 단점을 살펴보고, 이에 맞서서 자국의 예술작품을 보호하기 위한 유럽 미술애호가들의 전통적인 자세를 고찰해보면서, 문화예술의 지원방식을 개인적, 사회적 그리고 국가적 측면에서 다각적으로 분석하여 바람직한 문화예술지원의 방향을 모색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둘째, 화가 밀레와 작품 「만종」 연구의 학문적 발전
    밀레 연구에 있어서 1889년 「만종」의 경매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분석은 미비하다. 미술사학자들이 간혹 「만종」의 가치에 대해 논할 때 경매의 낙찰가를 언급하기는 하지만, 「만종」을 미국에 양도하여 프랑스의 문화적 자부심을 상하게 만든 이 경매에 관한 흥미로운 일화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다. 따라서 철저한 고증을 통한 1889년 「만종」의 경매에 대한 연구는 밀레와 그의 작품들을 재평가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지표를 제공할 것이다.
    셋째, 프랑스 문화예술교육에서의 활용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과 창조성이 강조되면서 국내의 정규교육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시민교육의 일환으로 공공기관이나 사설기관에서도 프랑스 문화예술 관련 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밀레는 위인전으로 출판될 정도로 예술적으로나 교육적으로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프랑스 화가이기 때문에, 그의 대표작 「만종」은 예술, 종교, 철학, 문학 등 각 분야에서 다양한 문화콘텐츠 개발의 원천으로 활용될 수 있다.
  • 색인어
  • 미술경매, 밀레, 「만종」, 미술 수집가, 스크레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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