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조선후기 정조가 편찬한 사서, 송사촬요(宋史撮要)의 고증과 그 의의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총 6책 7만 5천 여 자(字) 분량의 이 사서는 북송 태조부터 남송 효공제 재위 기간까지 300여 년 간의 주요 사실(史實) 속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들의 정 ...
이 연구는 조선후기 정조가 편찬한 사서, 송사촬요(宋史撮要)의 고증과 그 의의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총 6책 7만 5천 여 자(字) 분량의 이 사서는 북송 태조부터 남송 효공제 재위 기간까지 300여 년 간의 주요 사실(史實) 속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들의 정치·사상·문화적 성취와 행적을 요약적으로 선별해 수록하고 있다. 편년체 형식을 채택하고 있지만, 송조의 군주와 명신(名臣)들의 정치적 견해와 사상을 중심 내용으로 삼고 있다. 무엇보다 그 체재와 내용에서 매우 독창적인 구성을 띠고 있다. 禮·樂·射·御·書·數 등의 六藝를 각각 책명으로 편성하고, 주요 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나타난 정책과 대응방안을 위주로 기록했다. 정조는 자신의 현재적 관점에서 실제적 ‘감계(鑑戒)’가 될 수 있는 유교정치의 구체적 사례와 전형을 집약하고자 했다. 따라서 이 사서는 정조의 역사관을 반영하는 동시에 현실 정치의 방향성에 대한 입장을 매우 선명하게 투영하고 있는 귀중한 역사 유산이다. 송사촬요는 현재 편자와 편간 연대 ‘미상’의 필사본으로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지만, 가장 기초적인 고증 작업조차 이루지지 못했으며, 학계의 관련 연구는 현재까지 전혀 없는 실정이다. 2000년 이후 송사전(宋史筌)에 대한 국내외 연구는 비교적 다양한 시각에서 깊이 있는 분석이 이루어졌던 반면, 이 송사촬요는 그 편찬과정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이 정조실록이나 일성록 등의 문헌사료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최근 필자는 송사촬요(규장각 소장 필사본) 각 권의 앞 장에 찍힌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관인(官印)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3명의 일본 관리가 소장했던 규장각 도서목록으로부터 송사촬요의 서지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사미 린타로(淺見倫太郞, 1869~1943)의 西序書目草本(미국 버클리 대학 동아시아 도서관 소장), 마에마 교오사쿠(前間恭作, 1868~1942)의 西序書目草本私抄(일본 동양문고 소장), 가나자와 쇼자부로(金澤庄三郞, 1872~1967)의 西序書目籤錄(고마자와 대학 도서관 소장) 등이 그것이다. 西序書目은 규장각의 장서목록인 奎章總目 중 ‘東本’ 즉, 조선본 장서목록이다. 정조는 중국도서 ‘華本’의 장서목록인 閱古觀書目(6권)과는 별도로 조선의 독자적인 도서목록을 정리했었다. 그러나 이 西序書目(2권)은 국내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조선총독부 통역관 겸 고서 연구가였던 마에마 교오사쿠의 고선책보(古鮮冊譜)(1944)에는 “송사촬요가 정조 즉위 이전 동궁에 있을 때 편찬을 명했으며, 친히 편수한 6책본과 3책본이 있다”고 기록했다. 매우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 3명의 일본인이 소장하거나 필사했던 목록에는 송사전과 송사촬요이외에도 송조사상절(宋朝史詳節)이란 또 다른 사서가 등장한다. 고선책보에 따르면, 이 송조사상절(10권 5책) 역시 “정조가 동궁에 있을 때 명찬한 사서로, 송사촬요의 저본(底本)이 된 초고본(草稿本) 같은 것”이라고 기록했다. 송조사상절이 송사촬요의 저본이라면, 이 두 부(部)의 사서를 상세하게 비교하는 작업은 매우 필수적이다. 이 송조사상절 역시 국내외에서 다양한 판본(版本)으로 현전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그 어떤 고증이나 관련 연구도 진행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정조가 이렇게 송사(宋史)의 ‘전(筌)·상절(詳節)·촬요(撮要)’의 과정에서 찾으려고 했던 유교정치의 전범(典範)과 감계(鑑戒)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실체적 해답을 찾는 것이 바로 이 연구의 목적이다.
기대효과
1. 정조시대 역사유산의 새로운 발굴과 고증 송사촬요는 정조 시대의 귀중한 역사유산으로, 아직까지 ‘미’고증의 상태로 남아 있다. 따라서 이 연구는 정조시대 역사유산의 새로운 발굴이자 고증이다. 송사촬요 연구는 종전 송사전 연구 성과의 새로운 확 ...
1. 정조시대 역사유산의 새로운 발굴과 고증 송사촬요는 정조 시대의 귀중한 역사유산으로, 아직까지 ‘미’고증의 상태로 남아 있다. 따라서 이 연구는 정조시대 역사유산의 새로운 발굴이자 고증이다. 송사촬요 연구는 종전 송사전 연구 성과의 새로운 확장을 가능케 하며, 편자와 편간연대 미상의 사서인 송조사상절(宋朝史詳節) 연구에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송사전(宋史筌)-송조사상절(宋朝史詳節)-송사촬요(宋史撮要)로 이어지는 일련의 편찬과정에 대한 고증과 기사 내용의 분석을 통해 정조의 역사인식과 정치사상을 보다 입체적으로 규명할 수 있다.
2. 조선시대 관찬(官撰) ‘중국’ 사서(史書)에 대한 ‘반성적’ 접근 정조의 송사촬요는 독창적 구성과 체재를 갖춘 사서로, 조선후기 사학사(史學史)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조선의 ‘중국’ 사서편찬은 맹목적 ‘소(小) 중화주의’나 ‘사대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 아닌, 역사적 ‘감계(鑑戒)’를 목적으로 한 독자적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시각이다. 정조가 중국의 역대 황조(皇朝) 가운데 유독 송조(宋朝)를 지목해, 즉위 이전부터 송사(宋史)를 탐독하고 수차례의 초사(抄寫)를 거쳐 이 세 부(部)의 ‘연속 간행물’을 편찬한 것은 위와 같은 목적에서였다. 역사적 감계란 이념과 체제의 ‘상호 유사성’을 전제로 ‘치란(治亂)’의 과거 경험을 간접적으로 학습하고, 이를 현실 정치에 반영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송사촬요 등 조선시대 관찬 중국사서의 성격을 이와 같은 시각에서 재조명하는 작업은 조선시대 사학사 연구에 또 다른 ‘반성적’ 접근을 제공할 것이다.
3. 추상적으로 이해되었던 유교정치의 구체적 사례와 유형 도출 사서의 기사내용을 분류 가능한 유형으로 구분해, 이를 다시 정조 재위 시점의 역사기록과 비교·대조함으로써 ‘과거’와 ‘현재’의 상호작용을 실증적으로 규명할 수 있다. 기존의 연구들은 사서의 성격과 체재 및 구성을 분석하는데 치중했다면, 이 연구는 사서에 수록된 기사 내용이 편자의 현재적 시점과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를 분석한다. 추상적으로 이해되었던 유교정치의 유형과 전범을 사서의 내용과 정조 시대 문헌과의 대조를 통해 실증적으로 규명하는 방법은 이후 후속 연구에도 도움을 주리라 기대한다. 이 연구는 기사내용의 분석과 그 전거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송사촬요에 대한 초보적인 표점과 교감의 작업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이는 서적의 출판과 번역 작업에도 중요한 기초로 활용될 수 있다. 또한 송사촬요의 연구 과정에서 ‘미’고증 사서인 송조사상절의 실체를 규명할 수 있다. 송조사상절에 대한 후속 연구는 조선후기의 사학사 연구에도 활용될 수 있다. 본 연구자는 송사전·송조사상절·송사촬요 세 부(部)의 사서와 유교정치의 관계를 밝히는 저서를 집필할 계획이다.
연구요약
이 연구의 결정적인 단초가 된 홍재전서(弘齋全書)에 따르면, 정조 이산(1752~1800)은 “나는 일찍이 송조의 기풍과 인물이 우리 왕조와 서로 유사하여, ‘鑑戒’로 삼기에 다른 역사보다 宋史가 더욱 절실하다고 말하였다. 이 때문에 正史를 刪正하여 宋史筌이 나오게 되었고, 편년 ...
이 연구의 결정적인 단초가 된 홍재전서(弘齋全書)에 따르면, 정조 이산(1752~1800)은 “나는 일찍이 송조의 기풍과 인물이 우리 왕조와 서로 유사하여, ‘鑑戒’로 삼기에 다른 역사보다 宋史가 더욱 절실하다고 말하였다. 이 때문에 正史를 刪正하여 宋史筌이 나오게 되었고, 편년체로 節略하여 宋史撮要를 만든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기전체 사서 송사전과 편년체인 송사촬요는 어떤 내재적 연관성을 갖고 있으며, 정조는 왜 유독 宋史에 열중했는가? 필자가 제기하고자 하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이 사서들의 편찬이 의도하고 있는 ‘과거 사실’과 ‘현재적 작용’의 관계이다. 즉, ‘중국’ 사서를 개찬 또는 편수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 사실의 ‘발췌’나 ‘축약’이 아니라, 편자의 ‘현재적’ 관점에 의거한 ‘선택적’ 재구성을 의미한다. ‘촬요(撮要)’란 편자가 자신의 관점에서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요점을 선택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송사촬요는 송사의 단순한 요약이 아니라, 정조 자신의 현재적 관점에서 이를 해석하고 재구성한 사서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송사촬요의 기사내용을 분류 가능한 유형으로 구분하고, 이를 다시 정조 재위 시점의 역사기록과 비교·대조함으로써 ‘과거’와 ‘현재’의 상호작용을 실증적으로 규명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까지 송사촬요를 주제로 한 국내외의 연구논문과 저술은 전무하다. 그 원인은 이 사서의 기본적인 서지정보에 대한 고증이 결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기초적인 교감(校勘)도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잘못된 서지정보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의 학술 데이터베이스(DB)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1981년 서울대학교 출판부가 간행한 奎章閣韓國本圖書解題(史部Ⅰ)에는 마에마 교오사쿠의 기록을 誤譯한 부분이 발견된다. 古鮮冊譜는 송조사상절이 “송사촬요의 저본이 된 초고본 같은 것이다(宋史撮要の底本となれ草稿本ゐが如し)”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를 “송사촬요를 저본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오역한 것이다.(231쪽) 저본의 실체가 완전히 뒤바뀐 중대한 오류이다. 이 사서들은 비록 중국의 송사(宋史)를 개찬한 것이지만, 정조의 역사관과 정치사상을 반영한 귀중한 역사유산이다. 따라서 이 연구는 먼저 송사촬요의 기본적인 서지 정보의 오류를 수정하고, 편자와 편간연대 및 체재와 구성에 대한 고증에서부터 출발한다. 송사촬요의 실체는 송사전(宋史筌), 송조사상절(宋朝史詳節)과의 관계와 분리될 수 없다. 정조의 말대로 송사촬요와 송사전이 ‘표리’ 관계에 있으며, 송사촬요의 저본이 송조사상절이라면, 이 세 부(部)의 사서가 갖고 있는 편찬 취지와 목적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둘째, 정조가 송사촬요의 편찬으로부터 ‘감계’로 삼고자 했던 유교정치의 유형과 ‘전범(典範)’을 실증적으로 규명할 것이다. 송사촬요 각 권의 기사 내용으로부터 주제어·중심인물·기사의 전거(典據) 등을 추출해, 정조가 주목했던 유교정치의 사례와 전범을 도출해내고자 한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국문
이 연구는 조선후기 정조가 편찬한 사서 宋史撮要의 고증과 그 의의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총 6책 7만 5천 여 字 분량의 이 사서는 북송 태조부터 남송 효공제 재위 기간까지 300여 년 간의 주요 史實 속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들의 정치·사상·문화적 성취와 ...
이 연구는 조선후기 정조가 편찬한 사서 宋史撮要의 고증과 그 의의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총 6책 7만 5천 여 字 분량의 이 사서는 북송 태조부터 남송 효공제 재위 기간까지 300여 년 간의 주요 史實 속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들의 정치·사상·문화적 성취와 행적을 요약적으로 선별해 수록하고 있다. 편년체 형식을 채택하고 있지만, 송조의 군주와 명신들의 정치적 견해와 사상을 중심 내용으로 삼고 있다. 무엇보다 그 체재와 내용에서 매우 독창적인 구성을 띠고 있다. 禮·樂·射·御·書·數 등의 六藝를 각각 책명으로 편성하고, 주요 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나타난 정책과 대응방안을 위주로 기록했다. 정조는 자신의 현재적 관점에서 실제적 ‘鑑戒’가 될 수 있는 유교정치의 구체적 사례와 전형을 집약하고자 했다. 따라서 이 사서는 정조의 역사관을 반영하는 동시에 현실 정치의 방향성에 대한 입장을 매우 선명하게 투영하고 있는 귀중한 역사 유산이다. 송사촬요는 현재 편자와 편간 연대 ‘미상’의 필사본으로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지만, 가장 기초적인 고증 작업조차 이루지지 못했으며, 학계의 관련 연구는 현재까지 전혀 없는 실정이다. 2000년 이후 宋史筌에 대한 국내외 연구는 비교적 다양한 시각에서 깊이 있는 분석이 이루어졌던 반면, 이 송사촬요는 그 편찬과정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이 정조실록이나 일성록 등의 문헌사료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조선총독부 통역관 겸 고서 연구가였던 마에마 교오사쿠(前間恭作, 1868~1942)의 古鮮冊譜(1944)에는 “송사촬요가 정조 즉위 이전 동궁에 있을 때 편찬을 명했으며, 친히 편수한 6책본과 3책본이 있다”고 기록했다. 정조가 이렇게 宋史에 대한 ‘撮要’의 과정에서 찾으려고 했던 유교정치의 典範과 鑑戒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실체적 해답을 찾는 것이 바로 이 연구의 목적이다.
영문
This Study attempts to find out the descriptive purpose and significance of “Summary Of The History of Song Dynasty” that has not been studied in the Korean academic community. “Summary of The History of Song Dynasty” compiled by King Jeong- jo of the ...
This Study attempts to find out the descriptive purpose and significance of “Summary Of The History of Song Dynasty” that has not been studied in the Korean academic community. “Summary of The History of Song Dynasty” compiled by King Jeong- jo of the Joseon Dynasty is the Chinese historical books covering a period from the North Song to the South Song dynasty in a chronological order. It is consisted of approximately 76,000 letters of six volumes, each volumes named by Six Rituals : Rites(禮), Music(樂), Archery(射), Charioteering(御), Calligraphy(書), Mathematics(數). The book's content mainly deals with the political views and policies of the famous literary officials of the Song Dynasty and respect for Confucianism. In particular, King Jeong-jo took note of historical facts that could be a lesson and boundary to his political reality, especially from the historical experience of Confucian politics in Song Dynasty. He compiled the book to extract the essence of Confucian politics from the ups and downs and political successes and failures of the Song Dynasty's history. He had already mastered the history of the Song Dynasty by reading history books and writing them himself even before he ascended to the throne. Therefore, “Summary Of The History of Song Dynasty” is a valuable historical legacy that reflects Jeong-jo's historical view while projecting very clearly his position on the direction of real politics.
연구결과보고서
초록
이 연구는 조선시대 편자와 편간연대 ‘미상’의 문헌으로 남아 있던 송사촬요(宋史撮要)에 대한 기초 고증을 바탕으로, 편자와 편간 연대, 편찬의 목적과 취지 및 내용의 특징과 그 의미를 밝히고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관원들이 소장했던 규장총목 중 조 ...
이 연구는 조선시대 편자와 편간연대 ‘미상’의 문헌으로 남아 있던 송사촬요(宋史撮要)에 대한 기초 고증을 바탕으로, 편자와 편간 연대, 편찬의 목적과 취지 및 내용의 특징과 그 의미를 밝히고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관원들이 소장했던 규장총목 중 조선본 도서목록인 「서서서목」을 추적·대조하는 과정에서 송사촬요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조선총독부의 통역관이자 서지학자였던 마에마 교사쿠(前間恭作, 1868~1942)가 남긴 고선책보(古鮮冊譜)(일본 동양문고, 1944)를 통해 이 문헌의 편자가 정조(正祖)임을 확증했다. 편찬 시점은 1776년 그가 즉위하기 이전 동궁에 있는 거처하며 국정 운영의 방향을 구상하던 시기였다. 일성록과 홍재전서·「군서표기(群書標記)」의 기록에 따르면, 정조는 동궁시절 약 6년간 송사를 탐독하며 유교정치의 감계가 될 수 있는 서적을 편찬하고자 했다. 이러한 편찬의 목적과 취지에 따라 방대한 편폭의 사서인 송사를 압축적으로 재구성하고 정리한 것이 바로 이 송사촬요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송사촬요(6책)의 저본이 되었던 또 하나의 사서가 등장하는데, 그것이 송사상절(宋史詳節)(혹은 ‘宋朝史詳節’)이다. 실제로 두 문헌의 기사와 내용의 유사도가 매우 높은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송사상절은 백 여 편에 달하는 역사평론문(史論)을 수록한 반면, 송사촬요에서는 이를 생략했다. 이런 관계로 13만여 자에 달하는 분량이 약 7만 6천여 자로 절반가량 축소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두 사서에는 공통적으로 편찬의 「서(序)」와 「발(跋)」이 빠져있다. 이는 유전 과정에서 일실된 것이 아니라, 두 사서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성격에 기인했다. 정조는 「서(序)」가 존재하는 어정(御定) 송사전(宋史筌)(1780)을 편찬·간행하는 과정에서 조선왕조에게 감계가 될 수는 유교정치의 전범(典範)을 별도로 정리해 보관해 두었던 것이다. 즉, 동궁시절 송사를 정독하고 초사(抄寫)하면서, [상절(詳節, extract)]-[촬요(撮要, summary)]-[진전(眞筌, filtering)]이라는 정밀한 과정을 설정했다. 송사전의 초고본을 ‘송사진전(宋史眞筌)’라고 명명했던 점도 이런 사실을 방증한다. 이 연구에서 다루고자 했던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이 사서들의 편찬이 의도하고 있는 과거 사실과 현재적 작용의 관계이다. 즉, 중국 사서를 개찬 또는 편수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 사실의 발췌나 축약이 아니라, 편자의 현재적 관점에 의거한 선택적 재구성을 의미한다. ‘촬요(撮要)’란 편자가 자신의 관점에서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요점을 선택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송사촬요는 송사의 단순한 요약이 아니라, 정조 자신의 현재적 관점에서 이를 해석하고 재구성한 사서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동궁시절 편찬한 이 송사촬요의 핵심내용이 실제 정조의 재위기간 어떻게 국정운영과 정책에 반영되었는지를 면밀하게 고찰하는 것이 더 본질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조선시대 관찬 중국사서의 근본적인 성격을 가늠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사학사 연구에도 새로운 시각과 방법을 제공해 줄 것이다.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첫째, 규장총목(奎章總目) 중 조선본(朝鮮本) 장서목록인 「서서서목(西序書目)」의 발굴과 복원은 역사학을 비롯한 기타 학문영역에도 활용될 수 있다. 아사미 린타로(淺見倫太郞, 1869~1943), 마에마 교사쿠(前間恭作, 1868~1942), 가나자와 쇼자부로(金澤庄三郞, 1872~1967)가 각각 개인 소 ...
첫째, 규장총목(奎章總目) 중 조선본(朝鮮本) 장서목록인 「서서서목(西序書目)」의 발굴과 복원은 역사학을 비롯한 기타 학문영역에도 활용될 수 있다. 아사미 린타로(淺見倫太郞, 1869~1943), 마에마 교사쿠(前間恭作, 1868~1942), 가나자와 쇼자부로(金澤庄三郞, 1872~1967)가 각각 개인 소장했던 목록에는 사서 이외에도, 지리·의학·역학·의례에 관한 서적들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세 명의 일본인에 대한 행적을 연구하는 것도 유실된 우리 문화유산을 복원하는 데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규장각한국본도서해제(奎章閣韓國本圖書解題)(1981)와 면밀히 대조해 새로운 서지정보의 발굴과 오류의 수정에도 활용할 수 있다. 둘째, 이 연구는 기사내용의 분석과 그 전거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송사촬요에 대한 초보적인 표점과 교감의 작업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이는 서적의 출판과 번역 작업에도 중요한 기초로 활용될 수 있다. 셋째, 송사촬요의 연구 과정에서 ‘미’고증 사서인 송조사상절의 실체를 규명할 수 있다. 송조사상절에 대한 후속 연구는 조선후기의 사학사 연구에도 활용될 수 있다. 본 연구자는 송사전, 송조사상절, 송사촬요 세 부(部)의 사서와 유교정치의 관계를 밝히는 저서를 집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