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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 상세정보

일제말기 신학적 문학과 사목권력에 대한 연구
A Study on the Theological literature and Pastoral power in the Last-stage of Japanese Colonial Era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시간강사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7S1A5B5A07061734
선정년도 2017 년
연구기간 1 년 (2017년 09월 01일 ~ 2018년 08월 31일)
연구책임자 윤인로
연구수행기관 동아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제국 일본의 판도와 형세를 전쟁이 결정한다는 사고의 몇 가지 형태들, 이른바 ‘15년 전쟁기’, ‘총력전체제’, ‘전시 총동원기’라는 개념어들이 당대의 조선을 식민정책의 단순한 대상으로, 부수적이고 변수적인 지위로 포함하고 있는 것에 반해, ‘총독정치’ 또는 ‘조선 신체제운동’ 등의 개념은 조선을 ‘정치’의 항으로, 천황 직예(直隷)·직속의 총독과 사회구성원 간의 정치가 수행하는 자율적 법의 정립상태로 이해한다. 이는 제국 일본과 식민지 조선이 구성하는 정치의 형세가 균질적이고 안정적인 것이 아니라, 길항과 합성, 경합과 공모, 알력과 조절 속에서 최적화되고 있는 ‘통치성’의 구체적 기획이라는 것에 대해, 그리고 그 기획이 역설적이게도 식민지 조선의 지식·경제·사회가 자신의 의견을 발화·주장·관철할 수 있게 되는 정치적 계쟁의 장소로 기능하고 있었음에 대해 더 사고하도록 한다.
    본 연구이 방점을 찍고 있는 사항들은 다음과 같다. 일제말기 식민지 조선이 중심축이 된 운동으로서의 신체제 정립론, 그 통치론에 상이한 의지와 의견을 가지고 접속했던 당대 문학지식인의 내적 논리 속에는, 변절의 자기기만이나 음울의 정서가 아니라, 제국과 식민지라는 두 힘의 길항 사이에서 분열하고 봉합되는 근대성에 대한 인식과, 그런 인식의 도착·실패·상처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그런 흔적에 착목해야 할 필요성에서 동력을 얻는 본 연구의 목적은 식민지 근대의 추구와 그것의 초극이 동시적이며 등가적인 과업으로 설정되었던 모순적이고 역설적인 상황, 다시 말해 ‘근대초극의 난제(aporia)’ 속에서 무릅쓰고 수행되었던 사고의 몇 가지 층위를 재정의하는 것이다. 이 목적 또는 목적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고안한 키워드들이 곧 ‘신학적 문학’이며, 그런 문학의 형태에서 추출 가능한 ‘힘(Gewalt)’이다. 폭력, 권력, 제헌력, 제도적 권위, 합법성, 정당성 등과 같이, 서로 겹치면서도 서로 환원되지 않는 힘들, 파괴적이거나 구성적인 힘들의 관계망을 지시하는 그 게발트라는 용어를 통해 제국과 식민지 근대성의 문제를 재설정하는 일. 다시 말해 신학적 문학과 ‘사목권력(司牧權力)’의 관계 속에서, 당대의 정치종교적 텍스트들과 통계학적 목자(牧者)의 통치론이 맺는 관계 속에서 사회와 삶의 상태를 재정의하는 일. 이는 선행연구들을 통해 아직 본격적으로 제기되지 않은 질문들, 특정하게 고안된 아래 다섯 가지 질문들을 통해 하나의 가설로서 제기될 수 있다. 그 질문들의 내용·힘·방향의 관계를 사고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과 필요를 지탱한다.

    ① 식민지의 ‘신학적 문학’이 당대의 삶 속으로 근대의 추구를 위한 힘이면서 동시에 근대의 극복을 위한 힘으로 작용하고 있었던 모순적 사정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② 그런 모순을 공유하고 있는 식민지/제국의 정치종교적 텍스트들이 정립하려 했던 사회의 상태는 어떤 것이었는가. 다시 말해 그러한 정치종교적 프로그램의 기획이 식민지 사회의 상태를 생명·삶·살림을 직접적인 관리의 대상으로 위치시키는 사목권력의 형태로서 어떻게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공정으로 운용되고 있었는가. 동시에, ③ 그런 모순의 자리에서 은폐·굴절·변양되고 있는 신학적 문학의 텍스트들은 어떻게 비판적인 사상의 수준으로 이행되고 고양될 수 있었는가? 달리 질문하자면, ④ 이른바 ‘메시아적 힘(Gewalt)’을 표현하는 당대의 신학적 문학의 신념과 의지는 어떻게 저 근대적 목자의 통치체에, 통계학적 통치합리성의 체제에 절멸과 신생의 사고를 내장시키는가? ⑤ 그런 메시아적 게발트의 역사적이고 물질적인 조건으로서 당대의 공동체론은 어떤 것이었는가?
  • 기대효과
  • 본 연구에 의해, 우선 문학, 정치, 신학, 역사철학이 경계를 넘어 합류하고 있는 텍스트들이 근대적 통치합리성의 작동을 정지시키는 힘으로 발현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당시의 다층적인 사고실험과 글쓰기의 상태를 분과별로 구획하는 일반적인 분류법을 멈추고 그 이면의 상호관계를 보여줄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는 여러 분과들이 단지 혼재되어 있음을 밝히고 마는 사실 진술에 그치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 사실 진술이란 근대적 통치성의 ‘절멸’과 그것의 ‘정립’이라는 정반대의 과정이 동일한 힘에 의해 동시적으로 수행되고 있었던 모순과 난국을 지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위의 질문 중 ②는 이광수의 천년왕국적 유토피아론이 근대 국민국가의 주권과 제도를 설립하고 합성하려는 신성의 힘이었음과 연결된다. 기존의 제도와 권력을 일소하려는 이광수 정치종교의 절멸의 구상력이 당대의 통치력의 중단을 향하면서도 그런 통치력의 재정립으로 귀결되는 모순적 과정은 그러한 신성의 힘이라는 정치적 인식의 모순과 역설에 뿌리를 두고 있다. 본 연구의 이러한 탈분과적인 횡단의 의지가 의미 있게 전개된다면, 식민지 근대성을 이해하는 특정한 관점으로서의 정치종교론을 지렛대로 기존 연구들과의 교류를 활성화할 수 있는 매개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에 의해, 현대국가론의 핵심어들이 ‘환속화한 신학적 개념’에 뿌리내린 것이라는 입장, 근대 화폐체제가 ‘환속화된 세계의 신’이라는 입장, 다시 말해 인지와 표현을 관리하고 운용하는 통치성의 구조가 일상의 삶 속으로 연착륙한 신학 개념과 합성된 신성국가적 통치의 장치에 다름 아니라는 입장이 근대문학사상 연구의 인식론적 방법과 결합·가공·재정의될 것이다. 본 연구는 근대성의 밑바탕엔 이미 언제나 그와 같은 신성의 정치력이 있었음을 인지하는 상태에서 시작한다. 그러한 신성의 힘이 급진적 공동체론의 문학적·신학적 형태로 드러나고 있는 위의 질문 ⑤의 이태준 계열과 도래할 통합의 국민론으로 드러나고 있는 이광수 계열의 동일한 원천이었으며, 그러므로 ‘아포리아’라고 지칭했는데, 이는 근대성의 조건에 대한 판단을 유보함으로써 가치중립적인 과학을 표방하려는 것이 아니다. 근대초극의 아포리아는 신성의 정치력을 둘러싼 그 두 계열의 적극적인 분쟁과 교섭, 알력과 전용의 순간을 수면 위로 떠올리게 하는 방법을 가리킨다. ‘신학적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유형학적인 분과의 분류법을 문제시하는 그 아포리아의 구체적 형태가, 앞서 언급했던 ‘구원과 최종해결의 동시성·등질성’이라는 개념이었다. 본 연구에 의해, 식민지 근대성의 존재 조건에 대한 사고실험이 앞서 언급한 모순적 아포리아의 장소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 다각도로 제안될 수 있을 것이다. 탈분과적 횡단의 과정 속에서 일선 강의의 구성 및 방향설정의 재정의, 강의 내역의 고안 및 강의 구성요소 간의 상호 결합과정에서 진전될 수 있을 인식력 등이 본 연구가 강의와 맺고 있는 관련일 것이다.
  • 연구요약
  • 질문으로 된 위의 연구대상 중 ①을 표현하기 위해 여기서는 먼저 ④에 대해서 간략히 언급하고자 한다. 김기림은 다음과 같은 문장은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가장 우수한 최후의 모더니스트 이상은 모더니즘의 초극이라는 심각한 운명을 한 몸에 구현한 비극의 담당자였다.”(김기림, 「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 『인문평론』, 창간호, 1939. 10, 85쪽) 시인이자 평론가였던 김기림이 이상의 곁에서 ‘예언자적 정치’의 고지를 담은 시들과 비평을 썼던 사실은 그의 문학사상에서 본격적으로 연구된 지점이 아니다. 이상과의 내적 연루 속에서, 김기림은 1940년을 전후한 침묵과 절필 직전의 작품들을 통해 ‘오전의 시론’에서 주장했던 명랑성의 정서를 거절하면서, 제국과 식민지의 통치합리성―사목권력(司牧權力)의 근대적 형태로서의 후생적·통계학적 통치이성―을 동시에 문제시했다. 이런 문제제기의 여러 양상들을 위의 질문 ③에 근거해서만 간략히 요약한다.
    ③은 ④의 모더니즘적 계열에 이어, 시인 오장환의 리얼리즘적 경향의 작품들이 ‘돌아온 탕아’의 비유, 속죄 및 원죄의 감각과 절멸의 구상력에 결합되어 있는 신학적 문학의 한 양태라는 사실과 연결된다. 이와 더불어, 교토학파 우파의 근대초극론자 고야마 이와오의 동아협동체론을 기각했던 김남천의 소설들(『경영』, 『맥』) 바로 곁에 「유다적인 것과 문학」이라는 고발문학의 평론이 있었고, 이는 일본낭만파의 멤버로 ‘근대의 초극’(1942) 좌담에 참여한 가메이 가츠이치로의 유다론 「무신론자의 신학」및 「온갖 가면의 박탈」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는 동시에, 교토학파 좌파 도사카 준의 종교와 유물론의 관계론과도, 경성제대 역사철학자 그룹이 제시했던 영도(zero degree)의 감각, 곧 파국과 종언에의 의지와도 관계된다(이번 연구에서는 신남철의 『역사철학』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런 김남천과 함께 주목하게 되는 것은 임화이다. 그는 하나의 비평적/신학적 처방전을 「현대정신과 ‘카토리시즘’」(1939. 5)에서 제시한다. 전시체제라는 이윤공정 속으로 합성되고 있던 삶·생명과 마주한 임화가 ‘근대의 결함’을 지적하는 입장과 논리는 다음과 같다. “자연과 인간이 신(神)을 매개로 교섭하던 시대의 수미일관성과 ‘따이나미즘’을 이해할 수 있다면 직접으로 인간과 자연이 교섭한 근대의 결함이 이 적절한 매개자(媒介者)의 결여 때문이라는 것을 상상할 수도 있다.”(임화, 『문학의 논리』, 학예사, 1940, 757~758쪽) 임화가 말하는 ‘신’은 ‘적절한 매개자’이며, 근대적 통치상태의 혼돈을 끝낼 수 있는 매개적 ‘힘’이며, 식민지 조선의 ‘사회상태’와 대립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임화의 그런 정치종교적 사고는 이른바 『지적협력회의: 근대의 초극』(1942) 좌담의 멤버이자 그 좌담집에 「근대초극의 신학적 근거」라는 논문을 수록했던 카톨릭 정치신학자 요시미치 요시히코와, 무교회주의자 난바라 시게루의 「프로테스탄티즘과 카톨리시즘」의 사회론과 상호 비교될 수 있다.
    임화의 신학정치적 사고는 「현대문학의 정신적 기축」(1938. 3)에서 언급되는 도스토예프스키론과 연결되는바, 그것은 김남천이 수용했던 ‘발자크 vs. 도스토예프스키’라는 구도와 비교될 수 있다. 이 비교는, 교토학파 우파의 역사철학/역사신학에 대한 문학적 비판·개입·절단으로 구상되었던 좌담 『근대의 초극』의 기획자 고바야시 히데오의 ‘역사상수(歷史常數) 비판’과, 그 비판의 문학적 근간으로서의 도스토예프스키론과 다시 비교될 수 있다. 이는 당대의 통치체제의 재생산과 결속된 이데올로기적 상관물로서의 역사철학에 대한 비판으로서 제국과 식민지의 도스토예프스키론이 갖는 차이를 확인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더불어, 신학적 문학의 한 가지 형태와 자질을 가진 것으로서의 도스토예프스키론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제국의 판도와 ‘불안’이라는 정념의 정치성이 맺고 있는 관계였다. 이른바 ‘셰스토프적 불안’이라는 조어를 둘러싼 제국과 식민지의 정치종교적 비평의 관련이 당대의 통치론에 어떻게 개입·접속하는 것인지를 연구한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는 식민지/제국의 사목적 권력과 신학적 문학 간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식민지/제국의 통치연쇄를 ‘사목권력(司牧權力)’ 혹은 ‘신정정치(Theocracy)’의 관점에서 규정하고, 그것에 대한 문학적 응전을 다루고자 했던 것이 본 연구과제의 목표였다. 본 연구과제는 당대의 신학적 문학들과 ‘신정정치’의 관계 속에서 사회와 삶의 상태를 다시 정의하는 일을 목적으로 삼았다.
  • 영문
  • This research is on the Theological literature and Pastoral power in the Last-stage of Japanese Colonial Era. The goal of this research was to define the colonial/imperial of governance in terms of 'Pastoral power' or 'Theocracy' and to deal with literary condensation on it. This research project was aimed at redefining the state of society and life i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modernological literature and Theocracy.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과제는 식민지/제국의 통치연쇄를 ‘사목권력(司牧權力)’ 혹은 ‘신정정치(Theocracy)’의 관점에서 규정하고, 그것에 대한 문학적 응전을 다루고자 했던 것을 목표로 삼았었다. 예컨대, 일제말기 식민지 조선이 중핵이 된 운동으로서의 신체제 정초론, 그 통치론에 서로 다른 의지들과 의견들로 접촉했던 당대 문학지식인의 논리 속에는 식민지와 제국이라는 두 힘의 충돌 사이에서 분열하거나 봉합되는 근대성에 대한 인식과 그런 인식의 실패 및 상흔이 새겨져 있다. 본 연구는 식민지 근대의 추구와 그런 근대의 초극이 동시적이고도 등가적인 과업으로 설정되었던 상호모순적인 상황, 다시 말해 ‘근대초극의 난제(aporia)’ 속에서 행해졌던 사고실험의 몇 가지 층위를 다시 정의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그런 목적을 살피기 위해 만든 키워드들이 ‘신학적 문학’ 혹은 ‘신학적/정치적 문학’이며, 그런 문학의 형질에서 적출 가능한 ‘힘(Gewalt)’이었다. 본 과제는 폭력, 권력, 제헌력, 제도적 권위, 합법성, 정당성 등과 같이 서로 포개지면서도 환수되지 않는 힘들, 파괴적이면서도 또한 구성적인 힘들의 관계를 표시하는 그 게발트라는 용어로써 제국과 식민지 근대성의 문제를 다시 설정하는 일을 중심 테마로 설정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식민지 경성의 비평가 임화를 재검토할 필요성를 본 연구과제의 문맥 속에서 확정할 수 있었다. 그는「방황하는 문학정신」(1938. 12)에서 한 해 동안의 문학을 ‘혼돈’과 ‘출로 없음’으로 진단했다. 임화는 5개월 뒤, 자신의 그런 진단에 대한 하나의 비평적/신학적 처방전을 「현대정신과 ‘카토리시즘’」(1939. 5)에서 제시한다. 전시체제라는 이윤공정 속으로 합성되고 있던 삶·생명과 마주한 임화가 ‘근대의 결함’을 지적하는 입장과 논리는 다음과 같다. “자연과 인간이 신(神)을 매개로 교섭하던 시대의 수미일관성과 ‘따이나미즘’을 이해할 수 있다면 직접으로 인간과 자연이 교섭한 근대의 결함이 이 적절한 매개자(媒介者)의 결여 때문이라는 것을 상상할 수도 있다.”(임화, 『문학의 논리』, 학예사, 1940, 757~758쪽) 임화가 말하는 ‘신’은 ‘적절한 매개자’로서, 인간과 세계의 교섭에 있어 수미일관성과 역동성을 선사하는 존재였다. 임화의 그 신은 근대의 자질과 속성을 노출시키던 통치상태의 혼돈과 방황을 끝낼 수 있는 ‘힘’으로서, 식민지 조선의 ‘사회’와 대립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임화의 그런 정치종교적 사고는 이른바 『지적협력회의: 근대의 초극』(1942) 좌담의 멤버이자 그 좌담집에 「근대초극의 신학적 근거」라는 논문을 수록했던 일본의 카톨릭 정치신학자 요시미치 요시히코와, 무교회주의자 난바라 시게루의 「프로테스탄티즘과 카톨리시즘」(『국가와 종교』, 1942)이 논구하고 있는 신학과 사회의 관계론과 상호 비교될 수 있는 것이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거기까지 논의를 밀고나갈 수는 없을 듯하다. 그래서 한계를 설정한 상태에서 비교하고 검토하게 되는 것은 식민지/제국의 신학적 문학으로서의 ‘도스토예프스키’론이다.
    임화의 카톨리시즘과 식민지 사회의 관계에 대한 사고는 「현대문학의 정신적 기축」(1938. 3)에서 언급되는 도스토예프스키론—“우리는 보들레르 다음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이름을 생각한다./ 보들레르는 인간의 혼 가운데 파진 자기 분열과정을 완성하였으며, 도스토예프스키는 실로 가중된 비극을 계시한 사람이다./ 작가는 회한의 정열을 노래할 수는 있다. 그러나 비판의 오열도, 죽음의 공포도 이젠 노래할 수 없는 심리, 심연이란 실로 죽기 벌써 전에 죽어버린 인간들이 알 수 없는 선풍(旋風) 속을 방황하는 세계다./ 이것은 아마 절망한 인간의 의식계가 아니라 산 망령의 의식계다./ 이러한 두려운 상태를 그려낼 수 있는 힘이 아직도 작가에게 부여되어 있다는 것은 하나의 기적이 아닐 수가 없다. 실로 기적에 대한 경탄의 염 없이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을 수는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문학의 논리』, 127쪽)—과 연결되는바, 그것은 김남천이 수용했던 ‘발자크 vs. 도스토예프스키’라는 구도와 비교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비교는, 교토학파 우파의 역사철학(신학의 형태를 띤 역사철학, 곧 역사신학)에 대한 문학적 비판·개입·절단으로 구상되었던 좌담 『근대의 초극』의 기획자 고바야시 히데오의 ‘역사상수(歷史常數) 비판’과, 그 비판의 문학적 근간으로서의 도스토예프스키론과 다시 비교될 수 있으며, 이는 당대의 통치체제의 재생산과 결속된 이데올로기적 상관물로서의 역사철학에 대한 비판으로서 제국과 식민지의 도스토예프스키론이 갖는 차이와 교착을 확인하는 작업이 될 것이지만, 지금으로서는 논의의 범위를 한정하지 않을 수 없다. 대신, 미리 앞질러 고바야시의 『도스토예프스키의 생활』(1939)에서 한 대목을 번역·인용하여 표지석처럼 세워 놓기로 한다: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민중의 관념은 정교의 관념과 온전히 같은 것이었다. ‘러시아의 민중은 모두 정교를 신봉했다, 러시아의 민중에겐 그 이상의 무엇도 없다, 무엇도 필요 없다, 정교가 전부다’라고 말하는 협애한 전제 속에서 그는 ‘정교가 전부다’를 손에 들고, 똑바로 ‘전제(專制)는 전부다’로 걸었다. ‘러시아의 그리스도’는 칼을 들었다. 그를 닦달했던 것은 확실히, 이를테면 그 자신의 ‘마(魔)’였지만 또한 그것은 ‘러시아’라는 것이기도 했다.”(『고바야시 히데오 전작품』 11권, 신쵸샤 6차 전집판, 2003, 293쪽)
    본 연구과제의 문맥 속에서 작성될 도스토예프스키론을 통해, 우선 문학, 정치, 신학, 역사철학이 경계를 넘어 합류하고 있는 텍스트들이 근대적 통치합리성의 작동을 정지시키는 힘으로 발현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은 당시의 다층적인 사고실험과 글쓰기의 상태를 분과별로 구획하는 일반적인 분류법을 멈추고 그 이면의 상호관계를 보여줄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 색인어
  • 신학적 문학, 사목권력, 구원과 최종해결의 동시성, 아포리아, 통치합리성, 정치종교, 신정정치, 메시아적 게발트, 절멸/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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