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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와 담론 : 조상제사에 대한 인식과 실천의 변천
The Ritual and Discourse : The Transition in Understanding and Practice of the Ancestral Rites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연구과제번호 2018-S1A5A2A01-2018S1A5A2A01035749
선정년도 2018 년
연구기간 2 년 (2018년 07월 01일 ~ 2020년 06월 30일)
연구책임자 이숙인
연구수행기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는 조상제사에 대한 인식과 실천의 변화를 조선사회 전 시기를 통해 구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제사는 대부분의 문화에서 발견되는 인간 보편의 행위이지만 그 행위를 구성하는 의미와 형식, 사회적 기능에서는 차이가 있다. 유교식 조상제사 또한 불변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정신과 맞물려 변화하고 재구성된 역사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조상제사는 형식 및 의미의 변천을 겪으면서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의례이다. 한편 제사는 산업 형태와 삶의 방식이 바뀌고, 가족의 의미가 재편되는 가운데 가족 갈등이나 젠더 갈등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조상제사를 변화와 재구성의 역사로 접근하여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논증함으로써 제사에 대한 고정된 인식을 벗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한다.
    유교식 제사의 역사는 유교를 지배이념으로 한 조선 건국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교 이념으로 사회를 재편하면서 일상의례인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유교화가 추진되었다. 하지만 위로부터 시작된 변화가 풍속이 되기까지는 긴 세월이 필요했다. 의례의 변화는 사회의 복합적인 맥락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그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예설(禮說) 또는 예론(禮論)이라고 하는 예(禮) 담론이다. 즉 제사에 대한 이론적 주장을 담은 제례설은 단순히 이론적 주장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 실천을 전제로 한 것이다. 가까이는 한 개인의 일상적인 행위에서부터 크게는 사회의 조직과 규범을 규제하는 기능이 있다. 다시 말해 제례 담론은 제사의 전범(典範)을 제시하여 제사를 재구성하도록 하는 효과를 가진다. 그런 점에서 제례에 대한 담론적 연구는 조선시대 제례문화의 역동성을 드러내기에 유용하다.
    현대사회 조상제사의 형식과 의미가 조선시대의 그것과 동일한 것이 아니듯이 조선시대 내에서도 시기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예컨대 부계가족을 절대적 기준으로 한 제사라는 점에서 조선후기는 오히려 현대와 더 가깝다. 반면에 17세기 중반 이전의 조선전기에 행해진 시속(時俗)의 제례는 이질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아들딸 구별없이 돌아가며 지내는 윤회 봉사나 성별과 무관하게 관계의 친밀도에 따라 제물에 차이를 두는 것 등의 예를 들 수 있다. 조선 전기와 후기의 차이는 제사의 시간과 공간, 제사의 대상과 주체, 제사의 의미와 형식 등의 문제를 통해 드러난다. 이에 제례 담론의 변화는 조선 전기와 후기를 비교함으로써 보다 분명해질 것이다.
    이 연구는 ‘제사와 젠더’라는 주제에 천착하며 제례 담론에서 여성의 위치를 규명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이다. 조상제사가 조상의 죽음과 그 의미를 끊임없이 환기시켜 살아있는 후손과의 구조적인 연대를 모색하는 의례라고 한다면 성별에 차등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유교적 조상의 범주가 부계친으로 정착된 것은 제사를 통한 여성들의 배제는 예정된 것이었다. 이에 여성을 주변화시킨 의례의 역사적 맥락을 추적할 것이다. 한편 조상제사에서 젠더 문제는 조상의 범주 뿐 아니라 음식 봉양이 의례의 핵심이라는 데서 나왔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례가 주로 여성 노동으로 구성되지만 그 노동을 평가하는 제례 담론은 여성을 소외시키기에 충분하다. 이에 조선후기 제례 담론에서 여성의‘봉제사’ 담론을 집중적으로 분석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조상제사는 이념이기보다 생활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종교가 다를 경우 변형된 형식이라도 조상제사에 대한 무게는 지속되고 있다. 이에 본 연구는 우리의 정서와 습속의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는 제례와 그 담론의 역사를 계보학적으로 추적하여 성찰적 자료로 삼고자 한다.
  • 기대효과
  • 1) 의례란 불변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정신과 맞물려 변화하고 재구성된다는 점에 착안한 본 연구는 조선시대 제례문화의 또다른 모습을 제공할 것이다. 여기서 정형화된 엄숙한 이미지의 제사의례가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서 형성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제사가 나눔과 소통, 교감과 대화, 고해와 치유의 기능으로 작용한 역사적 사례는 우리 시대를 성찰하는 자원이 될 것이다.
    2) 조선시대의 제례 담론은 일정한 사회적 목적을 가지고 창출된 지식체계이다. 이것은 제사에 관한 해석적 틀 또는 인지적 틀을 제공함으로써 사회 구성원들로 하여금 제사를 인식하고 제사를 재구성하는 효과를 낳았다. 이 담론 구성의 과정을 추적함으로써 우리시대가 요구하는 방향으로의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다.
    3) 조상제사는 형식 및 의미의 변천을 겪으면서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의례이다. 그런 가운데 제사로 인한 가족 갈등과 젠더 갈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것은 산업의 형태와 삶의 방식에 제사의례가 부응하지 못한 결과이다. 이에 조상제사를 변화와 재구성의 역사로 접근하고,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확인함으로써 변화의 가능성을 타진한 본 연구는 제사에 대한 인식의 유연성을 확보하는데 유용한 자료가 될 것이다.
    4) 제례 문화의 형성을 담론의 과정으로 접근한 본 연구는 계보학적 방법을 통해 배제되었던 가치들을 재평가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로부터 얻은 결과물은 오늘 우리의 제사 문화에 유용한 질문을 던질 것이다.
  • 연구요약
  • 조선시대의 제례 담론은 17세기 중반을 기점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뉜다. 성리학의 심화와 그에 따른 의식의 변화는 제사 담론의 변화로 이어졌다. 2년에 걸쳐 진행될 이 연구는 공통된 주제를 통해 두 시대를 비교함으로서 그 차이를 드러낼 것이다. 먼저 제사의 사회적 의미와 관련하여 각기 다른 사상적 맥락을 분석하고 각 시대가 직면한 유교 제례의 재구성에 주목한다. 그리고 주자가례를 통한 제사 관행 변화와 특징을 시대별로 규명한다. 제사와 젠더 문제, 각 시대별 제례 담론의 특징을 중심으로 구성될 것이다.
    1) 제례 담론의 시대적 맥락을 분석하는데, ① 1차년도에는 조선전기 제례 담론은 ‘의례의 유교화’와 불교 제례의 극복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주목했다. 효의 실천과 결부된 제사는 그 행위를 정당화하는 이론적 근거를 필요로 하는데, 경전을 통해 제사의 근본 원리를 확인하는 과정이 전개된다. 15~6세기 자료를 통해 불교 배척과 유교식 제사의 이론화를 분석하고 해석한다. ② 2차년도에는 제례 담론의 조선후기적 맥락으로 예를 통한 질서 모색에 주목하고, 예송(禮訟)을 거쳐 제례 담론이 정교해지면서 교조화하는 경향을 확인한다. 또 천주교에 대응하는 유교 제사의 이론적 재무장이 대두되는 현상에 주목한다.
    2) 주자가례를 통한 제사 관행의 변화와 특징을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규명한다. ① 1차년도에는 조선전기 주자가례의 보급과 실천의 현황을 다룬다. 주자가례를 전범(典範)으로 한 의례의 변환은 조선전기의 주요 사안이었다. 주자가례를 정례(正禮)로 하여 기존에 유통되던 속례(俗禮)를 대체하고자 했다. 가묘의 설치를 들 수 있는데, 기존에 통행하던 아들딸의 윤회봉사를 규제하는 효과를 낳았다. 한편 국속과 갈등하는 제례에 대해서는 정례(正禮)와 속례(俗禮)의 병용이 추진된다. ② 2차년도에는 조선후기 주자가례의 정착과 변용을 다룬다. 위로부터 추진된 주자가례의 도입과 실천에 앞장 선 사람들은 사실 주자학을 본령으로 한 당시의 지식인들이다. 제사는 풍속 의례이기에 예학자들의 의도대로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주자가례가 정례(正禮)로 확정되고 지식인들이 이에 부응함으로써 하나의 문화 전범(典範)이 되었다. 주자가례와 갈등하는 시속에 대해 예학자들은 주자가례를 예(禮)으로 여기고 시속을 비례(非禮)로 여기는 경향이었다. 또한 조선후기에는 주자가례의 정착으로 존조경종(尊祖敬宗)의 정신이 강조되고, 부계(父系) 문중이 권력화된다. 한편 주자가례적 예속을 지향하지만 현실적인 실현이 불가능한 경제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여기서 다양한 변례(變禮)가 창출된다.

    3) 유교적 조상제사에서 여성의 위치를 구체적인 문헌 자료를 통해 확인하고 해석하는 작업이 시대별로 추진된다. ① 1차년도에는 남녀가 동등한 몫으로 조상제사에 임해 온 사례를 조명한다. 윤회봉사와 외손봉사를 통한 남녀 각각의 제례 관행과 감정을 16세기의 󰡔묵재일기󰡕와 17세기의 󰡔병자일기󰡕를 통해 살펴본다. 한편 17세기 전반의 남평조씨는 생일다례․기제․절제의 이름으로 1년에 30여 건의 제사를 지냈다. 그녀에게는 13세와 2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두 아들과 두 며느리가 있다. 두 아들과 두 며느리의 생일다례와 기제사를 지내는 날은 조씨의 가슴 속 응어리를 풀어내는 날이다. 죽은 자들과의 소통은 조씨의 한을 해소하는 정화(淨化) 기제였다. ② 2차년도에는 조선전기에 추진된 제례설의 활성화와 제례학의 발달로 여성이 제사에서 주변화되고, 모계친(母系親)이 배제되는 양상을 논한다. 조선후기에는 주자가례식 제사가 국속과 갈등하면서 현실에 부합하는 쪽으로 변형이 일어나지만, 제사의 대상과 봉사자에 대한 규정은 그대로 수용한다. 즉 부계친 사대(四代)를 적장자가 봉사한다는 규정이다. 여기서 여계친 조상은 배제되고 윤회봉사가 규제를 받고 딸의 봉사가 금지된다. 조선후기 제사 담론은 여성을 적극 활용하면서 배제하는 이중의 전략으로 구성되는데, ‘봉제사’ 담론을 통해 논증한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는 조상제사에 대한 인식과 실천의 변화를 조선사회 전 시기를 통해 구명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제사는 대부분의 문화에서 발견되는 인간 보편의 행위이지만 그 행위를 구성하는 의미와 형식, 사회적 기능에서는 차이가 있다. 유교식 조상제사 또한 불변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정신과 맞물려 변화하고 재구성된 역사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조상제사는 형식 및 의미의 변천을 겪으면서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의례이다. 사회제도와 의식⋅문화의 수준에 따라 제사의 내용과 형식이 만들어지고 관습이 되면서 의례화된다. 이 의례는 사회적 신분을 기호화하고, 정치적 경제적인 분배문제를 해결하며, 성별 권력관계를 관철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조선시대 전 시기의 제례 담론을 분석했다.
    조선시대의 제례 담론은 17세기 중반을 기점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이에 본 연구는 조선을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각 제례담론의 특징을 규명하는데, 공통된 주제를 통해 접근했다. 첫째 제례 담론의 시대적 맥락으로 전기의 불교 극복와 후기의 천주교의 도전 등 유교적 제사가 타종교와 만나는 지점에 주목했다. 둘째 주자가례를 통한 제사 관행의 변화와 특징을 규명하였다. 셋째 조상제사에서 여성의 위치를 구체적인 문헌 자료를 통해 확인하고 해석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넷째 조선시대 제례 담론의 시대별 특징을 정리했다. 전기가 제사에 관한 용어 및 개념이 설명되고 정립되는 일련의 과정이었다면 후기는 제례가 형식화하면서 변례(變禮)를 모색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 영문
  • .This study aims to shed light on changes in the perception and practice of ancestral rites throughout the Joseon Dynasty. Although ancestral rites are a universal human activity found in most cultures, there are differences in the meaning, form, and social functions of the practice. The ancestral rites of Confucianism have also been changed and reconstructed according to the spirit of the times, not in an immutable form. Above all, ancestral rites have continued to this day through changes in form and meaning. Depending on the social system, consciousness, and level of culture, the content and form of the rite are made. This form also symbolizes social status, solves political and economic distribution problems, and carries out gender power relationships.
    The ritual discourse is very different from the early and late Joseon period. This study was approached through a common theme in identifying the characteristics of the ritual discourse in each period. First, as the background of the ritual discourse, it was noted that Confucianism met with other religions, such as overcoming Buddhism in the early Joseon period and responding to Catholicism in the late Joseon period. Second, the changes and characteristics of ritual practices were identified through Zhuxi's Family Rituals. Third, I checked and interpreted the status and role of women in the ancestral rites of Confucianism. Lastly, I organized the characteristics of the ritual discourse of the Joseon Dynasty according to each period.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조상제사에 대한 인식과 실천의 변화를 조선사회 전 시기를 통해 구명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제사는 대부분의 문화에서 발견되는 인간 보편의 행위이지만 그 행위를 구성하는 의미와 형식, 사회적 기능에서는 차이가 있다. 유교식 조상제사 또한 불변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정신과 맞물려 변화하고 재구성된 역사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조상제사는 형식 및 의미의 변천을 겪으면서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의례이다. 산업 형태와 삶의 방식이 바뀌고 가족의 의미가 재편되는 가운데, 이 유교식 제사는 가족 갈등이나 젠더 갈등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조상제사를 변화와 재구성의 역사로 접근하여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논증함으로써 제사에 대한 고정된 인식을 벗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했다.
    유교식 제사의 역사는 유교를 지배이념으로 한 조선 건국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교 이념으로 사회를 재편하면서 일상의례인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유교화가 추진되었다. 하지만 위로부터 시작된 변화가 풍속이 되기까지는 긴 세월이 필요했다. 의례의 변화는 사회의 복합적인 맥락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그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예설(禮說) 또는 예론(禮論)이라고 하는 예(禮) 담론이다. 즉 제사에 대한 이론적 주장을 담은 제례설은 단순히 이론적 주장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 실천을 전제로 한 것이다. 가까이는 한 개인의 일상적인 행위에서부터 크게는 사회의 조직과 규범을 규제하는 기능이 있다. 다시 말해 제례 담론은 제사의 전범(典範)을 제시하여 제사를 재구성하도록 하는 효과를 가진다. 그런 점에서 제례에 대한 담론적 연구는 조선시대 제례문화의 역동성을 드러내기에 유용하다.
    현대사회 조상제사의 형식과 의미가 조선시대의 그것과 동일한 것이 아니듯이 조선시대 내에서도 시기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예컨대 부계가족을 절대적 기준으로 한 제사라는 점에서 조선후기는 오히려 현대와 더 가깝다. 반면에 17세기 중반 이전의 조선전기에 행해진 시속(時俗)의 제례는 이질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아들딸 구별없이 돌아가며 지내는 윤회 봉사나 성별과 무관하게 관계의 친밀도에 따라 제물에 차이를 두는 것 등의 예를 들 수 있다. 조선 전기와 후기의 차이는 제사의 시간과 공간, 제사의 대상과 주체, 제사의 의미와 형식 등의 문제를 통해 드러난다. 이에 제례 담론의 변화는 조선 전기와 후기를 비교함으로써 보다 분명해질 것이다.
    이 연구는 ‘제사와 젠더’라는 주제에 특별히 천착하여 제례 담론에서 여성의 위치를 규명하고자 했다. 조상제사가 조상의 죽음과 그 의미를 끊임없이 환기시켜 살아있는 후손과의 구조적인 연대를 모색하는 의례라고 한다면 성별에 차등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유교적 조상의 범주가 부계친으로 구성되었다는 점, 유교 제사가 음식 봉양을 핵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제사를 통한 젠더 문제는 예견된 것이었다. 여성을 통해 제사 담론을 볼 때 전기와 후기는 다양한 차이를 보이는데, 외손봉사와 윤회봉사의 조선전기와 부계친과 장자단독봉사의 조선후기가 비교된다.
    제사는 그 대상이 누구이든지간에 참여하는 사람은 제사의 대상과 혈연적⋅사회적으로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사회제도와 의식⋅문화의 수준에 따라 제사의 내용과 형식이 만들어지고 관습이 되면서 의례화된다. 이 형식을 통해 사회적 신분을 기호화하고, 정치적 경제적인 분배문제를 해결하며, 성별 권력관계를 관철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조선시대 전 시기의 제례 담론에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조상제사는 이념이기보다 생활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종교가 다를 경우 변형된 형식이라도 조상제사에 대한 무게는 지속되고 있다. 이에 본 연구는 우리의 정서와 습속의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는 제례와 그 담론의 역사를 계보학적으로 추적하여 성찰적 자료로 삼고자 한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차년도에 수행한 연구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제례 담론의 조선전기적 맥락에 주목하여 ‘의례의 유교화’라는 과정과 불교 제사의례의 극복이 그 시대의 과제라고 보았다. 유교적 제사로의 변환을 추진하면서 경전을 통해 제사의 근본 원리를 확인하는 담론이 활발하게 전개된다. 정도전의 󰡔불씨잡변󰡕과 15~6세기 실록 자료를 통해 불교 배척과 유교식 제사의 이론화를 분석하고 해석했다. 2) 조선시대 제사 담론의 중심에 있는 주자가례의 조선전기적 전개를 규명했다. 주자가례를 정례(正禮)로 하여 기존에 유통되던 속례(俗禮)를 대체하고자 했다. 즉 주자가례를 통한 관혼상제의 개혁을 시도하는데,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이 제례 즉 가묘(家廟)의 설치였다. 이에 대한 여러 가지 담론을 정리하고 해석했다. 3) 유교적 조상제사에서 여성의 위치를 규명했다. 제례에서 여성의 위치는 조선전기와 조선후기가 현격하게 달랐는데, 전기는 남녀가 동등한 몫으로 조상제사에 임해 온 사례가 많았고, 조상에 대한 기억과 교감이 중시되었다. 조선전기 제사 관행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 16세기의 󰡔묵재일기󰡕와 17세기의 󰡔병자일기󰡕를 통해 윤회봉사와 외손봉사의 구체적 사례를 확인하고, 여성들이 제사에 부여하는 의미와 성격을 규명했다. 4) 조선전기 제례 담론의 시대별 특징을 논했다. 제사에 관한 용어 및 개념이 정립되면서 제례학이 출현한 것이다.
    2차년도에 수행한 연구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조선후기의 시대적 맥락으로 양란을 통한 질서 모색으로 보았고, 이에 예송(禮訟)을 거쳐 제례 담론이 정교해지면서 교조화되는 것을 자료를 통해 확인했다. 여기에서 제례의 본질적 문제보다 남인과 서인의 정치적 갈등이 제례론에 반영된 것으로 보았다. 또 천주교에 대응하는 유교 제사의 이론적 재무장의 현상에 주목했다. 조선후기의 제사 담론에는 천주교의 천당지옥설, 상제설에 대응논리로서 풍부한 이론으로 재무장되는 특징이 있는데, 이를 집중적으로 규명했다. 2) 조선시대 제사 담론을 이끈 주자가례가 조선후기에는 어떤 양상을 보이는가에 주목했다. 이 시기 주자가례는 정착과 변용이 특징인데, 주자가례와 어긋나는 제사를 설행한 자에 대해 죄를 묻는가하면, 존조경종(尊祖敬宗)의 정신이 강조되고, 부계(父系) 문중이 권력화된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주자가례를 행할 수 없는 사람들이 속출하면서 각 가정의 형편에 맞는 제례를 모색하는 움직임이 나타나는데, 여기서 다양한 변례(變禮)가 창출된다. 3) 조선전기에 추진된 제례설의 활성화와 제례학의 발달로 여성이 제사에서 주변화되고, 모계친(母系親)이 배제되는 양상을 논한다. 조상제사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기제들을 찾아내어 역사적 맥락을 통해 해석한다. 한편 여자가 죽은 후 제사를 받으려는 것이 자연스런 욕망이 되고 있음을 18세기 초 신태영의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제문을 분석하여 그 의미를 분석했다. 조선후기는 성리학의 심화도 지식이 확산되면서 여성 성리학자가 출현한다. 대표적인 학자로 임윤지당(1721~1793)과 강정일당(1772~1832)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의 예론을 검토했다. 4) 조선후기 제례담론의 특징을 규명했다. 먼저 제례에 관한 기존 예설을 통해 더욱 형식화하는 흐름과 변례(變禮)를 모색하는 흐름의 두 방향에 주목했다.
    본 연구의 결과물에 대한 활용 방안은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 의례란 불변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정신과 맞물려 변화하고 재구성된다는 점을 확인하는 데 주력한 본 연구는 새로운 제사 문화를 모색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조상제사로 인한 가족 갈등과 젠더 갈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은 산업의 형태와 삶의 방식에 제사의례가 부응하지 못한 결과이다. 이에 본 연구는 제사에 대한 인식의 유연성을 확보하는데 유용한 자료가 될 것이다. 2) 제사에는 나눔과 소통, 교감과 대화, 고해와 치유의 기능으로 활용된 역사적 사례를 통해 우리시대가 요구하는 방향으로의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다.
  • 색인어
  • .조상제사, 조선전기, 조선후기, 전근대, 유교, 의례, 제례, 제사, 제례학, 효, 사생관(死生觀), 귀신(鬼神), 혼백(魂魄), 기(氣), 주자가례, 속례(俗禮), 불교, 천주교, 제찬(祭饌), 정례(正禮), 인정(人情), 교감, 소통, 명분, 의리, 가부장제, 총부, 윤회봉사, 외손봉사, 장자봉사, 시제(時祭), 묘제, 기제(忌祭), 생일제, 존조경종(尊祖敬宗), 부계친, 모계친, 봉제사(奉祭祀), 의례의 유교화, 예송, 의례의 교조화, 가례집람, 묵재일기, 미암일기, 병자일기, 계암일록, 이재난고, 격몽요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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