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秦의 戰國 統一과 國家祭祀 구축
Unification by Qin Dynasty and Construction of National Sacrifice System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시간강사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9-S1A5B5A07-2019S1A5B5A07092492
선정년도 2019 년
연구기간 1 년 (2019년 09월 01일 ~ 2020년 08월 31일)
연구책임자 김용찬
연구수행기관 강원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史記』 「封禪書」에 따르면 統一 이후 秦의 國家祭祀는 체계화되었으나 여전히 불완전하였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秦 帝國의 國家祭祀는 前漢 末부터 後漢 初까지 이루어진 儒家 官吏들에 의한 대대적인 禮制 改革에 비하면 그다지 시선을 끌지 못하였다. 그러나 秦 帝國에도 前漢 末 이후 國家祭祀의 중심이 된 南郊가 핵심으로 삼은 天極을 본떠 만들어진 極廟가 있었고, 이 極廟를 중심으로 關中 일대의 여러 건축물들이 天上의 질서를 구현하고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될만큼, 秦 帝國은 또 다른 방식으로 郊祀가 추구한 이상을 이미 실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아가 秦 始皇 스스로 반포한, 허가되지 않은 제사에 대한 금지와 처벌 규정을 보면, 『史記』 「封禪書」에서와 같이 民에게 위임한 제사까지도 사실상 모두 국가권력이 통제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 『史記』 「封禪書」에서 祠官이 관할하는 제사 시설이 關中이 치우쳐있기는 하지만 關中과 山東의 대칭, 漢 宣帝 시기에 확립된 五嶽·四瀆이 南嶽을 제외하면 사실상 여기에 모두 구현되었다는 점을 보면, 秦 帝國 역시 前漢 末 後漢 初와 같은 전국적인 國家祭祀 구축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秦 帝國이 통일 이후 구축한, 중앙에서 지방에 이르는 전국적인 國家祭祀의 구조를 다시 확인,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기대효과
  • 秦 帝國의 등장 이후 처음으로 본격적인 ‘天下’를 대상으로 한 國家祭祀가 꽃필 수 있었고, 중앙에서부터 지방 곳곳에 이르는 전국적인 규모를 가지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를 통하여 前漢 末 後漢 初에서야 비로소 儒家 官吏들에 의하여 儒家 經典에 기반한 禮制 改革이 이루어졌고, 비로소 전국적인 國家祭祀가 완성되었다는 기존의 일반적인 주장에 대하여, 秦 帝國이라는 前代未聞의 統一 帝國의 출현에서부터 이미 그와 같은 시도들이 선행되었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즉 儒家들의 대두 이전에도 국가권력은 종교와 신앙의 문제에 맞닥뜨렸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세속적인 지배력을 구축함과 동시에 신정적인 지배력 역시 갖추어가고 있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이를 통해 前漢 末 後漢 初라는 분기에 집중한 國家祭祀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고 국가권력과 신앙, 제사의 상호 관계가 국가와 帝國의 탄생에서부터 지속되었음을 다시 강조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 연구요약
  • 秦 帝國이 통일 이후 구축한, 중앙에서 지방에 이르는 전국적인 國家祭祀의 구조를 다시 확인,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이를 위해 먼저 秦의 極廟가 가지는 위상에 대해 재조명하고, 極廟를 중심으로 구현된 天上과 地上의 合一을 살펴보고자 한다. 비록 儒家 經典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존재하지는 않았지만, 秦 帝國 역시 탄생 초기부터 초자연적인 존재들을 통합, 규제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였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 결과 만들어지게 된 것이 極廟임을 밝히고, 기존의 四畤, 陳寶와 같은 秦 王國의 유력한 제사 시설들과의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秦 帝國의 차별점을 뚜렷이 드러내려 한다.
    다음으로 『史記』 「封禪書」에서 이미 구체적으로 제시된 바 있는 전국 단위의 지방 제사가 어떻게 조직되어 있었는지 그 원리에 대해 생각해보겠다. 이미 『史記』 「封禪書」에서도 지적하였지만, 夏, 商, 周 三代나 漢 宣帝 이후 역대 중국 왕조들의 지방 제사는 五嶽·四瀆을 기반으로 구축되었다. 그러나 『史記』 「封禪書」에 언급된 秦 帝國의 지방 제사는 이와 사뭇 다르다. 기본적으로 關中과 山東을 구분하며, 關中이 특히 가중되어 있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지, 이와 같은 山·川 祭祀의 구조가 과연 ‘天下’를 아우를 수 있는 것이었는지, 중앙의 極廟와는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등을 考究해보겠다.
    秦 帝國은 『史記』 「封禪書」에서 소홀히 다루었던 민간 제사의 영역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淫祀’의 문제는 역대 모든 중국 왕조에서 국가권력의 존립을 위협하는 문제로 인식되었지만, 秦 帝國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秦 帝國은 국가권력이 허용하지 않은 모든 제사를 淫祀로 규정하는 적극적인 규제를 시행하였는데, 통일 이전부터 伏日, 臘日 등의 시기와 社 등의 장소에 대해 제한을 둔 것은 바로 그 구체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淫祀에 직접 대항한 존재는 지방 장관이었으며, 官吏들은 민간의 신앙을 국가권력에 도전하지 않는 유용한 것이 되도록 유도하는 주체로 활약하였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지금까지 전통 중국의 국가제사는 유교 의례에 따라 조직, 발전되어 온 것으로 인식되었고, 유교 의례에 따른 개혁 이전의 국가제사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조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국가의 탄생에서부터 제사를 통하여 신의 세계를 해석하고 이를 권력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시도는 부단히 일어났고, 통일과 제국의 탄생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통일에 이르기까지 진의 국가제사가 천하를 단위로 구체화되는 과정에 주목하였다. 진은 통일 전까지 700년 동안 축적된 제사의 토대 위에 새롭게 천하를 지배하기 위한 제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비록 그것이 유교와 같은 이념적 토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하늘의 질서를 땅에 구현한다는 소박한 믿음에 따라 지상의 황제를 천상의 북극성에 일치시키기 위해 극묘를 창출하였다. 또 진이 새로 점령한 지역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제사 제도를 창출하여 제국으로서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나아가 전래 사료의 기록과는 달리 민간 신앙의 영역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황제의 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신격이 없도록 하였다. 이를 통해 진은 통일 이후 천하에 대하여 세속적인 지배뿐만 아니라 신정적인 지배도 관철시켰던 것이다.
  • 영문
  • Until now, it has been recognized that traditional Chinese national sacrifice have been organized and developed according to Confucian rituals, and a proper view of national sacrifice prior to the reform according to Confucian rituals has not been achieved. However, since the birth of the nation, attempts to interpret the world of gods through sacrifice and to use it as a means of power have been constantly taking place, and it must have influenced the unification and the birth of an empire. From this point of view, attention was paid to the process in which Qin's national sacrifice was embodied in units of the World(Tianxia, 天下) until unification. Qin tried to establish a new system to dominate the World on the basis of rituals accumulated for 700 years before unification. Although it did not have the same ideological foundation as Confucianism, it was created in order to match the earthly emperor to the celestial north star according to the simple belief that the heavenly order was realized on the earth. In addition, Qin created a new ritual system covering the newly occupied areas, renovating its appearance as an empire. Furthermore, unlike historical records, it actively intervenes in the domain of folk beliefs so that there is no deity beyond the emperor's power. Through this, Qin carried out not only secular domination but also theocratic domination over the world after unification.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秦 帝國이 통일 이후 구축한, 중앙에서 지방에 이르는 전국적인 國家祭祀의 구조를 다시 확인,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秦의 極廟가 가지는 위상에 대해 재조명하고, 極廟를 중심으로 구현된 天上과 地上의 合一을 살펴보았다. 비록 儒家 經典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존재하지는 않았지만, 秦 帝國 역시 탄생 초기부터 초자연적인 존재들을 통합, 규제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였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 결과 만들어지게 된 것이 極廟임을 밝히고, 기존의 四畤, 陳寶와 같은 秦 王國의 유력한 제사 시설들과의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秦 帝國의 차별점을 뚜렷이 드러내었다.
    다음으로 『史記』 「封禪書」에서 이미 구체적으로 제시된 바 있는 전국 단위의 지방 제사가 어떻게 조직되어 있었는지 그 원리를 살펴보았다. 이미 『史記』 「封禪書」에서도 지적하였지만, 夏, 商, 周 三代나 漢 宣帝 이후 역대 중국 왕조들의 지방 제사는 五嶽·四瀆을 기반으로 구축되었다. 그러나 『史記』 「封禪書」에 언급된 秦 帝國의 지방 제사는 이와 사뭇 다르다. 기본적으로 關中과 山東을 구분하며, 關中이 특히 가중되어 있다. 나아가 전래 사료에서 언급되지 않았으나 새로운 출토 사료를 통해 확인한 秦의 몇몇 제사에 주목하여 전래 사료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시도를 가져보았다. 이렇게 확인된 秦의 제사 구조가 과연 ‘天下’를 아우를 수 있는 것이었는지, 중앙의 極廟와는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등을 考究해보았다.
    秦 帝國은 『史記』 「封禪書」에서 소홀히 다루었던 민간 제사의 영역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淫祀’의 문제는 역대 모든 중국 왕조에서 국가권력의 존립을 위협하는 문제로 인식되었지만, 秦 帝國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秦 帝國은 국가권력이 허용하지 않은 모든 제사를 淫祀로 규정하는 적극적인 규제를 시행하였는데, 통일 이전부터 伏日, 臘日 등의 시기와 社 등의 장소에 대해 제한을 둔 것은 바로 그 구체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淫祀에 직접 대항한 존재는 지방 장관이었으며, 官吏들은 민간의 신앙을 국가권력에 도전하지 않는 유용한 것이 되도록 유도하는 주체로 활약하였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이상의 연구를 통하여 秦 帝國의 등장 이후 처음으로 본격적인 ‘天下’를 대상으로 한 國家祭祀가 꽃필 수 있었고, 중앙에서부터 지방 곳곳에 이르는 전국적인 규모를 가지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하여 前漢 末 後漢 初에서야 비로소 儒家 官吏들에 의하여 儒家 經典에 기반한 禮制 改革이 이루어졌고, 비로소 전국적인 國家祭祀가 완성되었다는 기존의 일반적인 주장에 대하여, 秦 帝國이라는 前代未聞의 統一 帝國의 출현에서부터 이미 그와 같은 시도들이 선행되었다는 점을 밝혔다. 즉 儒家들의 대두 이전에도 국가권력은 종교와 신앙의 문제에 맞닥드렸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세속적인 지배력을 구축함과 동시에 신정적인 지배력 역시 갖추어가고 있었음을 밝혔다. 이를 통해 前漢 末 後漢 初라는 분기에 집중한 國家祭祀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고 국가권력과 신앙, 제사의 상호 관계가 국가와 帝國의 탄생에서부터 지속되었음을 다시 강조하였다.
  • 색인어
  • 秦 帝國, 戰國 統一, 國家祭祀, 禮制 改革, 儒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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