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다양한 비인간(non-humans) 또는 유사인간(subhumans) ‘생명체가 사는 세계’(inhabited worlds)로서의 초기 근대 ‘신세계’(new worlds) 담론들에 대한 스위프트(Jonathan Swift)의 집요하고 치열한 상상적 전유를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의 전망 속에서 재조명함 ...
본 연구는 다양한 비인간(non-humans) 또는 유사인간(subhumans) ‘생명체가 사는 세계’(inhabited worlds)로서의 초기 근대 ‘신세계’(new worlds) 담론들에 대한 스위프트(Jonathan Swift)의 집요하고 치열한 상상적 전유를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의 전망 속에서 재조명함으로써, 본 연구자가 그동안 수행해온 선행 연구의 성과를 심화하여 단행본 연구서로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연구의 출발점이 되는 가설은, <걸리버 여행기>의 주인공 걸리버가 이른바 포스트휴먼 곤경에 직면한 인간 종의 ‘오래된 미래’라는 것이다. 영국인 남성 걸리버는 거듭되는 표류 끝에 당도하는 섬마다 인간과 비슷한 신체를 가진 유사인간 종을 만나지만 엄밀히 말하면 동일 종이 없는 유일한 존재가 된다. 인간 종이 없는/없어진 환경, 즉 글자그대로 ‘포스트-휴먼’ 환경에 반복적으로 던져지는 것이다. 게다가 그가 만나는 비인간이나 유사인간 종은 대개 신체적, 정신적 능력은 물론 심지어 도덕성에서까지 그를 압도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인간 종이 처한 포스트휴먼 곤경과 흡사하다. 이 연구는 본 연구자의 선행 중견연구(‘초기 근대의 달 위 “신세계” 픽션에 나타난 신학문과 문학의 융합적 상상력 연구’)의 후속 연구로, 초기 근대 유럽이 하늘과 땅에서 ‘발견’한 신세계‘들’과 그곳에 거주하는 다양한 비인간, 유사인간 생명체와 인간-기계 연속체들을 이른바 ‘포스트휴먼 신체들’(posthuman bodies)로 해석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에서 시작한다. 본 연구자의 선행연구에 따르면, 17세기 달세계 픽션은 초기 근대 신학문의 독특한 인식론의 산물인 동시에, 지상의 신세계(the New World) 아메리카 대륙 발견과 식민지배의 경험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이 모든 달 관련 담론에서 공히 ‘세계’, ‘신세계’, ‘또 다른 세계’라는 용어가 반복되는데, 이 때 ‘세계’는 ‘생명체가 사는 세계’를 뜻한다. 즉, 신세계에 대한 상상은 반드시 그 곳에 살고 있는 비인간 또는 유사인간 생명체에 대한 상상을 포함하고 있거나, 더 정확하게는 거주 생명체에 대한 상상에 의해 매개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또한 구세계 유럽의 백인 남성들이 신세계에서 ‘발견’한 비유럽인, 즉 인종화, 성별화, 자연화된 신세계 타자들에 대한 인식의 연장선상에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들이야말로 근대적 ‘휴먼’을 특권화하기 위해 강제로 지워졌다가 최근 포스트휴머니즘 논의에서 재소환되고 있는 포스트휴먼 존재들, 즉 포스트휴먼 신체들이라고 본다. 본 연구자의 선행연구가 포스트휴머니즘 논의와 필연적으로 만나는 또 다른 지점은 달세계 픽션이 상상하고 재현하는 인간-자연-기계의 관계이다. 17세기 자연철학은 물질과 운동에 관한 기계론을 확립시키고 이를 인간의 몸에까지 적용하였다. 물론 실제 인간-기계 연속체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카벤디쉬(Margaret Cavendish)나 스위프트의 작품에는 사실상 잠수, 비행, 포격기계 등의 전쟁기계(war-machines)나 소방기계로 작동하는 인간이나 인간-동물 혼성체가 등장한다. 또한 <걸리버 여행기> 3권의 비행 섬 라퓨터는 스위프트가 뉴턴(Isaac Newton)의 기계론을 전유하여 아예 거대한 비행기계로 바꿔버린 일종의 인공 달이다. 이 밖에도 17세기 천문학, 기계론, 신세계 여행기, 왕립협회의 인종학 등 다양한 초기 근대 담론의 핵심적 쟁점들이 문학적 상상력으로 재구성된 달세계 픽션은 포스트휴먼 상상력과 명백한 친연성을 가진다. 여기에 본 연구자가 그간의 다른 선행연구를 통해 축적한 젠더, 식민주의, 근대적 자아와 몸, 17세기 자연철학의 물질론 등에 관한 연구성과를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의 전망 속에서 종합하여, 가칭 <인간됨의 경계에서: 스위프트, 신세계, 포스트휴먼>이라는 단행본 연구서로 출판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