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 속성(aesthetic property)의 수반(supervenience)’은 현대 분석 미학에서 오래 동안 논의되어온 주요 주제이다. ‘미적 속성의 수반 논제’에 따르면, 대상의 미적 속성과 비미적 속성이 구분되며, 전자가 후자에 수반한다. 미적 속성과 비미적 속성을 구분하는 기준 ...
‘미적 속성(aesthetic property)의 수반(supervenience)’은 현대 분석 미학에서 오래 동안 논의되어온 주요 주제이다. ‘미적 속성의 수반 논제’에 따르면, 대상의 미적 속성과 비미적 속성이 구분되며, 전자가 후자에 수반한다. 미적 속성과 비미적 속성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에 대해 여러 논의가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기준은 미적 감수성의 필요성 여부이다. 즉 미적 속성을 지각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미적 감수성이 요구되지만, 비미적 속성을 지각하는 데에는 일반적인 감각 기관(시각, 청각 등)의 작동이면 충분하다는 기준이다. 미적 속성의 예로 미학자들은 우아함, 강렬함 등을 들며, 비미적 속성의 예로는 사각형임, 곡선임 등을 든다. 이렇게 미적 속성과 비미적 속성을 구분한 후, 수반론자들은 전자와 후자 사이에 수반이라는 특별한 유형의 의존(dependence) 관계가 성립한다고 보는데, 그들이 말하는 의존 관계란 ‘비미적 속성의 차이 없이는 미적 속성의 차이도 없는 방식으로, 한 대상의 미적 속성이 그 대상의 비미적 속성에 의해 결정되는 관계’이다.
우리는 미적 수반 논제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여기에서 이 질문을 한층 어렵게 만드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미적 속성 실재론/반실재론의 구도’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미적 속성 실재론을 택하느냐 혹은 반실재론을 택하느냐에 따라 미적 수반 논제를 수용하는 것이 당신의 입장에 도움이 될 수도, 혹은 방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먼저, 많은 실재론자들은 ‘수반 논제’가 자신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실재론자는 장엄함이 <운명 교향곡>이라는 대상이 소유한 실제 속성임을 정당화하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특정 비미적 속성들(특정 리듬이나 멜로디 등)을 교향곡 안에서 찾아 지적하고, 그것에 장엄함이 의존하는 관계가 성립한다고 말함으로써 ‘장엄함의 실재성’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을 보이는 실재론자는 Levinson(1994)이다. 그러나 실재론자 중 Eaton(1994)이나 Pettit(1983)는 수반논제를 유지할 때 실재론에 가해지는 이론적 압박을 지적하면서, 실재론은 수반논제를 포기하는 게 낫다고 주장한다.
반실재론으로 넘어가보면, 많은 반실재론자는 ‘수반논제’가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반실재론자들은 동일한 <운명 교향곡>을 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감상자들이 해소불가능한 미적 판단의 불일치를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근거로 제시하면서, <운명 교향곡>의 실제 미적 속성이 있다는 사실을 거부한다. 이렇게 실재론을 거부하는 데 있어 반실재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험적 사실이 바로 ‘미적 판단의 불일치 현상’인데, 문제는 이 현상이 수반논제와 상충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반실재론자는 자신들의 주장에 유리한 '미적 판단의 불일치 현상'을 지키기 위해 '수반논제'를 포기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대부분의 반실재론자의 입장이지만, 한편으로 Goldman(1993)과 같은 이들은 반실재론자이면서 수반논제를 지키고자 한다.
이렇게 미적 수반과 미적 속성 실재론/반실재론은 서로가 긴밀하고 복합적으로 연결된 주제들이고, 이와 관련하여 본 연구는 다음의 두 목표를 성취하고자 한다.
첫째, 본 연구는 60년이 넘게 지속되고 있는 ‘미적 수반’에 대한 논의와 ‘미적 속성 실재론/반실재론’에 관한 논의를 한 자리에서 함께 살펴봄으로써, 그 두 주제와 관련된 여러 입장들을 정확하게 분류, 재기술해 보고자 한다. 두 주제의 이론적 지형을 개별적으로 정리하려 했던 시도들은 많았다. 그러나 본 연구의 독창성은 ‘실재론/반실재론이 미적 수반의 수용 문제와 관련하여 보일 수 있는 4가지 입장’이라는 ‘통합적 구도’로 이 분야를 조사하려는 데 있다. 이러한 목표를 가지고 본 연구는 기존의 이론들을 (1) 실재론이면서 미적 수반을 거부함 (2) 실재론이면서 미적 수반을 수용함 (3) 반실재론이면서 미적 수반을 거부함 (4) 반실재론이면서 미적 수반을 수용함이라는 4가지 입장으로 분류할 것이다.
둘째, 기존 연구를 위와 같이 분류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본 연구는 기존의 입장들이 모두 특정한 전제를 바탕으로 성립하고 있음을 보일 것이다. 이후 우리가 그 특정 전제에서 벗어난다면, 새로운 5번째 입장이 가능함을 보일 것이다. 궁극적으로, 본 연구는 실재론과 반실재론은 미적 수반의 수용과 관련하여 아무런 어려움을 제기하지 않기 때문에, 그 두 이론은 모두 미적 수반과 양립가능함을 주장할 것이다. 이로서 분석 미학자들이 오래 동안 고민해 온 수반논제의 수용 문제를 해결해 보고, 다소 정체되어 있는 이 분야에 새로운 논의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