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19세기 프랑스 신문, 잡지에 출판된 자료들에 대한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만종」과 밀레의 세계적인 명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판단되는 1889년 스크레탕 경매에 대해 알아보았다. 먼저 「만종」의 제작 단계부터 1889년 경매 이전까지 매매 동향을 ...
본 연구는 19세기 프랑스 신문, 잡지에 출판된 자료들에 대한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만종」과 밀레의 세계적인 명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판단되는 1889년 스크레탕 경매에 대해 알아보았다. 먼저 「만종」의 제작 단계부터 1889년 경매 이전까지 매매 동향을 살펴보았고, 1889년 7월 1일 경매에서 프랑스가 「만종」을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하기 위해 미국과 치열한 경합 끝에 55만3000프랑에 낙찰 받는 과정에 대하여 면밀히 조사하였다. 경매 직후 천문학적인 낙찰가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호의적이었던 언론은 1889년 7월 3일 프랑스 생테티엔의 광산 폭발 사고 이후 급격히 악화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는 프랑스 의회에서 「만종」의 경매 지원금을 부결하면서 경매가 취소되는 데에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만종」이 미국의 소유가 되자, 오히려 프랑스에서는 고유의 문화재조차 지켜내지 못하였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덕분에 밀레와 그의 작품들에 관한 의미 있는 자료들이 출판되었다. 1889년 프랑스 언론에서는 ‘밀레의 「만종」이 경매 낙찰가에 부합하는 걸작인가?’에 대한 공방이 이어졌는데, 수집된 모든 자료들을 종합 분석해본 결과, 본 연구에서는 ‘「만종」은 밀레의 좋은 그림이지만 확실히 최고의 작품은 아니다’라는 벤자멩 콩스탕의 의견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만종」의 1889년 경매를 통하여 밀레를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로 만들었다는 사실에는 이의가 없으며, 이처럼 미술경매가 예술가와 예술작품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할 수 있었다는 데에 본 연구의 의의가 있다.
본 연구의 결과는 교육, 사회, 학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발전과 활용을 기대해볼 수 있는데,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학제간의 연구를 통한 사회적 기여
본 연구는 경매를 통해 예술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미술, 경영, 언론 등 다양한 분야와 접목된 학제간의 연구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미술과 문화, 미술과 문학, 예술과 경영 등의 분야에 흥미로운 연구 방향을 제시한다. 또한 19세기에 이미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경매에 임하며 주요한 세계적인 문화예술품을 확보한 미국미술연맹의 장점과 단점을 살펴보고, 이에 맞서서 자국의 예술작품을 보호하기 위한 유럽 미술애호가들의 전통적인 자세를 고찰해보면서, 문화예술의 지원방식을 개인적, 사회적 그리고 국가적 측면에서 다각적으로 분석하여 바람직한 문화예술지원의 방향을 모색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둘째, 화가 밀레와 작품 「만종」 연구의 학문적 발전
밀레 연구에 있어서 1889년 「만종」의 경매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분석은 미비하다. 미술사학자들이 간혹 「만종」의 가치에 대해 논할 때 경매의 낙찰가를 언급하기는 하지만, 「만종」을 미국에 양도하여 프랑스의 문화적 자부심을 상하게 만든 이 경매에 관한 흥미로운 일화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다. 따라서 철저한 고증을 통한 1889년 「만종」의 경매에 대한 연구는 밀레와 그의 작품들을 재평가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지표를 제공할 것이다.
셋째, 프랑스 문화예술교육에서의 활용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과 창조성이 강조되면서 국내의 정규교육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시민교육의 일환으로 공공기관이나 사설기관에서도 프랑스 문화예술 관련 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밀레는 위인전으로 출판될 정도로 예술적으로나 교육적으로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프랑스 화가이기 때문에, 그의 대표작 「만종」은 예술, 종교, 철학, 문학 등 각 분야에서 다양한 문화콘텐츠 개발의 원천으로 활용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