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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근대전환기 동아시아 사회와 여성의 역할
The Role of Women in East Asia in Early Modern and Modern Transition period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공동연구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8S1A5A2A03039242
선정년도 2018 년
연구기간 3 년 6 개월 (2018년 07월 01일 ~ 2021년 12월 31일)
연구책임자 배항섭
연구수행기관 성균관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공동연구원 현황 소현숙(한양대학교)
박은영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과제(근세·근대전환기 동아시아 사회와 여성의 역할)는 근세 및 근대전환기라는 격변의 시기에 동아시아(한중일) 사회의 여성들이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에 대해 당시 여성들이 처해있던 사회적 지위(법적, 제도적 환경)와 그에 대한 여성 자신들의 인식 등을 중심으로, 또 비교사적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본 과제에서는 여성들이 처해있던 사회적 위상이나 지위, 그에 대한 인식을 법이나, 제도 사회질서, 그리고 그것을 만든 지배이념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해보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최근 들어 적지 않은 성과가 제출되었지만, 여전히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연구상의 문제점을 남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다른 분야의 연구도 마찬가지이지만, 기존의 여성사 연구 역시 ‘근세’를 매우 암울한 시기, 혹은 ‘암흑시대’로 전제하는 반면, ‘근대’는 발전과 해방의 시대로 전제하고 있다. 근대중심주의는 계몽주의시대 이후 서구 지식인들에 의해 구성된 인식틀이지만,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연구자들의 인식을 지배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여성사에서는 전제하고 있는 전근대는 엄격한 신분제도와 가부장적 가족제도 및 국가 운영원리 아래에서 억압받는 여성상이 강조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반면 근대는 근세의 차별과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여성이라는 이미지가 강조되었다. 많은 여성사 연구가 근세의 차별과 억압으로부터 근대 이후의 여성 해방에 초점을 맞추는 ‘운동사’를 중심으로 수행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한편으로 타당한 면이 없지 않지만, 근세=억압, 근대=해방이라는 이분법적 이해가 고착하면서 근대 이후에도 여전히 남성/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질서 속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지속되는 근대의 어두운 면=차별적 속성을 간과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과제에서는 근세 및 근대이행기를 동시에 시야에 넣음으로써 전근대 내지 전통과 근대의 관계를 단절이나 일방적 발전이라는 시야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변화와 지속을 동시에 포착하고자 한다. 특히 근세 시기 각 사회의 구성 원리, 곧 법, 제도나 사회질서, 문화와 이념 등을 충분히 고려함으로써, 근세 고유의 사회운영원리와 그 속에서 차지하는 여성의 지위를 내재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이는 여성사 연구가 전근대=억압, 근대-해방이라는 근대중심적 인식을 넘어 새로운 이해를 향해 나아가는데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으로 판단한다.
    둘째, 비교사적 접근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최근들이 동아시아 여성사 관련 연구들이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여전히 일국사적 시야에 갇혀 있는 연구들이 대부분이다. 기왕의 연구들을 한 단계 진전시키고, 한중일 각국의 여성사에 대한 이해를 한층 다층적이면서도 선명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비교사적 접근이 요청된다고 생각한다.
    비교사의 목적은 일국사를 벗어나 한층 넓은 시야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한편, 자국의 역사를 보다 선명히 이해하려는 데 있다. 각 나라의 역사는 고유한 문맥을 가지고 전개되지만, 그 고유성을 발견하기 위해서도 비교사적 접근이 필요하다. 또 비교를 통한 새로운 발견이 역사에 대한 더 깊고 넓은 시야를 열어갈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비교사적 접근은 일국사적 관점에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분석방법이나 시야를 열어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종래 동아시아의 역사는 서구사회를 모델로 하여 이해해 왔지만, 최근에는 그러한 서구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서 동아시아 역사의 독자성과 특질을 해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 중국은 유교적 규범을 기축으로 근세사회를 구성해 갔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법과 제도, 사회질서나 지배이념 면에서 서로 다른 점도 적지 않다. 이러한 차이점은 서구로부터의 압력의 차이라는 외부적 요인에 더하여 한중일 삼국에 ‘근대’가 형성되는 경로나 과정, ‘근대’의 내용 등의 면에서 차이를 초래했다. 이러한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이해는 동아시아 각국의 여성사만이 아니라, 서구와 구별되는 동아시아 역사의 특질을 보다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 기대효과
  • 1. 학문적 기여도
    가. 근세 및 근대전환기 동아시아 여성을 단지 여성사 차원에서가 아니라, 법과 제도 및 사회질서와 문화라는 맥락, 또 전근대-근대라는 시간의 재배치라는 맥락과 연결되어 이해하는 것은 동시기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재인식을 넘어 각 사회를 한층 폭 넓고 깊은 지반과 관련하여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예컨대 전근대 여성사가 주로 사적 영역인 가족, 가정이라 범주에서 이루어진 것은 전근대 여성에 대한 선험적 이미지, 곧 여성들은 공적 영역에서 활동할 수 없었다는 잘못된 전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여성의 행위와 그에 대한 여성의 생각을 私的인 영역인 가족제도의 틀로만 재단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 내지 또 다른 기준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예컨대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에서의 여성의 위상에 대한 종합적 파악은 궁극적으로 전근대 동아시아 여성의 사회적 지위나 위상을 좀 더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며, 이는 여성사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조선사회의 운영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나. 이번 연구를 통해 ‘여성의 자기인식’이라는 면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기왕의 여성사에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던 연구영역을 새롭게 주목하고자 한다. 이것은 최근의 여성사 연구의 경향과도 조우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여성해방, 제도적, 운동적 측면과 더불어 많은 관심을 요하는 것은 바로 역사 속 여성 자신의 자기인식에 관해서이다. 이를 통해 주체화된 여성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작동방식에 관해 이해할 수 있으며, 또한 젠더 연구의 핵심적 주제이기도 한 여성의 일상사 연구에도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다. 동아시아 비교사적 접근은 한국과 일본, 중국에서 이루어진 기존 연구를 상대화하는 한편 향후 연구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으며, 나아가 ‘동아시아 여성사’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2. 사회적․교육적 기여도
    가. 페미니즘이 출판계의 화두가 되고 있을 정도로 오늘날 여성문제, 젠더문제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뜨겁다. OECD의 일원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에서의 성별 임금격차, 정치권에서의 여성의 영향력 등의 지표에서 세계 100위 안에 진입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젠더 불평등한 현실이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특히 가족 내의 불평등은 여성들로 하여금 결혼에 대한 거부, 출산 파업으로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 우리 가족의 현실을 돌아보고 보다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역사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필요하다. 동아시아 3국의 가족사에 대한 비교를 통해 한국사회가 걸어온 길을 비교사적 시각에서 살펴보고, 그 학문적 성과를 대중적으로 알리고 교육과정에 포함시킴으로써 대중의 인식을 재고하고 보다 평등한 사회의 수립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나. 본 연구과제의 연구성과를 교육과 연계시킬 필요가 있다. 대학에서의 교과목 개발, 또는 대중강좌의 개설은 교육과 연구를 연계를 도모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를 통해 학문 후속세대의 교육과 근세 및 근대전환기 여성에 대해 일반인들이 선험적으로 주입받았던 인식을 제고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
  • 연구요약
  • 여성사가 남성중심적 ‘보편주의’에 입각하여 규정되어 온 기왕의 역사인식이나 역사상을 극복하고,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추구한다는 점은 이미 상식이 되어 있다. 역사적 경험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은 과거에는 무시되거나 억압되었던 법이나, 제도, 사회질서와 문화 등을 주목하게 만든다. 이점에서 여성사는 기왕의 역사상을 재구성한다는 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분야일 수밖에 없다. 본 연구진은 여성사가 가진 이러한 의미를 충분히 전제로 한 위에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에 중점을 두고 연구 과제를 수행하고자 한다.

    1. 사회적, 공적 영역에서 여성의 지위나 역할을 전근대-근대를 연결하여, 또 지배이념, 그리고 그와 관련 법이나 제도, 사회질서라는 맥락 속에서 파악하고자 한다.
    최근의 여성사 연구는 젠더사적 관점에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역사 속’ 여성의 실상을 재해석할 필요를 제기하고 있다. 젠더 관념은 사회적 · 문화적 구축물이라는 점에서 젠더 정체성은 전적으로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근대-전근대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가급적이면 연결하여 바라보는 시각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각 시대의 여성의 모습을 당시의 사회 구조 속에서 분석하고 그들의 여성으로서의 자기인식이나 인식의 변천 등이 역사적으로 구성되는 방식을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근대중심적 역사인식이 전근대의 경험을 억압, 외면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여성과 관련한 전근대의 경험 역시 새롭게 조명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전근대 사회에서 여성은 원칙적으로 公的 영역에서 제외된 존재였다는 일반적 인식을 전제로 할 경우, 사회적 존재로서의 여성의 역사적 존재에 대한 관심을 사실상 외면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나 전근대 사회에서도 한중일 각국마다 독자적인 측명이 있지만, 각기 ‘공적 영역’에서 이른바 ‘사회적 활동’을 영위하던 여성층이 있었다. 이들에 대한 이해는 전근대는 물론 근대 이후의 여성의 사회적 지위나 변화양상이 가지는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는 데도 큰 의미를 가질 것이다.
    또 동아시아 근세 여성들 가운데는 민중운동이나 민간종교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거나, 민간종교를 직접 창도한 여성도 적지 않았다. 근대전환기가 되면 여성들의 활동이 활발해진다. 한국의 경우 근세에는 여성들의 활동이 중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하였지만, 근대전환기가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여성들이 민중운동이나 사회활동에 적극 가담하기 시작하였고, 최근에는 항일 의병운동에도 여성의병장이 나타날 정도로 여성들의 활동이 이전에 비해 활발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가 가지는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 그것을 법과 사회질서, 지배이념이나 문화와 연결하는 것은 물론, 전근대-근대의 연속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할 것이 요구된다.

    2. 동아시아 각국 간의 비교사 및 전근대-근대의 연속적/비교적 접근을 추구한다.
    비교사의 목적은 일국사를 벗어나 한층 넓은 시야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한편, 자국의 역사를 보다 선명히 이해하려는 데 있다. 지금까지도 비서구의 역사 연구는 끊임없이 ‘비교’에 유념하면서 이루어졌지만, 그 비교가 기본적으로 서구중심주의와 근대중심주의에 입각해 있었다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러한 연구는 서구와 근대를 특권화하고 그를 준거로 하여 역사의 발전단계를 가늠하는 방식이었다는 점에서 비교의 시각이 비대칭적이었다. 따라서 비교사적 접근에서 중요한 점은 서구와 근대를 준거로 한 비대칭적 방법을 극복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본 연구에서는 ‘전근대’와 ‘근대’의 관계에 대해 변화, 단절이라는 면뿐만 아니라, 지속 내지 연속이라는 면도 아울러 주목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근세 및 근대전환기 동아시아(한중일) 여성들의 지위를 법이나 제도, 지배이념과 관련하여 비교사적으로 이해할 뿐만 아니라, 좀 더 넓은 지평, 곧 근대중심적 역사인식과 관련해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보고자 한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는 동아시아 여성의 삶과 역사를 근세 및 근대 전환기라는 시기가 갖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양상에 주목하였다. 이를 통해 그동안 여성사의 주요 패러다임으로 작용했던 단선론적 역사인식을 극복하고 동아시아 여성의 삶과 역사를 보다 다층적인 차원에서 설명하는 틀을 제공하고자 하였다. 또 그동안 일국사적 시각에서 접근해 온 여성의 역사를 동아시아라는 맥락에서 비교사적 방법을 통해 새롭게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는 동아시아 여성의 삶을 틀 지워 온 구조가 어떻게 형성, 변경되었으며, 여성들은 이에 어떻게 대응해 갔는지 그 공통점과 차이점을 심도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일국사의 닫힌 관점을 벗어나 비교사적 연구가 활성화되고 있는 학계의 흐름과도 부합하는 본 연구는 향후 동아시아 비교사 연구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3명의 연구원이 수행한 연구 성과는 다음과 같다.

    연구책임자는 근대전환기 동아시아 민중운동과 민중종교에서 보이는 여성의 참여와 역할을 비교사적으로 접근하였다. 그 결과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보다 조선의 경우 민중운동과 민중종교 양쪽 모두에서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여성들의 참여와 활동이 약하였다는 점이다. 조선 후기 민중운동이나 민중운동에서 여성들의 활동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민중종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무당과 같은 여성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민중종교도 있었다. 그러나 그 영향이나 신도의 수가 많지 않았자. 19세기 중반부터 민란이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기 시작했지만, 여성들의 활동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1860년에 창도된 동학의 경우 남녀평등을 주장하였지만, 여성이 주도적으로 참요한 민간종교는 아니었다. 동학농민운동에서도 여성의 역할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는 이와 대조적이다. 중국에서는 18세기말에서 20세기 초반에 걸쳐 발발한 “백련교의 난(White Lotus Rebellion)”이나 태평천국운동(Taiping Rebellion), 의화단운동(Boxer Rebellion) 등에는 많은 여성들이 참여하였다. 지역에 따라서는 여성이 반란의 지도자가 되기도 했다. 별도의 여성부대를 구성하여 참전할 정도로 다수의 여성들이 참여하였다. 이외에도 도적집단이나 해적활동에서도 적지 않은 여성들이 핵심적 역할을 한 사례가 보인다. 일본 민중종교와 민중운동에서도 여성의 집단적 참여가 이루어졌다. 18세기 후반부터 민중운동에 여성들의 참여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9세기 초반 이후에는 여래교(Nyoraikyo), 천리교(Tenrikyo)나 오오모토교(Oomotokyo)처럼 여성이 교조로서 종교를 창도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공동연구원 1은 근대전환기 동아시아에서 가족법의 변화과정과 여성의 법적 지위 문제를 살펴보았다. 식민지를 겪은 한국, 제국주의 국가 일본, 반식민지 상태에서 사회주의 제도를 도입한 중국의 이혼법 조항을 비교 검토한 결과 식민지 조선의 이혼법이 가장 보수적이며 여성의 권리를 제약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음을 밝혀냈다. 이는 서구 근대를 모방하고자 하였으나 가족의 영역에서는 일본적인 것을 지키고자 했던 제국주의 일본의 보수적 법정책의 영향과 식민지적 차별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식민지시기 형성된 가족법은 호주를 중심으로 한 남성중심의 위계적인 성격을 담고 있었으며 조선의 ‘관습’을 존중한다는 미명 하에 일본에서는 인정되었던 개인의 권리들이 부정되었다. 해방 이후의 가족법개정운동은 가족법의 탈식민 과정이자 식민지시기 형성된 ‘관습 존중’이라는 가족법 구성의 기본 원리가 해체되고 개인의 결정권과 인권을 존중하고 민주주의와 양성평등이 가족법 구성의 주요한 원칙으로 정립되어 간 과정이었다.

    공동연구원 2는 근세, 전환기, 19세기 말이라는 각 시기별 일본 여성의 자기 인식을 살펴보는 것을 통해 역사 속 여성의 모습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고자 하였다. 근세 일본의 여성 지식인 다다노 마쿠즈는 스스로 지식인이라는 자기 인식을 형성함으로써 당시 여성들이 들어갈 수 없었던 ‘공적 영역’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막말유신의 전환기를 살았던 니지마 야에는 정치적 주체로 각성하고 적극적으로 정치적 행위에 나아갔지만, 그가 마주한 근대는 차별과 억압의 시작이었다는 점에서 기존 여성사 연구의 근세=억압, 근대=해방이라는 이분법적 이해를 전복시켰다. 또한 19세기 말 여성기자로서 시미즈 시킨은 메이지 천황제 가족 국가체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규범적 여성상인 ‘양처현모’의 논리에 균열을 일으킴으로써, 근대국가 확립기 일본 사회의 여성에 대한 젠더 규범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 영문
  • This study focused on the complex and multi-layered aspects of the modern and modern transition periods of the life and history of East Asian women. Through this, it was intended to overcome the single-track perception of history, which has served as a major paradigm in women's history, and to provide a framework to explain the life and history of East Asian women in a more multi-layered dimension. In addition, the history of women, which has been approached from a national historical perspective, was attempted to be newly identified through a comparative historical method in the context of East Asia. This is to understand in depth the commonalities and differences of how the structure that has framed the lives of East Asian women has been formed and changed, and how women have responded to it. This study, which is consistent with the trend of academia, where comparative history research is being activated beyond the closed perspective of national history, will contribute to the development of comparative history research in East Asia in the future. The research results conducted by three researchers are as follows. The research manager approached the participation and role of women in the East Asian popular movement and popular religion in the modern transition period in a comparative historical way. As a result, the most important thing is that in the case of Joseon, women's participation and activities were weaker than those of China and Japan in both the popular movement and the popular religion. Women's activities in the popular movement or the popular movement in the late Joseon Dynasty are rarely revealed. The same was true of popular religion. There was also a folk religion in which women such as shamans played a leading role. But there wasn't much influence or number of believers. Popular revolts began to occur very frequently in the mid-19th century, but women's activities are rarely revealed. Donghak, founded in 1860, advocated equality between men and women, but it was not a popular religion in which women took the initiative. The role of women in the Donghak Peasant Movement is almost invisible. China and Japan are in contrast. In China, many women participated in the "White Lotus Rebellion," the Taiping Rebellion, and the Boxer Rebellion, which broke out in the late 18th and early 20th centuries. Depending on the region, women also became leaders of the rebellion. A large number of women participated in the war by forming a separate women's unit. In addition, there are cases in which not a few women played a key role in bandit groups and pirate activities. Women's collective participation was also made in Japanese popular religion and popular movement. In the late 18th century, women began to participate in the popular movement. After the early 19th century, there were many cases in which women, such as Nyoraikyo, Tenrikyo, and Oomotokyo, initiated religion as doctrines

    Researcher 2 examined the process of changing family law and the legal status of women in East Asia during the modern transition period. A comparative review of the provisions of the divorce law of colonial Korea, the imperial Japan, and soviet China, revealed that the divorce law of colonial Korea was the most conservative and restricted women's rights. This is because the influence of imperial Japan's conservative legal policy and colonial discrimination, which tried to imitate Western modernity but tried to protect Japanese values in the family, were reflected. In the end, the family law in Colonial Korea was hierarchical centered on HoJu, and individual rights recognized in Japan were denied under the guise of respecting Korea's "customs." The family law revision movement after liberation was a process of decolonization of family law. In other words, it was a process in which the basic principle of the constitution of the family law of ‘respect for customs’ formed during the colonial period was replaced by human rights, democracy, and gender equality.

    Researcher 2 attempted a more positive interpretation of women in history by examining the self-perceptions of Japanese women during each of these periods: the premodern era, the modern transition period, and the late 19th century. Tadano Makuzu, a female intellectual in premodern Japan, was able to enter the ‘public sphere’ that women of her time were not allowed to enter by forming a self-perception as an intellectual. Niijima Yae, who lived at the transition period of the Meiji Restoration at the end of the Edo period, awakened as a political subject and actively engaged in political activities, but the modern period she faced was the beginning of discrimination and oppression, thus overturning the dichotomous interpretation of premodern and modern periods in previous women's history research. Finally, Shimizu Shikkin, a female reporter at the end of the 19th century, created a crack in the logic of ‘good wife and wise mother,’ a female norm necessary to maintain the family-state system centered on Emperor Meiji, and raised a question about gender norms toward women in Japanese society during the establishment of the modern state.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의 목적은 동아시아 여성의 삶의 변화를 법과 제도, 사회질서와 문화, 자기인식이라는 넓은 문맥 속에서 검토함으로써 여성의 삶과 가부장적 차별 질서를 깊이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근세‧근대전환기 동아시아 각국의 역사와 문화 자체를 새롭게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데 있었다.
    연구책임자는 근대전환기 동아시아 민중운동과 민중종교에서 보이는 여성의 참여와 역할에 대해 비교사적으로 접근하였다. 비교의 결과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의 경우 민중운동과 민중종교 양쪽 모두에서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여성들의 참여와 활동이 약하였다. 조선 후기 민중운동이나 민중운동에서 여성들의 활동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조선후기에 무속 내지 ‘민간종교’와 결합되고, 또 여성이 주도하거나 주모자로 가담하여 일어난 사건이 몇 개 있었다. 그러나 그 영향이나 신도의 수가 많지 않았고, 19세기 중반부터 민란이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기 시작했지만, 여성들의 활동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1860년에 창도된 동학의 가르침에는 인간평등과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내용이 내포되어 있었고, 교도 가운데는 여성들도 많았지만, 동학농민운동에서 여성이 농민전쟁에 참가한 사례는 보이지 않는다.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는 이와 대조적이다. 중국에서는 18세기말에서 20세기 초반에 걸쳐 발발한 “백련교의 난”이나 태평천국운동, 의화단운동 등에는 많은 여성들이 참여하였다. 지역에 따라서는 여성이 반란의 지도자가 되기도 했다. 별도의 여성부대를 구성하여 참전할 정도로 다수의 여성들이 참여하였다. 이외에도 도적집단에서도 적지 않은 여성들이 핵심적 역할을 한 사례가 보인다. 일본에서도 중국과 비숫하였다. 18세기 후반부터 민중운동에 여성들의 참여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9세기 초반 이후에는 여래교 오오모토교처럼 여성이 교조로서 종교를 창도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본 연구에서는 식민지를 겪은 한국, 제국주의 국가 일본, 반식민지 상태에서 사회주의 제도를 도입한 중국의 사례를 비교 검토하여 근대 초기 한국에서 형성된 가족법의 특징과 그 젠더적 함의를 살펴보고 한국에서 해방 이후 식민지 가족법이 온존, 변경되어 간 맥락을 조망해 보았다. 가족법 중 특히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난 것은 이혼법이었다. 근세 동아시아에서 이혼은 남편이 아내를 버리는 행위를 의미했고 여성은 이혼을 제기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지만, 20세기 초 가족개혁과 결혼이혼의 자유화 속에서 여성의 이혼청구권이 인정되어 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중일의 이혼법 조항을 비교해 보았을 때, 식민지 조선의 이혼법이 가장 보수적이며 여성의 권리를 제약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서구 근대를 모방하고자 하였으나 가족의 영역에서는 일본적인 것을 지키고자 했던 제국주의 일본의 영향과 식민지적 차별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식민지 가족법은 호주를 중심으로 한 남성중심의 위계적인 가족의 창출로 귀결되었고, 일본에서는 인정되었던 개인에 기반한 권리들이 조선에서는 ‘관습’의 이름으로 인정되지 않는 등 식민지에 대한 법적 차별이 가족법의 내용에도 투영되었다. 해방 이후의 가족법개정운동은 가족법의 탈식민 과정이었으며 식민지시기 형성된 ‘관습 존중’이라는 가족법 구성의 기본 원리가 해체되고 개인의 결정권과 인권을 존중하고 민주주의와 양성평등이 가족법 구성의 주요한 원칙으로 정립되어 온 과정이었다.
    공동연구원 2는 여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 혹은 다양성에 주목하여 기왕의 여성사 연구들과 거리를 두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각각 근세, 전환기, 19세기 말이라는 각 시기별 일본 여성의 자기 인식을 살펴보는 것을 통해 역사 속 여성의 모습을 좀 더 명확하고, 적극적으로 고찰해보고자 하였다. 근세 일본 여성 지식인으로서 다다노 마쿠즈는 저작 활동을 통해 당시 여성들이 들어갈 수 없었던 ‘공적 영역’에 진출했고, 강한 이에(家) 의식을 바탕으로 아버지의 후계자로서 정체성을 견지하고자 했다. 이는 다다노 마쿠즈가 스스로 여성을 넘어 지식인이라는 자기 인식을 형성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막말유신의 전환기를 살았던 니지마 야에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가 정치적 주체로서 각성하게 된 계기를 찾아보고 그 의미를 확인하였다. 패자의 공간에 있던 니지마 야에에게 근대는 오히려 차별과 억압의 시작이었고, 승자 측 남성군인과 대치한 정치 주체화한 패자 여성이라는 구도를 통해 기존 젠더화된 문법과 다른 해석의 단서를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19세기 말 여성기자로 활동한 시미즈 시킨은 문필활동을 통해 일본 여성들의 각성을 피력한 ‘표현하는 여성’이자, 메이지 근대국가의 규범적 여성상인 ‘양처현모’의 논리에 선을 긋고 천황제 가족 국가체제에 균열을 일으킨 ‘실천하는 여성’이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학문적 기여도

    ➀ 동아시아 여성의 삶과 역사를 근세 및 근대 전환기라는 시기가 갖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양상에 주목하여 설명함으로써 그동안 여성사의 주요 패러다임으로 작용했던 근대화론이라는 단선론적 역사인식을 극복하고 동아시아 여성의 삶과 역사를 보다 다층적인 차원에서 설명하는 틀을 제공하였다.
    ② 그동안 일국사적 시각에서 접근해 온 여성의 역사를 동아시아라는 맥락에서 비교사적 방법을 통해 새롭게 규명함으로써 동아시아 여성의 삶을 틀 지워 온 구조가 어떻게 형성, 변경되었으며, 여성들은 이에 어떻게 대응해 갔는지 그 공통점과 차이점을 심도 깊게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일국사의 닫힌 관점을 벗어나 비교사적 연구가 활성화되고 있는 학계의 흐름과도 부합하는 본 연구는 향후 동아시아 비교사 연구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③ 동아시아 여성의 삶의 변화를 법과 제도, 사회질서와 문화, 자기인식이라는 넓은 문맥 속에서 검토함으로써 여성의 삶과 가부장적 차별 질서의 작용을 심도깊게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근세‧근대전환기 동아시아 각국의 역사와 문화 자체를 새롭게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여성사는 단지 여성에 대한 역사가 아니라 젠더의 작동방식에 대한 규명을 통해 해당 사회를 새롭게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본 연구는 여성의 경험을 통해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근세‧근대전환기에 나타난 정치적 역동, 사회구조와 문화의 변동을 이해함으로써 동아시아사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인식 틀을 제공한다.

    2) 사회적‧교육적 기여도

    한국사회는 이른바 ‘젠더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OECD의 일원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에서의 성별 임금격차, 정치권에서의 여성의 영향력 등의 지표에서 세계 100위 안에 진입조차 하지 못하는 젠더 불평등이 한국의 현실이지만, 한편에서는 표피적인 역사 이해에 기반하여 이제 여성에 대한 차별은 없다며 불평등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백래쉬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의 한가운데서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성차별적인 구조에 대한 역사적 이해와 그동안 역사 속에서 침묵 당해 온 여성들의 구체적인 경험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본 연구는 동아시아 여성의 삶을 다층적으로 이해하는 시각을 제공함으로써 오늘날 여성이 처한 현실과 사회의 구조를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 성평등한 미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기초 토대를 제공한다. 이 연구내용의 확산을 통해 대중의 성평등 의식을 재고하고 보다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기여할 것이다.
  • 색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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