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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와 고대 피론주의
Nietzsche and Ancient Pyrrhonism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연구과제번호 2018-S1A5A2A01-2018S1A5A2A01029112
선정년도 2018 년
연구기간 2 년 6 개월 (2018년 07월 01일 ~ 2020년 12월 31일)
연구책임자 황설중
연구수행기관 대전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서양 철학사에서 회의를 본격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전개한 이들은 헬레니즘 시대의 피론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이 고안해 낸 회의적 논변은 이후 철학사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며, 이들이 제기한 문제의식 밖에서 철학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로 간주되었다. 대다수 서양의 철학자들은 피론주의와 관계를 맺었고, 이것을 극복하거나 지양하는 작업이 곧 그들의 철학이기도 하였다. 니체도 역시 그러하였다. 그는 그의 학문적 경력을 시작하고 마감할 때까지 회의주의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그는 여러 유형의 회의주의 가운데 고대 피론주의를 전면적으로 수용하였고, 자기의 고유한 철학을 형성하는 중요한 계기로 삼았다. 그가 피론주의와 맺은 관계는 매우 복잡하면서도 미묘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요컨대 그는 피론주의자이면서도 반피론주의자였던 것이다. 이런 상충하는 평가는 니체가 창출한 철학의 핵심을 좀 더 충실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고대 피론주의를 경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니체의 여타 주제들에 비해 이 방면의 연구는 일천하다. 지원자는 <니체와 고대 피론주의>의 관계에 있어서 그동안 간과되어 왔던 피론주의의 철학사적 배경과 경쟁 학파와의 논쟁의 측면을 고려하면서, 피론주의에 대한 니체의 평가를 검토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니체 연구자들은 피론주의를 비판하는 니체의 입장을 수용하고, 그에 기초해서 논의를 전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정작 고대 피론주의자들이 니체에 대해 제기할 수 있는 반론은 심각하게 경청하고 있지 못하다. 양자의 공통 기반과 대립 지점에 대한 균형 잡힌 구명은 니체 철학뿐만 아니라 고대 피론주의의 현실적인 생명력과 유효성을 보여줄 수 있다. 니체와 고대 피론주의자는 어느 한쪽으로 흡수되고 되어야 하는 우열관계가 아니다. 이들을 모두 철학적 동료이자 논전의 맞상대로 초빙하여 각자가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개진하게 할 필요가 있는데, 이 경우에 각각의 철학과 의의가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니체와 고대 피론주의>의 연구과제에 대한 탐색은 회의주의와 관련해서 항상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키곤 하는 회의주의자의 정체성을 해명할 수 있다. 고대의 신(新)아카데미학파의 회의주의자들, 근대의 회의주의자들, 피론주의자의 차이점을 섬세하고 분류하고 논의함으로써 고대 피론주의를 통해 본 니체 철학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또한 고대 피론주의자가 자리잡고 있는 철학적 위상을 밝히는 작업과 연계된다. 고대 피론주의자들의 이론적 경쟁자는 신(新)아카데미학파의 회의주의자들이었는데, 이들 간의 경쟁사를 도외시할 경우, 피론주의에 대한 이해는 표면적인 수준에 머물게 된다. 피론주의에 동조하거나 비판하는 니체 철학을 좀 더 심도 있는 눈으로 보기 위해서는 피론주의자들이 자리 잡고 있는 이론적 지형이나 철학사적 위상에 대한 좀 더 세밀한 숙지가 요구된다. 이것은 곧 피론주의 논변의 철학적 중요성이나 이론적 정치성을 충분히 인지할 경우에 한에서 니체 철학이 지닌 새로움이나 전환의 가치에 대한 인식도 증대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고대 피론주의의 논변이론뿐 아니라 헬레니즘 시대의 경쟁적인 다른 철학 학파들은 국내에서 전혀 주목받고 있지 못하며, 이것은 적어도 회의주의에 대한 논의와 관련하여 상당한 지적인 손실을 의미한다. 연구자의 주제는 이런 손실에 대한 자각뿐 아니라 고대 피론주의자들이 구성해 낸 논변들의 위력과 실천적 삶에 대한 고민을 상기시켜 줄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피론주의와 니체를 연결시킴으로써 피론주의를 통하지 않고는 드러날 수 없는 니체 철학의 문제의식과 해결책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망될 수 있다. 유사하면서도 상반된 철학적 입장을 가진 철학자들이 만나 서로 논박하는 대화의 생생함과 생산성을 구현함으로써, 철학이 단순히 지적인 박물관이 아니라 즐거우면서도 진지한 대화 과정임을 실증할 수 있을 것이다.
  • 기대효과
  • <니체와 고대 피론주의>를 연구하고 계획대로 성과를 낼 경우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다음과 같다.
    (1) 회의주의에 대해 니체는 그의 저작 곳곳에서 파편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는 때로는 근대의 회의주의를, 또 때로는 고대의 피론주의를, 그리고 자신의 실험적 회의주의를 혼란스럽게 논하고 있다. 이 연구 과제는 니체가 뒤섞어 놓고 있는 회의주의의 종류와 특성을 드러낼 수 있고, 그래서 회의주의 일반과 니체 철학과의 관계에 대해 체계적인 이해를 도울 수 있다.
    (2) 니체가 가장 깊이 그리고 장기간에 걸쳐 전폭적으로 수용한 회의주의는 고대 피론주의이다. 그래서 니체의 철학이나 회의주의를 이해하려면 고대 피론주의에 대한 검토와 분석이 먼저 요구되는 것이다. 고대 피론주의의 지식론과 실천론에 대한 고구는 우리나라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고대의 회의주의에 대한 철학적 의의를 환기시켜줄 수 있다. 그리고 고대 피론주의의 이론의 정치함과 체계성을 분석함으로써 이것과 관계하는 니체 철학의 의의나 새로움도 피상적인 수준을 넘어 부각할 수 있을 것이다.
    (3) 니체가 비판하고 있는 근대의 회의주의의 한계 역시 고대 피론주의의 회의적 논변들의 이론적 구조와 특성을 배경으로 해서만 드러날 수 있다. 고대 피론주의와 니체의 관계는 근대 회의주의와 근대 철학 일반의 특성이 어디에 있으며, 왜 니체가 이런 철학에 반대하는지를 알려줄 것이다.
    (4) 니체의 철학과 고대 피론주의 간의 긴밀한 유사성은, 고대 피론주의가 매우 다양하고 때로는 모순적이며 수수께끼 같은 니체의 진리론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 피론주의의 렌즈를 통한 이런 해명의 가능성은 좀처럼 다른 경로를 통해서는 확보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5) 서양철학사에서 자기지시적 모순에 가장 민감하고 예리하게 반응한 철학자들이 바로 고대 피론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자기논박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모든 독단주의를 물리칠 수 있는 여러 회의적 장치들을 고안해내었는데, 니체는 이것들을 자기 철학에 차용하였고, 해결책을 찾아내었다. 이로써 니체 철학과 고대 피론주의를 논의하는 가운데 철학에서 골치 아픈 문제로 여겨졌던 자기논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6) 고대 피론주의와 니체 철학에 대한 논구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산 철학자들 간의 공동적인 인식의 문제와 삶의 고민, 나아가 그들 간의 갈등을 드러내준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박제된 유물로서가 아니라 오늘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여러 시사점을 줄 수 있는 살아 있는 현장이 철학임을 이 논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연구요약
  • 니체나 피론주의자들이 보기에, 절대적 진리의 발견을 내세운 독단주의자들은 판단을 유보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긴장과 기다림의 인내를 참지 못하고 성급하게 판단을 내리는 조급증 환자들이다. 니체와 피론주의자들은 독단적 의견으로 건강을 해친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라고 할 수 있다. 환자의 질병의 경중과 성질에 따라 치유를 위한 처방책은 그때그때마다 다르다. 마치 의사가 불면증 환자에게는 수면제를, 졸음증 환자에게는 각성제를 처방하는 것과 같다. 니체와 피론주의자들이 내세우는 다양하고 때로는 상호 충돌적인 논의들은 어디까지나 독단주의자들의 독단성을 파괴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이것들은 독단주의의 딱딱한 껍질을 깨부수는 유일한 목적을 달성하면 그것으로 그 효용성이 다 한다. 그것들은 몸의 독소를 빼기 위해 주입되었다가 그 독소와 함께 쓸려 나가는 관장제와 같다. 경직된 독단적 확신의 감옥에서 해방을 기획하는 니체와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에게 철학의 가치는 학문의 독단주의에 맞서는 데에 있다. 이런 점에서 이들은 철학적 동지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그러나 실천적인 측면에서 니체는 피론주의자들과 각을 세운다. 피론주의자들처럼 수동적인 삶을 산다는 것, 이미 확립된 도덕에 따라 그냥 그렇게 삶을 산다는 것은 니체에게는 긍지가 없는 천민들 사이에서의 천한 삶이다. 피론주의자들은 신경쇠약에 걸려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 하지 않고 모든 것에 무관심한 허약한 회의주의자들이다. 한마디로 니체에 따르면, 피론주의는 데카당스로서의 철학이다. 현실의 지배적인 관습, 전통, 믿음, 도덕에 순순히 따르는 약한 피론주의의 회의에 반대해서, 니체가 수행하려고 하는 회의는, 황량하고 위험한 하늘 아래 행해지는 위험한 발굴여행과 정신화된 북극탐험을 하는 좀 더 위험하고 강인한 새로운 회의이다. 절망의 무기력함에 매몰된 피론주의가 아니라, 각자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나가는 ‘실험의 회의주의’, 이것이야말로 피론주의와 결별한 니체만의 고유한 회의주의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니체의 실험적 회의주의는 그가 피론주의자의 실천 기준을 비판한 만큼 거꾸로 피론주의자들의 거센 비판을 받을 것이 틀림없다. 피론주의자들이 보기에, 피론주의의 트로펜과 판단유보를 전폭적으로 수용한 니체의 관점주의와, 새로운 가치 창출을 기획하는 실험적 회의주의는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비록 니체가 보편적이며 객관적인 기준이 아니라 그때그때 변화하는 삶의 유용성을 반영하는 고양된 힘의 감정을 내세운다 해도, 이것이 상승하는 삶에의 의지와 연결되는 한, 피론주의자의 판단유보를 팽개친 셈이 되는 것이다.
    니체 실천 이론 역시 탈규범적 성격을 버리지 못했다는 피론주의자의 불만은 단순히 그가 판단유보를 일관되게 관철하지 못했다는 것을 지적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니체가, 혹은 ‘미래의 철학자’가 새로운 가치들을 창조해서 작성된 선의 목록을 제시할 때마다, 피론주의자는 끊임없이 “왜 또는 어떻게 그것들이 삶에 유용하거나 이득인가?”에 대한 설명을 요구할 것이다. 만약 니체가 미래의 철학자의 과제로서 가치의 문제에 대한 해결과 가치의 위계질서에 대한 규정을 내세운다면, 미래의 철학자 또한 어떤 특정한 삶의 조건 속에서 그 기준을 제시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아이네시데모스의 트로펜의 늪에 빠질 것이다. 결국 삶의 의지에 추동되는 인간의 삶의 의지, 이것이 니체 철학에서 더 이상의 정당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 마지막 척도로서 제기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렇게 응답해도 피론주의자들의 질문을 멈추게 하지 못할 것이다. 삶을 위해 자기만의 가치를 창조하라는 니체의 주장을 피론주의자들은 겉은 그럴 듯하지만 매우 추상적이며 진부한 슬로건으로 치부할 것이 뻔하다. 가치의 문제에 대한 해결과 가치의 위계질서에 대한 규정에 니체가 손을 담그는 순간, 피론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실천 기준을 수용하지 않는 한, 니체가 독단주의자임을 보일 수 있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니체 철학이 고대 회의주의와, 특히 피론주의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니체는 독단주의를 파괴하고자 하였으며, 이런 측면에서 피론주의의 논변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니체의 관점주의는 피론주의자들의 트로펜의 반복이다. 그러나 실천적인 측면에서 니체는 아타락시아를 추구하는 피론주의자들을 삶에 치쳐버린 자들이라고 혹독하게 비판한다. 마음의 평정을 향유하는 안락한 삶에 맞서 니체는 위험한 삶을 살 것을 촉구한다. 그러나 섹스투스 엠피리쿠스라면 이런 비판에 곧장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그는 니체가 삶을 불행으로 이끄는 무모한 독단주의자라고 마찬가지로 비판할 것이다. 양자는 정면으로 충돌한다. 나는 이 글에서 양자가 삶의 방식과 관련해서 어떤 점에서 일치하고 또 대립하는지를 비교하고 분석하려 한다. 니체가 기리고 있는 위험한 삶은 그의 독특한 힘에의 의지론에 기초하고 있다. 피론주의자들은 힘에의 의지론을 조준하여 여러 회의적 논변들을 전개할 것이지만, ‘위험한 삶’에 대한 니체의 정당성은 논리적인 인식론적 지평에서가 아니라 그의 경험적 진실성의 차원에서 확보된다.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와 니체가 벌일 만한 논박들을 상정함으로써 나는 니체가 어떻게 피론주의자의 공격을 피할 수 있으며, 동시에 왜 니체의 ‘위험한 삶’이 유서 깊은 전통적인 철학과 결별한 새로운 철학적 삶의 길일 수 있는지를 보이고자 한다.
  • 영문
  • t is well known that Nietzsche's philosophy is very linked with ancient skepticism, especially pyrrhonism. Actively embracing the skeptical arguments of pyrrhonists, Nietzsche sought to destroy all kinds of dogmatism. His perspectivism is just a repetition of the pyrrhonist trofen(forms of argument). In practical terms, however, Nietzsche severely criticizes the pyrrhonists as weak exhausted men pursuing ataraxia. Nietzsche calls for a dangerous life against a comfortable pyrrhonists who are trying to enjoy the tranquility of mind. But Sextus Empiricus would immediately challenge this criticism. He would equally criticize Nietzsche as a reckless dogmatist who leads life to anxiety. Both collide head-on. In this article, I will compare and analyze how the both agree and confront each other in terms of the way of life. Nietzsche's dangerous life is based on his unique theory, will to power. The pyrrhonists obviously would develop various skeptical arguments to disclose the weakness in the theory of will to power. But Nietzsche's justification for 'dangerous life' could be secured not in logical epistemological horizons, but his personal empirical truthfulness dimension. By constructing plausible disputes between Sextus Empiricus and Nietzsche, I would show how Nietzsche could avoid the pyrrhonist attack and why Nietzsche's 'dangerous life' be a new philosophical way of life that breaks away from old traditional philosophy.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니체 철학이 고대 회의주의와, 특히 피론주의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니체는 독단주의를 파괴하고자 하였으며, 이런 측면에서 피론주의의 논변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니체의 관점주의는 피론주의자들의 트로펜의 반복이다. 그러나 실천적인 측면에서 니체는 아타락시아를 추구하는 피론주의자들을 삶에 치쳐버린 자들이라고 혹독하게 비판한다. 마음의 평정을 향유하는 안락한 삶에 맞서 니체는 위험한 삶을 살 것을 촉구한다. 그러나 섹스투스 엠피리쿠스라면 이런 비판에 곧장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그는 니체가 삶을 불행으로 이끄는 무모한 독단주의자라고 마찬가지로 비판할 것이다. 양자는 정면으로 충돌한다. 양자가 삶의 방식과 관련해서 어떤 점에서 일치하고 또 대립하는지를 비교하고 분석하는 작업은 회의주의를 원용하려는 니체에게 있어서도, 또 니체를 포함하여 회의주의의 삶의 태도에 반대하는 철학자들을 공격하려는 섹수투스 엠피리쿠스의 입장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니체가 기리고 있는 위험한 삶은 그의 독특한 힘에의 의지론에 기초하고 있다. 피론주의자들은 힘에의 의지론을 조준하여 여러 회의적 논변들을 전개할 것이지만, ‘위험한 삶’에 대한 니체의 정당성은 논리적인 인식론적 지평에서가 아니라 그의 경험적 진실성의 차원에서 확보된다.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와 니체가 벌일 만한 논박들을 상정함으로써 나는 니체가 어떻게 피론주의자의 공격을 피할 수 있으며, 동시에 왜 니체의 ‘위험한 삶’이 유서 깊은 전통적인 철학과 결별한 새로운 철학적 삶의 길일 수 있는지를 보이고자 한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회의주의에 대해 니체는 그의 저작 곳곳에서 파편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는 때로는 근대의 회의주의를, 또 때로는 고대의 피론주의를, 그리고 자신의 실험적 회의주의를 혼란스럽게 논하고 있다. 이 연구 과제는 니체가 뒤섞어 놓고 있는 회의주의의 종류와 특성을 드러낼 수 있고, 그래서 회의주의 일반과 니체 철학과의 관계에 대해 체계적인 이해를 도울 수 있다.
    (2) 니체가 가장 깊이 그리고 장기간에 걸쳐 전폭적으로 수용한 회의주의는 고대 피론주의이다. 그래서 니체의 철학이나 회의주의를 이해하려면 고대 피론주의에 대한 검토와 분석이 먼저 요구되는 것이다. 고대 피론주의의 지식론과 실천론에 대한 고구는 우리나라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고대의 회의주의에 대한 철학적 의의를 환기시켜줄 수 있다. 그리고 고대 피론주의의 이론의 정치함과 체계성을 분석함으로써 이것과 관계하는 니체 철학의 의의나 새로움도 피상적인 수준을 넘어 부각할 수 있을 것이다.
    (3) 니체가 비판하고 있는 근대의 회의주의의 한계 역시 고대 피론주의의 회의적 논변들의 이론적 구조와 특성을 배경으로 해서만 드러날 수 있다. 고대 피론주의와 니체의 관계는 근대 회의주의와 근대 철학 일반의 특성이 어디에 있으며, 왜 니체가 이런 철학에 반대하는지를 알려줄 것이다.
    (4) 니체의 철학과 고대 피론주의 간의 긴밀한 유사성은, 고대 피론주의가 매우 다양하고 때로는 모순적이며 수수께끼 같은 니체의 진리론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 피론주의의 렌즈를 통한 이런 해명의 가능성은 좀처럼 다른 경로를 통해서는 확보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5) 서양철학사에서 자기지시적 모순에 가장 민감하고 예리하게 반응한 철학자들이 바로 고대 피론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자기논박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모든 독단주의를 물리칠 수 있는 여러 회의적 장치들을 고안해내었는데, 니체는 이것들을 자기 철학에 차용하였고, 해결책을 찾아내었다. 이로써 니체 철학과 고대 피론주의를 논의하는 가운데 철학에서 골치 아픈 문제로 여겨졌던 자기논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6) 고대 피론주의와 니체 철학에 대한 논구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산 철학자들 간의 공동적인 인식의 문제와 삶의 고민, 나아가 그들 간의 갈등을 드러내준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박제된 유물로서가 아니라 오늘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여러 시사점을 줄 수 있는 살아 있는 현장이 철학임을 이 논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색인어
  • 피론주의, 아타락시아, 니체, 힘에의 의지, 실험의 회의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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