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금의 교부는 임대차계약이나 도급계약에서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으나 매매계약에서 가장 일반화되어 있다. 특히 부동산 매매계약에서는 매수인이 매매대금의 10% 정도를 계약금으로 수수하는 관행이 확립되어 있다. 계약금의 교부는 계약체결의 증거가 되기도 하고, ...
계약금의 교부는 임대차계약이나 도급계약에서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으나 매매계약에서 가장 일반화되어 있다. 특히 부동산 매매계약에서는 매수인이 매매대금의 10% 정도를 계약금으로 수수하는 관행이 확립되어 있다. 계약금의 교부는 계약체결의 증거가 되기도 하고, 약정해제권을 유보하기도 하며, 별도의 특약으로 계약위반에 대한 제재로서 위약금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계약금 교부에 대한 우리 민법학계와 판례의 일반적인 생각은 매매계약과 같은 주된 계약과 별도로 계약금의 교부를 위하여 체결되는 독립적 계약의 존재를 인정한다. 이를 널리 계약금계약이라고 하며, 그 법적 성격을 요물계약이라고 해석한다. 그리하여 계약금의 일부를 먼저 지급하고 잔액을 나중에 지급하기로 약정하거나 계약금 전부를 나중에 지급하기로 약정한 경우, 계약금계약은 성립하지 않았으므로 해약금 추정 규정인 민법 제565조 제1항에 따라 주된 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러한 태도는 민법 제565조 제1항의 해석이나 거래현실, 당사자의 의사에 비추어 타당하지 않으며 그 실익도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해약금 추정의 효력은 계약금 교부를 굳이 계약금계약이라든가 요물계약 내지 낙성계약이라 하지 않더라도, 주된 계약의 내용으로 계약금을 모두 교부하면 그 자체로서 발생하는 법률효과이기 때문이다. 계약금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매매대금의 일부이고, 분할하여 지급되는 대금 중 가장 선행하는 것으로서 특별한 의미가 있을 뿐이다.
민법 제565조 제1항은 ‘계약 당시에’ 계약금이 ‘교부’된 경우 ‘당사자간에 다른 약정이 없는 한’ 해약금으로 추정하므로, 교부자는 이를 ‘포기’하고 수령자는 그 배액을 ‘상환’하여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법해석의 일반원칙에 따를 경우 위 규정의 적용을 위하여 문리해석을 넘는 확장, 축소, 유추 등을 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계약금의 교부는 계약금이 전부 교부되어야 함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 일부가 교부되는 것을 포함하지는 않을 것이다. 해약금 추정의 법적 효과는 위 규정이 제시하고 있는 법률사실, 즉 계약금의 교부에 따른 것일 뿐이다. 그 외에 독립적인 ‘계약금계약’이라든가 계약금계약의 ‘성립’ 등은 불필요하고, 요물계약이나 낙성계약의 성질에 따른 논리구성 역시 무의미하다.
현실적인 거래에서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지급하는 중도금이나 잔금이 대금의 일부라는 점에 의문이 없는 것처럼 계약금 역시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다만 계약금은 그 중 가장 먼저 지급되는 것으로 증약금, 해약금, 별도의 위약금약정과 그에 대한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되는 효과가 발생될 뿐이다. 그러므로 계약금의 교부를 반드시 주된 계약과 별도로 체결되는 ‘계약’으로 볼 필요는 없으며, 계약금계약이 ‘성립’되어야 해약금 추정의 효력이 발생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계약금을 교부하면서 매매계약과 별도로 ‘계약금의 지급에 관한 계약’을 체결한다는 의사를 가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매매계약의 내용으로 전체 매매대금을 계약금, 중도금, 잔금으로 분할하여 지급하기로 약정하는 정도의 의사를 갖는다고 해석하는 것이 현실에도 부합한다.
민법 제565조 제1항에서 계약금의 교부를 해약금으로 추정하는 효력은 주된 계약의 내용으로 계약금을 모두 교부하면 그 자체로서 발생하는 법률효과이고, 위 규정은 대륙법의 전통에 따라 우리 법전에 명문화된 것이다. 그렇다면 서구 역사에서도 과연 계약금의 교부가 주된 계약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계약의 성격을 가진 것이었을까? 이를 요물계약이나 낙성계약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우리나라의 전통, 즉 근대민법의 시행 전에 한반도에 존재했었던 계약금 교부의 역사적 의미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리고 현재 외국의 입법례, 즉 대륙법의 전통을 갖고 있는 독일민법이나 프랑스민법, 일본민법, 중국민법에서의 계약금 교부 역시 계약금계약으로 파악하고 있는가? 영미법의 태도 역시 동일한가? 유럽의 계약법통일을 위한 원칙이나 기준초안, 즉 PICC, PECL, DCFR, CESL 등에서 계약금의 교부는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가? 계약금 교부의 역사나 비교법에 관한 선행연구들은 지엽적이고 단편적으로 이루어져 왔고, 특히 역사적 의미에서 로마법의 연구는 후술하는 바와 같이 그 근거들이 불명확하여 정확한 이해를 어렵게 하고 있다. 하나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해가 학설의 입장에 따라 너무 다르다. 결국 자신들의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로마법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이에 대한 집중적이고 시급한 연구가 필요한 이유이다.
서구 역사에서 계약금은 민법의 변방적 존재(Randexistenz)로 취급되어 깊이 있는 논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다. 근대민법에 이르러 거의 모든 계약을 낙성계약으로 취급하는 원칙이 정립되면서 현실적으로 교부되는 계약금의 수수에 대해서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독일민법 제336조 제1항은 “계약체결에서 계약금으로 교부된 것은 계약체결의 표지로 인정된다.”, 제2항은 “계약금은 의심스러운 경우 해약금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규정하여, 계약금에 대하여 증약금의 의미를 부여하였을 뿐 이를 해약금(Reugeld)으로 보지 않는다는 명문규정을 두고 있다. 스위스채무법 제158조 제1항 역시 “계약체결에서 계약금으로 교부된 것은 계약체결의 증거로 간주되고 해약금이 아니다.”, 제3항 “해약금이 약정된 경우 교부한 자는 이를 포기하고 수령자는 배액을 상환하여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제3항에서는 우리민법과 같이 계약금의 포기 또는 배액상환 규정을 두지만, 제1항에서는 계약금을 증약금으로 볼 뿐 해약금으로 보지 않는 점에서 독일과 동일하다.
반면 프랑스민법 제1590조는 “당사자 사이에 예약금의 지급과 함께 매매예약이 약정된 경우 교부자는 예약금을 포기하고 수령자는 그 배액을 상환함으로써 매매예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매매의 예약금(les arrhes)이 수수된 경우 교부자는 예약금을 포기하고 수령자는 그 배액을 상환함으로써 매매예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예약금을 해약금으로 추정한다. 계약금의 포기와 배액상환을 규정한 점에서 우리민법과 유사하지만, 예약과 관련된 점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일본민법 제557조 제1항은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계약금을 교부한 때에는 당사자의 일방이 계약의 이행에 착수하기까지는 매수인은 그 계약금을 포기하고 매도인은 그 배액을 상환하여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계약 당시에’, ‘당사자 간의 다른 약정이 없는 한’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지 않고 있는 점이 우리와 다르지만, 실질적인 내용은 매매계약의 계약금을 해약금으로 추정하는 점에서 동일하다. 한편 중국은 합동법(계약법) 제115조에서 계약금에 관하여 규정하고, 제114조에서 위약금을, 제116조에서 계약금과 위약금을 동시에 약정한 경우의 선택을 규정할 뿐, 별도의 해약금 추정 규정은 없다.
이들 외국법의 내용을 살펴보면, 일본민법이 우리민법과 가장 유사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일본민법이 서구의 어떤 입법례를 계승한 것인지 명확하게 밝힌 논문은 없다. 이에 대한 연구가 시급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